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1일 목요일
시계(이)가 중단되었습니다
급한 성미를 시험하는 일이 발생했네요.
생일 선물로 받은 '넥서스7'(엮인글)은 사용 빈도도 매우 낮고 사용법에도 여전히 미숙하지만, 간혹 전원을 켜서 몇분 정도 써보는데 얼마 전부터 화면 위로 다음과 같은 작은 알림 창이 연신 뜹니다. 신고나 확인 버튼을 눌러서 없애면 1분도 안되서 또 뜸. 아주 성가심.
"시계(이)가 중단되었습니다 --- 신고/ 확인"
넥서스7 모니터로 유효한 시간이 뜨는데도 저 메시지가 뜨네요. 저 메시지는 거의 1분도 안 되서 계속 뜨기 때문에 여건 성가신 게 아닌데 제가 해법을 모르겠군요. 검색해보니 스마트폰에서도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 사례가 올려져 있던데, 혹 해법 아시는 분 답변 좀 부탁합니다.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세상은 온통 눈(眼) 세상
무수한 아마추어 영상 클립을 무려 43분 분량이나 응축시킨 유모 영상물인데, 이걸 지켜보다가 스친 단상.
- 지켜보는 눈들이 얼마나 무한정 많은 세상이 되었는가
- (과장 좀 보태면) 미디어아트가 발 디딜 틈이 이래서 없는 지도
- 장면 중 일부는 남 일 같지 않아 뜨끔했다
- 내가 시도도 못해본 놀이는 얼마나 무한한가.... 그 놀이의 대가는 얼마나 위험한가
- 내가 시도도 못해본 놀이는 얼마나 무한한가.... 그 놀이의 대가는 얼마나 위험한가
- 눈 떼기 어려운 동어반복의 중독적 매혹
* 조언: 위에 스틸로 포착된 비키니에 혹 해서 눌렀다면 대 실망임.
2013년 1월 27일 일요일
인용- 원한
-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원한'(ressentiment)의 감정을 갖지 않는 겁니다. 그것은 니체가 말한 노예의 도덕이니까요. 분노는 하되, 증오는 하지 맙시다. 원한은 남을 파괴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파괴합니다.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 사자 부활의 딜레마(씨네21)
* <씨네21>(889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65회분. 지난 연재물들을 살펴보니 본의 아니게 박근혜가 자주 출연했더라는.
사자(死者) 부활의 딜레마
좌. 프라하의 극장이 세운 모차르트 돈 조반니의 ‘기사장’ 동상
중. 세리 레빈, 분수, 1991년
우. 박정희 대통령 94회 탄신제 2011년
사자(死者)의 부활은 꾸준히 다뤄지는 예술 테마다. 역행 불가의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온 사자에게 무한한 권한이 주어져, 세상사의 부조리를 해결하고 사악한 세력을 처단하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사자를 구세주로 설정한 거다. 죽은 기사장은 무수한 여자를 농락하는 자유연애가, 돈 조반니를 처벌하려고 삶의 영역으로 극적으로 귀환한다. 차디찬 돌조각상의 형상으로 무대 위에 우뚝 선 기사장에게선 위엄이 느껴진다. 이야기의 매듭과 선명한 교훈을 제시하려고 삶 속에 개입한 사자는 낡은 시대의 권위가 복권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술적 상상력이 부활시킨 사자는 생전에 쌓은 권위로 인해, 이미 충분한 경외의 대상이어서 부활의 권위는 배가된다.
타계한 거물 예술가의 종래 작품을 차용하는 행위는 1970년대 후반부터 예술계에서 급증한 창작의 신조류인데, 원작의 저작권과 독창성을 무단 침해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어서 시도 당시에는 표절시비로 번질 만큼 논쟁적이었다. 그러나 차용 예술의 물결을 거스를 순 없었다. 저작권과 독창성이 차츰 무의미해지는 시대상을 문제 삼은 차용 예술의 본의를 이해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세리 레빈은 작고한 예술가의 사진 작품을 고스란히 촬영해서 자기 이름을 붙여 내놨다. 더 나아가 차용예술의 원조로 평가받는 마르셀 뒤샹의 <분수>를 금빛 도는 브론즈 작품으로 차용하면서, 차용에 대한 재차용을 시도했다. 원작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 차용예술이어도 역설적으로 원작이 기왕에 획득한 권위 때문에 차용 예술과 원작 예술은 대등한 주목을 받으며 원작의 권위는 오히려 증폭한다. 금빛으로 부활한 뒤샹은 반 예술의 전설로 아우라를 재확인한 것이다.
