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0일 수요일

0429 디태치먼트 Detachment ★★★

4월29일(화) 10시30분.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디태치먼트 Detachment>(2011) 시사회.

별점: 






부모의 보살핌에서 소외된 아이들만 모인 문제아 학교, 그 학교에 임시 발령 받은 비정규직 교사의 아이들을 향한 진정성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래서 일반적 교육현장를 배경으로 삼은 여느 교육 영화들과 대등하게 비교하고 평가하긴 어렵다. 영화 속 설정만 따른다면 문제의 정중앙은 교육 현장이기 보다 문제아를 방치한 문제부모들과 어디서 부터 손봐야 할지 알 수 없는 사회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뒤집어 쓴 <디태치먼트>(제목부터 '무심함')에서 감독이 주력하는 정서는 보살핌인 것 같다. 보살핌의 전도사는 물론 비정규직 교사 헨리 바스(애드리언 브로디 분)인데, 그는 병원에 입원한 치매 노인(자신의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과 교정에서 통제불능인 학생들, 거리를 방황하는 매춘부 소녀를 대등한 애정으로 보살피는 인물. 

교사들이 손을 놓은 문제 학생들에게 접근하는 비정규직 교사 헨리 바스의 남다른 인내력의 동력은 성장 배경에 있다. 그의 유년시절은 보살핌이 결여된 걸로 묘사된다. 영화에서 미성년 매춘부로 출연하는 에리카(사미 게일)에게서 <택시 드라이버>에서 동일한 배역으로 출연한 조디 포스터가 연상되는데, 에리카를 자기 집에서 머물게 배려하는 바스와 그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에리카의 감정 변화를 통해, 중년 남성과 미성년 소녀가 한 시공간에 놓였을 때 쉽게 감지될 이성애적 긴장감이 흐르기 마련인데, 관객이 예상하는 수순을 이야기는 밟지 않는다. 그런 정상적 도약이 발전되지 못하는 것도 바스의 유년시절이 관계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엄마의 짧은 보살핌이 기억 속에 각인된 바스의 유년시절은, 미성년 매춘부에 대한 자신의 배려와 병렬 배치된다. 

교육현장이라는 난문제를 다뤄선지 <디태치먼트>는 이런 저런 영화제에 초대 받거나 수상을 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극중의 인물 간에 빚어지는 오해와 이야기 전개에서 도약이 심할 때가 많다. 또 헨리 바스의 독백만 따로 편집된 화면에서는 교조적인 어조가 너무 강하다. 무엇보다 평점을 주기 어려운 이유는, 영화가 늘어놓은 해답 없는 교육현장과 그런 현장에서 일 개인이 발휘하는 남다른 배려심. 이런 이야기 전개를 통해 연출자가 내놓으려는 메시지를 파악하기 여렵다는 점이다.   


* 미성년 매춘부 에리카의 섹스어필은 가터벨트 스타킹 차림의 체형과 단발머리와 짙은 눈화장으로 급상승한다. 이 미성년 매춘부 역을 맡은 사미 게일은 고작 14살(1996년생) 때 이 배역을 연기했단다. 
** 치기 어린 격정으로 넘쳐나는 교정에서 차분하게 대처하거나, 능청 맞게 사태를 모면하는 교사로 <대부>의 첫째 아들로 출연한 제임스 칸이나 <킬빌>의 마피아 두목으로 나오는 루시 리우가 출연한다. 워낙에 센 배역이 각인시킨 인상 때문에 이 영화에서 그들의 연기를 보면 긴장 어린 대비감을 느낀다. 

2014년 4월 29일 화요일

2014년 4월 일기

​* 정리해놓고 보니 4월 일기는 밥-술모임으로 빼곡. 



