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1일 금요일

0710 드래곤 길들이기 2 ★★★★

7월10일(목) 14시. 왕십리CGV.  <드래곤 길들이기 2 How to Train Your Dragon 2> 3D-IMAX (2014) 시사회.

별점: ★★★★



  
 <드래곤 길들이기 2>를 널찍한 IMAX관에서 3D 영상으로 보고왔다.
3일 전 같은 극장에서 3D로 본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엮인글)과 비교될 수 있는데, <혹성탈출>은 3D의 수혜를 많이 얻는 것 같지 않았던 반면, <드래곤 길들이기 2>는 영화의 상당 분량이 용들의 쾌속 비행 장면을 담고 있어서, 3D의 재질감을 온전히 살릴 수 있는 영화였다. 

<혹성탈출>과 비교될 수 있는 또 다른 지점은 두 작품 모두 내러티브보다 하이테크놀로지 의존도로 영화의 완성도가 좌우되는 영화였다는 점이다. 엔야enya풍의 뉴에이즈 음악을 배경으로 사람들을 등 위에 태운 용들이 하늘을 쾌속으로 날아 다니는데, <혹성탈출>이 모션캡쳐 기술에 힘입어 유인원의 표정과 털을 정교하게 묘사한 것처럼, <드래곤 길들이기 2>에 출연하는 각양각색의 용들과 인물들은 거의 실사영화에 가까운 표면과 모발 묘사, 그리고 표정과 움직임의 묘사를 과시한다.

등장인물(실존인물)이나 스토리보다, 가공된 인물과 화면으로 영화의 완성도가 좌우되는 이런 부류의 영화는, 이제까지 영화를 평가하는 유서깊은 기준점들을 갱신하고 새 잣대를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드래곤 길들이기 2>같은 애니메이션 영화는 영화라는 단독 상품과 더불어 대중 기호에 충족되는 OST라는 부가 상품까지 낳는 이점을 갖췄다. <겨울왕국>을 떠올려보자. 

또 실제 사람이 출현하지 않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주체(등장인물)가 지니는 모호한 매력도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가공된 캐릭터, 그 캐릭터를 제작하는 디자이너, 캐릭터에 목소리로 입히는 사람 배우. 이 셋의 결합이 하나의 캐릭터를 구성한다.  

<드래곤 길들이기 2>의 스토리는 어쩌면 동물과 인간의 공생 문화가 탄탄한 토대를 갖춘 서구 사회에서나 쉽게 가능했을 발상 같았다.  


* 같은 시각예술의 범주에 있다하여, 블록버스터 영화와 현대미술을 나란히 비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 종영 후 스크린을 꽉 채운 무수한 크레딧을 보고 있자니, 또 크레딧 안에서 '스토리 아티스트'의 수가 8명 이상이었던 걸 확인하자니, 두 장르 사이의 스케일과 지향점의 극명한 차이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예술가의 서명 (씨네21)

* <씨네21>(961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연재가 100회분을 채우게 되었다.



서명 플라시보





좌. 마르셀 뒤샹이 1950년 서명한 원본 <분수>(1917년)의 복제본
우. 피카소의 서명을 차용한 어느 레스토랑



소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한 사건은 현대미술의 본격 태동을 알린 신호탄으로 해석 되지만, 실제로 당시 전시장에서 문제의 소변기를 만날 수는 없었다. 긴급 위원회의 논의 끝에 소변기의 진열이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흑백사진이 남아 우리가 문제작의 외형을 가늠할 뿐이다.

뒤샹의 작품 <분수>의 가치는 대량생산된 공산품이 유일무이한 예술품으로 변신하는 요건으로, 예술가의 손재주가 아니라 예술가의 발상을 든 점에 있다. 손재주가 아닌 발상을 미적 독창성의 근원으로 본 입장은 뒤샹 이후 미술계 지각 변동의 원점이 되었다. 기성품으로 들어찬 전시장은 오늘날 그저 익숙한 풍경이다. 백색 소변기의 표면에 뒤샹이 쓴 가명, 리처드 머트(R. Mutt)는 소변기에서 예술품으로 존재가 변했음을 증언한다. 기성품을 미술품 대열에 합류시키는데 필요한 것이 오직 예술가의 발상뿐이라고 믿은 뒤샹이었던 만큼, 작품이 된 소변기라는 물리적 사물을 그는 소홀히 여겼다. 

