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일(월) 14시 롯데 시네마 에비뉴엘. 빌 어거스트 감독 <마리 크뢰이어 Marie Krøyer>(2012) 시사회.
별점: ★★☆
덴마크 화가 P.S. 크뢰이어Krøyer가 자신과 아내 마리 그리고 개가 해변을 걷는 모습을 그린 <Summer evening on Skagen's beach>(1899)는 영화에서 테마 작품 격으로 인용 되는데, 수년 전 구글 로고로도 쓰인 적이 있는 대표작이다.
생전 P.S. 크뢰이어와 아내 마리 크뢰어어을 촬영한 당시 흑백 사진.
스웨덴 영화 <개같은 내 인생> 때문에 알아듣진 못해도 북유럽 단어와 발음에 친숙한 애착을 갖고 있다. <마리 크뢰이어>에 관람 직전부터 느낀 애착은 그런 것이었다. 근대 유럽 화가의 생을 다뤄서이기도 하지만 <개같은 내 인생> 효과가 크다. 영화를 보기 앞서 찾아본 짧은 자료로 '남편 명성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어느 여성 예술가' 라는 밑그림이 있었다. 그런데 그 같은 영화 홍보문구는 이 영화의 실체에 근접한 것 같진 않다. 르느와르를 연상시키는 인상주의 화가 남편 P.S. 크뢰이어의 '잦은 망상과 성적 무력과 대외적 명성'의 울타리 안에서 남편의 장식품처럼 살아가다가 자신의 삶을 찾아 젊은 작곡가에게로 떠나는 한 여성의 결단에 주목한 점에선, 근대적 여성주의자의 시조로 바라보는 페미니즘적 관점이 강하다. 그렇지만 변심하는 새 애인(작곡가)과 병마를 겪는 남편의 죽음, 딸에 대한 양육권의 상실 등 마리에게 닥치는 시련의 스토리라인을 보면, 한 여성주의자의 딜레마보다 선택에 직면한 인간의 보편적 딜레마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에 가깝다. 실화에 바탕을 둔 점을 감안하더라도 명확한 관점이나 감상 포인트를 찾긴 어려웠다. 또 배우들의 장황한 대사로 스토리를 끌고 가는 '설명조'의 영화 형식도 불만스럽고, 아무리 근대기 예술가의 사생활을 다뤘다지만 정사신을 너무 조심스럽게 처리한 점도 답답했다. 당시라고 욕정의 실현이 지금과 다른 모양새는 아니었을 텐데.
도입부에 배치되는 P.S. 크뢰이어의 개인전 개막식 장면은 젊은 작곡가와 마리의 만남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데, 어디까지 고증했는진 몰라도 근대기 전시회가 고급 사교문화의 견인차로 작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재밌다. 전시 개막식이 리셉션에 방점을 두는 건 오늘날도 사정이 다르지 않은데, 다만 둘 사이의 차이점이라면 동시대적인 전시일수록 <마리 크뢰이어>에서처럼 거창한 식전 행사나 인삿말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마치 현대의 인물 사진이 하나같이 답습하는 데드팬deadpan효과처럼 무표정한 리셉션.
이 영화는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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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일(월) 16시30분 롯데 시네마 에비뉴엘.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에브리데이 Everyday>(2012) 시사회.
별점: ★★★★☆
SF건 공포물이건 사실주의건, 모나지 않은 영화 문법에 익숙한 일반 관객의 기대감을 채워주기 힘든 영화일 수 있다. 제목처럼 일상을 고스란히 쫓되 친숙한 영화 문법에 맞춰 일상을 분절하지 않는다. 제소자의 가족 면회 장면이 영화의 8할을 차지하는데, 그 안에 드라마성이 강조되지도 않는다. 진짜 교도소 면회실에서 벌어질 법한 에피소드를 담는다.
일상을 일상답게 취급하려는 연출 의도 때문인지 시종 핸드 헬드 카메라가 출연진과 대사를 따라 다닌다. 핸드 헬드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정지 화면에서조차 손에 들린 카메라의 미세한 진동이 느껴질 정도다. 핸드 헬드가 만드는 불안정한 시선 사이 사이로 영국 전원의 풍경이 스틸사진처럼 긴 정지화면으로 삽입되는데 마치 숨호흡같다. 지평선과 하늘을 대략 1:4나 1:7의 비율로 나눠 평온한 광경을 펼쳐 보인다.
우리나라는 내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는데, 영국 교도소에선 면회 장소에서 애정표현(키스)이 금지되는 모양이다. 대신 영화적 재현이 정확하다면, 교도관이 제소자를 정중하게 다루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지시를 할때조차 please와 thank you를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하더라. 한국말로 치면 "...해주십시오" "...예 고맙습니다" 쯤 될 텐데 이게 어디 한국 교도소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장면일까. 또 만기 출소한 주인공에게 교도관이 "갈 곳이 있느냐?" "직업은 구했느냐? 직업 소개소를 필요로 하냐?"는 따위의 여러 항목을 묻는 장면 역시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매력은 스토리텔링에서도 오지만, 이처럼 알 수 없는 타국 문화를 간접 경험하는 것에서도 온다. 그런 매력에는 영국 교정 시설의 문화는 물론이거니와 매우 낡은 구시대 학교 교정을 스크린으로 구경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범죄자의 가족 면회'를 소재로 평범한 일반인 마스크를 한 배우(특히 여배우)와 아역 배우들로 꾸려진 출연진으로 100여분짜리 이야기를 끌고 간 점, 그리고 아역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낸 연출력. 이것이 <에브리데이>가 지닌 가장 큰 변별력이다. 뭔가 새로운 영화문법을 접하려는 이에게 권한다.
