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9일 금요일

정수진 '다차원존재의 출현' 리뷰(월간미술 5월)

* 정수진 개인전 '다차원존재의 출현'(2014.0408~0518 갤러리 스케이프)리뷰. <월간미술>(5월)에 실렸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입체·나선형 변증법>이란 제목을 세운 3년 전 개인전에도 허공에 둥둥 떠 있거나 가지런히 나열된 두상의 모습이 자주 보였지만, 정수진의 올해 개인전은 유독 기호로 처리된 얼굴 형상에 대한 각인이 크다. 유사성을 빌미로 도형들이 유기적으로 반복되고 나열된 화면들의 총합. 두뇌를 닮은 호두의 나열(일부는 진짜 두뇌처럼 보인다), 게임 캐릭터 팩맨Pac Man처럼 생긴 도형, 팩맨과 유사한 토끼 두상의 출현, 토끼 두상은 다시금 오리처럼 보인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현실’을 설명하려고 비트겐슈타인이 인용한 오리와 토끼를 나란히 닮은 ‘오리-토끼 환영’ 도상 말이다. 뿐만 아니라 줄넘기 소녀의 줄은 우연히 얼굴 형태를 구성하고 있으며, 마주한 거석 두 개 사이로 얼굴 윤곽이 보이는 듯도 하다. 

이런 얼굴 형상은 ‘오리-토끼 환영’ 공식처럼, 필연적인 결실이기 보다는 보는 사람에 따른 임의적인 발명품에 가깝다. 그래서 화면을 둥둥 떠다니는 두상은 어느 때보다 화면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처럼 느껴졌고, 균질한 화면으로 기억되는 <뇌해>이후 정수진 스타일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최소 단위들로 구현된 화면’이라는 제작 공식에 훨씬 역점을 둔 전시회라고나 할까. 때문에 <뇌해>처럼 화면 속으로 나른한 유영을 시도하게 되기보다는, 작가의 이론 앞에 얼어붙게 될 수도 있겠더라. 경직된 불투명 채색 모자이크로 구성한 인물상의 출연도 그 이론을 따르는 것일 테다.

정수진의 이번 개인전은 신작과 더불어 <부도(符圖)이론>이라는 단행본을 함께 선보인 자리였다. ‘의식 세계를 가시화하는 시각이론’으로 소개된 이 책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의식을 그림을 통해 해독하려는 작가의 오랜 의지를 반영된 이론서다. 지문을 살펴보면 부도가 부호와 그림을 모두 의미하는 점, 신체 감각과 의식을 나란히 대상화시키는 점 등 시각정보 일반에 관해 답을 내줄 이른바 시각이론의 통합모델을 부도이론에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창작의 근간을 이론으로 정립하려한 1세기 전 현대 예술가를 우리는 안다. 칸딘스키. 인간의 정신세계를 피라미드에 빗대어 피라미드의 정점에 도달하는 걸 예술가의 고차원적 임무로 믿은 그는 관련 이론을 세웠고, 그 후로도 화면을 구성하는 기하학적 요소를 분석한 이론서까지 집필했다. 그렇지만 칸딘스키의 이론은 객관적인 과학 이론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전적으로 주관적 사유의 산물’로 평가되기에 칸딘스키의 이론과 그의 작품이 유기적으로 일치한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시각예술을 체계적으로 이론화 하려한 그의 진정성과 학구열이 높게 평가받는 것이다.

연관성 낮은 파편들의 총합처럼 보이는 정수진의 고유한 화면에는 도형과 이와 어울리기 어려운 유기체가 나란히 마주보며 나타난다. 데페이즈망 기법이 자주 동원되는 이유다. 그렇지만 이런 화면이 사물의 우연적 배열이 아닌 부도이론에 입각한 결과라면 감상자의 태도는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부도이론이 전적으로 자의적 발명품은 아니어도 작가가 원하는 주장을 선취해서 구성한 자기이론화의 결실일 공산이 크다. 부도이론이 타당하다면 이론의 확산력은 커지고, 작품과 이론 사이의 유기성 때문에 감상의 질도 확장될 게다. 이론의 타당성이 낮다면 이론의 확산력은 감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되 작가의 창작 동력으로 한정될 게다. 칸딘스키의 경우도 그랬지만. 