그의 무관심과 관리 소홀 덕에 신화적인 문제작 <분수>의 원본을 우리는 볼 수 없다. 1917년 원본 <분수>는 분실 되었고, 현재 여러 미술관에 17점의 <분수> 복제품들이 전시 중이다. 원본이 사라진 후에야 <분수>의 미술사적 의미가 깨달은 후대 미술인들이 전설의 복제품을 수요한 탓이다. 뒤샹이 추가로 서명한 17개의 소변기 복제품은 원본으로부터 무려 50년 가까이 지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복제품들이지만 <분수>의 원본성을 승계한 것으로 간주된다. 급기야 1950년에 제작된 최초의 복제품은 1917년 사용된 소변기와는 모양새마저 크게 다른데도 말이다. 서명의 위력은 이 정도다.

파블로 피카소의 전시회 배너에는 육필로 휘갈긴 피카소의 서명이 도판처럼 쓰인다. 피카소의 육필 서명은 개별 작품들보다 인지도에서 앞서며, 피카소 작품 전체에 대한 대표성까지 행사하기 쉽다. 전시회 배너에 피카소의 작품보다 선호되는 그의 서명은 일종의 국제 공용어로 사용된다. 심지어 피카소의 서명은 미술판이 아닌 분야에서조차 ‘기품 있는 기호’로 이용된다.

위대한 예술가도 범작을 남긴다. 대표작의 잔상과 서명의 후광에 힘입어 위대한 예술가가 남긴 숱한 범작들도 은연중 과대평가되곤 한다. 뒤샹이 제작한 여러 문제작들은 그의 관리 소홀로 원본 자체가 분실되거나 파손된 경우가 많았다. 예술품의 제작 행위나, 예술품을 공인하는 서명 행위를 뒤샹은 환멸 혹은 풍자의 대상으로 봤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수십 년이 지나 그가 다시 서명한 무수한 복제품들이 미술관에 입성한 사건은 어떻게 봐야할까? 후대에 그가 여러 복제품에 서명을 남긴 행위는, 사물과 예술의 경계선을 헐겁게 만든 자신의 공로에 대한 자긍심과 뒤샹 특유의 장난기가 뒤엉킨 결정일 것이다. 한 예술가의 범작 앞에서 감동을 느꼈다면, 서명이 만든 플라시보 효과일지도 모른다.


ps. 국내에서 흔히 <샘>으로 번역되는 뒤샹의 <fountain>은 <분수>로 표기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2014년 7월 9일 수요일

0708 프란시스 하 / 논픽션 다이어리 /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



* 오후부터 저녁까지 영화시사회 3편을 연달아 본 7월8일(화) 일지. 


7월8일(화) 14시. 왕십리CGV.  <프란시스 하 Frances Ha> (2012) 시사회.

별점: ★★★★




<프란시스 하>는 모처럼 만나는 흑백 화면도 그랬고, 선명한 연애 감정의 경계선을 긋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 때문에, 프랑소와 트뤼포의 <쥴 앤 짐 Jules et Jim>처럼 선명하게 청춘 애정물을 표방하진 않되 젊은 남녀가 뒤엉켜 어울리는 연애의 모습을 대안적으로 보여진 게 아닐까 하면서 봤다.  좌절한 여성 무용수인 프란시스나 그가 어울리는 자칭타칭 예술가 집단의 모습 때문에 알란 파커의 <패임>까지 생각났다. 또는 단순한 친구관계를 넘어서는 프란시스와 소피의 모호한 관계에서 <진저앤로사 Ginger & Rosa>(2012), <가장 따뜻한 색, 블루 Blue Is the Warmest Colour>(2013>에서 최근 본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Concussion)>(2013)로 이어지는 근래 관람한 여성동성애물의 대안버전 같기도 했다. 초반부까지 받은 인상은 그렇다.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영화 중반까지 호들갑스러운 배우들의 대사들이 서구의 20대 여성이 겪는 취업란, 거주의 문제, 연애의 난관 따위를 유쾌하게 그려내는 <프란시스 하>가 유독 여성관객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영화 정도로만 느껴졌다. 

그런데 영화에서 프란시스와 그의 단짝 친구 소피가 맺는 관계가 동성애적 관계로 전혀 발전하지 않는 점, 뉴욕의 젊은이들이 남녀 혼숙의 형태로 거주하는 문화나, 거침없이 서로의 사생활에 대한 캐묻는 집단거주자들 사이의 격없는 관계 등에서, 작년 북유럽 여행 때 경험한 코펜하겐 대학생들의 집단 혼숙이 떠올랐다. 한 집에서 방 하나씩을 잡고 남녀 서넛이 연애관계를 전제하지 않고 자기 생활을 해 나간다. 그러다가 연애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아마 있을 게다. 

<프란시스 하>의 감독이 서구 태생인 이상, 그가 가족관계 부부관계 연인관계의 모호성에 대한 얘기를 영화에서 하려고 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가 정해놓은 고정된 관계항들이 모호하게 무너지는 현실에서-특히 한국처럼 극성맞은 결혼 열풍에 반해 이혼률이 세계1위인 국가에서라면-<프란시스 하>의 프란시스가 겪는 관계짓기의 어려움과 고초는 근래 내가 자주 생각하고 있는 이 문제를 환기시켰다. 