2014년 4월 일기


0401(화)
영화 '만신' 관객과의 대화 (21시30분. 아트하우스 모모)

0404(금)
송은아트 밥모임 (12시. CHEF K&R)

0407(월)
씨네21 밥모임 (17시30분. 송스키친)

0408(화)
주행 (조원동-세종대-롯데에비뉴엘-스케이프-홍대)

0409(수)
철거 (10시~. 평창동)

0412(토)
박근혜 생가터 기념촬영 (16시30분경. 대구)

0419(토)
블로그 밥모임 (18시. 상수동)

0422(화)
잠실창작센터 밥모임 (18시45분. 두리반)

0428(월)
강석희 현대음악제 (19시30분. 일신홀)




영화 '만신' 관객과의 대화 (아트하우스 모모) 




영화 '만신' 감독+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날. 이 날이 바로 4월1일 만우절. 객석을 향해 인사를 나누는데 박찬경 감독이 나를 소개하면서 "반이정 문화부 장관"이라고 말했다.  
+ 고심 끝에 구입한 크롬 운동화를 신고 아트하우스 모모로 이동하기 전. 아트하우스 모모에 도착해서 상영 직전 배가 몹시 고파서 ECC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시켜먹은 피자. 




송은아트 밥모임 (CHEF K&R)

'9809레슨 강좌' 종강 기념 밥모임. 유형정(송은), 김수현+노미리(로렌스 제프리스), 한경우


씨네21 밥모임 (송스키친)


미뤄왔던 '씨네21' 술-밥모임. 깔끔하게 1차로 끝냄. 올초 내 인터뷰 기사를 쓴 이주현, 내 담당인 심은하, 그리고 이다혜 기자 참석. 노트북을 들고 밥모임에 온 이주현 기자는 중간에 옆자리로 이동해서 조재현과 전화 인터뷰를 하길래 옆에서 촬영.


주행 (조원동-세종대-롯데에비뉴엘-스케이프-홍대)


수업하고(세종대), 영화보고(롯데 에비뉴엘), 전시보고(갤러리 스케이프), 사람 만나고(홍대). 전 구간 자전거로 이동.


철거 (평창동)


1989년부터 살던 평창동집이 헐리게 되어 철거 당일 찾아가서 그 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정오께 사진가 노순택도 찾아와서 철거 과정을 기록했다. 자세한 경과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박근혜 생가터 기념촬영+김광석길 (대구)


대구예술발전소 멘토링+강연 때문에 대구에서 2박3일을 머무는 동안, 작가 신경철의 안내로 찾아간 김광석길과 박근혜 생가터. 장관 인선의 추억 어린 인연도 있어서 기념 촬영. 지나가는 행인들도 계속 기념촬영 모습을 쳐다봤다.


블로그 밥모임 (상수역)

1차 또바기치킨. 2차 무명집(막걸리집)


잠실창작센터 밥모임 (두리반)

미뤄왔던 '잠실창작센터' 술-밥모임. 


강석희 현대음악제 (일신홀)


유별난 기억이 각인된 한남오거리. 근처 일신홀에서 현대음악제가 있었다. 




+ 별첨 


안동소주. 올초 책분배 모임 때 오신 분이 선물하신 안동소주. 벌써 다 마심. 



원효대교를 건널 때 보이는 재개발 투쟁 배너가 걸린 매우 오래된 아파트. 철거와 재개발 아파트 입주 경험 때문에 저런 곳이 눈에 들어온다. 

2014년 4월 28일 월요일

0428 엠파이어 스테이트 ★★★☆

4월28일(월) 14시. 왕십리CGV <엠파이어 스테이트Empire State>(2013) 시사회.

별점: 



1982년 뉴욕을 무대로 거금 강탈 사건과 그 추적 과정을 이야기의 골자로 정한 영화다.  영화 도입부에서는 TV방송 화면을 통해 1982년 당시 미국에서 유행한 헤어 스타일이나 의상 그리고 TV브라운관을 통해 필터링된 낡은 색감의 도시 풍광이 자료 화면처럼 스크린을 채운다. 현금수송차량 회사의 터무니 없이 허술한 관리 체계를 틈 타 그 회사의 야간 경비자와 지인들이 공모하여 대략 3천만 달러(하도 허술하게 관리되어서 탈취된 금액이 얼마인지조차 불확실)의 현금 다발을 돌발적으로 강탈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공모에 가담하거나 공모 사실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 사이의 심리전과 모략을 다룬 영화다.  