사자 부활이 예술 같은 가공의 세계에서만 용인되는 건 아니다. 실재 삶에서 이행되는 사자 부활은 효과와 영향력에서 예술이 제조한 사자 부활을 능가한다. 왜냐하면 부활한 사자는 현실에 실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흔히 부풀린 사실 위에서 싹튼 구시대를 향한 집단 향수는 사자를 종교 지도자의 반열로 추앙하면서 부활을 정당화 한다. 부활한 심판자(기사장), 황금색으로 빛나는 소변기(세리 레빈), 황금색 동상(박정희)은 과거의 권위를 차용한 점에선 같지만, 앞의 둘이 허구적 상상력의 효과를 허구 세계에 한정한 반면, 박정희 동상은 허구적 상상력을 결집시켜 현실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이다.
전직 대통령을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건 집단 향수를 반복적으로 강화시켜서 과장된 향수를 위무한다. 집단 향수가 위무 받은 대가는 극소수 지배 체제의 현상 유지이다. 이런 현실의 부조리가 집단이 가담한 허구를 흔들진 못한다. 허구는 현실을 압도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0121 베를린 시사
1월21일(월) 왕십리CGV. <베를린>시사 관람.
시간 조절에 실패하여 상영 시간이 지나 도착했는데 왠걸. 시사회표 배부하는 부스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시사회장에서 영화 상영 이후 이런 모습을 보긴 어렵다). 블록버스터라 시사참관인이 충분히 많을 걸 예상하고 상영관을 5관 8관 두 군데 잡아놨지만, 관람객 수가 넘쳐서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스탭의 해명했다. 앞부분 3분여를 놓친 상태로 영화를 8관 계단에 앉아서 보고 왔다.
상영이 종료되자마자 스탭이 스크린 앞에 나와 기자 간담회가 2개관을 돌아가며 진행하기 때문에, 배우들이 대략 30분 가량 기다려야 온다고 안내한다. 나는 갈 길을 감.
보도자료에는 <쉬리>이후 15년 만에 남북특수 요원을 다룬 영화라고 적혀있는데, 김정은 체제 후 재편된 북한을 시대 배경에 포함시켜서 생동감은 있다. 그런데 남북한 요원들 간의 불안정한 협공이 갈등을 풀어가는 키워드인 점 때문에 나는 <쉬리>보다 <JSA>가 연상되었다.
영화 마지막 두 파트(스포일러여서 단서만: 전지현 관련. 하정우 관련)는 대중 영화의 관례에 따르는 것 같아 밋밋했다.
류승완의 액션물은 쉴새없이 전개되는 격투신이 곡예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는데, 비단 곡예에 가까운 구성은 육탄전 말고 총격전에서도 수학 계산처럼 정확하게 짜맞춘 격발과 은폐가 이어지면서 반복된다.
하정우를 정체불명의 북한 비밀요원 '고스트'로 설정한 건, 탐 크루즈의 <잭 리처>가 떠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극성맞은 한국 극우들한테 좌파 혐의를 받는 명계남에게 북한 고위 간부로 배역을 줬더라.
기억에 남은 영화 대사: "제 직급 쯤 되니까, 능력보단 말 잘듣는 사랑이랑 일하고 싶어집니다. 선배님(한석규)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거든요."
cgv에서 나오다가 본 가방
2013년 1월 18일 금요일
한 동물 애호가의 웃기는 해고 사유
읽으면서 웃음이 나와서 혼이 난 어느 외신 기사.
"그는 출근한 뒤 내내 인터넷으로 놀기만 했고, 특히 고양이 동영상을 열심히 봤다고 한다."
-------
등록 : 2013.01.17 20:37수정 : 2013.01.17 22:29
프로그래머 일은 중국회사에 외주
하루종일 놀며 연봉 2억 받다 해고
‘아침 9시 출근. 이후 뉴스사이트 서핑과 유튜브로 고양이 동영상 보기. 오전 11시반 점심시간. 오후 1시 이베이에서 인터넷 쇼핑. 오후 2시 페이스북 업데이트. 오후 4시30분 일과 정리 및 상사에 이메일 보고. 오후 5시 퇴근.’2013년 1월 17일 목요일
정상 - 변태
금주 <시사인>. 마광수를 다룬 '장정일의 독서일기'에 실린 간접 인용구. 눈 번쩍. 변태란 용어 함부로 쓰지 말기.