2014년 5월 7일 수요일

Hot people 4인과 함께하는 현대미술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의 연속 4회 시민 강좌를 소개합니다.
총 4명의 강사가 한주 씩 맡은 이 강좌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강좌: Hot people 4인과 함께하는 현대미술
시간: 목요일 오후 4시-6시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세마홀 (B1)

■ 1회. 5.22(목)  이건수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모더니즘의 형성과 현대미술의 지형도
■ 2회. 5.29(목)  반이정 (미술평론가)  현대미술의 진짜 초상화, 그리고 미술과 사물 사이
■ 3회. 6.05(목)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현대미술과 아카이브의 충동: 수집과 조사 연구의 방법론
■ 4회. 6.12(목)  홍경한 (미술평론가, 경향 아티클 편집장)  시대미술의 지형과 비평의 쟁점: 인터렉티브와 하이브리디티


강의(5.29)를 마친 직후 밥-술모임 하러 다시 모이자고 지난 블로그 밥-술모임 때 얘기했던 바로 그 강좌입니다.
지금 수강 신청을 받으니, 마감 전에 신청 사이트에 들어가시고 강좌 직후 밥-술 모임 참석할 분은 여기 덧글도 남기세요.


2014년 5월 6일 화요일

5월 3일 4일 5일 6일 연휴

"글쓰기에 평일과 휴일의 구분이 없으니 식당과 가게가 노는 긴 연휴 기간이 내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공저 에세이집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에서 내가 쓴 지문에서 인용해 본다. 
직장인이 환호하는 긴 연휴가 전업 필자에겐 불편한 이유에 관해 트위터로 쓴 적도 있더라(엮인글). 지금은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어서 식당이나 가게의 휴업이 내게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다. 

이번 4일의 연휴(5월1일부터 쉰 직장이라면 6일 연휴)는 기증 받거나 사다 놓고 읽지 않은 채 박아둔 책들을 살피면서 집에서 머물렀다. 틈틈이 기고할 원고를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한가롭게 책장 넘기면서 시간 보냈는데 만족스럽다. 진작 이럴걸.


4일 연휴 동안 독서를 빼고 내가 한 일은 '어떻게 살면 좋을까'에 관해 불연속적으로 생각한 것. 
작년 말에도 '어떻게 살면 좋을까'를 생각했고, 신년초에도 같은 고민을 했고, 이사한 직후에도 그 생각이 머리속을 지배했고, 이번 연휴 중에도 같은 생각을 했다.  



+ 연휴 4일 동안 살핀 책 리스트 

윤정미 <근대 소설> - 전시 도록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 덕수궁관 전시 도록 
프레데릭 페테르스 <푸른 알약> - 만화 
XXX <XXX XXX> - 만화 
조경규 <오무라이스 잼잼 4> - 만화 
Jeffrey Brown <Unlikely> - 만화 
안인수 <배우 수련> - 연기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예수는 신화다> - 종교
조세핀 김 <교실 속 자존감> - 교육


ps. 책촌평
윤정미 <근대 소설> - 전시 도록
작년 12월 윤정미의 개인전 신작을 모은 도록이다. 인상을 짧게 정리하면 국문과 교수와 미술평론가의 글이 도록에 실렸는데, 글 도움 없이 작품을 대하는 편이 낫다. 더구나 윤정미가 작품에 인용한 국내 단편소설의 내용을 끊임없이 끌어와 소설과 사진 사이의 개연성을 직조해내려는 국문과 교수의 비평은 ‘내부를 향해 토해내는 공허하고 무의미한 외침’처럼 읽힐 정도다. 아마 그도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감을 못 잡았을 거다.
윤정미의 신작은 2008년과 2013년 두 해 동안 촬영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사 박물관>이나 <핑크 프로젝트/블루 프로젝트>같은 윤정미의 과거작품이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하는 현상들을 유형적인 볼거리로 묶어서 변별점을 얻은 반면, 과거의 허구적 서사로부터 오늘의 현실 읽으려고 한 이번 시도는 주관적인 울림에 그치기 쉽다. 신작은 공감과 해석 모두에서 여의치 않다.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 덕수궁관 전시 도록
동시대 한국미술의 초석일 수 있는 근대미술은 무척 부실한 토대 위에 서 있다. 그런 점을 확인하고 싶어서 전시를 본 후 전시 도록을 요청해서 받았다. 근대미술의 토대가 부실해도 근근히 유지되는 건 고인이 된 극소수의 스타 작가(이중섭, 박수근, 김기창...) 때문인데, 그들의 후광에 힘입어 근대미술에 관여한 다른 작가들과 1세대 평론가들이 과도한 우대를 받는 걸 테다.
 


