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30일 월요일

6월

6월, 2014년의 절반이 가다. 



 이런 순금 밥그릇을 누가 무슨 용도로 60만원대에 구입하는지 궁금해서 찍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이마트로 장보러 가다가. 



 미술대학에는 방학을 기해 디자인 전문 교육기관들이 진로를 고민하는 미대생을 타깃으로 광고 포스터를 붙이는 모양이다. 세종대 수업 갔다가. 


 6월12일(목). 요즘 같은 세상에 퍽 희귀한 필름 카메라를 꺼내든 촬영자를 내가 찍었다. 전시 뒷풀이 자리에서. 


 도서관 책상에 학생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낙서. 5시에 식사/ 7시에 공부/ 10시에 버스/ 11시에 고양이(강아지?)와 놀기?/ 그 아래 여자애로 보이는 얼굴이 새겨졌는데 시간은 적혀있질 않았다. 자기 사인인가...?

 엄청난 흉물을 도서관에 들어설 때마다 만나게 될 태세. 도서관 발전기금 쾌척이야 감사할 일이나 꼭 이런 낡은 방식으로 사은을 표시해야 하나.


 서울대 미술관MOA의 맨 아래층 어떤 매장에서 기르는 듯한 고양이.


 6월23일(월). 내가 사는 누추한 조원동 강남아파트에 책을 빌리러 방문한 지인에게 내게 접대한 고수를 넣은 쌀국수.




 6월24일(화). 님포매니악2를 다 보고 왕십리CGV 상영관에서 나왔을 때. 극장 스크린으로 월드컵 6월27일 경기를 생중계 할 예정인 모양이다. 뭐 이미 다 지난 얘기지만. 


 서양화과 학생과 국문과 학생이 함께 만든 신기한 그림이 농협 건물에 붙어 있었다. 이름하여 '방학계획표-미인 프로젝트' 



 6월26일(목). 5억까진 바라지도 않고 일단 1억원이라도. 국립현대미술관 강연을 가던 길, 국립현대미술관 강연을 해주러 '대공원역'에 내렸을 때. 





6월30일(월) 루믹스 카메라를 더는 사용하지 않게 되어서 블로그 방문자에게 무료로 줬는데, 그녀가 보답으로 밥을 사줬다. 한남동에 있는 식당 '일호식'. 여의도에서 강의를 마치고 자전거로 한남동까지 이동했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독립기획자와 자족적 글쓰기 문화 (컨템포러리 아트저널 Contemporary art journal 봄호. 2014. vol.17)

* <컨템포러리 아트저널 Contemporary art journal> 봄호(2014. vol.17) 특집 '허위의식과 저항 사이의 큐레이팅'의 청탁으로 쓴 글. 




독립기획자와 자족적 글쓰기 문화



반이정. 미술평론가 


작가와 전시를 연구 과제로 삼는 점에서 평론가나 기획자는 동일선상에 있다. 평론가의 글과 기획자의 글 사이를 확연히 가르는 질감 차이를 찾긴 어렵다. 차이가 있다면 자신이 기획한 전시 서문을 쓴 기획자의 평문 정도일 거다. 제작 과정을 근접거리에서 소상히 지켜본 기획자는 완성품에 대한 사전(事前) 비평을 내놓을 테고, 과정보단 결과물에 전념하기 쉬운 평론가는 사후(事後)적 비평을 내놓을 게다. 이 때 기획자의 평문은 작가의 의도나 전시 기획안을 충실히 옮기는데 집중한다. 작가/전시에 친화적인 평문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미술관 학예사건 갤러리 큐레이터건 그가 속한 전시장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기 어려워서다. 기획자의 글은 고밀도의 정보를 담더라도 결국 작가/전시에 편향적인 비평으로 기운다. 반면 전업 비평가는 조직의 이해에선 자유롭지만 제작 의도와 기획의 취지를 소홀히 다룰 가능성이 있다. 다만 호오가 분명하고 주관적인 판단에 전념한 평문의 모양새를 띤다.

작가/전시와 필자가 맺는 관계항에 따라, 기획자와 평론가의 글은 이 같은 질감 차이를 낳을 게다. 그렇지만 이런 관계항의 조건을 제한다면 기획자와 평론가 사이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글의 질감 차이를 발견하긴 솔직히 어렵다. 이는 미술 평론이 지니는 동조성-평론이 지니는 글의 일반적 형식-에 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가담하기 때문이리라. 때문에 필자 개개인의 문체의 차이라면 모를까, 기획자와 평론가를 분간할 만큼 둘을 선명하게 가를 평문의 차이는 찾기 어렵다. 더구나 전시 기획을 병행하는 평론가라면 그가 기획한 전시 서문에서 작가/전시 친화적인 평문을 내놓는 터이니 결국 기획자의 비평 스타일을 고스란히 답습할 게 아닌가.