영화의 포인트는 강도들의 거금 탈취와 경찰의 방호를 둘러싼 총격전에 있지 않다. 거금 탈취 공모가 이뤄질 수 밖에 없었던 구조를 살필 때 영화가 제대로 보인다. 10년 간 근무하고도 부조리한 조직 생리로 인해 무일푼으로 퇴직 당한 아버지를 지켜본 야간 경비원 크리스는 우연히 현금수송차량 회사에 근무하는데, 그 회사가 보유/관리하는 현금의 양은 그야말로 엄청난데 비해, 매우 허술한 관리에 의존하고 있었다. 보관 중인 현금의 일부를 빼돌린들 내부에서 그 사실은 아는 이가 아무도 없을 정도다. 그래서 <엠파이어 스테이트>를 관람하는 포인트는, 부조리한 위계와 허술한 관리 체계를 지닌 현실 사회의 조직에서 불법 행위의 유혹 앞에 개인의 선택을 다뤘다고 봐야 할 거다. 하지만 이야기의 설정이 너무 말도 안되는 허구 같아서 오락영화의 허구적 상상력으로 치부하기 쉽지만, 국내 최고 대기업 삼성에서 비자금을 관리할 때 보관 중인 현금 일부를 내부에서 빼돌려도 내부에서 그 사실을 정확히 알긴 어려운 구조였다는 증언이 있었던 걸로 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가 꼭 개연성 없는 이야기 전개라고 보긴 어려울 거다. 

하지만 영화의 반전은 이 말도 안되게 허술한 돈관리와 그로 인한 현금 강탈 사건이 허구가 아닌, 실제 미국에서 1982년 발생한 실화였다는 거다. 마지막 장면에선 1991년 구치소에서 나온 실제 크리스의 인터뷰 장면이 실린다. 실화에 기초한 영화였음이 노출되는 마지막 화면에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허망한 쾌감과 인생의 논리를 한수 배운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ps. 영화 포스터로만 보면 비중이 커보이지만, WWF의 스타 레슬러 '더록' 드웨인 존슨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2014년 4월 27일 일요일

아트 스타 코리아 4회 멘토링 티저

4월27일(일) 밤11시께  '아스코' 4회 미션 방송(스토리온,온스타일,올리브)이 나간다. 4회 미션은 지난주 방영 예정이었으나 '세월호 참사'에 따른 예능 방송들의 연이은 결방으로 한주 쉬었다. 

4회 미션 멘토링은 1월8일(수) 파주 교하동 공동작업실에서 진행됐다(엮인글). 그날 멘토링 장면 티저.
사진에 잡힌 멘토링 대상자는 최혜경 윤세화 유병서 이현준






2014년 4월 23일 수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차원 붕괴의 유희 (씨네21)

* <씨네21>(951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95회분.



차원 붕괴의 유희






상좌. 펠리스 바리니, 베르샤유 궁전 통로에 설치한 ‘여덟 모서리’ 2006
상우. 안드레아 만테냐, '신혼의 방'의 둥근 천장 프레스코 1465~1474
하. 에드가 뮐러의 거리 분필 예술


 입체를 평면으로 옮기는 회화의 숙명은 공간을 점유할 수 없는 2차원 예술의 한계를 안고 있다. 3차원처럼 보이는 착시를 극대화 시키려고 원근법과 갖은 눈속임 기술이 개발 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극사실주의 그림이 출현한 배경이기도 하다. 새의 눈을 속였다는 솔거의 그림 혹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사이의 눈속임 그림 경쟁 같은 신화가 동서 화단에 전해지는 건, 3차원에 근접하는 재현 기술이야말로 2차원 예술인 회화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기 때문이리라.