프레데릭 페테르스 <푸른 알약> - 만화
사랑을 바라보는 문화적 편차를 느끼게 해주는 만화. 한국에선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어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데 실화를 토대로 했다니 더더욱 놀랄 밖에.
 
XXX <XXX XXX> - 만화
어느 출판사에서 기증도서로 보내준 책인데, 몇 페이지 읽다가 말았다. 그래서 XXX로 익명 표기.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끈 만화라는데 통 매력 지점을 찾을 수 없다. (이번 세월호 사태를 대하는 나의 냉담도 그렇지만, 대중의 기대치와 나의 그것이 차츰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


조경규 <오무라이스 잼잼 4> - 만화
만인의 관심사인 먹거리에 집중하는 필자의 진정성, 선택된 먹거리의 역사를 소개한 자료 조사의 감동, 현재까지 총 4권으로 이어진 먹거리에 대한 필자의 애착이 묻어난 연작 만화.
 
Jeffrey Brown <Unlikely> - 만화
데뷔작 <Clumsy>를 우연히 접한 게 제프 브라운 만화와의 인연이 되어 2번째 책 <Unlikely>를 연전에 구매했다. 하지만 잘 읽게 되진 않아서 여태 방치해 뒀다. 삐뚤삐뚤한 개성적인 데생과 대사마저 구어체 인데다가 육필로 삽입해서 보기 힘든 만화. 제프 브라운의 초기작이 지닌 매력 포인트는 고의적으로 미완성 마감이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적으로 자서전적인 스토리로 만화를 구성하는 점도 독자의 관음증을 높인다. <Unlikely>의 부제는 ‘나는 어떻게 처녀성을 잃었나’로 자신의 첫경험의 과정을 다뤘을 정도.
 



안인수 <배우 수련> - 연기
숨쉬기 소리내기 몸풀기 등 연기자의 기본 트레이닝을 다룬 책인데 수년전 구입했지만 읽지 않고 박아뒀다. 이번에 펴들었지만 역시 읽히지 않아서 중도에 관뒀다. 지문 중에 아래 문장을 보고는 속으로 ‘어 그럼 바로 나네?’했다.
“배우가 되는 데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두 번째도 시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그리고 세 번째도 역시 시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중략)... 이것이야말로 배우수련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45쪽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예수는 신화다> - 종교
2005년 7월 KIDS 온라인 모임의 staire 강민형님 추모 모임 때 제본해서 받은 책. 그런데 무려 9년이나 지나서 책을 펴들었다. 이 책은 동아일보사에서 2002년 발간했으나 개신교 단체들의 강력한 항의에 밀려 출판사가 자진해서 절판 한 금서다. 검색해보니 2009년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 되었다고 한다. 독서를 추천한다. 그리스도교나 예수의 뿌리가 이교도의 종교였음을 역사적 고증한 책. 예수보다 역사적으로 먼저인 이교도 ‘오시리스-디오니소스’를 예수와 비교한 아래 지문을 보자.
“예수는 인간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그의 어머니는 사후에 하늘로 올라가 신적 존재로 추앙되는데, 이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는 12월25일 혹은 1월6일 태어나는데,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그 외 무수히 많은 공통점이 둘 사이에 존재한다.
성경을 은유적으로 풀이하는 영지주의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문자주의 기독교가 후대의 그리스도교를 정통으로 들어선 것은, 내게 큰 화두와 과제를 던진다. 이런 부조리한 사태가 현실화 된 데에는 ‘문자 그대로의 기적’이 현실에서 발생하길 바라는 대중의 허구적 희망이 토대가 되어서 일거다.
 