때문에 전업 미술 평론가와 공정하게 비교할 상대를 찾자면, 자신이 기획한 전시의 글을 쓰되 소속의 논리에 예속되지 않고 비평 소신을 유지하기 쉬운 기획자를 찾아야 할 게다. 이 조건에 그럭저럭 근접한 기획자로 독립 기획자를 꼽을 수 있다. 무소속 독립기획자의 계보는 이미 퍽 길지만, 전대 독립 기획자들이 기관에 영입되거나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가 많아서 차세대 독립기획자를 살펴보자. 차세대 독립기획자 그룹은 전대와 질감 차이가 느껴진다. 차세대 독립기획자들은 대안 공간 형태의 전시장을 공동 운영하거나, 콜렉티브 형식의 공동 기획으로 소신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활동은 독보적인 닫힌 구조보다 개방적이고 느슨한 연대에 기초하는 것 같다.

여기서 언급할 차세대 독립기획자란 2010년대 후반께 활동력을 보인 이들로 한정한다. 전대 독립기획자와의 변별점을 잘라 말하긴 어려워도 몇 가지 공유하는 성격은 있는 것 같다. 정통 미술이론 계열 전공자가 많았던 전대와 달리, 제도 미술 전시의 타성적인 정서와는 거리를 두는 차세대 독립기획자들은 미술이론 비전공자 출신도 많은 것 같다. 박재용과 장혜진의 독립기획그룹 ‘워크온워크’의 첫 기획전 <힛앤런: 흩어지는 전술>(2011년)은 “중심이 없는 프로젝트”로 “‘공공 공간’에서 진행하는데, 여기서 공공 공간이란 서울 시내 공공 공간으로 어떤 작가들은 이를 인터넷으로 생각해서 웹을 기반으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시기를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전시”도 아니어서 “하루나 몇 시간 전에 상당히 임박해서 공지를 하기 때문에 길 가다가 보게 되면 보는 것이지, 작정하고 작업을 봐야겠다고 해도 보기 힘든” 남다른 기획 전시란다. 이러니 작품이 놓일 시공간이 대개 확정된 제도 미술계의 기획 전시와 비교할 때, 작품과 시공간 사이의 관계를 대하는 태도부터 차이가 난다.

경계가 불분명한 전시회를 내놓는 차세대 독립 기획자들의 태도는 평문을 대하는 태도로 연장 되는 것 같다. 대안적 전시 공간 ‘시청각’을 2013년부터 공동 운영하는 현시원에게서 그런 면모가 관찰된다.
“누군가를 흥미롭게 하기보다 나를 흥미롭게 하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 지금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현시원은 학술적 깊이를 어중간하게 과시하는 고답적인 비평 성향에서 빗겨나 있다. “큐레이터라는 이름 안에 제가 하는 활동을 꼭 담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니고, 다만 현대미술을 공부했고 자유로운 형식의 글쓰기에 대해 항상 애정” 갖기에 “꼭 미술이 아니더라도 디자인이든 건축이든 나를 하나의 사람으로 만들어 온 한국사회의 이미지를 어떻게 글쓰기 형태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것”으로 관심사가 이동한 경우이다. 현시원의 비평적 관심이 전 방위로 표현되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현시원의 첫 책 <디자인 극과 극>(2010년)에는 동시대 한국 미술가들의 작업이 듬성듬성 도판으로 등장하나 미술평론집은 아니다. 현재적 삶에 관여하는 일상 사물들을 두루 관찰한 한 후 상호연관성이 낮은 사물들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에 찾아내 독자적으로 풀이한 시각 에세이집이다. 미국에서 제작된 부피가 풍성한 우주복과 한국에서 제작된 환경미화원의 형광색 반짝이 유니폼이 동일 선상에서 언급된다. 혹은 한국 보수단체가 대북전단을 담아 날릴 때 쓰는 대형풍선과 남성 피임기구 콘돔을 신축성 있는 비닐 재질이라는 공통점으로 나란히 묶어 논하기도 한다. 더러 미술인의 작품이 책에 인용되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의 중심은 미술이 아니라 저자의 관심을 꽂힌 일상 사물이다. 장르적 사유에 연연하지 않는 저자의 관심은 ‘큐레이터를 자극한 사물들’라는 부제를 붙인 <사물 유람>(2014년)이라는 두 번째 책으로 연장되었다. 

