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8일 금요일

0228 니키 7년



니키 7주기.

믿겨지지 않게 젊은, 무려 8년 전의 나와 니키의 사진을 골랐다. <마리 끌레르>(2006년 5월호) 특집을 위한 촬영(엮인글).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니키요  

0227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2월27일(목) 14시. 왕십리CGV 웨스 앤더슨 감독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2014) 시사회.

별점: 







영화 한편에 쟁쟁한 출연진들을 이렇게 무더기로 기용한 경우는 흔치 않을 거다. 출연진은 이렇다: 레이프 파인스, F. 머리 에이브러햄, 마티외 아말릭, 에이드리언 브로디 ,윌럼 대포, 제프 골드블룸, 주드 로, 하비 카이텔, 빌 머리, 에드워드 노턴, 세어셔 로넌, 레아 세이두, 제이슨 슈워츠먼, 틸다 스윈턴, 톰 윌킨슨, 오언 윌슨, 밥 발라반. 하지만 명성높은 라인업의 배우들은 이 영화 안에서 짧은 시간 자기 배역의 핵심만 수행한 후 화면에서 사라진다. 이렇듯 기용된 배우의 배역 안배와 연출도 전에 없지만 무엇보다 전에 없는 건 화면 구성이다. 비유하자면 '팀 버튼식 환타지를 꽉 짜인 영국식 정원의 구성' 속에 끼워넣은 것 같달까. 화면 전환 속도는 일반적 영화처럼 빠르고, 역동적인 신도 많지만 안정된 정중앙 구도와 좌우대칭 구도라는 틀 안에서 이뤄진다. 거의 예외가 없다. 카메라 앵글이 바뀔 때조차 70도나 40도 각도가 아니라 각잡힌 90도나 180도의 회전을 유지한다. 동영상이 형식주의 정지 화면에서 구현된다고나 할까. 

형식주의적 스크리닝 때문에 미술의 질감을 계속 의식하면서 관람하게 되는데, 화면의 형식성 외에도 강박적인 붉은색으로 도색된 구식 엘리베이터의 실내마저도 그런 미술의 언어를 차용한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의 서사에 전환점이 되기 위해 등장하는 것도 미술작품이지 않던가. 반 호이틀의 '사과를 든 소년'.  그뿐 아니라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호텔 로비는 에드워드 호퍼의 실내를 연상시키는 색감과 구도를 띠고 있다. 험악한 살인(가령 참수)조차 탐미적인 재현을 따르기에 결코 끔찍하다는 인상이 남지 않고 그런 장면마저 익살 맞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엄정한 수직선과 수평선 위에서 팽팽한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보면 숙련되어 있진 않다. 그러나 연출자가 중점을 둔 건 촘촘한 개연성에 의존한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 질서있게 순서대로 밀려나오는 이야기 전개 방식을 통한 차별화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선 차별화에 성공했다. ★★★★☆를 준 가장 큰 이유는 변별력 획득이다. 배우의 영국식 발음이 고유한 이국성을 체험하게 하는 영화들은 흔히 있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영국식 발음을 일종의 기민한 영화적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화면의 엄격한 질서나 꽉 짜인 구성과 영국식 발음이 서로 유기적으로 지각된다. 그런 연출의 원칙은 영화 속 호텔 로비 보이의 '무거운 입(침묵)'의 원칙과도 동기화 된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스토리텔링의 방식, 네임밸류 높은 얼굴들의 총출연, 빠른 화면 전환과 안정된 화면 구도 등,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거다.

2014년 2월 27일 목요일

0227 미성동 2년

2012년 2월27일 동작구 신대방동에서 관악구 미성동(신림11동)집으로 이사했으니까(엮인글) 미성동에서 딱 2년 살았다.