극사실주의 그림의 우월함이 전시장 안에 갇혀있는 동안, 또 다른 눈속임 기술의 극단은 비주류 화단에서 실험되고 있었다. 길거리로 전시공간을 확장한 분필 예술가(chalk artist)들이다. 그들은 실제 공간과 그림이 연속되는 것처럼 연출했다. 분필 예술의 눈속임은 가령 정형화 된 회색 도시의 마천루(현실) 안에 난데없이 폭포와 정글(그림)이 등장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분필 예술가의 공공미술은 특정 각도에서 볼 때만 착시 효과가 발생하는 점에서 ‘각도 특정적 예술’이다. 길바닥에 그려진 분필 예술의 착시 효과는 확정적인 현실의 공간을 해체한다. 분필 예술의 경이로움에 쏟아지는 대중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한계점도 있다. 그들의 주제가 곧잘 환상적인 형상으로 수렴되어 천편일률적으로 흐리는 점이 그것이다.

그림을 실제 공간과 연결시켜서 3차원의 환영을 만드는 기술은 현대 분필 예술가 이전부터 계보가 있었다. 이탈리아 두칼레 궁전 안에 만테냐가 15세기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 <신혼의 방 Camera degli Sposi>이 대표적이다. 궁전의 평평한 천장에 만테냐가 단축법으로 그려 넣은 것은 마치 하늘을 향해 둥그렇게 파인 건축적 구조물처럼 보인다. 둥그런 구멍 주변으로 천사와 인물들이 모여 아래를 내려 보는 것처럼.

2차원 캔버스에 3차원 착시를 올리는 기술이 회화의 전통이고, 2차원 길바닥에 현실의 공간들과 연속되는 3차원 착시를 유발하는 게 분필 예술가 혹은 만테냐의 실험이었다. 반면 3차원 공간을 2차원처럼 오인하게 만든 비주류 눈속임이 현대 예술에서 시도 되었다. 스위스 예술가 펠리스 바리니의 환경 그래픽은 마치 3차원 공간 위에 색 도장을 찍은 2차원 사진처럼 보이게 만든다. 분필 예술가처럼 바리니의 공공 디자인도 특정 각도에서 바라볼 때 착시 효과가 발휘되는 점에선 같지만, 평평한 바닥면이 아니라 다면적인 공간의 배율과 원근법을 정교하게 계산한 산물인 점이 다르다.

거리감을 판단하는 눈의 관성에 편승해서 3차원 같은 2차원을 제작하는 게 회화의 전통을 만들었다면, 펠리스 바리니의 환경 그래픽은 눈의 관성을 역이용하여 멀쩡한 3차원 공간을 2차원처럼 착시하게 한다. 확고부동한 차원이 허물어질 때의 쾌감은, 흔히 일상의 공식을 허무는 예술의 본질과 상통한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2014년 4월 22일 화요일

0421 위크엔드 인 파리 Le Week-end ★★

4월21일(월) 14시. 왕십리CGV <위크엔드 인 파리 Le Week-end>(2013) 시사회.

별점: 








해외에서 호평 받은 영화에 만족하지 못하면 점수를 더 짜게 주게 된다. 비록 <위크엔드 인 파리>가 받은 상은 연기상이었다 해도 말이다. 결혼 30주년을 맞은 어느 늙은 부부의 결혼기념 여행을 다룬 이 영화에 내가 감정이입을 못한 이유는, 비현실적 설정에 대한 나의 완고한 불관용 때문인 것도 같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두 축은 노후까지도 아내 외에는 성적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어느 비현실적인 남편과, 그런 남편의 러브콜을 냉정하게 거절하는 어느 늙은 아내의 밀당이다. 해설이 달리 없이 이 영화를 본다면, 우연히 만난 (부부 사이가 아닌) 노년의 두 남녀로 오해할 정도다. 직설화법으로 아내에게 불타는 사랑을 고백하는 늙은 남편이나, 쌀쌀맞게 사랑 고백을 차단하는 아내의 태도는 모두 어색하다. 