일본 심리학자 기시다 슈는 <성은 환상이다>(이학사, 2000)에서 정상적인 성행위와 흔히 말하는 변태를 간단히 정리했다.
성교 시 여자에게 검은 스타킹을 신겨놓고 그것을 핥든, 여자를 밧줄로 묶든 그 자신이 묶이든, 여자를 채찍질하거나 여자에게 채찍질을 당하든, 그 어떤 성적 기행을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질 삽입에 '골인' 한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성행위다.
이상성욕(변태)이란, 온갖 성적 환상에만 몰두하고 끝내 성교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자면 무시무시한 사도마조히스트적 난행에도 불구하고 삽입 성교를 마다하지 않으면, 반드시 질 삽입으로 끝을 장식하는 사드는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변태는 끝내 성교 자체를 회피하는 마교주(마광수)와 그 주인공들이다.... 실로 우리는 성교 시에 상대가 나만을 생각해주기를 바라지만 그가 무슨 환상을 떠올리고 있는지는, 신만이 안다. 원래부터 성은 환상이므로, 변태란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 <시사인>(279호) 64-65쪽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0115 아무르 Amour
1월15일(화) <아무르 Amour>의 상영 시간 마지막 편에 맞춰 관람을 하니 밤 12시 넘어 귀가함. 밤 11시 넘어 버스를 잡아 타고 돌아오는 기분은 좋다.
감독 미하엘 하네케의 전작 중에 내가 본 게 있나 살펴보니 <퍼니 게임 Funny Games>의 1997년 버전을 봤더라(이 영화는 1997년 원작이, 2007년에는 같은 감독에 의해 미국판 리메이크가 나왔다).
<퍼니 게임>의 충격적인 전개처럼, 가정과 노년을 다루는 <아무르>는 유사한 주제를 영화가 다뤄오던 종래의 매뉴얼로부터 조금 벗어난 구성을 취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 내가 '반전'(스포일러여서 말 못함)이라고 일컫는 부분이 그렇다.
주인공이 노인 부부 둘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인 탓도 있지만, 노년의 삶과 죽음이라는 내용에 걸맞게 배우의 초저속 동선과 걸핏하면 화면을 오랫동안 멈춰세우는 롱테이크 촬영이 내용과 보조를 함께한다.
스크린에 가득 찬 객석의 관객의 모습이 처음 나오는데, 영화관에 앉은 현실의 관객으로서 동기화가 발생하는 느낌이었다. 영화 속에서 객석은 영화관 내부가 아니라 고전음악 관객석이지만. 도입부에 짧게 등장하는 영화관 내부와 리셉션 모습을 제하고 영화는 두 노인이 사는 거주지의 실내에 공간을 한정한다. 배우 둘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느린 움직임으로 채워나가는 영화적 구성은 연극처럼 느껴진다.
극이 집중하는 주제는 역동성이 매우 낮고, 시각을 지배하는 화면 안에으로 늙은 주인공과 낡은 가구 그리고 터너 같은 낭만주의 풍경화풍 고전 그림들이 걸린 실내 장면이 차지하고 있지만, 노인 부부가 음악인으로 설정된 탓에 CD로 틀어지거나 간혹 직접 연주되는 고전음악 선율은 청각적 역동성을 개입시키고 그런 점이 지루함을 줄여주는 것 같다. (그렇지만 유쾌한 영화에 열광하고, 아직 죽음을 떠올릴 때가 아닌 젊은 관객에게 어울리는 주제나 영화는 아닐 수 있다. 내 뒤에 앉은 20대초반 커플은 조용히 투덜대더니만 영화 40여분이 지나자 자리를 털고 나갔다. <아무르>의 주제를 소화시키는 노년 배우들의 역할 특정성 role specificity에 공감하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지루한 게 자연스러운 영화)
크레딧에 '이자벨 위페르'가 떴는데, 홍상수의 <다른 나라에서>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프랑스 여배우가 이 영화에도 출연한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면서 보다가 <다른 나라에서>에 출연한 배우임을 떠올렸다.
내가 '반전'이라고 생각하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이 연민, 동조, 슬픔, 공감 같이 뒤엉키기에는 동일하지 않은 정서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불편하지 않게 느끼게 만든다. <아무르>가 노년의 삶과 죽음의 진정성을 충격적으로 숙련되게 다룬 지점도 영화 말미 반전에 집약되어 있는 것 같았다.