조세핀 김 <교실 속 자존감> - 교육
“나는 학생의 인생을 변화시킬 영향력을 가진 교사다!” -- 99쪽
이 지문에 고무되어서 후다닥 읽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대학생이 아니라 초중고생을 대하는 교사를 위한 책이다. 하지만 <아트 스타 코리아>에서 도전자 멘토링을 하면서, 도전자의 문제점을 찾아 변화의 가이드라인을 주는데 소질이 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막상 내가 사제지간으로 접하는 미술대학 수업에선 관대한 강사 축에 들지 못했다.
‘학생의 자존감을 키우는 선생’과 ‘그렇지 않은 선생’을 대비시킨 책의 별첨을 살펴보면 나는 둘 모두에 해당되지만 ‘학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선생이 아닌 점’, ‘칭찬에 인색한 점’, ‘학생의 이름을 잘 기억 못하는 점’ 등에서 나는 ‘학생의 자존감을 높이지 못하는 선생’에 속할 것 같다. 앞으로 개선하려고 함.
 

2014년 5월 4일 일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사후사진 Post-mortem photography (씨네21)

* <씨네21>(953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96회분. 염두에 둔 건 아닌데 시국을 응시할 법한 주제를 우연히 다뤘다.



정지된 죽음의 헛됨





상좌. 안드레 세라노, 시체안치소, 1992
상우. 두 구의 시체를 스탠드로 세워 촬영한 빅토리아 시대 사후 사진
하.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 2012



포토샵이 보급되기 전까지 사진의 고유 권한은 진실에 대한 흔들림 없는 증언이었다. “사진은 현실의 해석이기에, 데스마스크처럼 현실을 고스란히 본뜬다.”고 풀이한 수잔 손탁의 해석처럼. 사진이 보급되던 빅토리아 시대에 마치 산 사람처럼 연출한 망자를 촬영한 사후(死後)사진이 유행한다. 촬영 비용이 고가였던 당시, 사후 사진을 계기로 생존한 가족은 먼저 떠난 망자와 나란히 가족사진을 촬영하게 되었다.

사후 사진은 순간을 영원히 붙드는 사진의 권한에 충실한 반면, 망자를 산 사람처럼 연출한 점은 ‘현실을 고스란히 본뜬다’는 사진의 본령에는 배치된다. 사후 사진은 망자에게 평상복을 입혀서 침대에 눕히거나, 의자에 앉히거나 혹은 인체를 지탱하는 스탠드로 시체를 산 사람처럼 직립시켜서 촬영 되었다.

의뢰자의 입장에서 사후 사진은 부패하기 전 인체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잠시 유예시키는 임시방편이었을 것이다. 이는 영생을 희구하는 인류의 오랜 꿈이 투영된 것으로, 자연의 순리를 문명 기술로 저항한 결과이기도 했다. 한편 영생을 보장한다는 종교의 관념적 주문을 믿기 어려웠기에 발명한 인위적인 대안이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사후 사진은 고대 이집트가 고안한 미라 전통의 뉴미디어 버전 쯤 된다.

1920년대 안달루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에도 사후 사진촬영 신이 잠깐 등장한다. 스페인의 영웅적 투우사 안토니오가 사망하자 생존하는 지인들이 죽은 안토니오와 기념사진을 촬영하려고 긴 줄을 서는 장면이다. 죽은 안토니오는 산 사람처럼 투우사 의상을 차려입었지만 경직된 인체나 감은 눈 때문에 부자연스러움을 지울 수 없다. 망자를 산 사람처럼 연출하려고 사후 사진은 망자의 눈을 인위적으로 뜨게 하거나 촬영된 사진 위로 눈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성영화 시대를 재연한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가 고풍스러운 질감을 유지하듯, 사진 발명 초기의 산물인 사후 사진도 양호하지 못한 보존 상태의 고색창연한 흑백 사진이 많아선지, 망자의 퇴색한 인상은 역설적으로 인생무상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경직된 망자의 부자연스런 표정에서 인생무상의 교훈을 전한 바니타스 정물화의 전통이 읽힌다. 사후 사진은 현재의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1세기도 훨씬 전의 선대에 관한 기록이지만 현재의 자기 삶을 되돌아보게 하며 인생무상을 거듭 확인하게 만들기도 한다. 주검을 기록한 충격적인 사진 촬영이 세라노 같은 현대 사진가들에 의해 계승되는 이유는 인생무상을 확인하려는 게 인류의 본성이어서 일거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2014년 5월 2일 금요일

0430 진저앤로사 Ginger & Rosa ★★★★

4월30일(수) 14시. 메가박스 동대문. <진저앤로사 Ginger & Rosa>(2012) 시사회.