어색한 설정은 이것 만이 아니다. 30년 결혼기념 여행으로 프랑스 파리를 찾은 부부가 일종의 기념으로 비싼 식당에서 식대를 지불하지 않고 도망친다는 낭만적 설정은 어수룩하고 둔한 그들의 도주 방식 때문에 현실성을 심히 떨어뜨렸는데, 어찌 그런 탈주에 공감할 수 있는 지 알 수 없다. 한번 그런 인상이 꽂혀선지 하다 못해 나이든 남편이 이어폰을 꽂고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을 흥얼거리는 몰입 장면마저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인 연기처럼 느껴졌다. 

노년 부부에게서 기대하기 힘든 진한 로맨스를 극대화 시킨 이 영화의 연출은 영화 속 노부부의 대사에서 나오듯 자기 세대(6,7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에 대한 자부심어린 평가, 즉 비정상적인 청년기를 보낸 세대라는 자평에서 비롯된 독보적인 낭만의 결과일까? 그런 낭만은 그 세대에게, 나의 낭만은 내 세대에게.   


*  "<비포 미드나잇>의 20년후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해외 언론을 인용한 영화사의 보도자료처럼, 아내 멕을 연기한 린제 던칸의 눈매에서 줄리 델피가 아른거렸다. 

2014년 4월 21일 월요일

불가능한 정원의 꿈, 콘크리트 공원과 텃밭 (환경과 조경 4월)

* <환경과 조경>(4월. 312호) 특집 '다시, 정원을 말하다'에 기고한 글




불가능한 정원의 꿈, 콘크리트 공원과 텃밭


반이정. 미술평론가

현시대 한국의 일상에서 정원이 차지하는 의미나 형식을 쉽게 떠올리기란 힘들다. 자연의 일부를 떼어 주거 공간 속에 조형적 모양새로 인위적으로 옮겨놓은 게 정원일 것이다. 정원은 현실적으로 자연에서 격리된 동시대인에게 자연과 통하는 해방구를 제공했다. 하지만 필자가 동시대 한국의 시공간과 정원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건, 우리의 주거 문화를 지배하는 일반론이 정원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 주거 문화의 토대를 이루는 아파트는 물론이거니와 오피스텔과 원룸까지 무수한 거주 공간이 정원의 자리를 배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기에, 몰개성한 복층구조의 건축물이 일반적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 인근에 보라매공원이 있다. 정원이 개인 거주지 안에 작은 녹지를 조성하는 것인데 반해, 공원은 정원이라는 개인 사유지를 공공 영역으로 확대한 버전일 것이다. 연못 잔디광장 다목적 운동장 따위를 패키지로 묶어 시민들의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보장하는 보라매공원의 원래 목적은 군사 교육기관이었다. 과거 공군사관학교 터를 보수하면서 용도를 공원으로 변경시키고,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인 보라매를 공원 이름으로 따온 것이 현재 보라매공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세계의 유수한 공원들의 기원도 공공을 위한 놀이터로 설계된 건 아니었다. 왕족과 귀족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사냥터였던 것이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시민에게 공간을 내주게 된 것이 동서양 공원들의 일반적인 과거사인 점을 감안할 때, 공원은 소수 최고위급 인사들이 보유한 커다란 정원이었던 셈이다. 정원의 먼 선조로 흔히 예시되는 네바문 벽화도 마찬가지이다. 당대에 사회적 신분을 보장받은 이집트 서기 출신 네바문의 무덤 안 벽화에는 정원이 묘사되어 있다. 이 벽화를 통해 기원전 정원의 윤곽을 추적할 수 있다. 직사각형으로 호수와 그 주변으로 가지런히 심은 수목들이 기원전의 정원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이는 현대적 정원과 큰 틀에서 차이가 적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이 서구의 정원과 변별되는 바위정원rock garden의 전통을 갖는데 반해 한국 정원 문화에 관해 검색하면 복층 구조의 동시대 주거 문화 때문인지, 윤보선 고택, 성락원, 운보의 집, 대원군의 별장이었으나 고급 한정식당으로 변형된 석파정 정도만 간신히 잡힌다. 모두 동시대 현존 인물의 정원으로 규정하기 힘든 사적지이거나, 혹은 준 공공을 위한 장소들이다. 사유지 정원의 확대 버전인 공원이 동서 공히 왕족과 귀족의 놀이터를 위해서 녹지를 조성했다는 사실로부터, 현대적 미술관의 기원인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면서 루브르 궁전을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는 장소로 용도 변경해서 썼다. 그러던 중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대중에게 공개되어 오늘의 초대형 미술관에 이른 것이니 공원의 변천사와 흡사하다.