한국 주택문화사에 길이 남을 '오피스텔'이니 '빌'이니 하는 명칭을 단 복층 구조의 다가구 주택이 있다. 무수한 원룸들을 건물 내부에 촘촘히 박아넣은 몰개성하게 길죽한 건물 말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이 바로 여러 채의 원룸들과 가정집 구조의 2개층(5층/6층)으로 구성된 몰개성한 그런 건물로 이름까지 '파크빌'이다. 나는 건물이 막 완공된 직후 입주를 해서 아마 첫 입주자였지싶다. 이 건물은 이른바 '집장사꾼'이 집주인이다. 내가 사는 6층처럼 가정집 구조인 5층은 이 건물이 완공된 후 여지껏 입주자가 없는데, 이유는 집장사꾼인 집주인이 이 건물을 통째로 구입할 사람에게 5층을 넘기려 하기 때문이란다. 즉 건물이 아직 매매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직전에 나는 자전거 사고의 후유증으로 극도로 예민한 정서였던 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무렵 하필 신대방동집에서 위층의 층간소음에 1년 이상 시달린 터라 미성동으로 이사 왔을 때의 내 상태는 거의 신경쇠약 직전이었다. 때문에 자잘한 소음 모두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층간 소음을 피하려고 일부러 최상층(6층)을 고른건데 왠걸..... 이런 건물들은 대개 후다닥 지어올리기 때문에 구조가 여간 허술한 게 아니다. 오죽하면 텅 비어 있는 5층도 아니고 그 아래층 소리까지 6층으로 전달될 정도란 말이다. 문닫는 소리 샤워기 소리 심할때는 컴터 켜고 끌때 들리는 윈도우 시작음 종료음 소리까지 6층으로 들려와서 나는 기겁을 했고 크게 실망했다.  급기야 입주 첫해 여름께 비가 오면 물이 스며들어서 책을 왕창 적셔서 내다 버린 적까지 있다. 집을 이토록 엉터리로 지어서 남에게 판다면 그 건설업자를 구속하는 법이라도 제정해야 하지 않을까? 

소음을 피하려고 이사한 최상층 새 집에서까지 아래층 소음을 맛본 나는 완전 히스테리에 빠졌다. 입주하고 한두달 지났을까? 내 절망감과 민감도는 극에 달해서 정말 진지하게 또 다른 이사를 고민했다. 그런데 한국같은 부실한 토목사회에서 새로 이사를 한들 이처럼 허술한 주택을 만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거 아닌가. 삶에 출구가 보이질 않는 기분이었다. 그 정도로 당시 내 심리는 불안정하고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2년이 지난 후 돌아보면 그럭저럭 이 집에서 어지간히 잘 지낸 셈이지만, 이사 직후 이 건물이 각인시킨 실망스런 첫 인상과 몇몇 나쁜 체험 때문에 나는 지금 사는 미성동 건물에 정을 통 붙이지 못한 채 긴장 상태로 이 건물과 항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다. 집 가까이 호림박물관도 있고 그 뒤로 낮은 산등성이도 있지만 산책길로 이용해 본 적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연전에 지인이 큰개를 맡겨놨을 때 큰개랑 산책한 게 전부다. 집과 가까운 재래시장도 큰 장점이라고 믿었지만 (1일1식을 시작한 이후로 특히) 재래시장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고 말았다.  

미성동 집에 머문 2년 동안 큰 보람을 꼽자면 현재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하는 '9809레슨' 연속 강좌의 밑그림 격인 같은 제목의 연재물을 <월간미술>에 기고했다는 점(2012년 3월호~2014년 3월호)이다. 


앞으론 어딜 가건 어디서 살건 그 장소와 친화력을 갖고 밀착을 유지하면서 살도록 의식하자고 믿고 있다.  



* 나는 건물의 최상층(6층)에 살고 건물 맞은 편에 호림박물관이 있다. 호림박물관 방향에서 집을 향해 찍은 사진(아래). 


2014년 2월 26일 수요일

0226 탐욕의 제국

2월26일(수) 14시. 인디스페이스. 홍리경 감독 <탐욕의 제국 The empire of shame>(2014?) 시사회.

별점: 보류 






맨 위 사진이 영화 첫 장면에 편집되어 나온다. 흰 방진복 차림의 삼성 반도체 엔지니어와 직원들의 한참 과거의 기념사진들을 배경에 깔고 내레이션이 흐르면서 영화가 시작한다. 시사회장에 들어가기 앞서서 현재 진행형인 사회 쟁점을 취급하는 이런 다큐멘터리는 별점으로 완성도를 구분짓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별점 평가를 주저하게 되었다.

삼성반도체나 삼성LCD에 근무한 직원들에게 생리불순이 오고 심한 경우 백혈병이나 종양이 생겨 투병하고 사망하자, 환자/사망자와 그 가족들이 삼성과 삼성 측을 두둔하는 근로복지공단 등을 대상으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백혈병이나 종양에 걸린 삼성 반도체 직원의 발병이 반도체 작업 공정과는 무관한 우연적인 것이라며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삼성과 삼성을 두둔하는 측의 입장인 거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한 소송에서 일부 승소를 하는데, 최종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 내가 영화를 통해 읽어내질 못했다. 나중에 자료를 살피니 일부는 승소를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이 다시 항소를 했다고 나온다. 또 삼성측과 피해자 측의 교섭도 작년말 파행을 겪었다고 한다. 