별점: ★★★★








전반부와 중반부까지의 진도만 따지면 좋은 평점을 주긴 어려워 보였다. 그럼에도 별점 4개를 준 건 '괜찮은 영화는 초반 20분 안에 대개 결정된다'는 내 오랜 경험칙이 깨진 영화인 점과, 내가 파악하기 힘든 어떤 세대의 정서를 영화가 그려낸 점 때문이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핵버섯 장면과 같은 해(1945년) 런던에서 각기 다른 부모가 낳은 동년배 소녀 둘의 모습을 병치시킨 도입부의 상징성이 영화를 마지막까지 이끈 점도 맘에 들었다. 

어떤 고유한 질감은 느껴지되 그것의 좋고 나쁨을 평론가로서 파악하기 힘든 회화 작품이 있다. 그건 그리는 사람들만 알 수 있 감각질이라고 한다. <진저 앤 로사>는 바로 그런 질감을 그 질감을 잘 아는 여성 감독이 다룬 영화 같았다. 처음에는 같은 날 태어나 천생연분 같은 진저와 로사의 각별한 관계 정도로만 파악이 되었다. 가령 새로 생긴 상대방(로사)의 남친에게 질투심을 품는 친구(진저)의 태도도 사춘기의 치기로 이해되었고, 친아빠와 눈이 맞은 친구를 바라보는 진저의 불안감은 아빠를 빼앗은 친구를 향한 자연스런 앙심 정도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내가 파악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가 소녀시대의 고유한 질감을 파악할 수 없는 위치여서 선입견을 갖고 본 거였다.   

핵무장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시위와 그들이 공유하는 공포감이 핵비무장 시위에 참여하는 미성년 소녀 진저에게도 옮겨가지만, 정작 진저에게 냉전기 강대국이 개발하는 핵무기는 동성친구 로사에 대한 불안한 애정을 표현하는 대리자였던 거다. 정작 무력한 핵무기 반대 시위에 대한 대안으로 버트란드 러셀이 제시한 '직접 행동'조차 사춘기의 연정을 직접 이행하지 못한 진저 자신의 무력감에 대한 자기 비난으로 들린다. 

영화에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자기만을 위한 피신처로 작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어린애 같은 성인인 진저의 아빠 롤랜드의 존재감이다. 피난처 같은 지상낙원으로 소형 보트를 소유한 롤랜드는 아빠라는 호칭보다 롤랜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바라는 급자유주의이자, 슈베르트 곡을 들으면서 홀로 눈물을 흘리는 급로맨티스트다. 강인한 여성이 되길 희망해서 딸 진저의 이름(예명?)을 '아프리카'로 지어줄 만큼 직접 행동에 대한 소신도 강하다. 그림(엄마)과 문학/저널(아빠)과 자유분방한 가풍 속에서 시를 짓는 소녀 주인공인 진저를 안배한 캐릭터 설정은 현대적 문화 예술의 황금기를 통과한 세대(1945년을 영화의 무대로 삼고 있지만, 정작 감독 샐리 포터는 1949년생으로 1960,70년대 대중문화의 수혜를 받고 성장했을 것이다)의 자기연민과 자기고백의 한 방편이었던 것 같다.   




* 친언니가 여배우 다코타 패닝인, 진저 역의 엘르 패닝(1998년생)을 검색 해보니 '떠오르는 틴에이지 여배우'로도 거론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나는 차라리 <디태치먼트>의 사미 가일이 더 끌린다.  
** <진저앤로사>에서 진저의 엄마 역으로 나오는 나탈리와 <디태치먼트>에서 소심한 여교사로 나오는 인물이 동일 인물(크리스티나 헨드릭스)이라는 걸 영화가 다 끝나고서 알았다. 화장이 사람을 이렇게 달리 보이게 하다니. 