* 상영관은 검색해보니 광화문 씨네큐브와 압구정CGV이 잡혔는데, 주저하지 않고 뒤의 영화관으로 정했다. 작년 8월 '신디영화제' 심사 때문에 약 5일간 매일 이른 아침에 출근했던 영화관의 향수를 느끼고 싶어서.
여주인공 안느가 병상에 누워 남편이 건네준 '아르농쿠르'에 관한 책을 읽기에, 집에 와서 검색 해봤는데, 이 책인가?
나만 몰랐나...
나만 몰랐나...이 신기한 걸.
미국에서 유학 하는 신호철 전 <시사인> 기자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고 방금 알았다.
신호철의 트윗 일부: @hcshin 충격 고로케가 등장한 이후에 포털 기사 제목에서 '충격, 헉, 결국'이 줄어든 느낌
'충격 고로케'라는 사이트는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범람하는 낚시성 제목들의 분포도를 살핀 사이트인데 엄청 폭소를 유발한다. 충격, 경악, 결국, 속보, 알고보니, 이럴수가....등등 뉴스캐스트의 저질 낚시 제목들을 어느 언론사들이 가장 많이 올리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살펴보는 사이트.
주루룩 살펴보면 예상대로, 저질 낚시 제목의 최강자는 조선 동아 각종 경제 신문 그리고 각종 스포츠 신문 순이다.
* 저도 작년 <경향> 칼럼에 뉴스캐스트의 해악에 관해 썼음 : '알고보니 뉴스들들들'
'네이버 뉴스 제목의 정신 해악 + 대선 직후 멘붕'을 피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은 (신호철 기자가 2009년 기사로 쓴- 엮인글) 네이버의 첫화면을 구글처럼 깨끗한 검색창 버전으로 바꾸는 것이다(나는 몇달 전부터 이미 바꿨음)
몰랐던 분들....이 좋은 서비스 강추임.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0114 흰큰개 귀가
1월10일 늦은밤 사는 집에 맡겨진 흰큰개.
4일의 체류를 마치고 주인 내외가 귀국한 오늘(1월14일 월) 조금 전에 그들과 함께 떠났다.
사진은 오늘 낮 집 근처 호림박물관 뒷산을 나랑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맡아서 같이 사는 4일 동안, 매일 낮밤 총2회씩 나랑 산책을 갔다.
2013년 1월 12일 토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 텍스트 예술 vs. 이미지 정치 (씨네21)
* <씨네21>(887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64회분. 대선 결과 직후 실릴 연재물에 쓰려고 생각하며 썼던 원고.
텍스트 예술 vs. 이미지 정치
상좌. 바바라 크루거, 당신의 몸은 전쟁터이다, 1989년
상중. 제니 홀저, 구겐하임을 위하여 2008년
상우. 보수단체 회원의 1인 시위
하좌. TV조선의 박근혜 인터뷰 자막 2011년
하우. 낸시 랭 4.11 선거 투표 독려 퍼포먼스 2012년
정보 전달력 면에서 간결한 이미지 한 점이 장황한 텍스트를 능가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적다. 뉴미디어 인터페이스의 개발도 텍스트를 이미지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그렇지만 텍스트는 이미지보다 전달 내용의 명시성과 정확도에서 우월하다. 기구한 사연이 글로 적힌 피켓을 들고 선 1인 시위자의 보편적인 행태를 떠올려보자. 이미지는 공간예술인 반면 텍스트는 시간예술이다. 그러니 제 아무리 강인한 이미지라 한들 시간을 두고 발생했을 어떤 이의 절절한 자초지종을 모두 응축해서 담긴 힘들 것이다. 드물지만 텍스트로 넘쳐나는 피켓 시위랑 만날 때가 있다. 피켓에 적힌 해설에 가까운 주장은 전달력과 가독성 모두를 훼손한 채 시위자 개인의 감정 과잉만 확인시킨다.
정치색이 깃든 개념예술이 텍스트를 작품에 빈번이 끌어들이는 이유는 텍스트가 긴 사연을 담을 수 있어서다. 여권신장의 주장을 담은 바바라 크루거의 <무제(당신의 육체는 전쟁터이다)>는 대중 집회에서 포스터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당시 현장에서 포스터로 쓰인 원작에는 훨씬 많은 텍스트가 적혀있었다. 소비사회의 병폐와 남성 중심적 사회를 성토하려니, 크루거의 작품은 구호에 가까운 문장을 포스터의 교조적인 형식 속에 담아 제시하고 말았다. 예술가의 체감 분노는 작품을 도그마처럼 만들곤 한다.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점과, 텍스트에 의존하는 점까지도 같지만, 제니 홀저는 조형적 보완책을 마련한 경우 같다. 작품 전시를 공공장소로 확장해 메시지에 생동감을 줬고, 광고 전광판을 통해 전달된 메시지는 정치적 효과와 미학적 효과를 함께 나눈다. 무엇보다 작품으로 제시된 텍스트가 다만 메시지 전달에 국한되지 않고, 이미지처럼 체감되게 만들었다. 홀저의 텍스트 작품은 심야에 대형 건물의 표면 위에 빔 프로젝션으로 새겨 졌다. 건물에 비친 텍스트는 주장임과 동시에 굉장한 볼거리로 활약한다.
