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4일 화요일

1014 장욱진 미술관 워크샵 + 자전거 편도 이동

작년 11월19일 공모심사(엮인글)를 해주러 처음 자전거를 타고 가본 장욱진 미술관을 오늘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오늘은 입주작가 비평 워크샵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편도 이동했다. 작년에도 2시간이 조금 안 걸렸다고 적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맵으로 대충 직선으로 재면 33km 나오는데 대략 최소한 35km 이상은 되지 싶다. 

자전거는 작년처럼 버디 Birdy.


집(구로디지털단지역) 13:57 →  연신내 14:53 →  지축교(371번 지방국도) 15:05 → 장욱진미술관 15:42 = 편도 1시간45분 소요. 

귀가할 때는 나와 한조로 묶인 입주작가 이시내의 차로 합정역까지 이동한 후,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고 집까지 이동했다. 

2014년 10월 13일 월요일

1013 구로디지털단지역 → 덕성여대 → 서울대

2학기 동안 자주 이동할 거리의 자전거 주행 시간을 오늘 작심하고 재봤다.

집(구로디지털단지역) 12:24 →  덕성여대 13:43 = 편도 1시간19분 소요 
=> 집-덕성여대 사이를 대중교통(버스)으로 이동하면 여지 없이 1시간40분을 초과한다. 


덕성여대 16:05 →  한강대교 남단 17:08 →  상도역 17:12 → 살피재길 정상 17:19 →  서울대정문 17:33  = 편도 1시간28분 소요. 

=> 한강대교 남단부터 서울대정문까지 급경사를 2번씩 만나는 지름길을 택할 때의 소요 시간을 쟀다. = 25분 소요. 
다음 번엔 한강대교 남단부터 장승배기 신림역 도림천길로 가는 우회길을 잴 거다. 보나마나 훨씬 초과하겠지만. 
덕성여대-서울대 사이의 자전거 이동 시간은 1시간28분 소요 되었다. 이번 학기는 같은 요일(월) 서울대 수업을 마치자마자 덕성여대로 이동해야 하기에 시간을 잰 거다.  


2014년 10월 11일 토요일

1011 DAW 신경미학 포럼 후기

10월11일(토). 서울대 미술관 오디토리움에서 있었던  '융합과 혼합에 관하여'라는 포럼 현장.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Innovations Forum: Science Day '융합과 혼합에 관하여' - 신경미학 포럼 (서울대 미술관 오디토리움)

Innovations Forum: Science Day '융합과 혼합에 관하여'라는 포럼을 소개한다. 그 포럼에 패널로 참석 한다.

내일(10월11일. 토) 열리는 포럼의 개요는 아래 일정표 참조.  

'신경미학 Neuroesthetics'에 관한 포럼인데, 신경미학에 관한 한, 2005년께 작은 스터디 모임을 구성해서 공부한 적이 있고, 2006년에는 <월간미술>에 스터디 당시 읽었던 관련 학회지 Journal of Consciousness Studies에서 신경미학에 관해 특집으로 다룬 <Art and the Brain>(Vol. 6 1999)에 관한 서평을 기고한 적도 있다(엮인글). 이후 신경미학에 대한 관심은 진화미학Evolutionary aesthetics으로 옮겨갔고, 다시 관련 책을 읽는 스터디 모임을 2011년께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읽은 Robert L. Solso의 <The Psychology of Art and the Evolution of the Conscious Brain>을 번역하려고 출판사와 계약까지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신경미학이나 진화미학 같은 최신 미학을 향한 내 관심은 차츰 시들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달 갑자기 DAW International에서 이번 포럼 소식을 알리며 참석을 요청해와서 오래 잠들어 먼지 묻은 관심사를 털어냈고, 신경미학/진화미학으로부터 소원해진 이유 등 내 입장을 정리하는 15분짜리 짧은 keynote를 발표할 예정이다.  


* 아래 포럼 일정 속 패널리스트에 내 직함이 '예술 평론가'로 잘못 표기 되어 있다. 