<탐욕의 제국>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기왕 현재 진행형 사회 쟁점을 세상에 환기시킬 목적이 큰 다큐멘터리였다면 수술 후유증 때문에 시력 언어 보행 등에 1급 장애가 온 반도체 회사 직원 한혜경의 잘 들리지 않는 대사나 감정에 복받쳐서 드문드문 끊어서 말하는 여러 출연진의 대사들은 한글 자막으로 처리해줬으면 좋았겠다는 거다. 또 아무래도 반도체 작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인체 유해 화학물질에 관해서는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삼성반도체와 피해자 가족들의 대립구도를 좀 체계화된 도표나 그림으로 화면 중간 중간에 정리를 해줬으면 나을 뻔 했다. 삼성 건물 앞에서 시위를 가로막는 보안업체 직원들 앞에서 무력해지는 피해자들의 감정적 격앙과 무력감을 볼 때면 눈물도 흐르지만, 그럼 감정적인 호소보다 논리 정연한 해설표나 진행도를 화면 중간중간 띠워서 이야기의 진도를 관객이 따라오게 만드는 편이 다큐멘터리의 취지에 더 부합했을 거다.  

여러 피해자 중에서 삼성반도체에 다니던 자식과 남편을 잃은 어느 애비와 어느 아내의 삼성반도체를 향한 투쟁의지는 정말 남달랐다. 삼성 측의 진정한 사과나 산재에 대한 인정 없이 큰 보상금으로 이 사태를 눙칠 순 없다는 점을 이 두 사람은 결연한 다짐으로 보여준다. 

삼성 건물 앞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시위를 시민들이 무심히 보고 지나치는 장면에선 스티브 맥퀸의 <노예 12년>에서 학대받는 노예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 동료 노예들이 자기 노역에 무심히 몰두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부조리의 일상화에 공동체가 정서적으로 무감각해진 상태. 


* 마지막 크레딧에는 영화제목 뒤로 2014라고 적혀있었지만, 이미 2013년부터 여러 영화제들에 반복해서 초대된 영화다. 공식 개봉은 오는 3월6일이란다.  

2014년 2월 25일 화요일

0224 박찬경 '만신' ★★★★

2월24일(월) 1930시. 씨네코드 선재. 박찬경 감독 <만신 MANSHIN: Ten Thousand Spirits>(2013) 시사회.

별점: 






무속을 주제로 박찬경이 45분짜리 중편영화 <신도안>을 발표한 게 2008년인데(당시 <씨네21> 리뷰읽기), 동일한 주제의 연장선에서 특정 무속인 김금화로 집중시킨 장편영화 <만신>을 2014년 3월초 개봉할 예정이다. 그 사이에 2012년 박찬경&나타샤 니직이 2인전 형식을 빌린 'K.W. Complex'(2012.1026~1218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도 그는 김금화를 다룬 바 있으니, 2008년 이후 꾸준히 무속신앙을 주제로 선점한 셈이다. <신도안>리뷰를 쓸때나, 2012년 에르메스 2인전을 본 후나 나는 무속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박찬경의 정서와 쉽게 교감하기 어려웠다. 특히 무속신앙 고유의 비합리성이 어떻게 좌파 정치미학의 노선을 꾸준히 걸은 박찬경과 조화할 수 있는지 아리송했다. 그런데 박찬경식 고증에 따르면 이해되고 공감될 부분이 있긴하다. 한국 근대사(특히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기)가 압축팽창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무속신앙의 처지를 독재정권에 저항하다가 피해를 입은 민주화 세력과 등가로 놓고 무속신앙에 연민을 투사하는 면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요컨대 <신도안>은 1968년 박정희의 계룡산 국립공원화, 1975년 종교정화사업, 1984년 전두환의 삼군통합본부 계룡대 이전을 거치며 민족 종교의 메카였던 계룡산 일대가 타격을 입은 점을 고증자료를 통해 밝혀낸다. <만신>은 비록 개인 김금화에게 원포인트로 집중한 영화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북한군과 남한군 양자 모두에게 첩자로 내몰리는 그 무렵 무속인의 처지를 보여주거나,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 때문에 마을에서 토속신앙이 내부 고발되면서 입지를 잃던 상황을 연출로 보여주거나, 전두환이 집권한 80년대 초반의 국풍81이나 운동권 문화에 뿌리 내린 전통문화로 인해 무속신앙의 다시 생명을 얻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거나, 급기야 1999년 '황구라'로 통하는 황석영과 김금화가 합동으로 통일굿을 올리는 장면, 심지어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태처럼 동시대 정치 현안이 남긴 상처를 김금화의 무속이 치유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엮어내는 기술이 있다.  