정원 혹은 공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을 확인시키는 의지가 남긴 흔적일 것이다. 자연 경관에 조형미를 인위적으로 덧붙인 무수한 정원 혹은 공원의 외관이 그 사실을 증언한다. 베르사유 궁전의 잔디는 동심원 무늬로 다듬어졌고, 햄프턴 코트 궁전Hampton Court Palace을 비롯한 영국식 정원들과 보 르 비콩트성Chateau de Vaux le Vicomte의 정원은 하나 같이 자연 경관을 좌우대칭의 질서 안에서 재구성한다.

비단 조경을 좌우대칭의 균형미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일본 교토 대덕사 대선원의 바위정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와 소유 욕구를 보여준다. 바위정원은 정원 속으로 사람이 진입해서 노닐 수 없는 정교한 볼거리로 설계되었다. 즉 전적으로 일방적인 관람만이 전제된 정원인 것이다. 암석을 세우고 주변에 흰 모래와 잘게 부순 돌을 배열하여 흡사 거대한 암석 주변에 물이 흐르는 광경을 축소판으로 재현한 것이 일본의 바위 정원이다. 즉 사찰 안에서 관찰할 수 없는 이상적인 정경을 인위적인 축소판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처럼 자연 경관을 미니어처로 축소시켜서 소유하려는 일본의 조경 문화는 아마 일본식 꽃꽂이인 이케바나와 분재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것 같다. 정원이 개인 가옥에 딸린 자연 경관인 점이나, 정원의 어원이 enclosure 즉 ‘담장 치기’였던 점을 고려하면 정원의 근본 가치는 자연의 사유화를 통해 자기 신분을 확인하려는 과시적 소비의 결과물일 것이다.

동시대 한국 정원의 사정으로 되돌아오자. 건설 마피아로까지 불리는 이 사회의 개발주의와 토건 문화는 가옥구조에서 정원의 자리를 몰아냈고, 우리 사회 구성원들 역시 토건의 문화 정서에 친숙해 있다. 주거 공간에서 찾을 수 없는 자연이나 개인 정원에 대한 갈증을 손쉽게 해결할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콘크리트로 구축된 대표적인 공원들이니 오죽할까. 서울광장 청계광장 광화문 광장은 2004년 이후 서울 도심에 출현한 대표적인 인공 녹지인데, 자연경관의 비중보다 콘크리트 구조물의 비중이 훨씬 높아서, 토건 사회의 흔적을 공원 자체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같은 콘크리트 녹지 공원에 대해 사회 공동체의 불만이 크지 않은 까닭은 서울 도심에서 태부족한 녹지 현실에서 그나마 갈증 해소가 되어준다는 위안과, 토건 문화에 친숙해진 국민 정서 탓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콘크리트로 조성된 공원들이 불만 없이 수용되는 이유는 정원을 거주지에 조성할 수 없는 우리의 보편적 주거환경과 녹지에 대한 갈증 때문이리라. 녹지가 태부족한 한국의 주거 문화로 인해, 텃밭의 유행이 등장한 게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텃밭이 서울 외곽에서 성업 중이어서 현대 도시의 삶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하는 계기를 만들고, 임대한 밭을 한시적으로 소유하고 그 안에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소유하게 만드는 이점 때문에 정원의 소유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일종의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리라.