2014년 10월 8일 수요일

물공급 재개@강남apt

10월7일~8일까지 하루 동안 단수 조치된 아파트에 오늘 저녁 물공급이 재개 되었다.
나는 아파트 단수 상태가 해묵은 문제에서 비롯된 거라, 한동안 계속 되리라 내다 봤는데, 하루만에 일단 해결됐다.  
20시를 넘자 단지 전체에 안내 방송이 반복적으로 흘러 나왔다. 
"수도 문제로 회의가 있으니, 주민 여러분은 컨테이너 앞으로 모여주세요."

주민 회의에서 들은 얘기를 대략적인 이해력으로 종합하면.
1. 주민 대표나 동대표가 없어서 아파트의 민의를 모으는 것이 어려움이 있는 모양이다. 어제 내가 경비 아저씨 말을 오해했다는 걸 알았다. 이 아파트가 개별 가구를 선별적으로 단수 하지 못할 만큼 구식 시스템이어서 전체 단지에 물공급이 중단된 게 아니었다. 요금을 장기 체납한 개별 가구에 대한 단수 조치를 내리려면 입주자 대표회의가 법적 권한을 지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였다는 얘기인 것 같다. 
2. 아무튼 수도세와 전기세를 납부하지 않는 소수의 거주자들로 인해 전체 가구가 본의 아닌 피해를 입기 때문에, 입주자 대표회의가 개별 미납 가구에 대한 선별적 단전 단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거주자 서명을 받는 모임이었다. 
3. 오늘 수도국과 담판을 보고 밀린 수도세 체납액 일부를 지불했고, 그래서 '임시적으로' 10월말까지는 단수 조치를 해제했단 얘기 같다. 그래서 10월 이후의 대책을 논의하는 주민 모임이었다. 

어제밤부터 오늘 저녁까지 단수 상황 앞에 내가 취한 조치. 
- 물공급이 되기 전에 괜히 변기를 사용할까봐서 변기 덮개에 주의문을 부착했고. 
- 물사용과 화장실 사용은 도림천의 공공화장실과 롯데리아 건물의 공공화장실을 틈틈이 사용했다.
- (나는 이런 단수 사태가 몇주 간 계속 되리라 봐서) 오는 몇 주동안 어디서 화장실을 해결할 지 구상했다) 



한밤에 단수 생쇼@강남apt

올해 3월22일 입주한 '조원동(신림동 8동) 강남아파트'에 살다보면 다른 곳에서 겪기 힘든 희소 체험의 도전장을 곧잘 만나곤 한다. 10월7일(화)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강남 아파트 전체에 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지난 달 단수를 예고 하는 용지가 입구에 붙은 걸 본 거 같은데, 장기 체납 가구에 대한 경고문이어서 나는 해당 사항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단수가 되자 마자, 아파트 단지 바깥에서 거주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같은 세입자가 아닌 아파트 원주인들이 모여 대책을 궁리하는 것 같았는데, 무슨 말인진 들리지 않았다. 

상황을 살피러 밖에 나와 경비실에 들렀더니, 원주민 가구 중 일부가 상하수도 요금을 장기 체납시켜 단지 전체에 단수처리가 내려졌다는 거다. 나는 "어째서 그 가구에만 단수처리를 하지 않지요?"라고 물어보니, 경비 아저씨는 "이 아파트는 상하수도의 부분 단수가 불가능한 구조다."라는 취지로 답하시더라. 

 11시가 되어 아파트 단지 전체에 물공급이 전면 중단 되자, 받아둔 물도 달리 없어서 동네 슈퍼마켓에서 평소 구입하지도 않는 생수를 한통 사러 나갔다. 끝으로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롯데리아에 붙어있는 공중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비롯한 마지막 취침전 용무를 마치고 방금 귀가했다. 여기 살면 이런 생쇼 체험을 하게 된다. 여길 빨리 떠나라는 신호 같기도 하고. 떠난다. 곧.  

