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31일 토요일

사전투표 @ 조원동 + 부록

오전 오후 일정을 마치고 조원동 제1 투표소에 들러 올해 처음 시행된 사전투표를 체험 하고 왔다. 지금 현재시간을 기준으로 사전투표 가능 시간은 약 50분 가량 남았다. 


낮 일정은 이랬다. 오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강연를 해주러 갔고, 강의를 마친 오후에 자전거를 몰고 오늘까지가 마지막인 김구림 개인전을 보러 뙤약볕 아래에서 플레이스막이 위치한 홍대 근처까지 이동했다. 전시를 보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사전투표소가 설치된 조원동(신림 8동)으로 이동했다.  






+ 부록 



내가 머무는 조원동의 일명 '강남아파트'는 70년대 지어진, 붕괴 직전의 위태로움이 느껴지는 자칭 아파트인데 귀가할 때 내가 거주하는 강남아파트 13동 입구의 거리로 1천~3천원 사이의 저렴한 의류를 내다 파는 모습이 보였다. 파시는 분에게 물어보니, "완전 새거 같은 옷들도 많고, 젊은 애들이 입는 옷도 많아요."라며 진짜 여성용 핫팬츠를 보여 주신다. 

아파트 입구에 일명 우편함도 붙어 있는데, 커트 단돈 1천원하는 저렴한 미용실 찌라시가 우편함에 꽂혀있다. 왜 이렇게 싸냐하면 손님을 미용 연습생들을 위한 일종의 '교보재'로 받기 때문이다. 기회가 될때 한번 가보려고 찌라시를 빼왔다. 나는 십수년 동안 대학교 내부에 개설된 미용실/이발소에서 커트를 5천원 주고 받는다. 심지어 수년전 까지는 가격이 4천2백원이었음.
내 헤어스타일의 단가는 항상 5천원 이내에서 해결된다. 

2014년 5월 29일 목요일

0528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 베스트 오퍼 ★★☆

5월28일(수) 14시. 롯데시네마 건대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The Hundred-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2013) 시사회.

별점: 




해외에서 꽤 높은 평점을 받은 걸 확인해서 보러 갔는데 만족도가 매우 낮다. 귀가해서 재확인해보니 내가 본 평점은 시나리오의 토대가 된 원작 소설에 관한 평점이었다. 상단의 격자무늬 디자인 그래픽은 영어판 원작 소설의 표지란다. 100세의 노인이 고령 때문에 어리숙하고 재밌는 언행을 일관되게 한다는 사실을 소설 텍스트로 접한다면 우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화면으로 옮겨진, 실제 인물의 액션으로 그런 노인의 언행을 접하는 체험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폭탄제조에 순수한 흥미를 지닌 소년이 성장하면서 우연히 역사적 실존인물들(프랑코, 오펜하이머, 스탈린, 레이건....)등을 차례로 만나서 정치적 도움을 주며 우애를 쌓는다는 원작 소설의 설정 또한, 실제 인물이 연기로 구현한다면 훨씬 정교한 장치나 배려가 필요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신파와 우연의 일치로 일관한다.  

영화에 대한 나의 실망이야 아랑곳하지 않고, 적지 않은 관람객이 장내에서 박장대소를 하는 걸 봤다. 나와는 대조적인 관객들의 반응은 목격할 때마다 나를 매우 놀라게 한다. '저게 그렇게 재밌단 말인가'  


* 주인공이 유년시절 아빠로부터 선물받은 구형 카메라로 역사적 인물을 갑자기 촬영하는 장면이 계속 나오는데, 나름 중요한 설정 같은데 영화를 보면서는 이 장면이 왜 삽입되었는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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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8일(수) 16시30분. 롯데시네마 건대 <베스트 오퍼 The Best Offer>(2013) 시사회.

별점: 




 <시네마천국>의 쥬세페 포르나토레 감독의 신작으로 해외에선 작년초 개봉했다. 음악도 엔니오 모리코네가 담당했다. 반전을 높게 쳐주는 성향이지만 <베스트 오퍼>가 내놓는 반전은 억지스럽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는 반전이었다. 그나마 를 준 건 TV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작품의 진위를 직관으로 판단한다는, 완고한 영국 경매사 역의 주연 배우의 제프리 러시의 연기력과 허술하지만 꽤나 애쓴 듯한 스토리의 짜임새 때문이다. 예술품의 진위 판독과 연애 감정의 진위 판독을 나란히 두 축으로 끌고 간 점도 단순한 구도지만 괜찮았다. 경매사 버질이 오랜 경험을 통해 "위조품은 예외없이 진품의 미덕을 간직하는데, 진품의 미덕이란 자기표현이다"라고 밝힌 그의 소신이 반전되는 영화의 결말과 어울리진 않았다.  

반전을 통해 이해는 했지만, 반전이 되기 전에 여주인공이 보인 변덕과 그에 분개하는 버질의 태도를 보며, '변덕의 진입장벽을 극복하지 못하면 연애라는 게임은 시작조차 못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인용되는 자동기계를 발명한 보캉송 Jacques de Vaucanson의 실제 발명품을 검색해보니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형 로보트와는 차이가 너무 컸다.     

은밀한 경로로 세계 명화 가운데 여성 초상화들만 수집해서 벽 전면에 걸어둔 경매사 버질의 비밀 창고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초상화가 보여서 살짝 당황. 

