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2일 수요일

0211 아메리칸 허슬 ★★★☆

2월11일(화) 1030시. 왕십리CGV. 데이빗 O. 러셀 감독 <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2013) 시사회.

별점: ★★★☆







탐 크루즈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봤다. 크레딧이 올라올 때 비로소 그가 크리스챤 베일인 걸 알았다. 두 사람이 이상하게 눈매와 콧잔등이 닮은 것 같더라. 그만큼 <아메리칸 허슬>에서 크리스챤 베일의 외모 변신은 놀랍다. <머시니스트 The Machinist>(2004)에서 보여준 체중 감량의 정반대라고 보면 된다. 연기력을 보장하는 크리스챤 베일을 필두로 다른 주조연 배우들의 높은 연기 기량도 흥행의 요인이 될 거 같았다. 

2014년 아카데미 10개 부분 노미네이트 될 만큼 <아메리칸 허슬>의 자국 내 평가는 높은 모양이다. 나는 다만 1970년대의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질펀한 음주와 부정한 커넥션이 만드는 인간 관계의 형성, 마피아의 개입, 거기에 서로를 속고 속이는 세속의 야비한 질서를 보여준 점, 그리고 배경 음악으로 그 당시 미국 대중음악을 깐 점-바로 이 점이 영화 관람을 재밋게 만들겠지만-때문에 동일한 시대 배경 속에 커넥션과 마피아와 당시 대중음악과 야만적 인간성의 진수를 보여줬던 마틴 스콜세지의 전작들이 자꾸 연상되었다. 가령 <카지노>(1995)나 <굿 펠라스>(1990) 같은 영화들 말이다. 

1970년대 무렵의 향수를 시청각을 동원하여 입체적으로 자극하는 이런 과거 회상형 영화는 올드팬의 귀환 본능을 자극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대중적 관객에게 호소하는 보편적 세속가치는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걸 믿는다" 는 영화 속 대사처럼, 손쉽게 사기칠 수 있는 세속의 진부한 풍경을 보여줬다는 점일 것이다. 생존을 위해 서로가 높은 수의 사기술을 발휘하는 영화의 스토리에 따라 일의 부피는 복잡하게 얽히는데, 이처럼 복잡한 사기술로 뒤엉킨 이야기 전개가 속사포 같은 대사로 전달되는데, 자칫 번역된 대사로 상황을 판단해야하는 한국 관객이라면 이야기의 맥락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더라(나는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극중 캐릭터들의 무수한 사기술로 난처해진 주인공이 국면돌파로 내놓는 최종 해법도 역시 사기술인데, 예상 밖의 뒤통수 치는 사기술로 보긴 약간 맥이 빠졌다. 제법 봐줄만한 영화이고 상도 탓지만, 그 권위나 볼거리에 비해 내가 별점(★★★☆)을 약간 인색하게 준 이유다.   
 

 
ps. 70년대를 다룬 영화에서 90년대 록밴드 Guns and Roses의 'Live And Let Die'이 틀어지길래 깜짝 놀랐다. 이 노래의 원곡이 70년대라는 얘기일 것 같아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진짜 Paul McCartney & Wings의 노래가 원작이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던 거다.  

2014년 2월 11일 화요일

이선영 / 사물판독기 저자 반이정 인터뷰 (ART:MU vol.70)




얼마 전에 미술평론가 반이정씨의 비평집 [사물판독기]가 출간되었다. 이 평론집은 단지 미술평론집을 넘어서, 사물과 예술이라는 두 코드로 예술의 외연을 확장하고 일상문화에 대한 내재적 비평을 행한다.다음호에는 반이정 씨와 비슷한 시기에 미술평론집을 낸 김종길 씨의 인터뷰를 싣는다. (편집자)