사진과 미디어를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의 도구로 써온 박찬경의 미술가 이력은 <만신>의 화면 구성에도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낸다. 무속인을 묘사한 기성 민화民畫들을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해서 화면 곳곳에 삽입한 것도 그렇고, 좌우대칭으로 나뉜 공간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는 배 위로 젊은 시절 김금화의 뒷모습을 얹힌 화면도 그렇고, 김금화의 유년기(김새론) 젊은 시절의 두 김금화들(류현경, 문소리) 그리고 실존 인물 김금화는 물론이고 영화 스탭들을 하나의 시공간 속에 엮어놓은 라스트신의 화면 구성 등이 그렇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찍는 스태과 촬영 장비를 고스란히 노출시킨 건 작가의 자기언급self-reference같기도 했고, 이야기를 꾸민다는 점에서 무속인의 재능과 영화 연출자의 역할을 동기화 시킨 것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만신>은 한국영화인데도 한글 자막이 뜰 정도로 말길을 알아듣기 힘들다. 왜냐하면 김금화와 무속인들의 어투가 사투리가 섞인데다가 워낙에 즉흥적 구어체여서 알아듣기 힘든거다. 흡사 한국의 토속 랩퍼처럼 느껴진다. 이렇듯 무속인이 불특정 대중의 소망을 들어주고, 즉흥적인 허구적 대사를 지어내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의 역할을 대역하는 점, 그리고 과장된 감정표현에 능한 점 등을 모두 종합하면 여러 면에서 무속인과 전문 연기자 사이에서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점이 좌파 미술인 박찬경이 무속인의 비합리성을 소재이자 주제로 삼은 이유인 것 같다.  


* 오점을 찾자면 무속인의 질감을 재현하기에는 어떤 배우들은 연기력이 받쳐주지 못했고, 무속인 연기가 아닌 배역에서조차 어색한 연기력를 보인 배우가 있었다는 점. 차라리 다크호스인 내게 배역을 맡기지.   

** 김금화가 카메라를 제수祭需 도구로 주목했다는 내레이션(연출자의 해석)에 솔깃했다.

*** 영화 시사회가 끝난 직후 박찬경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장례식장에 갈 일정이 있어서 자리를 떴다. 

2014년 2월 21일 금요일

0220 미스터 컴퍼니 ★★☆ / 논스톱 ★ / 레바논 감정 ★☆

* 작심하고 하루 시사회 3편을 연달아 보러 다니는 날이 드물게 있는데 어제가 그랬다. 그런데 내 기준에 3편 모두 대체로 실망스러워서 낭패를 본 느낌이어서 마지막 시사회를 함께 본 지인과 저녁술을 마심.  
** 10시30분 영화가 12시쯤 끝나서 시간이 2시간여 남길래 얘기로만 듣던 서울시청의 '시민청'과 '시청 도서관'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2월20일(목) 1030시. 인디스페이스. 민환기 감독 <미스터 컴퍼니 Anxiety>(2012) 시사회.

별점: 



그나마 세 편 중 가장 낫다. 
인디스페이스는 2012년 서유럽을 다녀온 직후에 독립영화 <나나나:여배우 민낯 프로젝트> 시사회를 본 후 두번째 방문한 인디영화 전문 상영관이다. 윤리적 패션의 확산을 위해 의기투합한 인물들의 고군분투 생존기를 추적한 다큐멘터리인데 시장에서 그런 사업의 전개가 본디 어렵다보니, 영화 내내 주인공들이 내뱉는 자조적이고 절망적인 대사나 심리적인 위축이 화면 위로 너무 빈번하게 떠오른다. 그런 구성이 관객으로서 영화적 긴장감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오르그닷 대표 이사 김진화와 이사 김방호( 혹은 여러 직원들)의 설전 장면, 혹은 직원들끼리 모일 때 대표이사에 관한 불만을 털어놓는 장면들은 아마 무수한 촬영분 가운데 일부 편집 부분일 것이다. 때문에 선택된 촬영분량만으로 두 갈등 주체 사이의 옳고 그름을 따지긴 어렵지만, 내가 볼때 선명한 근거나 전략 없이 주장을 밀어붙이는 쪽은 항상 이사와 직원들로 보였고, 영화를 보는 동안 내심 '의사 소통이 저렇게 안되는 사람들과 한 시공간에서 어떻게 살 수 있담' 하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조직 생활다운 조직생활을 거의 해본 바 없이 프리랜서로 사는 나에게 그런 답답한 감정은 안도가 되기도 하고 세상사의 무지에 대한 깨달음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영화로만 판단할 때 내 판단 방식은 대표이사 김진화 스타일에 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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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0일(목) 14시. 왕십리CGV. 자움 콜렛 세라 감독 <논스톱 Non-stop>(2014) 시사회.