그럭저럭 재밌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높은 평점을 주기는 어렵다. 반전에서 어째서 세명/팀의 은밀한 공모가 이뤄질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고, 사건의 무대인 고택의 실제 소유주가 따로 있었다는 마지막 반전도 너무 억지스럽다. 보캉송의 작품으로 소개되는 18세기 부품들을 반전을 꾸민 세명/팀이 어떻게 장만했는지, 또 그 부품을 어떻게 경매사가 발견했는지 등이 해명되지 않는다. 제 아무리 영화사의 거물의 신작이라지만 빈틈이 너무 많다. 또는 거물에게 거는 우리의 기대가 너무 컸거나.  


영화 말미에 여주인공의 과거 추억이 깃든 체코 프라하 광장이 언급 되길래, 귀가해서 <광장 Square of Europe, Square for Europe>을 뒤져보니 체코의 '구시가 광장'이란다. 오랜 시계탑과 종탑 사이에 놓인 고색창연한 도시 사진이 삽입되어 있었다. 

2014년 5월 27일 화요일

0526 엣지 오브 투모로우

5월26일(월) 10시30분. 왕십리CGV <엣지 오브 투모로우 Edge of Tomorrow>(2014) 3D-IMAX 시사회.

별점: 




3D-IMAX관에서 봤는데 전쟁터의 촬영신에서 핸드헬드(?)의 흔들림이 큰 데다가 3D의 입체감까지 보태지기 때문에 관람 내내 촛점을 잡지 못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수 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구성의 빈틈은 좀 있는 편인데, 발상만큼은 독창적인 편이다.

장르는 달랐지만 <그녀>를 볼 때도 느낀 점인데, 이런 영화들을 접할 때마다 실생활과 일체화 되고 중인 첨단과학기술은 이제는 SF물에 국한하지 않고 전장르의 영화가 스토리텔링의 주제로 다뤄야만 하는 세상이 온 것 같다.  

관전 포인트를 미리 말해버리면 영화의 모든 걸 폭로하는 스포일러가 될 영화다. 그렇지만 '살고, 죽고, 반복하고'라는 선전 부제가 영화의 포인트라는 점만 밝힌다. 다만 불사신를 단순하게 묘사한 SF물은 아니라는 점도 밝혀두자. 또 동일한 사건을 무수하게 반복해서 보여줘야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데, 그 엄청난 시간성을 놀랍게 압축(편집)해서 시간의 무게를 이겨낸다. 이런 편성을 보노라면 영화가 편집의 예술이란 건 공식처럼 알고 있었지만, 없는 사실까지 지어내는 편집의 마법에 더해 시간을 압축하는 그 기술을 선점한다는 사실로부터, 영화의 전지전능성을 느낀다.  

과잉 폭력이나 폭발물 초과 사용 등으로 규정되는 SF 액션물의 일반론에 대안은 없을까에 관해 생각해본다. 폭력과 폭발을 최소한 자제한 대안적 액션물에 대해서 말이다. 흡사 '알몸 드러내지 않고 에로물 만들기'처럼 불가능한 미션 같지만 마냥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닐 거다.  




* 상영 전에 'IMAX is believing'이라는 광고 문구가 화면을 채운 후 영화가 시작 되었다.  

2014년 5월 25일 일요일

아트 스타 코리아 8회 티저

5월25일(일) 밤11시께  '아스코' 8회 미션 방송(스토리온,온스타일,올리브)이 나간다. 

오늘 방송되는 8회 미션 촬영은 2월1일(토) 파주 교하동 공동작업실에서 진행됐다(엮인글). 그날 촬영 티저.
사진에서 대화 중인 멘티는 료니, 이현준, 신제현. 



ps.  탑쓰리 도전자들의 개별 미팅-촬영이 나의 오늘 일정으로 온종일 잡혀있다. 







2014년 5월 22일 목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헤어스타일 (씨네21)

* <씨네21>(955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97회분. 아래가 보낸 제목(아래)이 딱딱했던지 책에는 '가발,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라는 제목으로 인쇄되었더라. 그런데 내 글은 가발이 아니라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다룬 거라 원제를 단다.



헤어스타일과 예술의 관람 가치






좌. 앤디워홀 미술관의 워홀 가발 기념촬영 행사 2013년
중. 더글라스 고든 <커트 코페인, 앤디 워홀, 미라 핸들리, 마릴린 먼로로 분한 나의 자화상> 1996년
우. 록밴드의 보컬이 된 여배우 줄리엣 루이스



건널목을 교차하는 순간 아델과 엠마가 나눈 시선은 촌각에 불과했으나, 두발 전체를 파랗게 물들인 엠마의 헤어스타일은 아델에게 깊이 각인된다. 두 여성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가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제목을 쓴 데에는 둘의 사랑에 엠마의 파란 머리털을 도화선으로 상정해 볼 법해서 일거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여배우 줄리엣 루이스의 난데없는 돌변은 파랗게 물들인 머리 염색으로 확인되는 것 같다. 파란 빛은 어지간해서는 엄두조차 내기 힘든 머리 염색이라 파란 머리의 개인은 남다른 아이덴티티를 얻는다.

피츠버그의 앤디워홀 미술관은 관객 참여 행사를 마련했다. 앤디 워홀이란 고유명사로부터 삐죽삐죽한 튀어나온 헤어스타일이 쉽게 연상되는 점에 착안한 행사다. 앤디 워홀의 헤어스타일을 크게 부풀린 가발을 허공에 매달고 관객이 그 밑에서 기념 촬영을 하도록 유도한 게 이 행사의 골자다. 찍힌 사진 속으로 흡사 앤디워홀 헤어스타일의 관객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이 담긴다. 스타 예술가 앤디워홀과 관객이 과장스런 가발 밑에서 잠시 동기화되는 해프닝을 노린 거다. 앤디 워홀의 괴이한 헤어스타일은 실제 두발이 아닌 가발이었지만 그의 아이덴티티로 부족함 없는 분신이었다.