견고한 미술언어의 규약에 예속되지 않기에 비평 대상은 유연하게 열려있다. 책의 타깃도 보편적 독자이기 보다, 필자가 자족하는 글 혹은 필자와 호기심을 공유할 소수의 독자층을 지향하는 것 같다. 이런 집필 태도는 전시 기획으로 다시 피드백 되는 것 같다. 차세대 독립 기획자의 전시는 소수만이 공유하는 미학에 지배되는 것 같아서다. 이들이 기획한 전시회를 보면, 출품된 작품들이 왜 같은 깃발 아래에 모여 있는지 단번에 눈치 채기가 난감할 때가 많다. 관객을 흡수할 기획안의 원심력은 그래서 낮다. 전시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기획자가 쓴 산문에 가까운 서문을 참조해야 출품 작품들 사이의 유기성이 느슨하게 확인된다. 이처럼 원심력이 낮은 전시에 정작 기획자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전시 기획과 평론에 임하는 독립기획자들의 입장은 훨씬 자족적 가치에 기울어 있는 듯하다.

차세대 독립 기획자를 규정할 또 다른 특징은 높은 온라인 친화성과 느슨하게 열린 공동 작업이다. 글쓰기마저 협업을 택하는데, 독립 기획 그룹 ‘워크온워크’는 글을 발표할 때 박재용과 장혜진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표기할 정도다. 기획과 비평을 겸하던 전대(박만우, 이영철)가 장문의 난해한 글에서 자기 독보성을 찾으려고 심혈을 기울인 것과 분명 대조적인 광경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활발한 활동 양에 비해 평문 생산에는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텍스트보다 시각 정보가 훨씬 호소력을 발휘하는 동시대에 이들이 보내는 진솔한 응답 같다. 협업으로 결과물에 다다르는 차세대 독립기획자들은 전시 기획자의 고정된 역할마저 해체하는 것 같다. 전시회를 원거리에서 제어하던 정통 기획자의 숨어있는 초상과는 다르다. 자신이 기획한 전시회에 스스로 가담하기 일쑤다. 홍성민이 기획한 <19금 퍼포먼스 릴레이>(2011년)에 박길종과 현시원이 공동 기획한 <골든>도 무대에 올려 졌는데, 기획자 현시원은 이 기획 공연에서 연기자로 출연한다. 작가와 기획자를 가르던 고정 배역을 부인하는 광경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큐레이션십의 변화에 대한 박재용의 답변에서도 확인된다. “관리Cura(care) 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Produce하는 방향. 교육, 공공참여public engagement라는 방향으로” 기획자의 지위가 변했기 때문에 “그런 변화 속에서 기획자는 정형화된 틀 안에 안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차세대 독립기획자들이 공유하는 관심사 중 하나는 사회 관계망에 미술(기획)이 관여하는 역할에 관한 것이다. 이는 2011년 독립기획자들의 집단 대담을 다룬 마가진(magazyn.co.kr)의 글에서 재확인 된다.

“개인적인 관심은 예술의 역할이라던가 사회 내에서의 예술의 사회적 개입에 관한 것이에요.”(신윤선), “큐레이터도 인터넷 기사나 신문을 보면서 사회정치 이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이 코멘트를 하는 차원인 것 같아요.”(장혜진), “현대미술에서는 ‘현대’가 ‘미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 분들과 함께 동시대 일들을 얘기하고, 그것을 동시대 관객들과 나누는 것이 현대라고 생각합니다.”(양지윤).

동시대 시사 이슈를 곧잘 기획 소재로 끌어오기에 주재환 최민화 같은 민중미술 1세대가 전시에 초대된다. 세대 차이가 큰 민중미술가들이 구축한 정치사실주의 미학으로부터 조형적 풍자에 주목하되 이념적으로 깊게 연루되지 않고, 미적 무정부주의에 천착하는 경향도 띤다. 이들이 시사 이슈를 대하는 태도는 자신이 기획한 전시 <지휘부여 각성하라>에 참가한 작가 남화연을 설명할 때 현시원이 쓴 표현대로 “지적이고도 심각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에 가깝다. 민감한 사회 현안에서 두루 기획 소재를 발굴함에도, 기획안의 원심력이나 관객과의 연결고리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지는 까닭도 이 때문이리라. 2013년 말 시청각의 개관전 <no mountain high enough>의 전시 서문에서 현시원은 이 전시가 “인왕산 주변의 지도를 당대 작가들의 시각으로 조망하고 재구축하려는 ‘망상’에서 시작되었다”고 소개한다. 

