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과 조경>(4월. 312호) 특집 '다시, 정원을 말하다'에 기고한 글
불가능한 정원의 꿈, 콘크리트 공원과 텃밭
반이정. 미술평론가
현시대 한국의 일상에서 정원이 차지하는 의미나 형식을 쉽게 떠올리기란 힘들다. 자연의 일부를 떼어 주거 공간 속에 조형적 모양새로 인위적으로 옮겨놓은 게 정원일 것이다. 정원은 현실적으로 자연에서 격리된 동시대인에게 자연과 통하는 해방구를 제공했다. 하지만 필자가 동시대 한국의 시공간과 정원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건, 우리의 주거 문화를 지배하는 일반론이 정원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 주거 문화의 토대를 이루는 아파트는 물론이거니와 오피스텔과 원룸까지 무수한 거주 공간이 정원의 자리를 배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기에, 몰개성한 복층구조의 건축물이 일반적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 인근에 보라매공원이 있다. 정원이 개인 거주지 안에 작은 녹지를 조성하는 것인데 반해, 공원은 정원이라는 개인 사유지를 공공 영역으로 확대한 버전일 것이다. 연못 잔디광장 다목적 운동장 따위를 패키지로 묶어 시민들의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보장하는 보라매공원의 원래 목적은 군사 교육기관이었다. 과거 공군사관학교 터를 보수하면서 용도를 공원으로 변경시키고,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인 보라매를 공원 이름으로 따온 것이 현재 보라매공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세계의 유수한 공원들의 기원도 공공을 위한 놀이터로 설계된 건 아니었다. 왕족과 귀족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사냥터였던 것이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시민에게 공간을 내주게 된 것이 동서양 공원들의 일반적인 과거사인 점을 감안할 때, 공원은 소수 최고위급 인사들이 보유한 커다란 정원이었던 셈이다. 정원의 먼 선조로 흔히 예시되는 네바문 벽화도 마찬가지이다. 당대에 사회적 신분을 보장받은 이집트 서기 출신 네바문의 무덤 안 벽화에는 정원이 묘사되어 있다. 이 벽화를 통해 기원전 정원의 윤곽을 추적할 수 있다. 직사각형으로 호수와 그 주변으로 가지런히 심은 수목들이 기원전의 정원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이는 현대적 정원과 큰 틀에서 차이가 적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이 서구의 정원과 변별되는 바위정원rock garden의 전통을 갖는데 반해 한국 정원 문화에 관해 검색하면 복층 구조의 동시대 주거 문화 때문인지, 윤보선 고택, 성락원, 운보의 집, 대원군의 별장이었으나 고급 한정식당으로 변형된 석파정 정도만 간신히 잡힌다. 모두 동시대 현존 인물의 정원으로 규정하기 힘든 사적지이거나, 혹은 준 공공을 위한 장소들이다. 사유지 정원의 확대 버전인 공원이 동서 공히 왕족과 귀족의 놀이터를 위해서 녹지를 조성했다는 사실로부터, 현대적 미술관의 기원인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면서 루브르 궁전을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는 장소로 용도 변경해서 썼다. 그러던 중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대중에게 공개되어 오늘의 초대형 미술관에 이른 것이니 공원의 변천사와 흡사하다.
정원 혹은 공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을 확인시키는 의지가 남긴 흔적일 것이다. 자연 경관에 조형미를 인위적으로 덧붙인 무수한 정원 혹은 공원의 외관이 그 사실을 증언한다. 베르사유 궁전의 잔디는 동심원 무늬로 다듬어졌고, 햄프턴 코트 궁전Hampton Court Palace을 비롯한 영국식 정원들과 보 르 비콩트성Chateau de Vaux le Vicomte의 정원은 하나 같이 자연 경관을 좌우대칭의 질서 안에서 재구성한다.
비단 조경을 좌우대칭의 균형미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일본 교토 대덕사 대선원의 바위정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와 소유 욕구를 보여준다. 바위정원은 정원 속으로 사람이 진입해서 노닐 수 없는 정교한 볼거리로 설계되었다. 즉 전적으로 일방적인 관람만이 전제된 정원인 것이다. 암석을 세우고 주변에 흰 모래와 잘게 부순 돌을 배열하여 흡사 거대한 암석 주변에 물이 흐르는 광경을 축소판으로 재현한 것이 일본의 바위 정원이다. 즉 사찰 안에서 관찰할 수 없는 이상적인 정경을 인위적인 축소판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처럼 자연 경관을 미니어처로 축소시켜서 소유하려는 일본의 조경 문화는 아마 일본식 꽃꽂이인 이케바나와 분재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것 같다. 정원이 개인 가옥에 딸린 자연 경관인 점이나, 정원의 어원이 enclosure 즉 ‘담장 치기’였던 점을 고려하면 정원의 근본 가치는 자연의 사유화를 통해 자기 신분을 확인하려는 과시적 소비의 결과물일 것이다.
동시대 한국 정원의 사정으로 되돌아오자. 건설 마피아로까지 불리는 이 사회의 개발주의와 토건 문화는 가옥구조에서 정원의 자리를 몰아냈고, 우리 사회 구성원들 역시 토건의 문화 정서에 친숙해 있다. 주거 공간에서 찾을 수 없는 자연이나 개인 정원에 대한 갈증을 손쉽게 해결할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콘크리트로 구축된 대표적인 공원들이니 오죽할까. 서울광장 청계광장 광화문 광장은 2004년 이후 서울 도심에 출현한 대표적인 인공 녹지인데, 자연경관의 비중보다 콘크리트 구조물의 비중이 훨씬 높아서, 토건 사회의 흔적을 공원 자체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같은 콘크리트 녹지 공원에 대해 사회 공동체의 불만이 크지 않은 까닭은 서울 도심에서 태부족한 녹지 현실에서 그나마 갈증 해소가 되어준다는 위안과, 토건 문화에 친숙해진 국민 정서 탓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콘크리트로 조성된 공원들이 불만 없이 수용되는 이유는 정원을 거주지에 조성할 수 없는 우리의 보편적 주거환경과 녹지에 대한 갈증 때문이리라. 녹지가 태부족한 한국의 주거 문화로 인해, 텃밭의 유행이 등장한 게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텃밭이 서울 외곽에서 성업 중이어서 현대 도시의 삶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하는 계기를 만들고, 임대한 밭을 한시적으로 소유하고 그 안에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소유하게 만드는 이점 때문에 정원의 소유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일종의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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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대덕사 대선원의 바위정원
보 르 비콩트성Chateau de Vaux le Vicomte
이집트 네바문의 무덤 안 벽화에 묘사된 정원
정치적 치적물로써의 서울광장
일본 분재
의정부시 일부 아파트는 가족 단위 텃밭이 포함된 아파트를 분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