<커트 코베인, 앤디 워홀, 미라 핸들리, 마릴린 먼로로 분한 나의 자화상>이라는 긴 제목을 한 사진 속에서 영국 아티스트 더글라스 고든은 금발 가발을 뒤집어쓴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관객은 그의 얼굴로부터 금발 머리 아이콘으로 후대에 기억되는 4명의 명사를 손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금발 머리를 한 단 한명의 남성을 통해, 얼터너티브 록 밴드 너바나의 자살한 보컬, 팝아트의 간판스타, 아동 연쇄 살인범, 50년대 섹스 심벌을 모조리 소환할 수 있단 말이다. 이 단순한 사진(혹은 작품 제목)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좌우하는데 헤어스타일이 기여하는 비중을 방증한다.

머리색은 유전된 멜라닌 색소에 지배받는 만큼, 두발의 변색은 정상적 삶에서 벗어나는 인위적인 변신술이다. 과격한 헤어스타일이 하위문화의 아이콘처럼 계승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멜라닌 색소가 안배하는 두발 색의 천편일률, 정상 사회의 두발 문화가 남긴 헤어스타일의 통일된 무개성. 특이한 헤어스타일이 전혀 상이한 삶을 대변할 만하다. 보통 사람이 그런 헤어스타일에 대해 거리를 두고 구경만 할 뿐, 그 세계에 투신하는 건 애써 주저하는 이유이다. 앤디 워홀 가발 기념 촬영 행사가 보여주듯, 예술은 천편일률적인 일상에 변화를 꾀하기 위해 등장할 때가 많지만, 정작 대중에게 그 변화를 수용하게 만들기보단, 일시적인 동참과 관람에 머물 때 쉽게 수용된다. 이런 현상은 사회변화를 촉구하는 정치적인 예술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2014년 5월 21일 수요일

만우절 소동 뒷수습

만우절 거짓말 회고를 정리한 원고(엮인글)를 <문화공간>(5월호)에 기고 했는데, 알고보니 같은 달에 <GQ>에서 내 만우절 소동을 오해한 채 인용한 기사가 실렸더라. 오해가 빚어낸 <GQ>의 기사에 따르면, "'빅3'로 통칭하는 세 언론사가 그렇게 달려드니 그걸 믿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오보였다. 그들은 확인도 사과도 안 했다." ​=> GQ 원고(현재수정됨) 

아마 기사를 쓴 기자는 '만우절 소동의 책임, 조중동과 반이정이 나눠가져야'라는 진중권의 <한겨레> 기고를 참조하고 쓴 것 같다. 그런데 진중권의 한겨레 기고문 역시 내 만우절 작품인데 그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어찌 이런 일이... <GQ>에 기사를 쓴 담당 기자에게 사실 관계가 잘못 되었음을 알리는 짧은 트윗을 보냈다. 만우절 소동의 뒷수습을 언제까지 해야할지.  


* 수정 직전의 <GQ>기사 화면




2014년 5월 19일 월요일

아트 스타 코리아 7회 후기

'아스코' 7회 미션 방송에선 멘토가 아닌 특별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7회 미션 촬영 사진. 










2014년 5월 18일 일요일

아트 스타 코리아 7회 티저

5월18일(일) 밤11시께  '아스코' 7회 미션 방송(스토리온,온스타일,올리브)이 나간다. 

오늘 방송되는 7회 미션 촬영은 1월27일(월) 파주 교하동 공동작업실에서 진행됐다(엮인글). 그날 촬영 티저.



2014년 5월 15일 목요일

0515 작은 집에 산다는 것 TINY: A Story About Living Small

5월15일(목) 19시. 서울대 본부 1층 (야외) <작은 집에 산다는 것 TINY: A Story About Living Small>(2013) 상영회.

별점: 유보 







녹색당 서울대 모임에서 영화 상영회를 한다고 녹색당원 소속의 지인으로부터 오늘 오후 갑자기 카톡 연락을 받았다. 

<작은 집에 산다는 것>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저녁에 상영한다고. 작은 집 짓기에 관해서는 작년에 2~3권의 책으로 읽은 기억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서울대로 이동해서 본관 야외에 마련된 스크린 주변의 바닥에 앉아서 영화를 보고 왔다. 알고보니 EBS의 다큐멘터리 영화제 EIDF 상영작이었더라. 상영되는 동안 해가 떨어지면서 체온도 떨어졌고 바람이 계속 불어서 스크린이 휘청 휘날리기도 했지만 비주류적 영화 문화를 간만에 체감하는 맛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상영이 끝나자 영화에 관한 얘기를 나누자고 주최측에서 제안을 했고, 모여든 사람들(대부분 녹색당원)이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얘길 나눴는데, 아무래도 나랑은 세대가 달라선지 관심사와 대화의 질감이 달라서 조용히 자리를 떴다.  

영화 초입에도 인용 되지만 자연과 실제 삶을 통합적으로 사유한 헨리 소로에게 공감한 소수의 미국인들이 큰 규모의 저택 문화에 포섭되지 않고, 사는 공간의 부피를 줄이고 난방비와 유지를 삭감하는 대신 삶의 의미를 찾아 작은 집을 짓는다는 얘기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실제로 바퀴 위에 트레일러형 집을 직접 짓는 두 남녀로 등장한다. 집이 시공 되는 기간 동안 작은집을 기왕에 짓고 사는 사람들의 주택관을 듣는 인터뷰들이 여러개 삽입되어 있다. 특히 주택에 대한 과잉된 욕망의 산물인 미국 모기지 거품이 무너진 2008년 파동 때 작은 집을 짓기로 했다는 어느 부부의 인터뷰 내용은 상대적으로 작은 집의 가치를 대조적으로 부각시키는 인상을 준다.    