이 영화는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모양이다.
* 시사회를 고를 때 찾은 리뷰. 글은 읽어보지 않고, 별점이 많길래 시사회를 가기로 결정한 경우.
지금 다시 보니 나처럼 별 4개반을 줬네.
Everyday – review
Michael Winterbottom has made an almost unbearably moving film that follows the lives of a prisoner's family through the years
Michael Winterbottom's last format film, 9 Songs – which spliced real-life concert footage and bonafide sex – was high-concept and big splash. This is the opposite: almost aggressively shy and reserved, shot in short bursts over five years, commissioned by Film4 to look at the prison system but actually devoting itself to a family outside the bars. It also differs from 9 Songs in that it's wonderful.
John Simm is the con, in the clink for a non-specified crime (though to be serving, say, half of a 10-year sentence, it must be pretty serious). We barely see him save for when his family do too, making the long journey to his prison by public transport from rural Norfolk. It's their story Winterbottom sticks with: mother Shirley Henderson, plus four young children, two boys and two girls, played by real-life siblings, who start between two and 10 and mature in front of our eyes.
It's superficially Henderson's show: we absorb the strain she's under not by means of sweat or script, rather by fast-pooling eyes and stiff red skin. But it's the siblings who hypnotise, even at their most mundane: scrapping and sobbing, eating cereal and singing at school, grizzling and sleeping. This footage alone validates Winterbottom's approach: it's the best documentation of young children on screen since Nicolas Philibert's Etre et Avoir.
We revisit the family through the years, the jumps flagged by lengthening limbs and scowling brows rather than time stamps. At one point Simm's character is allowed out on day release; at another Henderson becomes close to a local man. There are no moments of especial flashpoint, yet in showing the accumulating effect of Simm's imprisonment, Winterbottom has made a film that's almost unbearably moving. Rarely is one quite so intimately involved with people about whom one knows so little – it's only towards the end that we get any exposition, and that's just from a few family photos, lightly glimpsed.
Michael Nyman's score, reserved only for those moments outside the prison (a place shown in a refreshingly positive light), bangs the drum at times a touch too hard, giving already active heartstrings a mighty strum. This is a strange and stirring film, which combines a Malick-ish concern with the emotional import of nature with a rare charm and levity.Everyday is a red letter treat.
* 위의 두 영화 <마리 크뢰이어>와 <에브리데이>는 주인공의 불륜이 이야기 전개의 전환점이 될 만큼 비중이 크다. 철학자 리처드 테일러가 불륜에 관한 연구서 <결혼하면 사랑일까 Love affairs: marriage and infidelity>에서 내놓은 주장을 다시 꺼내 읽게 된다. =>
"불륜 때문에 결혼 생활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 그 반대(결혼에 실패해서 불륜에 이르게 됨)이다.... 부정을 저지른 아내는 남편이 지루하다고 말하고 부정을 저지른 남편은 아내가 냉담하다고 말한다."
"불륜은 매우 진지한 행위이다. 흔히 불륜을 말할 때 '놀아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불륜을 평가절하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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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4일(화) 14시. 왕십리CGV. 브래드 앤더슨 감독 <더 콜 The Call>(2013) 시사회.
별점: ★★★
논쟁적인 평가를 받았다길레 궁금해서 가서 본 <더 콜 The call> 시사회. 할리 베리 주연이다.
911 신고 전화라는 일상적 실마리에서 일상에 산재한 위험성에서 드라마성을 찾은 스릴러 영화. 911상담원과 신고자 사이의 긴박하게 이뤄지는 실시간 통화로부터 범죄와 추적을 초단위로 화면 위에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입 꼭 다문채로 화면에 몰입하게 되는 영화다.
신참 911 직원 대상으로 교육하는 장면에선 교육 담당자(할리 베리)가 해주는 답변이 재밌다. '토요일 오전은 전화가 없어서 한가하고 금요일 저녁은 지옥와 같다고'. 상담원의 작은 실수로 신고자가 사망에 이르는 일도 있기 때문에, 상담자의 유념사항은 '감정을 분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건의 해결을 위해 우연히 발견한 범죄자의 '소굴'로 여성이 홀홀단신 찾아 들어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설정은 <양들의 침묵>에서 버팔로 빌의 집을 방문하는 FBI요원 스털링과 닮았고, 완전범죄를 위해 폐쇄된 자기왕국 안에서 군림하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라는 설정은 <양들의 침묵>은 물론이고 히치콕의 <사이코>까지 연원을 떠올릴 수 있다.
<더 콜>의 반전은 보복 방식에 있는 거처럼 보인다. 복수 대상을 감금 상태로 혼을 내주는 것은 현행법에는 저촉되지만, 군중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가장 완전한 복수의 원형성'이기에. 이런 복수극이라면 호소력도 반전의 힘도 클 것이다.
* 여주인공 조던(할리 베리)의 남친으로 출연하는 경찰은 왠지 마이클 조던을 조금 닮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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