1947년 지어진 한옥 가정집을 개조한 전시장 ‘시청각’은 실제적 삶에서 고립되지 않으려는 ‘시청각’ 운영진의 태도를 표상한다. 전시의 형태나 전시 서문 모두에서 어딘지 헐렁한 인상을 주는 ‘시청각’의 개관전 <no mountain high enough>는, 외부의 무반응에도 불구하고 줄곧 큰 스케일로만 승부를 걸려는 제도권 전시장의 전시 형태나 서문의 관성과는 다른 노정을 걷는다. ‘시청각’ 전시회 개막식에 모여들어 전시를 관람하고 서문을 읽는 소수의 방문자들의 관심은 그들의 내부를 진솔하게 지향한다. 외부의 반응이야 어떻건.

2014년 6월 28일 토요일

4년

6월28일(토). 이사온 조원동 강남아파트에서 4년 주기 남산행.









조원동 18시47분 출발 (한남동에서 식당 한곳의 위치를 파악하느라 약 4분간 정체). 다시 출발. 남산 1차 휴식지 19시40분 도착. 남산 2차 휴식지 19시56분 도착. 정상 20시 06분 도착. 끝으로 현장에 20시25분쯤 도착해서 20시30분에 집을 향해 출발. 조원동에 21시15분 도착. 

생일 파티를 평소 잘 챙기지도 않는 편인데, 차라리 6월28일을 생일로 정해서 친구들과 만나 밥먹을까를 귀가하는 자전거 위에서 잠깐 생각 했다.  

바스티앙 비베스

첫경험은 그래픽 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블로그>였다. 

심란해서 일손이 잡히질 않던 어제밤, <바스티앙 비베스>에서 시작된 호기심을 나머지 책 3권을 읽으면서 부풀렸다.
나무랄 데 없는 독창적 데생과 스토리텔링을 전개한다. 
덧붙이자면 책을 읽는 중 새로운 구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

"폴리나, 명심하렴. 내가 얘기했지. 사람들은 우리가 보여주지 않는 것은 볼 수 없어. 그런데 네가 보여주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다지 보이는 게 없어. 감정을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난 자기 감정을 관리할 줄 모르는 사람한테는 관심 없다." 
-- <폴리나> 38쪽. 

"유연하면 뭐든지 들 수 있어. 다리가 튼튼하게 지탱해주면 아무리 무거운 물건이라도 들 수 있지." -- <폴리나> 45쪽. 

"사람들은 행동을 취하기 전에 항상 핑계를 댄단다. 좋은 핑계도 나쁜 핑계도 없어. 핑계를 대며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은 이미 진거야." -- <폴리나> 72쪽.  

"춤은 예술이다. 적도 동지도 없다." -- <폴리나> 113쪽.

"폴리나, 나는 공룡이란다. 학생들에게 많은 걸 가르치려고 노력하지만 모든 것이 나한테는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 이제 늙어가는 거지." -- <폴리나> 178쪽.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넌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 제일 예쁜 아이였단다....  가장 열정적인 학생이기도 했지. 너를 가르치는 게 즐거웠다." -- <폴리나> 185쪽.  





2014년 6월 26일 목요일

0625 숙희 ★

6월25일(수) 10시30분. 대한극장 <숙희>(2014) 시사회.

별점: 



상영 초반부 10분 이내에 영화의 좋고 나쁨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경험칙이 내게 있다. 그 경험칙은 거의 8할 이상 적중한다. 이 영화도 그 경험칙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입부 10분 전후로 낭패감마저 가슴으로부터 밀려왔다.

근본주의적 금욕주의자와 (영화상으로는 도무지 해설되지 못한) 섹스를 통한 환자를 치유하는 어떤 여성 사이의 대비가 이 영화의 큰 틀인데, 이런 구도부터 도식적이다. 이 도식을 강화하려고 금욕주의자인 남성을 데카르트를 강의하는 어설픈 철학과 교수로 설정한 구성도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 금언을 인용할 때 특히 그렇다.

남성의 엄정한 금욕주의를 시험하려고, 교수에게 단도직입인 유혹을 감행하는 보기 드문 여학생을 도발이나, 부부 사이의 거리감을 멀찌감치 떨어진 식탁으로 암시한 점 등, 영화가 드러내는 식상한 구도와 도식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이 많다.

비정상적인 간병인 숙희의 되바라진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 또 얼마나 황당한 장치들이 동원되었던가! 애써 비유하자면 숙희는 90년대 외화 <미저리>에 등장하는 강박녀에 해당되어야 이야기가 풀리리라. 그래야 숙희의 비정상성이 납득될 수 있단 얘기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까지 지켜보면 <미저리>의 캐릭터와는 다른 그저 괴짜인 여성이었던 거다. 대체 뭐람.