2014년 5월 1일 목요일

0415 임영주(레스빠스71) 0418 B painting(175) 이제(조선) 김홍석+다미안 오르테가(국제) 정수진(스케이프) 예스퍼 유스트+intro+구본창(국립현대 서울관) 박이소+김순기(선재) 0424 이정규(고도) 최혜인(담) 여균동(서촌재) 심우현(스페이스15) 아오노(아라리오)

0415(화)
임영주 '삼신뎐' (2014.0408~0420 레스빠스71)

0418(금)
'B painting' (2014.0410~0420 175갤러리)
이제 '온기' (2014.0312~0418 갤러리조선)
김홍석 'Blue hours' (국제갤러리)
다미안 오르테가 : Reading Landscape (국제갤러리)
정수진 '다차원존재의 출현' (2014.0408~05183 갤러리 스케이프)
예스퍼 유스트: 욕망의 풍경 (2014.0419~0803 국립현대 서울관)
Intro (2014.0418~0427 국립현대 서울관)
구본창 아카이브: 18개의 전시(2014.02.11 - 2014.05.31 국립현대 서울관)
박이소 '아무것도 아닌것을 위한 어떤것' (2014.0419~0601 선재)
김순기 '달,어디에,시장을,넘어서,침묵' (2014.0419~0601  선재)

0424(목)
이정규 (2014.0423~0429 고도)
최혜인 '소행성' (2014.0423~0503 담)
여균동 '각인각색(刻人刻色)' (20140321.~0506 서촌재)
심우현 'eros-scape' (2014.0324~0504 스페이스15)
아오노 후미아키 Reincarnation: Memories from the Great Tsunami (2014.0424~0601 아라리오 서울)






임영주(레스빠스71)

불안정감을 전달하는 좌우대칭 구성들. 좌측에 무속巫俗을 빙자한 리비도의 재현이 있다면, 우측에는 좌측을 응시하는 무성애적 관찰이 있다. 


B painting(175)


사뭇 진지해지지 않기로 작정한 회화전. 종잡기 힘든 무채색 색면들로 테두리를 비운(액자의 자리?) 회화 연작을 벽에 기대놓거나 좌우대칭으로 늘어놓은 메타 회화적 설치물이나, 대상의 부분을 골라 집중하되 무언극처럼 보이는 작품이나, 변형캔버스를 작업이나 혹은 감각적인 키치를 모방한 회화 작품들은 작품 하나 하나를 깊이 관찰하게 만들 목적의 전시 같진 않았다. 하다못해 흑백 무채색으로 도판을 수록한 수첩형식의 도록도 그렇고, 출품작가 5명과 작품 사이의 연관성을 애써 강조하지 않은 편성도 그렇다.   



이제(조선)
'온기'라는 전시 제목과는 달리, 푸르스름한 기운이 뽀얗게 대기를 채운 여러 회화들은 불연속적인 이야기들을 스냅사진처럼 늘어놓은 것 같아서, 현대적 일상을 스케치한 느낌. 장소특정적 설치 회화. 



김홍석(국제)

문맥없는 사물의 나열처럼 보이나, 조형원리의 기본에 관해 얘기하는 듯했던 전시. 또 한번 말농담의 달인이자 거짓 언어의 선지자임을 보여줌. 2층에서 구겨진 사물을 측정한 듯한 그림은 마치 스텔스기 처럼 보였다. 어쨌거나. 
무한히 개방된 창작의 자유와 무한히 개방된 해석의 자유. 



정수진(스케이프)
<월간미술>(5월)에 리뷰를 기고할 일이 생겨서 다시 찾은 정수진 개인전. 



예스퍼 유스트(국립현대 서울관)
작품의 비중 가운데 프로젝션 비율과 부피가 가장 컸던 미디어 아트. 공감되진 않았다. 작품명이 '욕망의 풍경'이라나.



intro(국립현대 서울관)

이날 처음 가본 서울관 내부의 또 다른 전시장.


구본창(국립현대 서울관)
이날 처음 가본 서울관 내부의 또 다른 전시장.


박이소(선재)


'단도직입적인 형용사'가 박이소의 브랜드다. 사회의 변화에 무력한 예술에 대한 자조도 그의 브랜드. 그런 자조가 형용사의 단어로 표현된다. 제도 비판과 조롱은 미술계 공동체로부터 깊은 공감을 얻지만, 한번에 강한 필을 받고 공감할때 유효한 박이소의 브랜드를 그의 사후에 반복적으로 되풀이 관람하는 것은 오히려 역설이 된다. 반영웅이었던 자를 영웅으로 만드는 역설. 



김순기(선재)
오프닝인데 사진을 못찍게해서 찍은 단 한장의 작품. 