책 제목인 ‘사물 판독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예술품이 창작자와 관람자 사이를 매개하는 것처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를 잇는 일반적 사물도 대등한 논평대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제목입니다. <사물판독기>는 <한겨레21>에 2년여 연재된 글을 전부 수정해서 낸 단행본인데요. 연재 당시의 발상도 같았어요. 꼭 미술품이 아니어도 논평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물의 수는 미술품보다 월등히 많죠. 왜냐하면 실제 생에 깊게 관계하는 건 미술품이 아니라 사물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또 사물이란 본래 용도 외에 쓰이면서 이런 저런 뜻하지 않은 사연이 묻게 마련입니다. 한 예로 책에서도 다루는 머그잔은 용량이 큰 용기이지만 어느덧 상투적인 경품의 대명사가 되어서, 설문조사 결과 가장 받기 싫은 크리스마스 선물 목록의 상위권을 차지하게 되었거든요. 비단 머그잔 말고도 오만 사물에 대한 진중한 명상과 순발력 있는 농담의 중간 어딘가를 짚어내는 게 제가 생각한 사물의 판독입니다.

‘사물과 예술 사이’라는 책의 부제에는 예술과 사물의 차이가 전제되어 있으며, 책의 도판에는 사물과 예술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물이 단지 예술작품의 소재적 차원은 아닐 겁니다. 이 책에서 강조되고 있는 예술과 사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한겨레21> 연재 당시에는 제가 쓴 글과 언론사에서 준비한 사물 도판이 나란히 실렸어요. 그런데 사진이 항상 맘에 들질 않아서 책으로 묶을 때 사물의 즉물적인 인상을 잘 포착한 사진으로 교체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죠. 그런데 책 출간을 서너 달 앞두고 도판에 대한 생각을 확 바꿨어요. 사물을 즉물적으로 촬영하기보다 그 사물을 작품에 오브제로 사용한 현대미술 작품을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제야 제가 비평하는 동시대 미술 가운데에 제가 연재 당시 선택한 사물을 작품의 소재나 주제로 쓴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술의 감동은 일종의 정보일 겁니다. 감동이라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올드미디어 즉 유화나 대리석이라는 구 매체를 사용했다면, 요즘 같은 시대에는 흔히 레디메이드라 불리는 뉴미디어가 총출동한다는 건 이제는 상식이 되었잖아요. 일반인이 현대미술을 난해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예술의 감동이 새 매체에 실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일 겁니다. 동시대 미술 작가가 일반적 사물을 통해 작업의 발상을 떠올리듯, 일반 사물을 통해 글의 주제를 떠올린다는 점에서 사물과 예술은 경계를 갖고 있지만 상호 교류하는 관계라고 봅니다.

책의 목차가 6개의 주제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미물예찬, 키치(즘), 공간 읽기, 섹스 섹스 섹스, 색깔론, 미신들이 그것인데, 목차를 편성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한겨레21> 연재 당시 단행본으로 묶을 걸 염두에 두질 않고 사물들을 선택했습니다. 사물을 고른 기준은 이래요. 너무 흔하고 상투적이어서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물이나 현상들을 고른 것이죠. 요컨대 ‘검정 비닐봉지’와 ‘여자아이의 분홍색 옷’이 그렇죠. 매우 흔한 대상과 현상이지만 너무 흔해 빠져서 달리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사물들이잖아요? 예식장 건물도 그렇고요. 국적불명의 디자인이라고 폄하하면서도 결혼식은 꼭 궁궐 같이 생긴 곳에서 거행하는 모순을 보입니다. 사물의 모순적인 성격은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순적인 태도와 심성이 반영된 것으로 봤고, 그런 사물들을 압축적으로 풀어나가면 독자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으리라 믿었어요. 비록 6개의 목차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책에서 다룬 사물은 대부분 제 관점에선 키치가 많습니다. 키치는 모든 사람의 취향을 두루 만족시키려 할 때 출연하는 현상이잖아요. 키치를 6개의 주제로 세분화시킨 셈이에요.

반이정씨는 이미 많은 저서의 저자였는데, 본인의 비평적 지평 중에서 이 책은 어떤 맥락을 가집니까?

