11월29일(금) 14시. 왕십리CGV . 양우석 감독 <변호인 Gloria > (2013) 시사회.
별점: ★★★★☆
지난 7월 <설국열차> 시사회를 본 직후, "블루칩배우 송강호도 이제 획기적인 변신을 시도할 때가 온 것 같았다."라고 짧게 적은 바 있는데(촌평보기), 송강호는 <변호인>의 연기를 통해 급반전의 도약대를 이미 마련한 것 같다. 배역과 연기력이라는 거대담론식 반전과는 무관하게, 부산을 무대로 삼은 영화의 토속성을 친숙한 질감으로 내뱉는 송강호의 경상도 사투리가 증강시키고 있다. 그의 사투리 연기도 영화 평가에 전반적 가산점으로 작용할 듯 싶었다. <친구2>가 쏟아내는 무성의한 순엉터리 경상도 사투리는 도무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미 알려진 대로 영화 <변호인>의 모델은 실존인물 노무현 변호사다. 78년 부산을 배경으로 판사를 때려치고 세무변호사로 인생 반전하는 부산상고 출신 고졸의 주연, 인권 변호를 맡으며 다시 인생 2막을 여는 극중 변호사 송우석은 78년 이후 노무현 변호사가 걸어온 일생을 그대로 모델로 삼았다. 사실을 인지한 채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 속 실존 모델의 불행한 최후까지 전부 알고 있는 관객은 감정이 동요된다. 그도 그럴것이 집중력 있는 감정이입으로 송우석 변호사가 된 송강호의 연기 변신에 관객이 설복당하기 때문이다.
송강호를 정점으로 <변호인>의 출연진 모두 연기 가치 도약대 위에 섰다. 이번 영화로 큰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큰 보상을 얻은 것 같다. 영화를 다 본 후에 감정을 가라앉히고 거리를 두고 본다면, 악역마저 사랑스러울 만큼 그의 연기 몰입도는 뛰어났다. 악역배우 곽도원에게도 박수 쳐주고 싶다.
실화에 바탕을 둔 극의 전개는 극이 반전될 때 혹은 주인공이 판을 뒤집는 결정을 내리는 허구적 순간들마저 어색함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78년과 81년 그리고 87년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실제 시국 상황을 허구화 된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2013년 한국사회의 시대착오적 현실을 환기하게 되고, 그 때문에 영화의 드라마성에 격정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2008년 이후 한국 정치사의 허무한 진행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관람을 권하고 싶다. 정치적 성향이 꼭 그렇지 않아도 즐기면서 볼 가치가 있다. 엔터테인먼트를 바탕에 깔기 때문에 예술은 아주 드물게 위로와 독려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거다. 매우 드물게 수행되는 영화가 주는 위안은 바로 이 순간 비장한 모습으로 출연한다.
현대사의 실제적 상처를 소재 삼은 드라마성 때문인지, <변호인>은 노동운동가 전태일을 다룬 박광수 감독의 1995년작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법통을 잇는 21세기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기억나는 대사: "이런 일은 일시적 감정으로 맡는 게 아니야." / "이 자리를 지킵시다."
=> 어떤 장면 속 대사인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보고 확인하시길.
ps. 이거 하난 밝혀야겠다. 영화를 보던 중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순간이 화면 앞으로 펼쳐졌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영화에 내 주민증상 주소지인 평창동집이 출연한 거다. 송강호가 우리집 대문 앞에 서서 누군가를 막아서는 장면이 나온 거다. 익숙한 집 대문 구조하며 주변 이웃집들이 곡선하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채 그 장면을 지켜봤다. 이 정돈 고백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