무턱대고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는 프란시스가 만나려던 사람들과 어처구니 없이 타이밍이 빗나가거는 것도 그녀가 겪는 관계 오류에 대한 은유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연신 '나는 연애가 잘 안돼 undateable'라고 털어놓곤 하는 프란시스를 방치한 채 영화가 끝맺진 않는다. 그 점이 좋다. 무용 공연은 단독으로 연출(아마도?)하며 독립한 프란시스의 모습이나, 동거인 없이 자기 이름만 적힌 대문 이름표를 보여주며 끝나는 마지막 장면 때문에. 


---------

7월8일(화) 16시30분. 왕십리CGV.  <논픽션 다이어리 Nonfiction Diary> (2013) 시사회. 

별점: ★★★




 올해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넷팩상을 받았다고 한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도 비프메세나상을 받았단다.
내가 볼땐 <논픽션 다이어리>는 특히 서구 영화 관계자들에게 호소하는 부분이 있는 영화다. 동아시아에서 20년전 발생한 엽기살인사건을 다룬 점, 동아시아으 중진국이 겪는 근대화와 참사들(삼풍 붕괴, 성수대교 붕괴)등을 병렬로 나열하기 때문에 사료적 관심도 모을 수 있다는 점 등, 본래 취지야 어떻건 서구인에게는 현실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이 뒤틀린 이국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받기 쉽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완성도만 엄정히 따지면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없다. 

지존파 사건에 관여했던 강력계 형사나 그들이 수감된 곳에 근무한 형무소 관계자나 이 사건을 해석하는 변호사와 문민정부 당시 통일부총리 등의 인터뷰가 영화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들은, 특히 교도관, 형사, 목사 등은 언변이 떨어져서 의사전달력이 매우 낮다. 한완상 통일부총리의 인터뷰 내용도 참신하지 않다. 시대상황을 입체적으로 얘기하는 건 김형태 변화사 정도인데 말주변도 부족하고 의견 차이까지 있는 인터뷰이들의 진술을 무작위로 열거하는 걸로는 감독이 전하려는 입장을 전달 받기 어렵다. 

또 하나 불만은 이들의 인터뷰 내용이나 94년 당시 지존파들이 기자들에게 쏟아낸 말들의 발음이 부정확해서, 잘 들리지 않는데, 왜 이런 부분을 자막처리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문민정부 2년차인 1994년에 지존파 사건이 터지자, 심야토론에서 사태를 성토하는 토론자의 모습도 가관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민주국가에서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자들에게는 무기를 사용해서 하지 않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당시 도덕불감증때문에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며 성토대회도 많이 열린 모양이다. 지금 찾아보니, 전국 곳곳에 흉물을 세우는 '바르게 살기 운동본부'(위 사진)도 성토대회에 참여했더라. 

한가지 크게 공감이 갔던 부분은 김형태 변호사의 인터뷰 내용 일부. 
직접적인 방법으로 살인이 이뤄지면 쉽게 공분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이런 형법상의 살인과는 달리, 삼풍백화점이나 광주대학살을 저지른 군부나 형법상은 업무과실치사나 내란음모로 처리되면서 낮은 형량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혹은 쌍용차 사태로 자살한 사람들의 수나, 김영삼정부의 실정으로 외환위기가 왔을때 무너지 가정의 수도 통계적으로 잡히지 않지만, 형법상의 살인을 능가하는 죄악이라는 점. 내가 평소 늘 생각하는 부분과 맞닿아 있다.

지존파에게 사형을 구형함녀서 검사가 한 말은 '악마의 대리자들이 저지른 범죄'라고 했단다. 웃겨. 
지존파들은 사형집행 전에 이런 말을 국민에게 남겼다고 하네. 대충 정리하면.
'세상을 두려움 없이 살라고 국민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음.  명언.  

   

---------

7월8일(화) 20시. 메가박스코엑스.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 For no good reason> (2013) 시사회. 

별점: 보류 




 저녁에는 왕십리에서 삼성동으로 이동하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랄프 스태드먼 스토리>의 상영이 끝난 직후 '아트 스타 코리아'의 탑쓰리 도전자였던 유병서씨와 관객 대화GV를 진행했다. 내가 GV까지 한 영화인 만큼 일단 개봉 전후까지는 별점 보류. 완전 대중적인 영화이긴 어렵고, 단순한 스펙터클 영화를 지양하고 창의적 사유에 대해 관심있는 관객에게 추천한다. 