* 아래로
일본 교토 대덕사 대선원의 바위정원
보 르 비콩트성Chateau de Vaux le Vicomte
이집트 네바문의 무덤 안 벽화에 묘사된 정원
정치적 치적물로써의 서울광장 
일본 분재
의정부시 일부 아파트는 가족 단위 텃밭이 포함된 아파트를 분양한다.  









2014년 4월 20일 일요일

아스코 4회 결방

아스코 4회 미션 방송은 오늘(4월20일) 방영 예정이었으나 진도 세월호 사고에 따른 예능방송 결방 도미노로 결방 되었다.




세월호

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와 관련해 사고 직후 ‘밖으로 나오지 말고 가만히 방 안에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포함, 승객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준 것이 화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재난사고에서 생사를 가르는 골든타임 30분을 잘못된 안내 탓에 놓쳐 버린 것이다.  

구조된 승객들은 5~6차례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들은 뒤에 이미 배가 상당히 기울어진 상황에서 탈출하라는 방송을 들었다고 전했다. 세월호 조타수 오용석(58)씨는 “배가 기울어 바로 조타실로 뛰어갔을 때 선장은 문에 기대어 있었고, 대기하라고 방송을 여러 번 했다. 

“선내에서 기다리라”는 세월호 승무원들의 안내방송은,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전동차 안에 대기하라”던 기관사의 안내방송과 닮았다. 두 사건 모두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탈출 매뉴얼’의 부재를 지적하면서도 ‘승무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야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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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17일 관람한 <헬터 스켈터>의 검사가 난처한 처지에 말한  대사(엮인글) 


"법이란 한낱 인간이 만든 규칙일 뿐이어서, 용감한 사람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2014년 4월 17일 목요일

손석희 사과

저는 지난 30년 동안 갖가지 재난보도를 진행해 온 바 있습니다. 

제가 배웠던 것은 재난보도 일수록 사실에 기반해서 신중해야 한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희생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16일) 낮에 여객선 침몰 사고 속보를 전해드리는 과정에서 저희 앵커가 구조된 여학생에게 건넨 질문 때문에 많은 분들이 노여워 하셨습니다. 어떤 변명이나 해명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나마 배운 것을 선임자이자 책임자로서 후배 앵커에게 충분히 알려주지 못한 저의 탓이 가장 큽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

속보를 진행했던 후배 앵커는 지금 깊이 반성하고 있고 몸 둘 바를 몰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많은 실수를 했었고 지금도 더 배워야 하는 완벽하지 못한 선임자이기도 합니다.

오늘 일을 거울삼아서 저희 JTBC 구성원들 모두가 더욱 신중하고 겸손하게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0416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

4월16일(수) 16시30분. 왕십리CGV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The Next generation patlabor>(2014) 시사회.