흡사 해외 여행 때 예약한 숙소가 싸구려임을 발견할 때의 심정과 유사하다.  


한밤 단수 생쇼를 가까스로 마쳤는데, 내일부터 아파트 단지에 취해진 수도사업국의 단수 처분이 어떻게 될지 통 알 수 없다.




2014년 10월 7일 화요일

KBS 라디오 문화공감 출연합니다.



KBS-1 라디오 97.3Mhz 신성원의 '문화공감'(MC : 신성원 / 연출 : 임병석 / 작가 : 조은경, 이인주)에
매주 수요일(22:10~22:58)에 '사물의 재발견'이라는 코너의 패널로 고정 출연합니다. 다루는 내용은 작년 말 발간한 제 책 <사물판독기>가 중심이 될 테고,  미술 전시회 소식도 막판에 짧게 다룹니다. 첫 방송은 내일(10월8일 수요일)이라네요.

이 라디오 프로에는 작년 12월말~ 올1월초까지 총 3회, 책소개를 위한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었죠(엮인글).

내일 방송될 첫 방송을 위한 첫 녹음을 오늘 저녁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마치고 왔는데요. 
여의도 KBS본관부터 구로디지털단지역 집까지 자전거로 왕복했는데 편도 19분 걸리네요. 
내일 방송될 첫 방송을 위한 첫 녹음을 오늘 저녁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마치고 왔는데요. 
여의도 KBS본관부터 구로디지털단지역 집까지 자전거로 왕복했는데 편도 19분 걸리네요. 
오늘은 바쁜 하루. 아침까지 밤 새워 작가론 글을 탈고하고, 약간 자고 일어나 치과에서 마지막 브리짓 치료를 받기 위해 은행에서 돈 찾고, 치료를 받고 집에 와서 방송 원고를 손 봐서 송고한 후, 방송사까지 자전거로 왕복한 하루. 이제 치통은 사라지려나.   

* 라디오 코너 고정 출연 EBS-라디오와 TBS-DMB, 그리고 짧았던 SBS-라디오 이후 3번째. 




2014년 10월 6일 월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 감정 과잉의 예술 (씨네21)

 <씨네21>(973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06회.



표현주의, 감정의 해방구 또는 광신
  




상. 상대 선수를 조롱하는 말을 마이크로 전하는 프로레슬링 무대
하. 무수히 생산되는 리얼리티 방송 가운데 ‘정자매 리얼리티’



어딜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데, 대중의 열광적 지지가 모이는 히트상품이 있다.
프로 레슬링이 그렇고, 장르영화에서 배우의 오버 액션이 그렇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연출도 그러하다. 선거철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자들의 정치 약속 또한 그렇다. 이들은 표현주의 미학을 상한선까지 밀어붙인다.

각본에 따라 우승이 예정된 선수는 상대방을 무력화 시키는 피니쉬 무브로 승부를 가른다. 모든 선수들은 승패를 결정짓는 자신만의 피니쉬 무브를 보유하고 있다. 목을 쥐어 내동댕이치는 ‘초크슬램’ 팔꿈치로 가격하는 ‘엘보우’, 높은 곳에서 온몸을 던져 상대를 내리찍는 ‘스완턴밤’ 등. 피니쉬 무브가 시행되는 다소 긴 시간동안 상대 선수는 그저 두 손 놓고 피니쉬 가격을 기다리는 식이다. 겉으론 정신을 잃은 척 눕거나 서있지만 아마 각본일 것이다.

프로레슬링의 표현주의는 곡예에 가까운 격투기로도 부족했던지, 격돌하는 두 선수는 상대에 대한 과장된 증오심을 관객이 죄다 듣도록 마이크로 전달한다. 일테면 격앙된 내면마저 가시화하는 설정인 거다.