지난 해 4.11 총선을 앞두고 팝아티스트 낸시 랭이 비키니 차림으로 도심을 오가며 투표 독려를 한 퍼포먼스는 선명한 계몽 의도로 1인 시위의 형식을 빌렸다. 하지만 그녀에 손에 들린 피켓에는 투표 권유에 쓰이는 익숙한 문장이 단 한 줄도 적혀있지 않았고, 대신 낸시 랭의 브랜드가 된 탄식 ‘앙’ 한 음절만 적혀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주장 없는 퍼포먼스로 그녀의 투표 독려 메시지는 (미디어를 통해) 충분히 전달되었고, 낸시 랭도 소기의 예술가적 경력을 취했다. 보수 성향 종합편성방송은 개국 첫날 방송에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 박근혜를 인터뷰한다. 인터뷰 화면 하단으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깔면서 한동안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낸시 랭의 나름 유쾌한 선거 독려 퍼포먼스에도 투표율은 예상을 뒤집고 저조한 결과(54.2%)를 낳았고, 시대착오적인 자막으로 갖은 아유를 받았지만,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밑에서 살아야 할 세상이 찾아오고 말았다. 세상은 구호대로 되지 않고, 때로 망상(妄想)을 닮은 이미지로 엄습한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0110 흰큰개 삼창
지난해 8월31일부터 약 일주일 간 맡아줬던 시베리안 허스키 개를 개 주인이 여행을 가는 약 3일 간 다시 데리고 있어주기로 했다. 개는 1월10일 밤 11시 넘어 집에 도착했다. 작년과 비교해서 제일 큰 변화는 몸집에 생긴 굉장한 털의 양.
또 다시 흰큰개 삼창.
0109 잭 리처 Jack Reacher
1월9일(수) 게릴라성 미술관 미팅에 앞서, 진짜 빠듯하게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잭 리처 Jack Reacher> 시사회를 보러 왕십리CGV를 거의 번개처럼 다녀왔다. 칼같이 맞춰서 시간을 썼지만 미팅 시간에 약 10분 가량 늦게 도착했다.
- 미션 임파서블의 스타 배우를 간판으로 내세웠어도, 판에 박힌 액션물의 룰을 따르진 않는다.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긴 인용은 할 수 없는데, 저격이 이야기의 한복판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나올 때까지 팽팽한 긴장을 늦추기 어려웠다. 어디서 난데 없이 날아오는 게 저격 총탄인지라.
- 고도의 저격 기술이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실로 높고, 여느 액션물에 감히 비할 수 없이 촘촘하게 짜인 미스테리의 밀도가 <잭 리처>의 최대 매력 포인트이지만, 틈틈히 출현하는 거의 기계에 가까운 육탄전 장면이나 곡예라고 부르는 게 맞을 카 레이싱 장면의 삽입은 액션물의 근본적인 갈증도 채워준다.
- 영화의 허구적 설정을 감안하고 봐도 <잭 리처>는 법과 증거를 토대로 합법적으로 작동하는 사법부나 수사기관이 만들 수 있는 허술한 빈틈을, 그런 거대한 제도적 범주로부터 멀찌감치 이탈한 1인을 내세워서 그의 직감과 경험으로 채워나가는 시나리오인데, 그런 우월한 1인을 세운 구성이지만 주인공을 과도하게 영웅화 시켰다는 인상을 받게 되진 않는다. 이야기의 치밀성 때문인 거 같다. 이것도 허구적 상상이지만 <잭 리처>을 보면, 법과 증거 때문에 역설적으로 억울한 판결을 받거나 미제로 남은 사건이 현실에서 얼마나 많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 영화 시작할 때 올라오는 짧은 크레딧 속에 '베르너 헤어조크'가 떠서 어리둥절 했는데, 그 감독이 배우로 짧게 열연한다.