작은 집들은 대개 세모형 지붕의 획일적인 모양새를 지니는데, 그 작은 공간에 최적화된 삶을 살게 되더라고 거주자들은 증언한다. 이 영화의 감독이기도 한 주인공은 집 짓는데 무려 1년이 걸렸고(단 둘이서 집을 직접 지었다) 비용은 2만6천 달러 소요 되었다고 한다. 또 집을 직접 짓기로 마음 먹은 데에는 자기 능력을 테스트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고 회고했다. 

0514 그녀 ★★★★☆

5월14일(수) 14시. UPI 내부시사실 <그녀 Her>(2013) 시사회.

별점: 







낭만적인 편지를 대필해주는 '아름다운 손편지닷컴'이라는 미래의 서비스 업체에서 근무하는 이가 겪는 미래의 사랑 이야기다. 인공지능의 전지적인 발전으로 인격체와 거의 대등한 수준의 인공지능 컴퓨터 운영체제OS가 개발 되었다는 가설 하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OS는 단순한 맞춤형 대화 상대자가 아니라 진짜 사람처럼 대화를 나눈다. 영화 속 OS자체의 자기 진술에 따르면 '직감'을 갖고 있으며 잦은 대화의 경험이 쌓여 '진화'를 하는 미래형 컴퓨터란다. 요컨대 사용자에게 수신된 이메일의 내용을 미리 검토하고 '해석'해서, "깜짝 놀랄 소식이 왔는데요?"라고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식이다. 

우리가 오늘날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IT기술의 압도적인 발전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풀이한 작품은 그동안 줄곧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쏟아질 예정이리라. 하지만 <그녀>는 IT주제를 다루되 기존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진일보 시켜서 내놓는데 과장되다고 느껴지질 않는다. 미래의 OS와 사용자가 맺는 관계는 실제 인간관계와 거의 대등해서 다른 점이 있다면, 운영체제를 사람처럼 만지고 볼 수 없다는 점. 물론 이게 가장 중요하지만, 그 점 하나 빼곤 사실상 거의 유능한 인간과 대화를 하고 해법을 찾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OS의 기능에 대해 영화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선지, 미래형 OS를 탑재한 영화 속 컴퓨터의 존재감에 놀랍긴해도 말도 안되는 상상력이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실제 오늘날 인류의 삶이 IT기술의 결과물로 섬세하게 직조되고 있어서 일 거다.  

OS와 사용자 사이의 마지막 공백인 '접촉 면적의 부재'는 영화에서도 결국 사이버섹스의 형태로 발전하는데, 인간이 보여주는 성적인 반응을 OS가 성적으로 자각하고 감정 표현하게 되는 수준으로 진행된다. 즉 컴퓨터OS가 사용자로 인해 성적으로 고양되는 단계의 피드백을 보인다는 것. 영화 속 OS는 보통 진화한 OS가 아니어서, OS와 그걸 사용하는 인간 사이의 결별도 사용자인 인간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OS가 인간과의 결별을 선택할 만큼 우월한 감정과 이성을 지닌 OS로 묘사된다. 그런데 그런 묘사가 하나도 어색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우리의 현실적 삶이 OS에 얼마나 의존하면서 그런 묘사가 자연스럽게 느껴질까.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가장 자주 내뱉는 대사는 'I don't know'였던 걸로 기억된다. 이별로 상처받는 흔한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소개 되는데, 인간 관계가 만들어내는 애증과 변덕 앞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지 못할 때 사람들은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어'라고 답을 한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진일보한 IT기술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인데(영화 속에서는), 인격체에 가까운 최첨단 인공지능 OS조차 결국 인간에게 상처와 허망함을 남긴다. 이런 영화적 결말은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라는 메시지 일 것이다. 없는 감정을 지어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온 '대필 편지 작가'라는 주인공의 직업도, 영화에서 '그녀'로 설정된 직감과 감정을 지닌 인격적 OS의 본질을 통찰하게 할 목적이었을 것이다. 

진일보한 OS(혹은 그것에 비유된 대필 편지)의 한계를 '접촉의 숙명적 부재'에서 찾는 것 같진 않다. 비록 단순한 결론이어도, 미래의 OS를 매개로 해서 현실에서 유지되기 힘든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인간관계의 진정성에 대해 성찰하려 한 것 같다. 




* 크레딧이 전부 올라올때까지 지켜봤는데 크레딧 속에 '상하이 유닛'이라는 팀이 뜨더라. 촬영장 중 일부 공간은 중국에서 했단 얘기인가 본데, 영화에 나오는 거대한 현대적 마천루가 혹시 중국 상하이였을까? 

** 주인공이 거대한 여객기가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모양의 공공미술을 지켜보는 장면이 있다. 이게 진짜 존재하는 공공 조형물인가 싶어서 검색을 했지만 찾지 못했다. 