별점: 



너무 형편없고 참담해서 이루 평하기 어렵다. 이걸 영화라고 내놓다니 관객 지성에 대한 무성의한 모욕이다. 
최신작이라 국외 리뷰를 참조하지 못했고 그래서 판단할 수 없어서 관람하게 된 액션물. 
작위적인 긴장감, 허술한 전개, 어설픈 부성애 따위로 점철되어 있다. 협박 시간에 맞춰 인질을 제거하겠다는 문자 메시지가 얼마나 '개연성 없이' 발생하는지 확인한다면 영화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영화건 어떤 영화건 잦은 관람이 '추리와 예측 능력을 향상시켜준다'는 위안을 하면서 객석에 앉아 영화를 끝까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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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0일(목) 1640시. 왕십리CGV. 정영헌 감독 <레바논 감정 Lebanon emotion>(2014) 시사회.

별점: 
 국외에서 일부 호평 받은 영화의 경우 나는 전부 품질을 신뢰하지 않는다. 한국어 대사나 문화적 뉘앙스를 느낄 수 없는 '비모국어' 사용자라면 진부한 대사를 판독할 수 없고 어설픈 구성조차 동아시아적 신비주의로 오판하면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기덕의 국제상 수상이라고 나는 본다. 

김기덕 영화와 결코 동일한 스타일은 아니어도 <레바논 감정>도 그런 사례라고 본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영화는 2013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서 'Silver George-감독상'을 받았단다. 물론 국외 수상만 있는 건 아니다. 같은해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CGV무비꼴라쥬상도 받고 이런저런 국내 지원을 받은 것 같다. 이런 수상 배경에도 불구하고 영화로만 보면 대체로 실망스럽다. 영화를 함께 본 사람이 옆에 앉아있지만 않았다면 중도에 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볼만한 영화는 경험상 초반 20분 내에 대개 결정되고 이 경험칙은 거의 예외가 없다. 

죽음의 기운이 드리운 영화 서막부터 우울한 기운을 뒤집어 쓴 이 영화는 전형적인 독립영화필이 팍 꽂혀있고, 진부한 대사들마저 그런 독립영화 스타일 때문에 양해를 얻는 것도 같다. 노루를 잡으려고 산에 풀어놓은 덫으로 인해 인연 없는 여러 사람들이 엮이게 되는 이야기 구성은 나름 이야기의 질서를 만든 것 같아서 괜찮았다. 하지만 덫으로 엮인 인연 부분을 빼면 빈약한 대사들(가장 자주 들리는 대사가 상대방의 질문에 "네?"하고 되묻기다), 이야기 전개를 위한 무모한 시도들(여자가 산으로 올라갔다는 진술을 토대로 두 남자가 지리가 험한 산을 무작정 오른다는 설정 따위), 너무 심각해서 마치 철학자처럼 느껴지는 깡패인 가죽남자, 그리고 무수한 우연의 남발이 관객을 기다린다. 여자를 찾기 위해 동네로 진입한 가죽남자가 그 무수한 집들 가운데 그녀가 숨은 집을 '우연히' 찾아내어 그 집 옥상에 올라가서 온종일 기다린다는 따위. 오죽하면 가죽남자를 만난 그녀의 대사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온거야!" 일까. 영화예술에 허용되는 허구적 구성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이미 허구적 상상력의 허용치를 한참 벗어난 거라고 본다. 

이 영화에서 건질만한 부분은 '가죽남자'로 출연한 장원영의 연기력 정도.  

2014년 2월 20일 목요일

0219 모뉴먼츠맨 세기의 작전 ★★☆

2월19일(수) 1930시. 왕십리CGV. 조지 클루니 감독 <모뉴먼츠맨 세기의 작전 The monuments man>(2014) 시사회.