비단 특정 괴짜 예술가 그룹의 이야기로 한정해서 생각하지 말고, 영화에서 랄프의 태도를 자기화 하면 좋겠다는 점, 자기 전공 분야에서 고유한 자기 스타일을 만드는데 주력하라는 점, 이 모든 결심의 실행 뒤로는 '인생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초연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관객에게 얘길 했다. 시간이 너무 늦은 터라 질문을 받진 못했다.  

2014년 7월 8일 화요일

0707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7월7일(월) 14시. 왕십리CGV.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 3D (2014) 시사회.

별점: 보류 





이번달 개봉하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을 3D 안경을 착용하고서 봤다. 상영을 앞두고 21세기폭스사에서 올 여름철 극장가의 성수기에 풀어놓을 영화 서너 예고편들도 소개되더라. 전부 압도하는 스펙터클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대작들이었다. 이처럼 화면을 꽉 채우는 예고편이 나가면 장내에서 영화를 기다리던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해진다. 휴가 시즌에 맞춤형 영화들이 쏟아지는 친숙한 광경.  

울창한 숲에 거점을 정한 유인원의 군집생활로부터 소싯적 대형고릴라 영화 <킹콩>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에서 출현하는 수십 수백명의 유인원들의 거동과 표정은 또 다른 소싯적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무거운 털옷 복장을 뒤집어 쓰고 엉성하게 다리 짧은 유인원 흉내를 내는 7등신 인간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와는 거리가 멀다.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에서 유인원들의 표정 연기와 제스처는 비약적인 발전한다. 예상못한 매력은 또 있다. 유인원들이 의사소통을 하려고 내는 목소리 재현 기술도 어색하지 않고 매력적으로 들린다.  

<혹성탈출:반격의 서막>는 블록버스터인 점에서 선명한 ★점으로 평가할 법한 영화로 분류될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별의 수를 정할 수 없었다. 한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요소는 주제 선점, 스펙터클, 탄탄한 이야기 구조, 연기력 등이 좌우할 텐데, 이 영화처럼 모션캡쳐를 도입한 새로운 영상기술이나 디지털 후속작업도 이제 영화의 전체 완성도를 결정하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어서다. 

블록버스터 영화답게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인류와 유인원의 모습을 설정한 거나, 인간의 요새를 함락시키려고 모여든 유인원의 총기 역습 장면이나, 초고층 타워가 폭발하며 주저 앉는데 주요 등장인물(유인원)들이 모두 구사일생하는 설정 따위는 명백한 감점 요인인데도, 새로운 영상기술이 확보한 우호적인 평점 때문에 감점을 주저하게 되더라. 혹은 개연성이 낮은 이야기 전개에 유독 엄격한 나의 잣대를 이런 초대형 흥행영화에까지 적용해서, 서사의 디테일에 집착하는 모습이 정당한 건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리하면, 이야기의 틀은 무척 크되, 디테일은 빈약한, 다만 시각효과에서 점수를 크게 만회하는, 그럭저럭 볼 만한 영화.  

2014년 7월 6일 일요일

0706 미니 10주기

미니 죽은 지 10년. 
10주기 추모를 위해 미니가 묻힌 집을 찾았으나, 공사가 한창이라 묻힌 위치를 찾을 수 없어 어림잡아 사진을 찍어왔다. 

오늘은 미니 추모와 누나 생일을 겸한 밥모임이 있었다.  우리에겐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데 생일밥은 생일 당사자가 모두 산다는 전통이다. 누나가 경복궁 인근 초밥집에서 밥을 샀고, 뒷풀이를 위해 낙성대 근처로 이동해서 야외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헤어졌다.  

미니가 사망한 2004년. 
10년 전인 바로 그해, 평론가 신분으로 어느 미술대학 졸전에 출품을 초대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치기를 빙자해서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음란성과 도색 취향이 반영된 책을 제작해서 전시장에 배포한 적이 있다. 지금 다시 책을 둘여다보니 어떤 관점에서는 올해 만우절 자작극의 덜 숙련된 초기 버전 같기도 하다. 

당시 제작 배포된 책의 여분이 약간 남았음을 이번 이사하면서 알았다. 자칫 희귀본으로 남을 운명인 이 도색 출판물을, 지원자에 한해 밥 사주는 조건으로 제공한다.  





2014년 7월 5일 토요일

0704 드래프트데이 ★★★★

7월4일(금) 14시. 왕십리CGV.  <드래프트데이 Draft day>(2014) 시사회.