** UPI 시사실에 어제 처음 가봤다. 작은 스크린과 아담한 극장 내부 그리고 편한 의자. 원래 <그녀>의 시사회장은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이었으나, 참석 인원이 넘쳐서 임시 방편으로 UPI 시사실에서 추가 관객을 받은 거다. 규모는 작지만 화질은 물론이고 사운드도 받쳐준다. 여기까지는 다 좋은데 늦게 입장한 시사참관 기자(?) 하나가 관람 내내 스마트폰을 켜고서 그걸 보고 있는 통에 짜증이 나서 혼났다. 내가 결국 핸폰 좀 닫으라고 얘길 했는데 첨엔 말길을 못알아 듣더라. 나의 지적에 무안했던지 혹은 자기 취향의 영화가 아니었던지, 영화 종료 직전에 슬쩍 자리에서 뜨더라. 언론/배급 시사회장에는 진지하게 영화를 보질 않고 단지 무료니까 객석에 앉아 시간 보내다가 가는 이런 저질 관객이 항상 있다. 어젠 좀 화가 나더라. 그런 작자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다 "영화가 니 취향이 아니거든, 더 남아서 민폐 끼치지 말고 속히 자리에서 떠라."   

만우절 해방구 (문화공간 5월)

* 세종문화회관에서 발행하는 <문화공간>(5월호. 통권362호)의 '말말말' 코너에 기고한 글. 
지난 4월1일 내가 자초한 만우절 소동(엮인글)에 관해 정리한 글.




만우절 해방구



반이정 미술평론가 

“만우절이긴 한데, 혹시 진짜에요?” 알고 지내는 언론사 기자에게 확인 전화가 걸려왔다. 이 전화를 전후로 “장관 되신 거 정말 축하합니다.^^:”처럼 진지한 인사를 담은 문자나 메일을 수두룩 받았다. 사실 관계의 나열과 냉정한 분석으로 구성된 비평문을 쓰는 직종 탓도 있고 평소 농담 섞인 유희를 즐기는 성품도 아닌 탓에, 전에 없는 나의 거짓말에 많은 사람들이 속았다. 만우절로 넘어가는 4월1일 자정을 기해, 중앙일간지의 로고와 뉴스의 포맷을 고스란히 흉내 낸 “[속보] 박근혜 정부, 후임 문화부장관에 40대 미술평론가 반이정 파격 인선”이라는 가짜 기사를 작성해서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 블로그 방문자들을 순수하게 웃길 목적으로 제작된 이 가짜 기사는 SNS로 삽시간에 일파만파 퍼지더니 만우절 당일 방문자의 수가 평소 블로그 방문수의 20배를 넘겨버렸고 내 이름의 연관검색어로 ‘문화부장관’이 나란히 잡힐 정도까지 됐다. 

놀라운 사실은 이 거짓말 기사를 읽은 적지 않은 이들이 진짜 보도로 오해했다고 털어놨다는 거다. 기사가 엉터리임을 암시하는 여러 장치를 나름 마련했지만 무용했다. 내가 문화부 장관에 인선되었다는 오해가 일파만파 퍼져갔다. 평소 일 관계나 대인 관계 모두 ‘용건만 간단히’ 원칙에 안주하며 농담과는 거리를 두며 살던 내게, 스스로 자초한 만우절 장난은 해방구 같은 체험이 되었다. 만우절 장난의 흥분은 최소 5일은 가더라. 나의 악의 없는 거짓말 소동 때문에 이번 만우절이 재밌었다는 인사말도 주변에서 여러 차례 들었다.

만우절의 단발성 소동은 내 삶의 고정된 패턴을 돌아보는 시간도 되었다. 내 일과는 거의 예외 없이 대상을 골라 구상하고 집필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이 같은 생활 패턴은 후에 강연장이나 지면에서 생계 수단으로 발현된다. 현대 미술을 주로 다루는 글과 강연은 오직 한정된 수의 독자와 청중을 나와 연결시킨다. 비평과 우스개 농담을 동일선상에서 대등하게 비교할 순 없는 일이나, 평소 나의 원고나 강연이 이번 만우절 소동처럼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은 아마 없었을 게다. 그 지당한 사실을 환기하자 허구적 이야기의 자기 만족도와 중독이 새삼 살갑게 느껴졌고, 반면 비평의 지평 위에 놓인 내 활동영역은 초라하게 느껴졌다. 영화를 필두로 대중문화가 대중을 상대하는 원리도 아마 만우절 농담과 비슷할 거다. 일상의 나른한 생리에 균열을 내고 주목을 끄는 건 항상 경천동지할 사고 소식이거나, 비일상적인 판타지인 경우가 그래서 많지 않겠나. 허구적 이야기에 군중이 집단 중독되는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리라.

현대미술이 불편하고 불친절하다는 투정은 긴 세월 이어져서 더는 새로운 불평 축에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미술을 향한 천편일률적인 불평을 늘어놓는 대중 가운데 현대미술을 대면하려고 노력한 이는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 한편 현대미술에 친숙한 전공자들이 유독 좋아하는 작품 중 대중들이 불친절하다고 여기는 작품이 퍽 많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대조는 왜 생길까? 전공자들의 환심을 사로잡는 고도의 자기 풍자와 썰렁한 농담 같은 미술작품이 완전무결한 미적 감성으로 서열화 된 예술의 경직성을 전복시키기 때문이다. 즉 일견 불편하고 불친절한 미술품이 오히려 해방구의 체험을 안긴다는 얘기이다. 

내 만우절 거짓말로 큰 재미를 봤다는 주변 지인들의 맞은편에, 그 소동으로 불편함을 느낀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확인된 건 극히 소수였지만 더 있을 수도 있다. ‘책임감 없는 유모’라거나, ‘개병맛’이라거나 ‘기분 엿 같다’는 게 그들의 투정이었다. 대부분 대놓고 얘길 꺼내지 못하고 이름을 숨긴 채 글을 남겼더라. 고작해야 하루살이 농담마저 화를 씩씩 내는 이들의 투철한 소신을 내가 말릴 의사는 없다. 이제껏 살아온 가치관대로 계속 살면 된다. 악의 없는 상상력에 한계치를 높게 허용하는 사회일수록 건강하고 유연하다. 상대적으로 관대함이 낮은 한국 사회 공동체는 정서적 해방구를 체험할 기회마저 매우 적다. 한시적인 일탈의 해방구로 만우절이 꽤 쓸모 있다는 걸 알았다. 매년 만우절을 시큰둥하게 지나쳐온 내가 올해 거짓말 소동으로 깨달은 바는 그렇다.