별점: 



 유명 배우의 감독 변신작이라면 기대감이 발생한다. 한국에선 배우 유지태의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 <마이 라띠마>(2012)가 코리안 드림을 안고 불법 체류하는 동아시아 여성의 불행을 다루면서 현실 정치의 긴장을 유지한 것처럼, 정도 차는 있지만 2차 대전 직후 나치의 문화재 약탈과 미군의 회수 작전을 다룬 영화에 메가폰을 잡은 배우 조지 클루니 역시 과거사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견지한 점에서 유사한 출발선 위에 서 있다. <모뉴먼츠맨 세기의 작전>은 다른 영화들의 시사회를 볼 때 상영 직전 짧은 예고편을 통해 호감을 느낀 영화였다. 비중있는 영화들에서 배우로 출연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유지태의 장편 데뷔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너무 형편 없었다. 감독 조지 클루니가 주연까지 겸한 감독 데뷔작도 다른 출연진들의 지명도까지 합산한다면 높은 평점을 받긴 어려울 거다. 

<모뉴먼츠맨 세기의 작전>은 2차 대전 당시 실제 작전에 토대를 둔 영화다(위의 흑백 사진이 당시 나치의 약탈물을 회수한 기록 사진이다). 실화에 기초한 점은 역사적 교훈을 부각시키는 장점을 지니지만, 교훈 부분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또 허구적 상상력을 제약해서 드라마성을 약화시키는 자충수가 되기도 하더라. 배우 출신 감독의 연출 미학은 '없는 사실을 지어낼 수 없었던지' 스토리 전개 지점에서 갈등과 긴장 파트가 너무 약하다. 영화에서 극적 긴장은 약탈물 회수를 위해 조직된 '모뉴먼츠맨' 팀의 일원이 전사하는 장면이나, 명화를 잔뜩 약탈해서 쌓아놓은 창고 안에서 명화를 무더기로 소각시키는 나치의 반달리즘 정도. 

약탈물로 '총통박물관'을 건립해서 자신의 치적을 미화하려한 2차 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의 야심에선, 한국으로 치면 군사독재자의 치적을 미화하려고 박정희 박물관을 건립하고야 마는 후대 지지자들의 열성이 떠오르기도 했다. 실험적인 모더니즘 예술을 혐오한 나머지 퇴폐미술전을 개최하여 독일 내 전위 예술을 퇴치하는 한편, 교전국들의 고전 유물을 약탈한 나치의 정책에 대해 영화 속 미술사학자 프랭크 스톡스(조지 클루니)가 "예술품의 약탈은 생활 양식을 붕괴시키려는 것이어서 회수해야 한다"고 정치가들을 설득하는 장면에서,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연상되었다. 문화를 삶의 기록으로 인식하는 서구인의 이런 정서가 문화재 회수 작전으로 이어진 걸테다. 이에 반해 토건사업을 경제발전으로 인식하는 공동체의 인식 때문에 끊임없이 부수고 새로 짓는 건설 마피아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선 기록물 보존은 안중에도 없는 일이다.  

<모뉴먼츠맨 세기의 작전>에서 긴장 파트를 약화시키는 지점이 크게 두개 있다. 약탈된 유물 회수작전에서 이야기 전개의 큰 축을 이루는 얀 반 아이크의 '겐트 제단화'와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이 이미 무사히 회수되어 현재 보존되고 있음을 진작 알고 보는 관객이라면 긴장감 없이 영화를 보게 된다는 거다. 긴장 파트를 약화시키는 또 다른 지점도 겐트 제단화와 성모자상 자체에 있다. 이 두 작품이 우연히 종교 도상인 사실 때문에, 미군의 유물회수작전이나, 회수된 종교예술 모두가 인위적으로 신성시 되는 효과를 누린다. 이 점이 대중 정서에 호소하는 낮은 수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나치가 약탈한 유물과 금괴를 은닉한 광산의 자태를 보여주는 화면에선 연출자의 의도가 어떻건 인생무상이 느껴졌다. 특히 나치가 강제로 뽑았을 엄청난 양의 금이빨이 포대에 가득 담긴 무상한 장면에서. 

0217 스티브 맥퀸 감독. '노예 12년' ★★★★

2월17일(월) 14시.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스티브 맥퀸 감독.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2013) 시사회

별점: 




실화에 기초한 19세기 이야기지만 노예제가 사실상 사라진 21세기 세계의 조건에 사는 관객에게 과거사를 다룬 이 영화는 비현실감을 느끼게 만든다.  

미국 흑인 노예제의 비극은 내가 유년시절 TV에서 방송해준 미국 연속극 <뿌리>로 접한 적이 있지만, 흑인 노예제도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그늘(보도 자료에 따르면 1800년대 미국은 노예제를 따르는 남부의 노예주(州)와, 그렇지 않은 북부의 자유주(州)로 나뉘어 있는데, 1808년 노예 수입이 금지된 후, 미국 전역에서 자유인 신분의 흑인을 납치해서 신분을 위조해서 노예시장에 거래하는 일이 만연했단다)을 이 영화는 다루고 있다. 