단독 저서 간행에는 무심한 비평가로 살아왔습니다. 종래 출간한 책은 대부분 공저인데 미술평론가들과 함께 묶은 책은 고작 한두 권 정도에 그칩니다. <자전거,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는 분야별 자전거 마니아들이 공저자로 참여한 자전거 책이고요, <웃기는 레볼루션-‘무한도전’에 대한 몇 가지 진지한 이야기들>도 분야별 저자들이 스테디셀러 예능방송인 ‘무한도전’을 분석한 공저입니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는 다양한 분야의 저자들이 자신의 집필론을 피력된 책이지만 공저자는 영화평론가 소설가 사회부 기자 변호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미술가는 저만 있었지요. 그 외에 대부분의 공저에서 다른 분야 필자들과 함께 했어요. 말하자면 전문 미술 비평집에는 관심을 두질 않고 살았어요. 이번 신간 <사물 판독기>도 미술책도 아니고 일반 에세이도 아닙니다. 출판사가 책의 성격 때문에 어떤 분야로 분류해야할지 많이 애먹었어요. 독자들은 선명한 장르를 선호하니까요. <사물판독기>는 빙 돌아가지 않고 핵심으로 직진하는 평소 제 성품이 잘 투영된 책입니다. 더구나 연재 당시 원고 분량이 고작 원고지 2.5매 즉 500자였어요. 매주 그 매수를 지켜야 했죠. 짧은 지면에 핵심을 압축하는 2년여의 훈련을 한 셈인데요. 이번에 책으로 내면서 연재 때 보다 분량이 2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짧은 글을 쓸 기회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 점 때문에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핵심만 뽑아내어 압축하는 저의 글쓰기 이력의 중간 결산이 바로 <사물판독기>라고 봅니다.

얼마 전 비슷한 시기에 나온 미술평론가 김종길 씨의 미술비평집에 대해 동시대, 동세대 평론가로서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송은미술대전 심사평을 쓰면서, 장르가 상이한 음악들을 모아놓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어렵듯, 다변화된 현대미술 작품들을 모아놓고 순위를 정하는 것도 힘들다고 심경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같은 세대의 평론가여도 김종길의 비평집에서도 동일한 감정을 느꼈어요. 책 제목 <포스트 민중미술. 샤먼/리얼리즘>에 부제처럼 붙어있는 ‘김종길의 현장비평’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책의 지문 중 상당 분량은 사회 시평에 훨씬 가깝습니다. 사회의 격변을 화두 삼아 실시간 창작으로 옮겨온 미술가들을 다뤘으니 당연한 귀결일 수 있겠지요. 미술계 내에서 개인의 영역이 아닌 연대로서의 미술 창작과 비평을 중시하는 어떤 지점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어요. 그렇지만 연대감과 정의감을 앞세우다보니 “대지에 대한 학살” “참혹한 세계에 경종”처럼 비장미 넘치는 수사법과 고풍스런 문어체가 너무 남발되더군요. 표현의 자유이니 동료 평론가가 간섭할 일은 아닐 테죠. 그렇지만 그런 표현법이 저자가 지향하는 ‘예술의 실천적 전위’나 ‘동시대성’을 정작 가로막는 자충수가 될 수 있어요.

2014년 2월 10일 월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인체회전의 미학 (씨네21)

* <씨네21>(941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90회분. 지난회 연재물처럼 이번도 영상으로 봐야 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상. 트릭킹 선수의 연습 장면
중. 김연아의 비엘만 스핀
하. 비보잉의 회전 기술



비보잉의 다양한 파워 무브는 그 기본을 인체의 회전에 둔다. 등 어깨 머리 손바닥 무릎 따위를 맨바닥에 꽂고 유연한 원형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것이 비보잉 기술의 밑그림이다. 무술의 대련을 차용한 (마샬 아츠) 트릭킹 배틀에서 상대편을 제압하는 하이라이트도 기상천외한 인체 회전을 실패 없이 수행하는 순간에 이뤄진다. 피겨 스케이팅 경기의 얼음 무대 위로 관객의 환호성이 쏟아지는 찰나 또한 회전하는 피겨 선수의 인체에 가속이 붙을 때다. 