2014년 5월 13일 화요일

0512 더 바디 ★★☆ / 도희야 ★☆

5월12일(월) 14시. 왕십리CGV <더 바디 The Body / El Cuerpo>(2012) 시사회.

별점: 




후반부 반전으로 잃은 점수를 조금 만회할 순 있었어도 만족도가 높은 스릴러물은 아니었다. 시체 검시소에 보관 중인 시체가 사라졌고 시체의 행방 여부 혹은 시체의 사망여부까지 의심받는 사태로 번진다. 단서는 경비원이 달아나는 모습을 담은 CCTV 화면 정도. 

범인을 사전에 노출시키는 건 <형사 콜롬보>의 형식이었지만, 행방 불명된 시체가 어쩌면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꾸준한 암시 때문에 범죄가 성사되었는지 여부마저 불투명해진다.  

후반 반전을 통해 살인 사건이 복잡하게 읽힌 배경과 아주 오래 준비된 진짜 범인의 계략이 백일하에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어색하고 미숙한 짜임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살인 용의자와 그를 수사하는 형사의 대비를 아내를 깊이 사랑했던 이(형사)와 정략결혼 후 아내를 살인한 이(용의자)로 대비시킨 구성은 괜찮았으나 범죄의 내막에 관해 휴대전화로 내연녀와 스스럼 없이 통화하는 용의자의 태도를 통해 범죄의 흐름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연출 방식도 미숙했고, 형사의 불운한 가족사를 범인과 엮어나간 구성도 어설펐다.  


ps. 전개 과정을 나름 눈여겨 봐야 할 스릴러물이건만 내 주변에 코를 고며 자는 관객이 있어서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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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8일(목) 16시30분. 왕십리CGV <도희야>(2014) 시사회.


별점: 




대중적 지지에 호소해야 하는 영화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건 딜레마다. 현시대 대중의 보편적 기호를 고려하면서 동시에 작품의 독보성까지 갖춰야 최선일 거다. 당대 스타로 라인업을 짜는 것도 대중 기호에 답하는 손쉬운 방책일 것이다. 스타를 기용한 영화가 실망스럽다면 훨씬 가혹한 점수를 주게 되는데, <도희야>도 그 경우에 해당한다. 

스타를 포진한 국내 개봉작은 언론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아무 예고편 방영 없이 정시에 상영을 시작한 <도희야> 시사회는 두개의 상영관(7관 8관)에서 상영 되었고 기자 간담회가 뒤이어 열렸다. 간담회에서 배우들이 돌아가며 인사말을 하는 순서 중에 송새벽은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해요."라고 웃으며 인사를 했다. 기자회견장이니 그렇게 말할 밖에 없었겠지만, 나는 관객의 일반적 기호는 물론이고 배우의 경력에도 부합하지 않는 작품이라고 봤다. 기왕에 연기력이 확인된 배우에게서 연기력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책임의 절반 이상은 연출자에게 있다고 나는 본다. 배역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는 방법으로 막무가내 욕설을 내뱉은 연기를 한 게 거의 전부인 송새벽이 '괜찮은 영화'였다고 말하다니 아이러니다.   

영화는 2시간 분량이지만 길게 스토리를 전달할 필요는 없겠다. <도희야>에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동력은 과음이다. 시골에서 오지랍 넓은 막무가내 사내의 상습적인 과음(외부를 향한)과 시골로 발령받은 여성 파출소장의 자기상처 치유용 과음(내부를 향한)이다. 과음의 막무가내처럼 영화의 스토리 전개도 개연성을 무시할 만큼 막무가내로 전진한다. 무수한 우연들이 남발하며(여성 파출소장은 자신과 향후 엮여야 할 소녀 도희가 어려움에 처하는 순간마다 우연적으로 그 자리에 나타난다. 파출소장이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와 상봉하는 결정적인 장면은 '우연히' 막무가내 사내가 목격한다. 이 쯤 되면 허구적 설정의 한계치를 초과한 거다). 고발인의 진술과 파출소장의 어설픈 변호로 인해, 파출소장이 고발 당일 바로 철창에 갇힌다거나, 파출소장에 대해 시골 현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변덕을 노골적으로 전달하는 표현법도 성찰이 약한 연출 같았다.  

우연의 남발과 쌍두마차를 이끄는 불편은 연출의 상투성이었다. 여성 사이의 사랑이 <도희야>의 한 축임에도 그것을 그려내는 방식은 과연 여성 감독이 맞나 싶을 만큼 남성적인 시선으로 그렸다. 그 점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시골 사람을 막무가내 억지를 부리는 인간형으로 그린 상투적인 묘사처럼, 여성 동성애의 묘사도 빈약한 연출의 결과라고 본다. 아무리 시골마을에 부임한 여성 파출소장이지만 공권력에 주저없이 대드는 막무가내 시골 현지인의 행패를 그리는 것도 빈약한 연출이라는 점에서 같다. 기왕에 군산 출신인 송새벽을 제하면 배우들의 영 어설픈 전라도 사투리 구사를 듣는 것도 고역이었다. 이마저 대중적 눈높이를 고려해야 하는 대중영화의 딜레마로 봐줘야 할까?   



