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을 결산하면서 나의 7대 뉴스로 전에 없이 많은 시사회 관람을 꼽은 적이 있는데(엮인글), 그때 별점 평가에 관한 입장을 곧 밝힐 거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 별점 평가에 대한 내 생각이 <문화공간>(359호. 2월호)에 수록됐다.
별점★ 평가의 말말말
반이정 미술평론가
별점은 문학 영화 같은 예술 장르의 평가에서 관광명소나 음식점 등의 가치를 판단할 때 두루 동원되는 손쉬운 평가법이다. 별의 개수에 따라 등급을 정하는 방식은 호텔이나 장성급 군인의 서열을 매기는 기호로도 오랫동안 쓰였다. 앞의 평가 방식이 주관적인 기준이 강한 반면 호텔이나 장군의 등급은 훨씬 객관적이라는 차이점이 있으나 별의 개수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점에선 동일하다. 영화 리뷰에 별점이 도입된 시기는 20세기 초엽으로 본다. 당시 만점의 기준은 별 3개였으나 현재 전 세계 매체들은 별 4개 혹은 5개 만점으로 기준을 수정해서 적용한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섬세한 질감을 오직 네댓 개의 별의 수로 구분하기는 어려웠던 나머지, 장군이나 호텔의 등급에선 찾을 수 없는 한 개★가 아닌 반쪽☆으로 평점을 보완하거나, 더러 ⅓이라는 표시로 평점을 세분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예술의 섬세한 질감을 한자리 수로 잘라 평가하는 별점에 반대하는 견해가 있음을 나도 안다. 별점의 폐해는 찾으려 들면 더 많을 것이다. 이해관계가 다른 영화를 고의적으로 디스(상대를 폄하한다는 뜻의 준말)하기 위해 별점을 조작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민자 유치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 다큐멘터리 영화 <맥코리아>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쓴 영화 <변호인>의 경우는 개봉도 하기 전에 포털업체의 별점 평가에서 별 1개의 세례가 쏟아졌다.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이 익명을 악용해서 조직적으로 별점을 조작한 사례이다. 동일한 호평 또는 혹평도 별의 개수로 가치평가를 선명하게 시각화 시키기 때문에 별점은 훨씬 위력적이다. 별점은 호오를 확연히 가른다. 그것은 단점이기도 장점이기도 하다. 열거한 문제점에도 나는 별점 평가에 호의적인 입장이다.
한 술자리에서 소설가 장정일과 난데없이 영화의 별점 평가에 대한 의견차로 긴 설전을 나눴다. 그는 관람도 하지 않은 관객이 별점에 휘둘린다고 지적 했다. 일부는 맞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다. 별점은 보편적 관객의 취향을 흔들지 못한다. 비평가에게 높은 별점을 받은 영화는 대개의 경우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반쪽 별☆을 포함해서 별 10개 내외로 작품 평가를 담아낼 수 없다는 진실 때문에, 신속한 메시지 전달력을 지닌 별점의 가치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영화 음악 책 식당 등에 대한 별점 평가에서, 동일한 제품에 대해 비평가들이 천차만별이 아니라 대체로 특정 개수의 별점으로 합의가 이뤄지는 현상도 별점이 지닌 전문적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일 게다.
보편적 취향에 무색무취하게 편승하지 않고 새 맛을 찾으려는 개인에게 조언을 줄 때도 별점은 유용하다. 일관되게 별점에 반대해온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한 인터뷰에서 “나는 별점을 굉장히 경멸한다. 어떤 영화에 별 두개를 매기는 순간, 그가 영화를 보는 수준도 별 두개가 된다는 뜻.”이라며 “자본주의는 지식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지식을 간단하게 만든다.”라는 아도르노의 말까지 인용해서 별점을 혹평했다. 그렇지만 읽히지도 않는 난문의 비평보다 시각적으로 선명한 평가 방식이 더 유용할 때가 있다. 더구나 그것이 철학이 아니라 대중예술이라면 말이다. 정치에 비유해보자. 별점 1개 수준의 정치인을 선출해서 큰 손해를 본 유권자가 다음 선거에서 또 다시 별점 1개 수준의 입후보자에게 표를 던지는 게 대중 유권자이다. 비평가의 혹평에도 흔들리지 않는 게 대중 관객이고 대중 유권자의 속성이다. 올바른 유권행위를 권장하기 위해 정치 후보자의 품질을 분석하는 장문의 시사비평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 후보자의 품질을 압축해서 비평하는 가시적인 장치도 필요하고 시위가 그 경우이다.
삶의 품질에 깊이 관여하며 축제 분위기를 형성하는 점에서, 선거나 영화는 웅장한 대중 엔터테인먼트다. 엔터테인먼트가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만큼 엔터테인먼트를 평가하는 방식도 다수를 상대하는 기술을 써야 한다. 세간에 유통되는 대중적 평가 방식 중 하나가 별점이다. 유권자가 되었건 관객이 되었건 절대 다수가 외면하는 장황한 비평은 설득과 공감 모두에서 실패할 것이다. 이런 사정에 아랑곳 않고 자기 소신을 중시하고 싶은 비평가라면 별점 반대를 계속 고수하면 된다. 아무도 설득 못하는 자신의 비평으로부터 자기 위안을 삼는다면 그걸 누가 탓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