BMX 자전거 묘기를 포함한 익스트림 자전거 묘기나 인체 한계를 시험하는 곡예 기술들은 균형 잡힌 회전 기술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극단적인 곡예들이 하나 같이 인체의 회전을 기본으로 탑재하는 이유는 무얼까. 인체 회전에 대중이 열광적 호응을 보내는 이유는 무얼까. 무언가가 회전하는 현상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나, 사람의 육체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은 아니다. 사람의 인체 동선은 일상에서 무수한 직선들과 곡선들로 구성될 뿐, 회전에 최적화 되어 있지 않다. 인체를 회전시킬 일이 일상에서 거의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체의 회전은 탈신체적 사건 또는 탈일상적 현상이다. 예술의 본질이 탈일상화를 통한 해방구인 점을 고려한다면, 인체 회전에 어째서 남다른 환호가 쏟아지는 지 이해할 만도 하다.

나아가 회전은 자연의 섭리를 과학의 언어로 설명할 때 곧잘 동원되는 용어다. 천체의 생리를 설명하는 자전과 공전이나, 팽이의 회전 현상을 설명하는 세차 운동은 모두 논리 정연한 과학의 언어다. 균형을 유지한 채 회전하는 물체가 차가운 기계의 논리와 연결되듯이, 회전은 비인간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체가 회전 묘기를 구사하는 순간 그 인체는 흔한 유기체의 논리가 아니라 정교한 과학 논리의 장으로 진입하는 셈이 된다. 더구나 과학의 섭리에 따라 회전하는 인체는 놀랄 만큼 기계적인 균형미와 기하학적 조형미를 낳는다.

실수 없이 회전 기술이 수행될 때 그 인체는 아마 엄청난 열량 소모를 할 것이다. 그 점이 관객에게 파생적인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열량의 소모는 인체에 누적된 리비도를 해소할 것이다. 관람자는 제 3자의 회전 묘기를 구경하면서, 미해결 상태로 방치 중인 자신의 리비도가 일소되는 대리 만족감을 체험 할 지도 모른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2014년 2월 7일 금요일

0206 로보캅 ★★★★ / 행복한 사전 ★★★★

2월6일(목) 14시. 용산CGV. 호세 파딜라 감독 <로보캅 Robocop>(2014) 시사회.

별점: ★★★★





IMAX관에서 봤다. 아주 오래된 원조 <로보캅>(1987)의 계보 안에 놓인 헐리우드 SF액션물이라는 점 때문에 고만고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시사회 관람을 망설였다. 찬반이 나뉘었다는 해외 평가를 참조하고 나니 궁금해졌다. 관람 소감은 만족스럽다. 앙상한 스토리 라인에 스펙터클과 역동성만 요란한 일반적 SF액션물의 게으른 노정을 걷고 있지 않았고, 깊은 서정과 연민까지 묻어있는 점도 높이 살만하다. 현실과 가상이라는 현대적 화두를 담은 <매트릭스>만큼은 아니어도, 유기체인 인간과 무기체인 기계 사이의 철학적 경계를 사유하는 점도 빼어나다. 이 영화가 설정한 배경이 흔히 차가운 인공도시처럼 도식화된 아주 먼 미래가 아니라, 머지 않은 미래 2028년의 디트로이트인데 방송의 스튜디오나 의료진의 시술 장면에서 적용되는 화려한 스크리닝 전환 기술(허공에 뜬 영상 화면을 손으로 밀어서 전환시키는데, 마치 최근 보편화된 스크린 터칭을 연상시킨다)은 굉장한 스펙터클임에도 과도하게 느껴지지 않고 현실처럼 느껴졌다. 