리비도를 연출하는 낡고 상투적인 해석으로 미루어 나는 이 영화의 연출자가 상상력이 빈약한 마초 남성일 거라고 믿었다. 더욱이 사태가 제멋대로 풀리지 않으면 일단 여성의 뺨부터 날리는 남성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웬걸... 기자 간담회 때 입장한 감독은 여성이었다. 경악.

스토리 전개와 모든 갈등에 시발점인 숙희의 간병 능력은 무슨 수로건 납득시켰어야 한다. 뇌졸중을 단지 성관계만으로 속속 치유했다는 숙희의 알 수 없는 재능에 관해, 영화는 끝내 입을 닫는다. 이마저 허구적 스토리텔링의 면죄부라 우길 참인가 보다.


비록 질감과 스토리에서 전혀 비교될 순 없다해도, 근래 관람한 외화 <님포매니악>(엮인글)이 극단적인 성행동을 풀이하고도 남다른 깊이감을 준 점까지 감안할 때, 어떻게 이렇듯 황당한 전개와 정태적인 설정들로 풀타임을 채운 영화가 21세기에 제작될 수 있단 말인가.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0624 님포매니악 볼륨2 Nymphomaniac: Vol.2 ★★★★

6월24일(화) 10시30분. 왕십리CGV <님포매니악 볼륨2 Nymphomaniac: Vol.2>(2013) 시사회.

별점: 







남다른 성적 조숙으로 공중부양에 버금가는 오르가슴을 체험한 12세 소녀 조의 모습으로 볼륨2가 시작된다. 볼륨1에 이어 님포매니악(색정광)인 조가 그녀의 과거사를 노인 샐리그만에게 털어놓는 천일야화의 연장선에 볼륨2가 있다. 조가 얘기하고 샐리그만의 듣는 영화의 대위법적 스토리텔링은, 조가 체험하고 실행한 무절제한 무정형 본능을 샐리그만이 수학 공식처럼 가지런히 재배열해서 듣는 형식을 따른다.

이 같은 대위법 구성은 볼륨2의 도입인 6장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의 대비로 배치한다. 타르코프스키가 자신의 영화적 주제로 정하기도 한 러시아의 안드레이 류블로프의 동방교회의 이콘(icon)그림이 샐리그만의 방에 걸려있는데, 그에 따르면 동방교회의 성화는 기쁨에 관한 것이고, 반대편에 수난사를 묘사하는 서방교회 성화가 있단다. 6장에선 서방교회의 수난사처럼, 갑자기 상실한 오르가슴을 되찾으려는 조의 과거의 수난사가 나온다.

샐리그만은 성경험은 물론이고 성욕 자체가 없는 무성애자라 고백하면서, 무절제한 욕망이 만든 조의 고통을 자신은 공감할 수 없는 처지라고 말한다(영화에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기억 약간 가물가물). 무정형 질감의 리비도(조의 영역)는 논리나 공식(샐리그만의 영역)으로는 완벽히 풀이되기 어려운, 리비도 고유의 질감이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 마지막 반전에서 확인시킨 것 같기도 하다.

조와 샐리그만 사이의 건널 수 없는 대비는 흑인을 니그로라고 부르는 조와 그런 표현을 인종차별이라며 주의를 주는 샐리그만의 태도에서 극명해지는데, “있는 그대로 거침없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 바닥의 매력”이라는 조의 항변이 퍽 맘에 와 닿았다. 비유하자면 정사 중에, 상대를 모욕할 의사는 하등 없으면서 험악한 표현을 주고받는 체험, 그런 체험이 있다면 그걸 떠올리면 될 거 같다.

유명한 현역 여배우를 반쯤 벗긴 채로 소파에 그녀의 ㄱ자로 구부려 결박시킨 화면에서, 굉장히 독보적인 비주얼을 연출자가 배려한 것처럼 느꼈다.



* <님포매니악>은 볼륨1과 볼륨2를 한 묶음으로 평가해야 할 게다. 볼륨2는 볼륨1에 비하면 신선도가 약했는데, 평균 수위를 뛰어넘는 노출과 표현이 <님포 매니악>의 매력 포인트인 점을 감안할 때, 볼륨1에서 상당 부분 체험한 강도로 내성이 생긴 감식안이, 볼륨2에 둔하게 반응한 탓 같기도 하다. 즉 동일한 강도로는 후속타로 연결되지 않는다. 볼륨2에서 느낀 또 다른 패착은 이야기를 수미쌍관 전개시키려는 감독의 강박이 관람 말미로 갈수록, 관객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반전은 한편 싱겁고 강박적인 설정이라고 느껴졌다. 세간에서 <님포매니악>에 관한한 선정적 수위가 주로 회자되는 모양인데, 실제 상영관 내부는 무거운 진지함이 지배한다.