극중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실존인물이다. 이 영화는 그의 자서전 <노예 12년 Twelve years a slave>의 책제목과 고백을 토대로 만들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현시대 미국 사회의 정서적 뿌리를 <노예 12년>의 어떤 장면들에서 확인하게 된다. 백인 주인이 흑인 노예들을 앉혀놓고 설교하듯 성경의 구절을 읽어주는 장면이 그렇다. 어디까지 사실인진 확인할 수 없지만, 어떤 성경 구절의 경우 백인 주인를 향한 흑인 노예의 절대 복종이 마치 정당하다고 풀이하는 식인데,  이건 종교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 모든 사회에서 쉽게 관찰되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

종교가 발휘하는 구속과 관련해서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점은, 목화 재배를 하며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가스펠(? 노동요? 혹은 흑인 영가?)를 합창하면서 자기 위로하는 장면이다. 생의 끝에서 사악은 심판 받을 거라는 노래 가사를 부르면서 빠져나갈 수 없는 현실로부터 위안을 얻는 장면에선 감정이 복잡해진다. 내가 같은 조건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감정이 복잡해진다. 자기 처우를 위해 백인 주인의 집사가 되어 동료 노예들의 원성을 살지, 헤어날 수 없는 현실에 자포자기한 나머지 무력하게 살지, 울분과 우울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살지, 목숨을 걸고 복수를 감행할지. 정도 차가 있고 형식만 다를 뿐, 현실의 거의 모든 삶도 모순적인 선택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 낙담한 솔로몬이 전달하려던 편지에 불을 붙이는 장면에서, 타들어가는 편지의 소각 장면으로부터 야밤의 별자리를 보는 것 같았다.
** 백인 노예주가 마이클 패스벤더인 걸 영화를 다 본 후 보도자료를 보고서 알았다. 이로써 스티브 맥퀸 감독의 전작 영화 3편에 모두 출연한 배우라고.

필립 시모어 호프먼Philip Seymour Hoffman

배우가 된다는 것.
공부해야 한다. 좋은 선생은 몽땅 찾아 그들과 함께 공부하고, 연기와 관련된 건 모조리 해야 한다. 명성이나 돈을 쫓아서는 안 된다. 단지 돈을 원한다면 연기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다. 연기를 사랑해야 한다. 


연기라는 것.
연기란 자전거를 타는 것과는 다르다. 시작할 때마다 다시금 처음처럼 여기저기 다치고 긁힐 것이다. 차라리 골프와 비슷하달까. 골프채를 어떻게 휘두르는지는 알고 있겠지만, 공을 치고 나면 멀거니 서서 생각할 거다. 내가 제대로 쳤나? 이번엔 뭐가 잘못된 거지? 연기할 때마다 초보로 돌아가 모든 것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점검해야만 한다. 


명성이라는 것.
어떤 사람들은 유명해진다는 것의 물결을 능숙하게 헤엄쳐나간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관심받고 싶지 않다. 명성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행동하면 사람들은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그렇게 만들 수 있다. 허구한 날 별거 아니라는 듯이 산책하다 보면 나를 봐도 "어? 필립 호프먼이네?" 그러고 말겠지. 


0201 아스코(교하) 0202 개관전(서울관) 0204 점핑위드러브(세종문화회관) 0205 9809레슨4회(송은) 0207 문화예술교육강좌(잠실창작스튜디오) 0208 아스코(교하) 0212 9809레슨5회(송은) 0213 동양화 심포지엄(한원) 0214 아스코(교하)

0201(토)
아스코 (19시. 교하)

0202(일)
개관전-연결 전개, 미술관의 탄생, 시대정신 (2013~201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0204(화)
점핑 위드 러브 (2013.1203~2014.0223. 세종문화회관)

0205(수)
9809레슨 4회 강연 (15시. 송은아트스페이스)

0207(금)
문화예술교육강좌 (14시. 잠실창작스튜디오)

0208(토)
아스코 (10시. 교하)

0212(수)
9809레슨 5회 강연 (15시. 송은아트스페이스)

0213(목)
2014 대학미술협의회 학술심포지엄. 현대 동양화(한국화)의 정체성과 동시대성 (14시. 한원미술관)

0214(금)
아스코 (14시. 교하)




아스코(교하)
아스코 스튜디오와 내 거주지를 잇는 플랫폼 금릉역. 