첨단 과학기술로 전개되는 영화속 이야기는 퍽  복잡한 편이었지만, 의료진이나 방송 해설에서 나오는 화려한 스크린 전환 장면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점도 이 영화의 미덕 같다. 장면 중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수술 직후 로봇 수트로 덮기 직전 형사 알렉스 머피(조엘 킨나만)의 인체를 보여주는 장면인데, 그 모습의 실상을 묘사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이쯤 해서 참는다. <매트릭스>의 허구적 설정이 동시대 관객에서 쉽게 수용될 수 있었던 건 가상현실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 세계적 상황과 맞물려 있을 텐데, 이번 <로보캅> 영화의 설정 역시 기계주의를 더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시대의 변화상 때문에 설득력을 지닌다. 반인 반기계가 된 알렉스 머피 형사에게 지나간 CCTV 영상을 포함한 엄청난 범죄자료들을 업로드 시켜서 범인 검거에 활용하게 만드는 장면 등이 그렇다.

초인적 주인공이지만 사건의 전개 앞에서 쉽게 쉽게 넘어가지 않고 돌발상황을 배치한 점도 맘에 든다. 요컨대 인체의 절반 이상을 기계에 의존하고 정신마저 컴퓨터의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로, 생명 연장의 시술을 결정하겠냐는 의료진의 설득 앞에서 보이는 아내의 심리적인 번민이 그렇다. 포근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가정의 실내 광경에서 핸드 헬드 카메라의 다소 흔들리는 화면마저 일반적 액션물의 표정과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는 100% 로봇 경찰을 제작하여 큰돈을 벌려는 기업체, 거기에 반대하는 정치인, 양쪽으로 반반 나뉜 여론, 그 양쪽을 보완하는 반인 반기계 경찰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반인 반기계화된 현세대의 감성이 영화속 반인 반기계 경찰이라는 대안을 수용하게 만든다. 

생명공학박사 데넷의 부드러운 외모 때문에 그가 게리 올드만이라는 걸 한참 후에 알았다. 악인 역할을 전담한 이 배우가 어느덧 원로가 되었다.  


* 로봇 테크놀로지 기업 옴니코프 회사의 CEO의 집무실 벽에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3점이 걸려있다. 베이컨 외에도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없었지만 현대적 사진 작품도 걸려 있더라. 또 옴니코프 사(?)의 중국 공장에서 여러 분업자들이 분홍색 작업복 차림으로 일을 하는 모습은 Edward Burtynsky의 사진 작품, Deda Chicken Processing Plant – China를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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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6일(목) 16시30분. 용산CGV. 이시이 유야 감독 <행복한 사전 The Great Passage>(2013) 시사회.

별점: ★★★★






새로운 단어 수집에 몰두하는 괴짜들이 새 국어사전을 지어낸다는 이야기이다.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온라인 사전이 보급된 오늘날 실정에서 보면, 시대변화의 속도에 역행하는 불가능한 상황 설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시대는 1995년. 한 출판사에서 전자사전 보급이 확산되는 1995년께 종이로 만든 두툼한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런 엉뚱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재미와 설득력은 이들이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를 수집하는 일'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지식하게 단어 수집을 차근차근 이행하는 남자 주인공 마지메(마츠다 류헤이)는 과도하게 소심한 성품 때문에 단어수집광임에도 정작 의사소통에는 미숙하다. 또 변화된 세대 정서가 만든 무수한 신조어를 담아내자는 편집방향에 불구하고 그것을 하필 사양산업인 종이사전으로 귀결시키는 주인공들의 고집이 연신 재미난 충돌을 만든다. 

그런 허구적 충돌은 여럿 나온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전'이라는 대원칙 하에 갖은 신조어들을 모두 수집하려 들지만, 이들이 세운 사전 편찬의 원칙 중 하나는 '다른 사전들의 정의를 모방하지 않는다'이다. 그런데 이 원칙은 모방이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굳은 현실과 충돌하고 만다. 그런 재미난 좌충우돌이 즐비한데, 21세기 관객은 20세기에서 벌어지는 주인공들의 고군분투가 결국 지는 게임일 수 있음을 알면서 보기 때문에 결론이 궁금해진다.  