별점: ★★★★




열광적인 미식축구 문화나, 신인선수를 선발하는 별도의 행사( 그것을 '드래프트 데이'라고 부른다)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 관객에게 보면 영화의 시작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어떤 이야기인지 영화 초반에는 감을 못 잡았다. 뭔가의 거래를 둘러싼 신경전이라는 정도는 알겠으되 그것이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지는지 한국에선 경험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전개를 따라가면서 정확한 정황을 알지 못하더라고 인물간 긴장과 결정을 앞둔 고민에 깊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미식 축구와 신인선수 선발행사가 국내에 부재하는 점도 이해를 어렵게 하지만, 유능한 선수를 선발하려고 팀의 스탭들이 모여 앉아서 신인선수들의 과거 경기 모습을 점검하는 장면에서, 미식축구의 게임 규칙에 따라 의견을 나누는 장면도 이해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미식축구 게임의 룰이 한국관객에겐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극적인 긴장감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흔히 예술가나 운동선수를 다루는 영화의 패착은, 예술과 운동이 지니는 고유의 기량을 재현하는데 아마추어 배우들이 한계를 보이기 데 있었다. 이런 약점은 이후 디지털 영상편집술로 대부분 보완되는 추세 같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매력은 운동선수의 기량에 방점을 두지 않고 영화를 전개시키는데, 스포츠 영화로서 즐거움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점도 있다. 쉽게 흥분하는 캐릭터들이 배치 되어, 극단적인 두 캐릭터의 충돌이 곧 예정된 듯 하다가, 반전의 카드가 나와서 손쉽게 갈등이 봉합되는 일이 잦다. 선수의 자질을 점검하고 판단하는 단장과 감독 사이의 갈등이나, 단장과 그의 연인 사이의 애정 싸움이나, 단장과 구단주(?) 사이의 갈등 따위가 그렇다. 대중영화의 필요악. 

한국은 한때 복싱이 소외된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고,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소외된 계층에게 해방구는 축구였듯이, <드래프트 데이>에서 묘사되는 미식축구는 희망이 사라진 지역에서 유일한 희망과 즐거움으로 간주되는 모양이더라. 이처럼 공동체가 탄탄하게 떠받드는 스포츠 문화 역사가 있다는 건, 미식축구가 고갈될 틈이 없는 이야기의 수원이라는 의미이다.  

 <드래프트 데이>는 미식축구 문화가 있는 미국 현지에서는 중간 이상의 평가는 받되, 최고점까지 얻은 영화는 아닌 모양이더라.  유사한 주제를 이미 다룬 <제리 맥과이어> <머니볼>이라는 선례가 있다는 사실 역시 비교 우위를 얻기 어려운 지점이었을 것이다. 그런 선례가 있다는 사실을 보도자료를 통해 뒤늦게 깨달았다. <제리 맥과이어>는 하도 오래전 본 영화라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해외 평가야 어떻건 나는 ★ 4개 주기로 정했다.  이런 결정을 내릴때마다 느끼는 건, 영화를 평가할 때 나는 빠른 전개와 반전으로 관람의 재미에 얼만큼 충실했는가에 주의한다는 점이다. <드래프트 데이>는 예정된 해피엔딩과 예측가능한 반전이라는 맹점을 안고 있다. 분명 그 점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그런 취약점까지 감안해도 대중영화로서 부족함은 적다. 이야기를 천박하게 전개시키지도 않고, 흥겹게 볼 만하다. 

★ 4개씩 주고 싶은 배경에는 이유가 2가지 더 있는데, 팀 간의 거래에서 보이는 심리전이 제한된 시간 내에서 이뤄지는 상황인 점을 이용해서, 설득의 기술과 촉박한 결정의 순간을 잘 편집햇다. 설득의 기술과 빠른 결정이 낳는 우연적 결과에 관객이 감탄하게 되는데, 그런 촉박한 시간 내에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이야기의 설정은, 실제 삶에서 우리가 겪는 실제 체험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맘에 들었던 또 다른 이유는 절대 새롭다곤 할 순 없어도, 거래하는 두 당사자 간 전화 통화 모습이 큰 영화 스크린에서 두 개의 양분된 화면으로 표현되는데, 나뉜 두 화면이 역동적으로 편집되어 있다는 점이다. 화면이 움직이기도 하고, 한쪽 화면 속 인물이 다른 화면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가기도 한다. (이건 영화를 직접 봐야 알 수 있다) 그런 편집술이 영화가 전달하는 긴장감 있는 스토리처럼, 보는 긴장감과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그런 시각 효과의 안배가 맘에 들었다.  

영화 속 대사처럼 대중은  '확실한 한방'에 쉽게 좌우된다. 

2014년 7월 4일 금요일

에드바르드 뭉크 연재 - 다음 스토리 볼(Daum storyball)

6월 초에 다음(Daum)에서 "Daum 스토리볼에서 에드바르드 뭉크의 한국 전시회를 주관하는 컬처앤아이리더스와 함께 작품 연재"를 하고 싶다며, 원고 연재를 의뢰해왔다. 