별점: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패트레이버'의 원작(1988)의 실사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범용인간형 로봇으로 미래세계에 개발된 '레이버'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자 이들을 감시하고 제압하는(패트롤) 대항로봇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패트레이버다.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The Next generation patlabor>라는 긴 제목으로 올 4월에 일본과 한국 등지에서 개봉하는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고작 1시간을 조금 넘긴다. 마지막 장면도 허무개그처럼 끝난다. 왜인고 하니 이 영화는 시리즈로 올해 4월부터 내년 5월까지 1년 동안 8편의 연속 개봉 스케줄을 따르는 초장편이어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패트레이버'는 이미 12편의 비디오 애니메이션을 필두로, 48편의 TV번안극, 22권의 만화 단행본으로 묶인 바 있단다. 때문에 극장버전이 8회로 구성된 건 놀라운 일은 아닐 거다.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의 첫회분은 레이버의 범죄율이 미미해지자 그것을 막던 패트롤레이버 부대의 존폐가 위협에 놓인다는 설정을 다룬다. 마징가-Z, 기동전사 건담처럼 인간의 형태를 본딴 이족보행 로봇은 일본 판타지물의 특허품이나 진배 없는데, 이 영화에서 패트롤레이버 부대가 오랜 존폐 문제에 직면했을 때 패트롤레이버 부대의 1세대에 해당하는 특차 2과 정비반장이 이족보행로봇의 처지를 그저 '소망'과 '페티시'의 산물일 뿐이라고 자조하는 대사는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이 영화를 보노라면, 일본 대중문화의 한 면모가 성공적인 로봇 애니메이션의 전통을 변형 프랜차이즈 상품을 무수히 쏟아내는 기반으로 활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삼다 보니, 실사 영화가 연출하는 배우들의 썰렁한 농담이나 표정 연기 따위가 원작 다운 힘을 받질 못하더라. 이런 근본적인 맹점을 단지 패트레이버의 오타쿠 그룹의 지지로 극복할 수 있을까? 총8편 중 1편만 보고서는 확답할 수 없지만, 1편은 허무개그에 가깝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밥+술 모임

이사 전까지 살던 미성동집에서 '책+DVD 분배' 모임을 한 3월19일(엮인글)로부터 1달이 되는 4월19일(토) 밥+술 번개 모임을 할까 하는데요. 참석 대상은 그 날 책+DVD를 받아간 분들을 포함해서 불특정 방문자 모두 입니다. 

이와 유사한 자리는 연말 블로그 송년회 정도 였지만 이번에는 연초에 마련하네요.  
단순히 밥+술 마실 목적의 자리이니 부담 없이 참석하시면 됩니다. 현재 방송 중인 '아스코' 시청 소감도 듣고 싶고요. 


일시: 4월19일(토) 저녁6시
장소: 홍대역 (아마도 '두리반')
식비: 1만원 내외일듯.
참석: 아무나



ps. 연말 송년회나 책+DVD 분배 자리에서 늘 느끼는 건, 이런 자리가 어색할까봐 주저하는 분들이 많은데 조금도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 초면인 분들이 오셔서 재밌게 시간보내다가 갑니다. 참석을 원하시면 주저 말고 덧글 남기세요. 참석 인원을 식당에 알려줘야 하니까요.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빅이슈> 연재합니다

월 2회 발행되는 '<빅이슈 Big Issue>코리아'에 이번 82호부터 기고 한다. 매월 1일과 15일 <빅이슈>의 신간이 풀리는 모양인데 그 때마다 글이 실린다.  

지하철 입구에서 <빅이슈>를 파는 행상을 몇번 본 적은 있으나, 무슨 성격의 잡지인지 무심히 지나쳤었다. 그러던 중 작년말 소설가 장정일 선생을 만났는데, 나 보여주려고 책을 한권 싸들고 왔다며 꺼내 보인 게 이 잡지였다. 고심 끝에 당신은 기고를 하는데 내게도 한번 생각해보라며 기고를 권했다. 

공식 웹사이트에 올려진 소개글에 따르면  <빅이슈>는 홈리스의 재활을 돕는 취지로 1991년 런던에서 창간한 잡지로, 현재 세계 10여개국에서 발행된다고 한다. 이 잡지에 기고하는 필자는 고료를 받질 않는다. 이름하여 재능기부. 

나는 영화 시사회를 영화 관계자보다 훨씬 많이 보는 관계로, 미술/전시 글이 아니라 막 개봉한 새영화의 소개글을 짧게 쓰기로 했다. 매달 2회 꾸준히. 블로그에는 기고한 글을 올리지 않을 예정이다.  블로그에 틈틈히 올리는 영화 프리뷰를 재편집해서 보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존 원고의 재편집에 걸리는 시간 만도 제법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