신조어를 수집하는 영화 속 성인들의 '단어광'적 캐릭터는 일본 대중문화에 열중한 젊은이의 오타쿠 문화를 장인 정신으로 외길를 걷는 성인의 이야기로 계승한 것처럼 보였다. 한편 새로운 단어 수집이나 단어에 대한 참신한 의미부여에 빠진 주인공들로부터 항시 위키백과로 의미를 얻는 나로서는 큰 공감을 했다. 21세기에 종이 국어사전 출간은 결과적으로 보면 헛성과일 테지만 재미에 빠진 이들의 진한 만남을 주선하는 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컸고, 마지메의 연인인 카구야(미야자키 아오이)를 일식집 요리사로 설정한 것도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는 장치로 배치한 것일 게다. 특히 요즘 자주 느끼는 점은 관계 개선과 회복에 음식 만한 게 없더라. 

어렵게 쓴 연애편지를 나무라면서 편지 내용을 말로 해달라는 카구야의 요구에서 보듯, 실생활에서 우선 순위는 아래와 같다. 이는 텍스트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전업 필자로서 평소 느끼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편지(텍스트) < 구두 대화 < 만남   



* 디지털 혁명이 밀어닥친 90년대 중후반께는 어느덧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고증된 과도기가 되어 무수한 이야기의 수원이 될 것 같다. 그 시기는 현시대 관객에게 격변과 연민과 향수가 뒤엉킨 감정을 동시에 체험하게 할 것이다.  

** 영화의 배경으로 간혹 깔리는 건반 연주가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 선율처럼 느껴저서 보도자료를 살폈는데 히사이시 조의 이름이 없다. 그가 음악감독을 하진 않았나보다. 그런데 너무 닮았음. 

2014년 2월 6일 목요일

잠실창작스튜디오 2014 문화예술 교육강좌 <굿모닝 스튜디오>

* 예비작가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 무료 강좌를 한다. 장소는 잠실창작스튜디오인데 총 12회 강좌 중에 나는 두 차례(2회와 7회)의 강의를 한다. 이 중 2회때는 작년 11월 '예술가 생명연장'(엮인글)와 같은 강연이고, 7회 때는 '9809레슨'의 일부(팝아트+사진)를 편집한 강의이므로, 두 강좌를 이미 들은 수강자라면 신청할 필요는 없다. 



잠실창작스튜디오 2014 문화예술 교육강좌 <굿모닝 스튜디오>

○ 입주예술가의 창작활동과 작가적 성장에 기여하고 시민의 문화예술 소양 함양을 위한 현대미술 오픈강좌
- 장 소 : 잠실창작스튜디오 및 현장학습
- 일 시 : 2014.02.05.(수)부터 3월22일(토)까지 총 12회
- 강 사 : 반이정, 아트놈, 찰스장, 김래환, 니나노난다, 임지빈, 이정훈
- 참가비 : 무료

프로그램
강 사
일 정
1
현장학습
02.05.(수) 11:00
313아트프로젝트
2
반이정
02.07.(금) 14:00
잠실창작스튜디오
교육장 ‘하늘연’
3
이정훈
02.15.(토) 11:00
4
아트놈
02.19.(수) 14:00
5
이정훈
02.22.(토) 11:00
6
니나노난다
03.05.(수) 14:00
7
반이정
03.07.(금) 14:00
8
찰스장
03.08.(토) 11:00
9
임지빈
03.12.(수) 14:00
10
이정훈
03.15.(토) 11:00
11
김래환
03.19.(수) 14:00
12
이정훈
03.22.(토) 11:00


○ 신청방법
- 대 상 : 예술가, 장애예술가 및 일반 시민
- 접수방법 : 서울시창작공간 홈페이지  => 접수하러 가기 
- 선정방법 : 선착순
- 수 강 료 : 무료
- 접수기간 : 마감까지 상시접수
※ 문의 : 02.423-6674~5

2014년 2월 4일 화요일

0203 영화 '르누아르 Renoir' ★☆

2월3일(월) 14시. 왕십리CGV. 질 부르도스 감독 <르누아르 Renoir>(2012) 시사회.