** 영화가 끝나고 크레디트가 올라올 때, 여러 락커들이 불러서 록의 스탠더드가 된 '헤이 조 Hey Joe'를 어떤 여성 가수의 노래로 흘러나왔다. 나는 지미 헨드릭스의 버전으로 이 곡을 갖고 있다. 

*** 바흐의 푸가와 베토벤의 푸가 사이의 차이점에 대한 짧은 언질이 영화 속에 있었는데,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베토벤이 푸가를 이단적으로 해석했다는 식의 이야기였는데.... 

2014년 6월 22일 일요일

아트 스타 코리아 12회(마지막 방송) 티저


6월22일(일) 밤11시께  '아스코' 마지막 방송인 12회분(스토리온,온스타일,올리브)이 나간다. 
오늘 방송에서 최종 우승자가 결정된다. 탑쓰리에 오른 후보자 3인은 구혜영 신제현 유병서. 

12회 방송 멘토링 분량은 지난 5월25일(일-엮인글) 도전자들이 작업하는 공간을 순회 방문하며 촬영했다. 원래 내 계획은 자전거를 타고 도전자들의 작업실을 순회하는 것이었으나, 구혜영이 중앙대 안성 캠퍼스 미대 실기실에서 작업을 하는 바람에 방송사 차량으로 이동했다. 촬영을 위한 멘토링이 아닌 실제 진지한 멘토링은 5월17일(토)과 5월19일(월) 촬영 스탭 없이 개별 미팅으로 진행 했다. 아스코 심사는 전시 개막 전날인 6월9일(화) 진행됐고, 그날 저녁 아스코 쫑파티도 열렸다.  








유병서 작업실(난지 창작 스튜디오) 




구혜영 작업실(중앙대 안성 미술대 실기실)




신제현 작업실(성북동) 





멘토랑 촬영 뒷풀이(상암동)





+ 별첨: 
5월17일(토) 개별 멘토링 미팅 후 우리끼리 뒷풀이. 이날 구혜영-유병서를 멘토링 한 후 저녁밥을 다 같이 먹었고, 5월19일(월) 신제현을 멘토링 했다. 작업 구상이 바뀐 신제현에게서 미팅 요청이 와서 6월3일(화) 개별 멘토링을 다시 했다.  



2014년 6월 21일 토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신병교육대 (씨네21)

* <씨네21>(959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99회분. 아래는 내가 보낸 제목이고 실제 잡지에는 편집자가 'Shut up'을 제목으로 뽑았다. 뭐 괜찮긴 하지만 나는 원제를.



자원한 지옥세계





상. <풀 메탈 자켓> 1987년
중. <포레스트 검프> 1994년
하. 토마스 횝커의 미해병 신병훈련소 연작 사진 1970년


“흉하게 생겨먹은 꼬락서니를 보니, 네놈은 영락없는 현대미술작품이구나!”
부동자세로 사열을 받는 신병들에게 번갈아 모욕을 안기던 훈련 교관이 어느 신병의 면상에 대고 속사포처럼 쏟아낸 고함은 이랬다. 해병 신병훈련소의 분위기를 묘사한 이 화면은 <풀 메탈 자켓>의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이 장면이 긴 여운을 주는 이유는 전쟁터의 부조리를 절대복종만 존재하는 신병훈련소의 불합리한 속성으로 압축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저항 상태로 얼음처럼 굳은 신병들을 몰아붙이는 교관의 고압적인 자세는 놓치기 힘든 관전 포인트다. 신병훈련소가 여러 예술가 집단이 즐겨 재현한 소재인 까닭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도 신병과 얼굴을 맞대고 빈정대듯 고함을 질러대는 교관이 익살스레 인용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의 토마스 횝커도 미해병 신병훈련소를 자신의 주제로 정해 연작을 남겼다. 안절부절 못하는 신병 한명을 둘러싸고 교관 여럿이 윽박지르는 사진에서 보듯, 해병 신병훈련소의 교육방침은 훈련 낙오병을 구원하기는 고사하고 낙오자를 한껏 비웃는 것이다. 이처럼 비교육적인 훈육 장면에서 모순된 쾌감이 느껴진다는 건 부조리하고 아이러니하다.

군대는 자주 사회의 연장으로 비유되지만 엄연히 차원이 다른 세계다. 이 색다른 세계를 일반인이 접할 경로는 해병대 캠프 입소 프로그램 정도일 것이다. 입소 프로그램은 일상의 사이클을 벗어나 비일상적 자아 이탈을 체험하게 만든다. 극도의 긴장감 유지와 오감 자극의 최대치를 느끼는 이 잔혹한 시간을 장기간 견딜 순 없을 지라도 단기간의 체험으로 진부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뒤흔드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입소 프로그램이 아닌 한, 현실에 존재하는 비현실 세계인 신병훈련소를 울타리 바깥으로 연결하는 매개는 허구적인 영화나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영화와 사진이 담아낸 신병훈련소의 몰상식한 위계질서와 비현실적 의사소통 장면은 훔쳐보기의 쾌감을 안긴다.