* 기획/제작에 이창동이 참여해선지 경찰서장 역에 문성근이 짧게 특별출연한다. 한시적으로 정치인 신분이기도 했던 이를 스크린에서 만나자 비현실감이 느껴졌다. 

** 통속적 기호를 내러티브를 짜고, 난데 없이 비키니 차림으로 등장하는 여성 파출소장과 한창 발육중인 소녀의 인체와 연예인을 흉내내는 그 소녀의 개인기를 내세운 영화. 그리고 칸 영화제 초청이라는 비평적 근거까지 갖춘 이 영화가 국내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할까? 이 모두를 고려하더라도 나는 국내에서 호응을 받지 않으리라고 내다본다. 

2014년 5월 11일 일요일

아트 스타 코리아 6회 멘토링 티저

5월11일(일) 밤11시께  '아스코' 6회 미션 방송(스토리온,온스타일,올리브)이 나간다. 지난 주 방송된 5회 미션에선 내가 출연하지 않았다.  

오늘 방송되는 6회 미션 멘토링은 1월21일(화) 파주 교하동 공동작업실에서 진행됐다(엮인글). 그날 멘토링 장면 티저.
사진 속 멘토링 대상자는 신제현, 서우탁, 그리고 팀 멘토링 미션으로 나뉜 두 팀(신제현 홍성용 이현준 서우탁 료니 vs. 최혜경 윤세화 구혜영 유병서 김동형).

  










2014년 5월 10일 토요일

0508 트랜센던스 ★★☆ /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 0509 신촌좀비만화 ★☆

5월8일(목) 14시. 롯데시네마 건대 <트랜센던스 Transcendence>(2014) 시사회.

별점: 





세계를 하나의 망으로 연결하는 정보통신의 우월한 기술력을 저지하고 무력화시키려는 입장이 있다. 이런 입장은 19세기초 기계파괴운동에 빚대어 네오러다이트 운동(Neo Luddite)이라고 부른다. 첨단 기술을 인류 구원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영화 속 과학자의 입장과 과학발달이 결국 악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네오러다이트 사이의 대립이 큰 줄거리이다. 시의적인 의제를 상정한 점에서 흡인력이 있는 영화일 수 있었다. 더구나 <다크 나이트>의 제작자가 영화의 제작을 맡았다니, 영화 속 볼거리가 노련한 마스크의 배우 조니 뎁 외에도 더 큰 스펙터클까지 확보된 셈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이나 신경과학의 현주소와 '물리적으로 독립된 신경체'로 불리는 Pinn이라는 고성능 컴퓨터, 그리고 영생이라도 약속할 것 같은 현대의 나노기술 등을 늘어놓으면서 이런 극단적 과학주의를 영화로 각색해서 동시대 관객에게 전달하는 건 아직은 어려운 과제로 보인다. 난맥상이 자주 나타난다. 무수한 첨단 과학들의 전지전능함을 속도감 있는 스토리텔링에 포개넣으려다보니 이야기가 개연성 없이 도약하기 일쑤다. 이야기의 갈등을 초래하기 위해 배우가 막무가내의 무리수를 쓰는 일도 많다.  

<트랜센던스>는 신경과학 인공지능 나노기술처럼 동시대 과학이 다다른 현주소와 그런 과학의 면모를 허구로 가공한 여러 영화적 선례들을 참조해서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정보통신기술의 진화나 우월한 과학주의를 화두로 던진 '아주 오래된 고전'들로부터 이 영화가 멀리 벗어나 있지는 못하다는 느낌이다. 비밀리에 호텔에 투숙한 영화의 주인공이 본명 대신 최초의 연산기계의 아이디어를 내놓은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름을 따서 '튜링'으로 예약을 한 장면은 웃어넘길 수 있다. 발표회장에서 "신의 자리를 넘보는 거냐?"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참석자와 뒤이어 등장하는 신 기계파괴주의자들의 테러 장면 그리고 첨단 의학과 정보기술로 무장한 공간을 점유해서 새로운 신천지를 만든다는 설정 등에서 <트랜센던스>가 빚진 과거의 영화들이 떠오를 것이다. 인류 기원의 문제를 다룬 <컨택트>의 IT버전처럼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컨택트>가 남긴 고민을 넘어서진 못하고 참조만 할 뿐이다.  

<트랜센던스>에서 '물리적으로 독립된 신경체'로 소개되는 고성능 컴퓨터 Pinn도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인공지능컴퓨터 HAL 9000을 참조한 것일 테지만 '2001년의 아이디어'를 더이상 진전시키지 못한다. 전 세계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후 새로운 신 처럼 행사할 수 있다는 설정과 오프라인을 지배하는 온라인의 저력을 보여준 장면 따위는 유비쿼터스한 네트워크의 미래상을 보여준 <매트릭스>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그 역시 <매트릭스> 이상의 진전을 보여주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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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8일(목) 16시30분. 롯데시네마 건대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20 Feet From Stardom>(2013) 시사회.

별점: 




한창 시절로부터 멀찌감치 퇴역한 왕년의 코러스 백업가수들의 과거와 오늘을 입체적으로 다룬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무대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들 뒤에서 후렴구로 주인공의 완성도를 보완해주는 백업가수을 조명한다. 백업가수의 원조는 백인 여성이었단다. 마이크의 앞뒤로 몸을 움직이면서 기계적인 후렴구를 삽입한 백인 백업가수는 이내 가스펠풍의 자기스타일을 지닌 흑인 백업가수로 교체된다. 재밌는 건 이들 흑은 여성 백업가수들은 집안에서 아버지가 목사여서 성가대 경험이 있는 이들이 많다는 점. 그래서 이들의 음악이 '복음성가를 세속화한 경우'라고 풀이하더라. 흑인 여성 백업가수는 종래 백인 여성 백업가수가 메인 가수의 단순 보조를 넘어서서 자기 무대를 확보한 독보적 세력으로 성장한다. 그렇지만 개인의 목소리를 고수하지 않는 백업 가수의 숙명 때문에 솔로 데뷔는 번번이 제약을 당하고 성공에 이르지도 못한다는 것. 