별점: ★☆








내가 매긴 낮은 별점 평가야 어떻건, 먼저 영화 <르누아르>에 대해 국외 비평사이트 '로튼 토마토'의 논평가들 중 72%는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다는 점을 미리 밝혀둬야겠다. 내가 국외에서 긍정적인 평점을 받았다는 점을 확인한 후 시사회 관람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외 언론들이 보도했다는 '굉장한 영화', '빛나는 영화'라는 표현이 보도된 전체 문장 중 어느 정도 비중이었는진 알 수 없으나, <르누아르>가 대체 어떤 포인트를 두고 있는지 통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거장 미술가를 다뤄온 무수한 영화들이 잘못된 선례를 답습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르누아르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풍만한 여성 모델의 관음적 매력에 호소한 영화도 아니고 그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전후로 쏟아진 여성 누드 와상의 표준 포즈를 극중 배우가 서너 차례 반복하는 게 전부다. 

그렇다고 거장으로 추앙되는 인상주의 화가의 남다른 화력에 집중한 영화냐 하면 그 역시 아니다. 르누아르의 인상주의적 미학을 강조하려고 모델에게 "이름 아침에 와야 빛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하거나, "빛을 머금은 피부가 아름답다"고 예찬하는 화가의 대사를 집어넣거나 야외 누드를 통해 외광파의 태도를 드러내거나, 혹은 "세상이 어둡기 때문에 미술은 밝아야 한다고 믿어서 나는 검정색 물감을 쓰지 않는다."는 따위의 르누아르의 대사들은 불필요하게 설명적일 뿐 아니라, 어쩌면 미지의 성역으로 숭앙되는 미술가의 이런 고백들 때문에 비미술인 영화 평자들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게 아닐까 싶은 의심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흔히 짐작하듯 화가와 (누드)모델 사이의 은폐된 예속 관계의 끈끈함을 드러낸 영화 인 것도 아니다. 르누아르의 아들과 여성 모델 사이에 연정으로 '부-자-애인' 삼자 사이에서 느슨한 긴장이 형성되긴 하지만 기억될 정도로 극적 긴장을 만들지 않고 끝난다. 다만 르누아르의 집에서 일하는 여성 하녀들이 누드 모델을 겸하고 있다는 설명 정도가 '화가-누드 모델'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전모다. 이 장면에선 '플레이 보이' 창업자 휴 해프너가 플레이걸들과 맨션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현대적 가십의 먼 원조를 확인하는 느낌이 든다. 대체 영화 <르누아르>의 포인트가 대체 뭘까. 국외에서 '대체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니 믿겨지질 않는다. 급기야 영화가 막바지로 갈수록 너무 따분해서 내가 혹시 러닝타임을 잘못 알고 입장했나 하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영화가 끝나기만을 고대하게 되었다. 



* 르누아르의 아들로 출연하는 빈센트 로티어스 얼굴을 어떤 각도에서 보면 국회의원 송호창이 떠오른다.  
** 극중 인물들의 후일을 설명적인 크레딧으로 요약해준 마지막 장면은 영웅적 실존 인물을 다룬 <잡스>도 반복한 피날레인데, 영화의 매듭을 어떻게 지어야 할 지 감독마저 입장을 못 정해서 내린 미봉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잡스>도 별 ★☆를 줬었다(엮인글). 

2014년 2월 2일 일요일

아디다스 코리아(주)는 반이정을 후원하라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선의의 마음으로 꿋꿋이 애용했다. 
그럼에도 무심한 반응...
그래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외친다. "아디다스 코리아(주)는 반이정을 후원하라! (후원하라! 후원하라!)" 




* 무급여 무후원이라는 불공정 조건 하에 묵묵히 아디다스 코리아(주)를 측면 지원했던 나의 지난 발자취를 모아봤다.