에드바르드 뭉크의 국내 전시회 <영혼의 시, 뭉크>(2014.0703~1012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가 열리고 있단다.

뭉크에 관한한 뭉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한 대형 행사를 2013년 노르웨이 오슬로 현지에서 관람한 적이 있고, 관람 후 리뷰를 기고한 바 있다(엮인글). 그보다 앞서 2005년 타센Taschen이 출간한 Basic art series 가운데 뭉크를 맡아 
<에드바르드 뭉크>(마로니에북스 2005)를 번역하기도 했다. 

올해는 다음 스토리 볼(Daum storyball)에는 주2회 뭉크를 연재하게 됐다. 




2014년 7월 2일 수요일

0617 전문가 지원프로그램(금천예술공장) 스페인 비디오전시(루프) 0621 파티(토마스파크) 0625 아트스펙트럼2014(리움) 홍순명(미메시스뮤지엄) 0626 강연(국립현대미술관) 0630 강연(동화빌딩)

0617(화)
전문가 지원프로그램 (11시30분. 금천예술공장)
스페인 비디오 아트 전시 Languages and Aesthetics of Spanish Video Art (2014.0512~0619 대안공간 루프)

0621(화)
파티 (19시. 토마스파크)

0625(수)
아트스펙트럼 2014 (2014.0501~0629 리움)
홍순명 '스펙터클의 여백' (2014.0628~0828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0626(목)
공공기관 및 기업대상 교육 '미술공감연수' (14시30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최만린, 조평휘 전시 관람 

0630(월)
한국지방세연구원 지방소득세 집합교육-특강 (17시. 여의도 동화빌딩 6층-한국경제TV강의실)





전문가 지원프로그램(금천예술공장)
마케도니아 태생 작가 Oliver Musovik을 상대로 멘토링.  

전문가 지원 프로그램은 입주작가와 멘토링 미팅을 한 후, 짧은 촌평을 남기는 것이다. 내가 맡은 작가는 마케도니아 태생 올리버 무소빅으로 금천예술공장에서 서너달 가량 체류하며 작업을 한다고 했다. 무소빅에 대한 촌평을 전부 남길 필요는 없고 그중 일부를 옮기면 아래와 같다.  


그의 작업의 성격은 그의 개인 웹사이트와 전문가 프로그램 미팅에서 확인한 사진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짧은 관찰을 통해 비평의 한계를 감안하고 얘기한다면, 무소빅의 작업은, 내국인으로서는 파악하기 힘들었을 한국인의 보편적인 생활 패턴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수집한 결과물이었다. 대부분의 작업은 작가 노트나 미팅에서 그가 직접 들려준 해설을 통해 내용을 알 수 있었는데, 가령 길가 여기저기에 무심히 버려진 빈 캔들을 추적해서 수집하듯 사진기에 담은 연작이 있다. 이 작업은 쓰레기통에 있고, 경범죄에 해당되는 데도 불구하고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슬쩍 남겨두고 가는 한국인의 습관을 관찰한 결과이다. 이런 관찰을 통해서 무소빅은 한국인이 너무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나 혹은 일에 쫓기는 삶이 이런 ‘쓰레기 투기’를 낳았다고 풀이했다.
(중략) 
이런 작가의 해설에 대해 나는 한국인으로서 너무 친숙해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도시 광경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제시한 점을 높게 샀다. 하지만 개선되어야할 점으로 작품 설명 노트나 작가의 직접 해설을 듣고 나서야, 작품의 의도를 ‘사후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부분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보완이냐면 작품 설명 노트는 필요하지만, 먼저 일련의 사진 연작을 보는 것만으로 관객이 작가의 의도를 30% 정도는 추론할 수 있게 만드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주변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한국인에게 본인의 작품을 보여준 후, 그들이 작가의 설명이나 작가 노트 없이도 작품의 의미를 50% 이상 추론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조언했다. 올리버 무소빅에게 현재 필요한 요건은 정교한 작업 해설이나, 작가의 직접 해설보다는 작품의 이미지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비디오전시(루프)

추천 받은 작품 뿐 아니라, 전시 중인 영상물 중 다수는 저해상도 화면을 조악하게 편집한 경우가 많았는데, 아마 발표 당시에는 격찬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뉴미디어 작품은 매체를 시의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은 높게 살 수 있는데, 언제나 너무 빨리 구식이 되어버린다는 풀 수 없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파티(토마스파크)





전시 오프닝을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일명 프라이빗 갤러리를 처음 가봤다.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임을 지향하는 점에서 여느 전시회 오프닝과 같다. 일반적 전시와 다른 점이라면 미술계 인사 외에 다른 분야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 


아트스펙트럼2014(리움)


전시 종료 4일을 남겨두고 느지막 아트스펙트럼2014를 찾았다. 아트스펙트럼 2014는 세월호 참사로 개막식이 취소된 전시 중 하나였고 그래서 계속 관람을 잊고 있다가 이 지경까지 됐다. 내가 리움을 찾은 6월25일(수)은 매월 마지막 수요일-문화가 있는날-로서, 관람료 할인 혜택을 받는다.