신병훈련소에서 절대 다수의 훈련병과 이들을 통솔하는 극소수 정예요원 사이의 대조적 위계질서가 유지되는 비결은 계급이다. 계급은 일방적 명령과 절대 복종을 정당화 하는 헌법이다. 예술 비전문가 그룹과 전문가 사이의 비대칭 관계와 흡사하다. 미술관에 걸린 고압적인 현대미술 앞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일반인 관객과 닮았다. 한쪽은 요란하고 다른 한쪽은 고요하다는 점만 다를 뿐.


ps. <풀 메탈 자켓>에서 고함을 지르는 훈련 교관의 배우 로널드 리 어메이는 실제 해병 신병훈련소 교관 출신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2014년 6월 19일 목요일

0601 Crossing Borders(인디아트홀공) 0604 라선영(코너아트스페이스) 0609 임페리얼파티(송은아트) 아스코 쫑파티 (홍대인근) 0611 구경꾼들(두산갤러리) 0612 창동창작스튜디오 프로젝트심사(서울관) 이은선(조선) 정재호(갤리현대) 0614 아스코 은밀하게 위대하게(서울시립)

0601(일)
Crossing Borders (2014.0524~0601 인디아트홀공)

0603(화)
신제현 미팅 (16시. 세종대)

0604(수)
서울,사람: 라선영 (2014.0604~0705 코너아트스페이스)

0609(월)
임페리얼 20주년 파티 (19시. 송은아트스페이스)
아스코 쫑파티 (밤. 홍대인근)

0611(수)
구경꾼들 (2014.0611~0705 두산갤러리)

0612(목)
2014 하반기 창동 창작스튜디오 프로젝트 면접심사 (14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은선 'Vanishing Point' (2014.0605~0627 갤러리 조선)
정재호 '먼지의 날들' (2014.0530~0622 갤러리현대 본관)
송한석 '재생의 자아상' (2014.0612~0713 옵시스아트)
햇빛,공기,물:티엔리밍 중국화전 티엔리밍 (2014.0523~0615 학고재)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졸전(2014.0611~0616 동덕아트갤러리)
장해리 '마리아 13' (2014.0611~0624 가나아트스페이스)
2014 OCI YOUNG CREATIVES – 민진영, 박경진 개인전 (2014.0612~0709 OCI미술관)

0613(금)
2014난지아트쇼2-FTS,We are going to space!(19시. 난지창작스튜디오)

0614(토)
아스코 탑쓰리 전시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4.0610~0803 서울시립미술관)
SeMA BLUE 2014 오작동 라이브러리 (2014.0603~0803 서울시립미술관)




Crossing Borders(인디아트홀공)



인디아트홀공은 어느덧 영등포-문래 인근에 터를 잡고 있는 서넛 이상의 반인습적 모양새를 띠는 전시장들 중 하나다. 나는 이날 전시장을 처음 가봤다. 블로그 방문자 중 한 사람(문경의)이 전시 출품작가 중 한명이어서 전시 끝나는 날 맞춰 갔다.



신제현 미팅(세종대)
5월말 최종 도전자 3인에 멘토링을 위한 마지막 촬영이 끝난 후, 신제현에게 개별 미팅을 다시 원하다는 연락이 와서 수업하는 세종대 강의실에서 만나 1시간 정도 상담했다. 5월달 촬영을 위한 멘토링 때 그가 제시한 설치물을 완전 뒤집는 새 구상을 2종류 가져왔더라. 그래서 다시 멘토링을 했고 새 구상 중 상대적으로 내가 볼 때 나은 쪽을 정해서 의견을 전했다.   



라선영(코너아트스페이스)


힛...



임페리얼파티(송은아트)



지난 4월말 열릴 예정이었던 '임페리얼 20주년 파티'가 세월호 참사로 연기 되어 6월초 열렸다. 파티 동반 인원을 몇명 정도 함께 오라고 하길래 아스코 도전자들 일부를 초대해서 함께 갔다. 송은에 마련된 파티장에 있을때 '아스코' 스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금일 최종심사가 끝나 아스코 쫑파티를 하는데 홍대로 넘어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못가겠다고 답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스코 도전자들이 모두 갈 의사가 있다기에 함께 이동했다. 