2014년. <씨네21> 인터뷰. 눈에 띠는 현란한 5색 바탕에 아디다스 마크가 선명하게 박힌 재킷은 전국 영화 독자들의 소비 심리를 뒤흔들었으리라 추정 된다. 



2014년 교보북스 인터뷰. '씨네21 인터뷰 재킷'에 뒤지지 않는 현란한 격자무늬형+선명한 아디다스 로고 재킷은 전국에 산재한 불특정 독자층에게 경쟁사 나이키에 비해, 아디다스가 어딘지 지성미와 훨씬 깊은 연관을 맺으리라는 근거없는 암시를 은연중 느끼도록 했으리라 추정한다.  

2014년 아스코. 3월 방영 예정인 아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촬영 중에도, "멘토도 아디다스를 입는구나." 하는 인식을 전국 시청자들에게 심어줘서, 그것이 결국 소비 행각으로 연결되도록 배려한 나의 코디. 눈에 확 띠는 '교보북스 인터뷰 재킷'을 다시 한번 과감하게 선택했다. 


2013년 KBS 라디오. 출연진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라디오 방송에까지 극성맞게 아디다스 재킷을 착용하고 갔다. 제품에 대한 무급여 모델의 진정성을 확인 시키는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귀로만 듣는 청취자가 인터뷰이가 착용한 현란한 5색 재킷의 강렬함 때문에 듣는 중 아디다스를 감지할 지도 모른다는 순수한 신념이 작용했다.  


2013년 도서11번가 인터뷰. '교보북스 인터뷰'와 메시지는  동일.





+ 부록:  2011년 이전.  비공식 홍보의 꾸준한 흔적들



2011년 국제 갤러리 오프닝. 관객이 집중되는 전시회 오프닝 날을 노려 현란한 5색 아디다스 재킷을 착용해서 불특정 관객에게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려 했다. 거봐라.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 촬영해서 보내줬다는 사실이 바로 브랜드의 인지도가 현장에서 높아졌다는 증거이리라.  



2010년 도쿄. 아디다스 판촉의 대상을 내국인에 한정하지 않고, 외국인에게로 확장하려고 가까운 일본을 자비를 들여 방문. 만일 아디다스 코리아(주)의 공식 후원을 받는다면 판촉 지역을 서구로까지 확장할 수 있을 텐데...     


2008년 서울 도심 시위. 마찬가지로 수천 인파가 집결한 2008년 광우병 집회 현장에 눈에 금새 띠는 노란색 아디다스 재킷 차림으로 시위대에 합류했다. 정부에 분노한 시위 군중들에게 아디다스 재킷을 정치적 올바름의 표지인양 인식시키려는 의도.  

ps. 나의 지속적인 홍보 노력에 아디다스 코리아(주)가 보여준 무심함에 내심 분개해서 경쟁사 나이키 신발을 착용함으로써 나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려 했다.  



2008년 서울바이크쇼. 인파 집결지 홍보 효과 + 나이키 가방을 나란히 매서 아디다스의 공식 후원을 촉구하려 한 점에서 위와 동일. 


2007년 유럽여행: 상의, 하의, 신발 모두 아디다스 제품이다. 이 때의 여행기와 사진은 일간지 <한겨레>에 2회 연재된 적이 있는데 연재물 속에 나는 저 복장 그대로 출연한다. 완전 아디다스 홍보한 셈 맞음. 어쩔꺼야. 

2007년 발바리: 한국판 크리티컬 매스인 발바리는 무수한 라이더들이 모여 차선 하나를 차지하고 달리는 집단 라이딩 행사다. 인파가 많이 몰린 저 자리에 나는 상의 하의 신발을 모두 아디다스로 통일하고 나갔다. 대단한 충성도. (아디다스 반성하라) 




* 결론적으로 지난 나의 행보를 확인하고도 맘 편히 무급여 홍보의 혜택을 누린다면 악덕 기업으로 인식 되는 거다.
거듭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외친다.   "아디다스 코리아(주)는 반이정을 후원하라! (후원하라! 후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