*  작업노트나 해당 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전혀 참조하지 않고 남기는 촌평은 이렇다.

 건축가인 친아버지와 협업으로 작업을 진행한 장현준은 영상 속 내레이션, 퍼포밍, 전체 연출을 맡은 것 같다. 전시장에는 가건물처럼 전시장 공간을 점유한 구조물이 들어섰고, 미술관 벽과 기둥에 자잘한 메모와 낙서를 남겨, 자기 삶의 밀도를 공간에 밀착시켰다. 아버지와의 협업으로 건축가인 아버지의 직업을 이해하는 과정도 담았고, 아버지와 자신 사이의 유사성 고백하는 대사도 나온다. <필름3> 영상에서 직업(건축)에 관한 장황한 해설, 그리고 교조적인 어투는 관람을 방해하는 요인 같았다. 나머지 작가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배당 받은 드넓은 공간과 리움의 권위 때문에 작가가 부담을 느낀 탓일 것이다.  
 말레비치를 인용한 <원을 그리며 뒤로 달리기>, 그리스 도리아풍 기둥이나 1점투시법, 기본 도형으로 구성된 화면으로 구성된 <패턴 원근법 연구> 그리고 <풍경화 연구> 시리즈 까지 제니 조는 일관되게 회화의 기본 문법을 작가로서 천착한 해석을 내놓은 것 같다. 학구적인 몰입이 전작품에서 느껴지는데, 벽면 하나를 채운 도안/공식은 회화를 지배하는 작가 나름의 도안/공식이거나 일종의 각주처럼 보였는데 해독하기 어려워서인지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오디션 열풍이 남긴 남녀의 젊은 낙오자를 다룬 박모나는 젊은 미술가들이 처한 상시적인 형편을 그 둘을 통해 투사한 것 같다. 만일 그게 맞다면 다큐멘터리 영상 형식으로 다룬 남성 개그맨 응모자1인과 여성 가수 응모자 1인의 인터뷰와 연출된 오디션장면이 일반 시사다큐가 다루는 동일한 내용의 방송(이 있다면)로부터 어떤 변별점을 지닐 수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매스미디어 사회에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결과물과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 사이의 경계가 거의 무의미해는 현상은 박모나 말고도, 송호준에서도 느껴진다. 아동용 프로그램 진행자를 연기하는 작가의 영상물과 유리 부스에 인공위성 퀴즈쇼와 조악한 경품 따위를 넣은 설치물에서 어떤 비평적 유모를 찾을 수 있는지, 혹은 나 아닌 다른 세대에게만 특정한 미감이 표현된 건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단조롭고 완벽한 형태의 설치물을 내놓은 천영미의 작품은 역설적으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늘의 미감으로는 논평 지점을 찾기 어려운 것 같다.  
  김민애의 설치물의 경우는, 전시장의 공간 일부를 차용한 장소특정적 설치물이 새로운 시도랄 순 없지만, 리움 전시장의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에스컬레이터와 건물 사이에 거대한 유리창을 작업으로 반복시킨 작업이나, 전시장 벽위에 새 벽을 덧붙이듯 가설한 <세 작가>가 지니는 모호한 의미가 호기심을 일으킨다.  
 촬영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는 이완을 제외하면 나머지 작가들이 모두 2014년 신작을 내놓은 반면에, 딱 한점의 대작만 2014년이고 나머지는 2013년 작업으로 채운 이은실. 여지껏 불명료한 메시지가 부풀린 무정형의 성적 메타포와 화면 안의 건축적 구성은, 2014년 신작에서는 지형지물로 드러난 교미하는 거대한 동물 군상으로 변했고, 2013년 작업들에서도 화면을 꽉 채운 육면체로 드러났다. 종래의 호기심이 모두 해결된 국면이랄까. 결국 차츰 명료해질 수밖에 없는 도상들이었지만 이렇게 죄다 해결되었으니 다름 진로를 어떻게 진행할 모르겠다. 
 스틸 사진과 입체 설치물을 함께 가져간 정희승은 <끝나지 않은 문장>에서 화면 일부를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대위법적 구성의 일부를 미완인 채로 남겨뒀다. 기우뚱하게 층층 쌓아올린 사진 설치물도 스틸 사진의 여백 처리처럼 고의적인 엔트로피인 것 같다. 사진 속에 대위법적으로 배치된 대상은 더러는 한쌍처럼 보였고, 일부 사진은 위아래가 뒤빠꿔서 길을 잃게 만든다. 아마 심사 때에는 작가노트도 함께 작품이 제시 되었겠지만, 작가 노트 없이 작품을 날로 보는 나같은 처지에서는 포인트를 쉽게 찾기 어려운 주관적인 내레이션처럼 읽힐 수 있다. (세세한 논평은 조만간 작가를 만날 일 생겼으니 그때 나누기로...) 
 심래정의 종래 자잘한 애니메이션 작품은 잘 봤는데, 거대한 스크린 셋으로 구성된 짧은 영상은 논점을 잡기 어려웠다. 심래정의 작품은 부담감이 만든 사이즈 증폭 같기도 했고, 일반적 애니메이션과의 편차 만들기라는 중요한 과제를 새삼 확인시키다. 
 아트스펙트럼 이번부터 작가상을 주는데 1회 수상자가 이완이다. 마이클 프리드는 미니멀리즘의 연극성을 비판했을 때에는 작품만의 몰입성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미술이 다른 장르처럼 변하면서 순수성이 훼손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마이클 프리드가 비판한 '관객이 개입하는' 연극성은 이제 관객의 개입 없이도 작품 스스로 시간 예술로 연장되는 자발적 연극성이 되었다. 너무 많은 비디오 영상과 너무 많은 해설적 자막 때문에 이완의 작품은 심사에 불리하지 않을까 생각 되었지만, 그가 당선자가 됐다. 척박현 현장의 미술 작가가 지닌 적응력과 작가적 진정성에서 높은 점수를 딴 것 같다. 하지만 내레이션으로 자주 들리는 세상사의 변화를 바라보는 작가의 소회는 좀 식상했다. 거국적으로 변하는 세상에 작가 개인이 내놓을  수 있는 논평은 아마 이 정도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홍순명(미메시스뮤지엄)