여균동(서촌재)


처음 가본 대안공간처럼 생긴 서촌재. 영화감독의 개인전. 첫 개인전이 아니라는데, 주변과 교감을 자주 하지 않을때 초심자가 보이는 의욕같은 게 묻어난 개인전. 



심우현(스페이스15)

9809레슨 강연 중에 내가 생각한 2008년 주제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 찾아간 전시회. 작업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만나서 얘기 나누기로 함. 



아오노 후미아키(아라리오 서울)


폐품에서 단서를 찾아 무수한 트랜스포머를 내놓은 일본인 작가의 개인전. 전시를 볼때는 몰랐는데 '쓰나미에 대한 기억'이 전시의 제목이었네. 2011년 일본 쓰나미 때 버려진 물품으로 제작한 건가? 아무튼 제목으로 인해 우연히 19세기 목판화 호쿠사이의 '쓰나미'와 같은 범주 안에 놓이게 생겼다. 


+ 별첨



아트 스펙트럼(리움) 개막식 취소
4월30일(수) 리움의 '아트 스펙트럼' 개막식이 예정 되었으나, 급히 '개막식 취소' 알림 우편을 다시 받았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각종 행사의 도미노 취소의 일환이다. 주변 눈치도 있고해서 많은 전시회들이 개막식을 안하는데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다. 
이해가 안 가는 점은 초대장은 내 이사한 새 주소지(조원동)로 왔는데, 개막식 취소를 알리는 택배 우편은 옛 주소지(미성동)으로 배송 되었다는 것. 어찌 된 일?

2014년 4월 30일 수요일

0429 디태치먼트 Detachment ★★★

4월29일(화) 10시30분.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디태치먼트 Detachment>(2011) 시사회.

별점: ★★★






부모의 보살핌에서 소외된 아이들만 모인 문제아 학교, 그 학교에 임시 발령 받은 비정규직 교사의 아이들을 향한 진정성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래서 일반적 교육현장를 배경으로 삼은 여느 교육 영화들과 대등하게 비교하고 평가하긴 어렵다. 영화 속 설정만 따른다면 문제의 정중앙은 교육 현장이기 보다 문제아를 방치한 문제부모들과 어디서 부터 손봐야 할지 알 수 없는 사회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뒤집어 쓴 <디태치먼트>(제목부터 '무심함')에서 감독이 주력하는 정서는 보살핌인 것 같다. 보살핌의 전도사는 물론 비정규직 교사 헨리 바스(애드리언 브로디 분)인데, 그는 병원에 입원한 치매 노인(자신의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과 교정에서 통제불능인 학생들, 거리를 방황하는 매춘부 소녀를 대등한 애정으로 보살피는 인물. 

교사들이 손을 놓은 문제 학생들에게 접근하는 비정규직 교사 헨리 바스의 남다른 인내력의 동력은 성장 배경에 있다. 그의 유년시절은 보살핌이 결여된 걸로 묘사된다. 영화에서 미성년 매춘부로 출연하는 에리카(사미 게일)에게서 <택시 드라이버>에서 동일한 배역으로 출연한 조디 포스터가 연상되는데, 에리카를 자기 집에서 머물게 배려하는 바스와 그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에리카의 감정 변화를 통해, 중년 남성과 미성년 소녀가 한 시공간에 놓였을 때 쉽게 감지될 이성애적 긴장감이 흐르기 마련인데, 관객이 예상하는 수순을 이야기는 밟지 않는다. 그런 정상적 도약이 발전되지 못하는 것도 바스의 유년시절이 관계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엄마의 짧은 보살핌이 기억 속에 각인된 바스의 유년시절은, 미성년 매춘부에 대한 자신의 배려와 병렬 배치된다. 

교육현장이라는 난문제를 다뤄선지 <디태치먼트>는 이런 저런 영화제에 초대 받거나 수상을 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극중의 인물 간에 빚어지는 오해와 이야기 전개에서 도약이 심할 때가 많다. 또 헨리 바스의 독백만 따로 편집된 화면에서는 교조적인 어조가 너무 강하다. 무엇보다 평점을 주기 어려운 이유는, 영화가 늘어놓은 해답 없는 교육현장과 그런 현장에서 일 개인이 발휘하는 남다른 배려심. 이런 이야기 전개를 통해 연출자가 내놓으려는 메시지를 파악하기 여렵다는 점이다.   