스톡홀름 초연 행사장. 팬들의 기념 촬영 요구에 응하는 탐 크루즈.
0109 게릴라성 미술관 미팅
작년말 송년회 자리에서 돌발 제안된, 게릴라성 미술관 미팅.
1월9일 17시께 서울대 미술관(Moa) 앞에서 만나서, 우석홀(제자 양희애가 포함된 6인전)과 서울대미술관(유승호, 오재우 등 지인이 참석한 그룹전)을 함께 둘러보다가, 서울대 안에 위치한 술집 '글로벌 하우스'에서 밤12시가 넘도록 마시다가 귀가.
다음에 유사한 자리를 다시 만들어 만나죠.
카톡 내막
"드디어 스마트폰을 장만하셨군요. 카톡을 하시다니. 축하!"
이런 내용의 카톡 문자를 몇시간전 몇번 받음.
아닙니다. 저 여전히 2G폰 사용자고요.
저의 뉴미디어 고립을 우려한 지인이 태플릿PC '넥서스7'을 선물 한건데, 카톡을 깔 수 있다해서 깔았어요.
그게 제가 카톡에 뜬 내막입니다.
제가 별도로 통보하지 않아도 핸폰 번호를 공유한 사람들에겐 제 카톡 등록이 자동 전송되는건가보죠?
카톡 사용은 집에서만 가능할 거에요. 집 밖에서 무선 인터넷 지역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여하간 카톡 등록함. (모니터 위에서 타이핑하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음.)
2013년 1월 8일 화요일
1월9일 미술관 모임 공지
작년 12월29일 블로그 송년회 자리에 온 제자가 갑자기 알려온 전시 소식으로, 돌발적으로 제안된 미술관 모임.
만날 시간과 장소는 1월9일 오후5시 서울대 미술관(서울대 정문 가까이에 위치함) 입구인데요. 이게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함.
- 그날 <No comment>라는 그룹전이 설대 미술관에서 개막하는데, 연전에 종종 모임을 갖던 한 미술인 친구가 참여 작가라고 작년에 알려오면서, 오프닝날 가주기로 약속을 했지요(저와 그 사이에). 그런데 송년회 때 가서 보기로 약속한 제자의 전시회는 또 다른 전시입니다. 우석홀이라고 서울대에 있는 또 다른 작은 갤러리에서 하지요. 해서 대부분이 우석홀 위치를 모르실 터라, 1월9일 일단 서울대 미술관 앞에서 오후5시 정각에 만나서 함께 우석홀로 이동하여 제자 전시를 본 후, 다시 미술관으로 되돌아와서 전시 오프닝을 구경하는 걸로 정리하렵니다.
- 이 모임은 송년회 자리에서 돌발 제안된 데다가, 미술관 전시와 저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에, 송년회처럼 밀도 있는 자리는 아니고 전시를 구경하는 모임이니 그 점 유념하세요.
- 오후5시 약속장소에 맞춰 오지 못하는 분은 일단 오셔서 미술관 전시부터 구경하고 계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이날 오실 분이라면 비상연락을 위해, 전화번호가 적힌 덧글(공개/비공개 무방)을 남기세요.
2013년 1월 6일 일요일
0103 로봇 앤 프랭크 ROBOT & FRANK
2012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어떤 상(Alfred P. Sloan Prize)을 받은 작품이라기에 시사회장에서 관람하려고 극장까지 갔지만, 설명하기 힘든 사정이 생겨서 스크리너를 받아서 본 영화. 흔한 SF처럼 머나먼 미래가 아니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가까운 미래'를 영화의 시공간으로 설정한 로보트 영화로 지금 우리 앞에 한발 다가선 어떤 현실을 토대로 만든 이야기이다.
주인공 노인의 위기가 기억력에 차질이 생기는 치매에 기인하고, 노인을 보조하는 로보트의 존재감도 '메모리'로 보장된다는 상호 유사한 설정은 극중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유대감과 동질성에 설득력을 더한다. 로보트의 권유에도 노인의 부정한 행적을 기록한 로보트의 메모리를 노인이 포맷하기를 주저한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강도 전과가 있는 노인이 잃어버린 보람(강도짓)을 찾기 위해 인간이 아닌 로보트를 협조자로 신뢰하는 대목도 단순히 감정없이 인간의 지시를 이행하는 로보트라는 설정보다, 인간 관계의 근본을 돌아보게 만든다. 누구나 그런 처지에 몰린다면 극중 로보트 같은 (인간)동료를 믿고 신뢰할 거다.
2013년 1월 1일 화요일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