미팅 때문에 방문한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에서, 전시 개막이 3일 후인 홍순명 개인전을 미리 보고 왔다. 설치가 모두 끝났다고 해서. 일기처럼 꾸준히 완성했을 소품들이 벽에 엄청나게 붙어있다. 그렇지만 소품들의 총합을 통해 어떤 이야기의 감을 잡을 순 없다. 왜냐하면 소품 캔버스는 필시 작가가 보도사진이나 광고사진을 옮긴 것 같은데, 인용된 사진의 부분을 옮겨왔기 때문에, 그림의 이야기는 모두 단절되어 있다. 이런 잘려나간 이야기, 미완의 이야기를 수년전부터 평면회화 작업에서 자주 만난다.  

강연(국립현대미술관)
공공기관 및 기업대상 교육으로 대상은 이번에 새로 채용된 국회 사무처 직원들. 


약간 일찍 도착한 나는, 강연 직전까지 7월초에 끝나는 최만린, 조평휘의 개인전을 봤다.  
무수한 공공조형물로 만들었지만, 최만린의 연대기을 따라가면 자코메티와 서구 미니멀리즘 조각의 압박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브랜드가 된 최만린의 '태'는 1979년  제작된 이래 약간의 변형들을 낳으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2014년 혹은 1990년이후 이런 미학적 형상이 현대인에게 무슨 의미가 될 지 알 수 없었다. 

조평휘의 운산 시리즈에서는 19세기 낭만주의 풍경화를 동양화로 번안한 효과가 느껴졌다.  



강연(동화빌딩)
어찌 이런 일이.  더러 일반인 강의를 해주는데, 이번 강의는 첫날부터 약간 멘붕. 이 강연은 교육연수 프로그램에 부록처럼 삽입된 교양 강연이어서 수강자들의 자발성이 전혀 없다. 뭐 그럴 수 있다. 때문에 일반인들이 미술에 관해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한지 깨닫는 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진짜 멘붕인 이유는 그 다음이다... 설상가상으로 내게 강의를 부탁한 아는 분이 지방세 연구원들 대상으로 총 5회 '연속 강연'이라고 일러줬는다는 것. 내심 이상했다. 지방세를 연구하는 공무원들이 왜 현대미술을 무려 5회나 연속으로 들어야할까하고....  의사전달이 잘못 된 거였다. 순진하게 믿고 총 5회 연속 강좌를 준비해 갔는데, 첫 강연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수강한 연구원 한분이 자기네들은 딱 한번 수강하고 끝난다고 하더라. 다시 말해서 총 5팀의 다른 연구원들에게 내가 동일한 강연 5회를 해주는 강의였던 거다. 어찌 이런 일이. 아는 분의 부탁이어서 거절도 못하고 수락해 버렸는데, 지방세를 연구하는 공무원들에게 현대미술을 가르치러 매주 월요일 저 강의실로 향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