* 미성년 매춘부 에리카의 섹스어필은 가터벨트 스타킹 차림의 체형과 단발머리와 짙은 눈화장으로 급상승한다. 이 미성년 매춘부 역을 맡은 사미 게일은 고작 14살(1996년생) 때 이 배역을 연기했단다. 
** 치기 어린 격정으로 넘쳐나는 교정에서 차분하게 대처하거나, 능청 맞게 사태를 모면하는 교사로 <대부>의 첫째 아들로 출연한 제임스 칸이나 <킬빌>의 마피아 두목으로 나오는 루시 리우가 출연한다. 워낙에 센 배역이 각인시킨 인상 때문에 이 영화에서 그들의 연기를 보면 긴장 어린 대비감을 느낀다. 

2014년 4월 29일 화요일

2014년 4월 일기

​* 정리해놓고 보니 4월 일기는 밥-술모임으로 빼곡. 



2014년 4월 일기


0401(화)
영화 '만신' 관객과의 대화 (21시30분. 아트하우스 모모)

0404(금)
송은아트 밥모임 (12시. CHEF K&R)

0407(월)
씨네21 밥모임 (17시30분. 송스키친)

0408(화)
주행 (조원동-세종대-롯데에비뉴엘-스케이프-홍대)

0409(수)
철거 (10시~. 평창동)

0412(토)
박근혜 생가터 기념촬영 (16시30분경. 대구)

0419(토)
블로그 밥모임 (18시. 상수동)

0422(화)
잠실창작센터 밥모임 (18시45분. 두리반)

0428(월)
강석희 현대음악제 (19시30분. 일신홀)




영화 '만신' 관객과의 대화 (아트하우스 모모) 




영화 '만신' 감독+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날. 이 날이 바로 4월1일 만우절. 객석을 향해 인사를 나누는데 박찬경 감독이 나를 소개하면서 "반이정 문화부 장관"이라고 말했다.  
+ 고심 끝에 구입한 크롬 운동화를 신고 아트하우스 모모로 이동하기 전. 아트하우스 모모에 도착해서 상영 직전 배가 몹시 고파서 ECC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시켜먹은 피자. 




송은아트 밥모임 (CHEF K&R)

'9809레슨 강좌' 종강 기념 밥모임. 유형정(송은), 김수현+노미리(로렌스 제프리스), 한경우


씨네21 밥모임 (송스키친)


미뤄왔던 '씨네21' 술-밥모임. 깔끔하게 1차로 끝냄. 올초 내 인터뷰 기사를 쓴 이주현, 내 담당인 심은하, 그리고 이다혜 기자 참석. 노트북을 들고 밥모임에 온 이주현 기자는 중간에 옆자리로 이동해서 조재현과 전화 인터뷰를 하길래 옆에서 촬영.


주행 (조원동-세종대-롯데에비뉴엘-스케이프-홍대)


수업하고(세종대), 영화보고(롯데 에비뉴엘), 전시보고(갤러리 스케이프), 사람 만나고(홍대). 전 구간 자전거로 이동.


철거 (평창동)


1989년부터 살던 평창동집이 헐리게 되어 철거 당일 찾아가서 그 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정오께 사진가 노순택도 찾아와서 철거 과정을 기록했다. 자세한 경과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박근혜 생가터 기념촬영+김광석길 (대구)


대구예술발전소 멘토링+강연 때문에 대구에서 2박3일을 머무는 동안, 작가 신경철의 안내로 찾아간 김광석길과 박근혜 생가터. 장관 인선의 추억 어린 인연도 있어서 기념 촬영. 지나가는 행인들도 계속 기념촬영 모습을 쳐다봤다.


블로그 밥모임 (상수역)

1차 또바기치킨. 2차 무명집(막걸리집)


잠실창작센터 밥모임 (두리반)

미뤄왔던 '잠실창작센터' 술-밥모임. 


강석희 현대음악제 (일신홀)


유별난 기억이 각인된 한남오거리. 근처 일신홀에서 현대음악제가 있었다. 




+ 별첨 


안동소주. 올초 책분배 모임 때 오신 분이 선물하신 안동소주. 벌써 다 마심. 



원효대교를 건널 때 보이는 재개발 투쟁 배너가 걸린 매우 오래된 아파트. 철거와 재개발 아파트 입주 경험 때문에 저런 곳이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