개관전(서울관)

작년 서울관 개관전 개막식 때 자세히 보지 못했고 지나친 전시들이 있었다는 걸 알아서, 작년 2학기 제자 두명과 함께 다시 관람을 했다. 초대권을 챙겨갔는데 설연휴 동안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며 무료 입장시켰다. 유럽 미술관들에서 볼 수 있는 입장 정책인데 그걸 따라한 모양이다. 잘됐네 뭐. 아무튼 입장료가 무려라니까 평소 관객이 없어서 텅텅 비어있기 마련인 한국 미술관에 전에 없이 무료표를 받으려고 긴 줄을 선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서울대 출신 미술인들로 채워졌다는 비난을 받은 <시대 정신>전도 다시 봤는데, 정작 문제점은 특정 출신 학교 집중도 보다 기획자와의 개인적 인맥이 있는 작가들로 출품 작이 채워졌다는 점일 게다. 한국 동시대 미술의 주요 흐름을 형성하는데에 거의 기여도를 찾기 힘든 작가들도 여럿 보였을 정도이니 말이다. <시대 정신>이 비평가들 눈에 부실해 보이는 또 다른 요인은 개별 작품들을 벽과 바닥에 단순 나열할 수 밖에 없었을 두리뭉실한 주제 <시대 정신>의 전시 진열법이 동시대 주류 미술에서 흔히 만나는 전시 광경과 너무 동떨어져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구태의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주제를 '시대정신'으로 잡은 이상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작가들을 한 공간에 모아놓게 될테니 낡은 진열이 도출될 수 밖에 없겠더라. 요컨대 여러 작품들 틈바구니에 끼어 바닥에 놓인 이우환의 설치물은 그저 왜소해 보일 뿐이었으니까.  
개막식 때 작품이 있는 줄 모르고 관람하지 못했던 장영혜의 신작이 놓인 전시실을 이참에 보고왔다. 신작은 동아시아의 문화를 컨텐츠 삼아서 흡사 러시아 구성주의 형식을 IT버전으로 업데이트하고 번안한 것 같기도 했다. 



점핑위드러브(세종문화회관)

내게 필립 할스만Philippe Halsman은 명사들을 찍는 전문 사진가라는 인식이 박혀있다. 그의 전시 Jumping with love. 50년대 고풍스런 흑백 사진을 체험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갔지만 할스만 전시의 방점은 명사들을 점프하게 만들어서 그 모습을 담는 거의 연출법 점폴로지Jumpology에 있었다. 그리고 피사체가 된 인물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사진 속에 인물의 심리를 담는다는 이른바 '심리적 초상' 촬영도 한 방점인 듯하다. 근데 대화를 나눈다고 인물의 심리를 어떻게 사진에 반영한담?  전위적인 점프 장면을 스스로 연출한 장콕토 같은 인물(위 사진)도 있지만, 정작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 건 아마 닉슨 대통령이나 윈저 공작 부부 같은 고위 공직자나 귀족에게 점프하게 유도한 사진들일 게다.  

대중 전시답게 전시장 벽면에는 명사들의 사진과 그들이 생전에 남긴 교훈적인 격언이나 대사를 큼지막한 타이포로 인쇄해서 줄줄이 붙여놨더라. 

한데 한가지 의구심이 드는건 50년대 작품인데 인화지가 너무 새거인데다가 화질도 너무 안좋다. 더러는 깨진 픽셀 혹은 인쇄 망점 같은 것까지 눈에 잡힌다. 아마 전세계 순회전을 위해서 최신 인쇄기술로 재출력해낸 것 같았다.  


9809레슨4회(송은)
2003년과 코리안 팝아트를 다룬 9809레슨 4회차. 2010년 만난 서울예고생 중 4명이 들으러 왔고 강의가 끝난 후 같이 밥을 먹으러 이동했다. 



문화예술교육강좌(잠실창작스튜디오)





주로 창작 스튜디오 작가들을 대상으로 총 2회 진행될 교육강좌의 첫회. 
광활한 종합운동장들이 들어선 광장 구석에 잠실창작 스튜디오가 위치해 있는데다가 이정표도 없어서 입구를 찾지 못해서 약간 헤맬 뻔했다.  



아스코(교하)



9809레슨5회(송은)
2004년과 뉴미디어 아트를 다룬 9809레슨 5회차. 



동양화 심포지엄(한원)



동양화의 정체성이라는 화두는 잊힐만 하면 동양화단에서 꺼내드는 카드인데 이쯤 되면 진정성이 의심된다. 이번 심포지엄 참석에 대한 내 소견은 동양화 문제점 혹은 정체성을 동양화단 내부에서 너무 복잡하게 인식하려 든다는 거다. 바로 그게 문제점인데.


아스코(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