흑인 백업 가수의 연보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흥미롭게 파헤친 대목은 백업 가수는 미국 대중음악의 산물인데, 영국 대중음악에서 흑인 스타일일 추구하는 조 카커, 레드 제플린 같은 뮤지션이 등장하면서(이들의 블루스 성향을 말하는 듯), 영국 뮤지션들도 미국 백업 가수들과의 협업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증언.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은 무대의 정중앙에 선 메인 가수를 보조하면서 존재감이 잊혀진 백업 가수에게 서치라이트를 비춘 점에서 평론가와 심사위원들의 호감을 사기 쉬웠을 것이다. 그런 선한 취지가 아니어도 무대 뒷편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메인 가수의 존재감을 보조하는 데 주력한 백업 가수의 몫이 전체 대중음악사의 전개에서 차지하는 몫을 살폈다는 점 때문에 호평을 받은 것 같다. 일단 별점 4개를 주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R&B와 가스펠풍의 음악을 선호한 적이 적었던 내 취향 때문에 영화 속 음악에 몰입하긴 어려웠다. 백업 가수들의 후원으로 주목받은 조 카커, 티나 터너, 레이 찰스 같은 주연들의 음악에 관해서도 내가 호감을 보인 적이 적었던 거 같다. 

가난한 흑인 공동체의 교회 성가대 출신자들이 세속의 무대에서도 메인 가수를 보조하는 활동에 투입되다는 사실, 그리고 솔로 데뷔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 퇴임 후에는 가난한 흑인 공동체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영세한 노래 강사로 투입되는 사실 등을 보면서 세상의 축소판을 확인하는 씁쓸한 기분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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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9일(금) 10시. 왕십리CGV <신촌 좀비 만화 Mad Sad Bad>(2014) 시사회.

별점: 


영화 감독 셋의 각기 다른 세편의 3D영화 연출작을 묶은 옴니버스물이다. 관람 내내 놀랐다. 이런 흥미로운 구성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저버릴 만큼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올해 전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니 더욱 놀랍다. 너무 황당하고 형편없게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세 감독의 작품은 이렇다. 류승완 '유령' / 한지승 '너를 봤어' / 김태용 '피크닉'. 짧은 러닝 타임 속에 세편이 단편영화의 러닝타임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세편 모두 밀도는 떨어졌고 관람 시간도 길게 느껴질 만큼 지루했다. 

가상세계에 제 삶을 저당 잡힌 동시대 청소년의 비주류적 초상화를 그린 류승완 감독의 '유령'.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가상 네트워크에 제 삶을 내준 청소년들 주체로 설정했찌만, 영화 속 청소년드링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판단력과 행동은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을 받을 만큼 동의의 수준을 넘어선다. 살인 후 인증샷을 태연히 촬영해서 카페에 공개한다거나 네트워크상에서 청부살인을 부탁한 소녀가 청부 살인이 실제로 제 눈앞에서 벌어지자 태연히 '그냥 해본 부탁이었다'며 화들짝 놀라서 화를 낸다는 황당한 반전 따위가 그렇다. 청소년들의 비현실감을 이렇게 극화해도 정당할까? 아무리 허구적 산물이 영화예술이라지만 말이다. 

'유령'은 왜 불편하고 어색할까? 그 원점에는 이야기 속 주체인 청소년의 감성을 성인의 눈으로 엉뚱하게 필터링해서 엉뚱한 오독의 결과물을 내놓은 데 있다고 본다. 무수한 카톡 대화창이 하루의 의사 소통을 지배하는 청소년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 무수한 카톡 대화창을 스크린위에 3D로 흩뿌려놓은 설정도 가독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가상세계와 현실 사이의 혼돈을 다룬 걸로 치자면 <잉투기>를 참조했다면 좋았을 텐데.  

좀비를 소재로 삼은 한지승 감독의 '너를 봤어'는 이 영화가 지향한 목적이 좀체 뭔지를 모르겠다. 좀비를 통해 은유하려는 바(가 있다면) 그게 뭔지도 알 수 없었고, 설령 은유가 없는 단순 좀비 영화였다면 좀비 영화가 갖춰야할 기본 문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거다.  

아이의 내면 세계를 바라본 김태용 감독의 '피크닉'도 미성년 초등학생의 정서를 성인의 눈으로 과도하게 풀이한 점에서 류승완의 영화와 비슷한 오독을 범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신촌좀비만화>의 옴니버스 세 편 모두에서 출연진이 보인 연기력이 함량을 밑돈다는 게 문제다. 이런 경우는 배우보다는 연출자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신촌좀비만화>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가 새로운 영화기술(3D)을 전문 영화인들과 함께 연구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젝트" 기획물이란다. 이런 취지에도 불구하고 세 편이 왜 3D로 제작 되었어야 했는지 보는 내내 납득하기 힘들었다. <겨울왕국>이나 <그래비티>처럼 3D의 효과를 톡톡히 본 영화의 수준까지 기대했던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 오전 10시에 시작한 시사회는 상영이 끝난 직후 기자간담회가 열렸지만 나는 간단회를 보진 않고 장내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