파티장을 빠져 나온 후 확인한 사실에 따르면, 이날 파티 초대자에게 임페리얼 리미티트 에디션 한병씩 증정했다는 것. 나는 아스코 도전자들이랑 홍대로 급히 이동하느라 그 사실을 모르고 빈손으로 나왔지 뭔가. 이 사실에 원통해 하자, 이를 딱히 여긴 송은 유형정 큐레이터가 내 몫을 하나 챙겨뒀다고 알려줬고, 이 얘길 듣고 내가 보낸 화답은 아래와 같다. 
 =>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아스코 쫑파티 (홍대인근)

새벽 1시 넘어까지 술을 마셨는데, 다시 2차를 간다기에 나는 빠져나왔다. 
택시를 수년만에 처음 잡아 보니 기본 요금이 3천6백원이라는 걸 이날 알았다.



구경꾼들(두산아트갤러리)

초대 작가 중에 누구는 지난 4월 대구에서 본 로라 랭캐스터Laura Lancaster의 조각 같은 낱개 그림들을 불연속적으로 배열한 그림 설치물을 걸었다. 이런 작업은 낱개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총합을 이뤄서 낱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성으로 설치되는 그림 설치물이다. 이외에 스토리를 더욱 모호하게 몰고가는 액션페인팅 형상회화도 보였다.  


창동창작스튜디오 프로젝트심사(서울관) 




이은선(조선) 

단서로 쓸만한 키워드를 모조리 소환한, 그럼에도 마감만큼은 최소주의로 정리한 전시. 면, 무정형 입체조형, 작가의 인체, 훔쳐보기, 뉴미디어, 사진매체. / 복잡하게 끌고가지 않은 건 좋다. 그런데 혹시 보여진 게 의도 바의 모든 것 같기도 했고,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구성 같기도 했다. 


정재호(갤리현대) 
위아래 8점씩 2열로 16점을 늘어놓은 1층에 설치된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그리기가 결국 개인의 유희라는 그리기의 원점에 당도하게 된다. 이 작품들을 독해할 공통언어를 만드는 일이 비평일진대, 가지런한 그림의 나열에도 불구하고 불연속적인 스토리에서 키워드를 제3자가 찾긴 어렵다. 어쩌면 공통의 키워드가 없는 배열일 지도 모른다. 
2층에는 구식 오브제들을 단아하게 응시하는 시선을 담은 그림들이 걸려있는데 파스텔톤 색감은 구식 오브제들이 아우라에 둘러쌓인 느낌을 받는다. 2층 작업은 비평가에게 이런저런 주관적인 각주를 쉽게 허용해주는 최소한의 구성이다. 낡은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을 단아하게 응시하는 태도는 동양화의 재료를 쓰지 않고도 작가의 전공을 환기시킨다.       


 
송한석(옵시스아트)


그림 속에 곰돌이로 호칭될 만한 대상이 포착되면 무조건 근접촬영.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졸전(동덕아트갤러리) 


동덕여대 큐레이터 학과 졸업전이라고 메일이 왔길래 근처 전시회를 돌때 챙겨봤다. 약 10년전에 동덕여대 큐레이터 학과에 출강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학생은 아니지만, 졸업을 앞뒀다는 이 학과 학생들이 아는 체를 하며 기념 촬영. 
졸전의 타이틀 '자립 혹은 침투'는 여느 미술대학교 졸업생들이 단골로 내세우는 화두이다. 저 타이틀이야 말로 미술대학들이 직면한 아주 오래되고 오래된 현실.


 
장해리(가나아트스페이스)
힛...


 
민진영, 박경진 개인전 (OCI미술관)


종전까지 세종대 수업은 나의 일방적 강의로 진행되었으나, 이번학기부터 수강생들 작품에 대한 멘토링으로 수업방식에 변화를 줬다. 세종대 수업에서도 느낀 바지만,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가 창작자에게 직접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거였다. OCI전시에서도 박경진은 관련된 작업을 올해(그러니까 4월중순 이후) 제작해서 이번 전시에 출품했더라.


 
난지아트쇼2-FTS,We are going to space!(난지창작스튜디오)


난지창작스튜디오에서도 파티가 열림. 이곳에는 아스코 도전자 중 유병서가 현재 입주하고 있다. 오픈스튜디오가 병행된 파티였지만 나는 깜박 진기종의 퍼포먼스만 보고 스튜디오에 방문하는 걸 잊은채 술만 마시다가 왔다. 집(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난지스튜디오까지 자전거로 47분. 




은밀하게 위대하게(서울시립미술관)







진짜 정말 마지막 아스코 촬영. 전시장도 처음 가봤다.  





SeMA BLUE 2014 오작동 라이브러리 (서울시립미술관)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