리얼리티 방송의 차별성은 연예인의 실제 사생활을 훔쳐보는데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감각적인 대사나 표정연기에 치중한 편집은 이미 리얼리티를 충분히 훼손하며, 출연자 스스로도 오버 액션의 자기주문을 거는 것 같다. 이런 설정은 시청자가 리얼리티 방송을 탓하는 결격사유이긴 고사하고 열광 요인이 된다.

개신교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너저분한 키치 조형물로 장식된 연단 앞 목사의 설교도 비슷하다. 목사의 설교는 쇼맨십과 격앙된 표현의 총체다. 그러나 현장의 신자들은 목사의 설교 한마디 한마디마다 일치된 후렴처럼 아멘 혹은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목사에게 화답한다.

내공이 실린 열연과 감정 과잉은 곧잘 혼동된다. 이런 혼동을 정당화시키는 건 다수 관객의 동조에서 온다.
프로레슬링, 리얼리티 방송, 개신교 설교 방송 등. 이 모두는 얼핏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인기몰이의 비결은 허구적 쇼맨십에 있다. 리얼리티의 훼손이라는 허물도 쇼맨십과 구경거리라는 반대급부와 맞교환된다. 대중이 공정거래로 묵인하는 거다.

 감정 과잉으로 치우친 모든 종류의 표현주의는 유치하고 싸구려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표현주의는 털어내지 못한 격함 감정을 대리 해결하는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즉 프로레슬링, 리얼리티 방송, 개신교 선교 등의 히트 상품은 현실을 우롱하는 집단 최면의 결과이기 보다,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대중이 리얼리티의 거짓을 용인한 결과일 게다. 그럼에도 과한 표현주의적 열광은 항상 위험하다. 이들을 쇼맨십으로 이해 못하고 진지한 현실로 착각하는 소수의 관객은 늘 광신자가 되며, 이들의 굳은 신념은 예외 없이 현실의 품격을 깎는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1006 신림역 + 승리의 룰은 단 하나. 즐기면 된다

얼마 전 블로그에 올린 '뭉크 전시' 티켓 2장을 오늘 모두 나눠줬다.

무료폰 지원자가 세 분 이상 나섰는데, 한결같이 표는 필요없다 하셔서 표 2장을 블로그 방문자와, 2012년 제자에게 나눠줬다. 신림역 근처로 이사왔다고 연락온 예전 제자를 신림역 6번 출구 앞에서 만났다. 만난 자리에서 나는 표를 건넸고, 종전에 내가 비디오편집 문제로 빌려준 진기종 작가의 DVD를 제자로부터 돌려 받았았다. 이 제자는 2012년 '푸샵 1주기 촬영본 편집'(엮인글)을 시작으로 교재용으로 삼을 영상물의 편집을 종종 도와준 친구다. 

내 치아 상태 때문에 저녁을 같이 먹지 못하고 물물교환만 하고 헤어진 후, 버스 정류장에서 6512번을 기다리는데, NIKE 광고가 눈에 들어와서 한장 찍었다. '승리의 룰은 단 하나. 즐기면 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상업광고로 제대로 뽑은 구호 같았다.  




 

2014년 10월 5일 일요일

후각/미각 상실의 모와 도 (서강대 학보 624호)

* 현재 진행 중인 불완전한 후각/미각 체험에 관해 썼다. 서강대학교 <서강학보>(624호)에 수록 됐다.  
지난 9월26일 종합병원의 비기능 검사 결과 정상 판정을 받아서, 괜한 우려였나보다 하는 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엮인글) 여태 불완전한 후각/미각이 회복되질 않아서 나날이 근심이 크다. 다시 내원하려고 한다. 



승인 2014.10.01  00:13:16
반이정(미술 평론가)  



성미가 급하다. 예상한 결과가 신속하게 도출되지 않으면 초조와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 호오도 분명하여 주어진 상황을 모 아니면 도로 판단하는 때도 많다. 작품 비평에 빗댄다면 어중간한 미적인 승부수를 던지는 예술작품에 평자로서 마음을 뺏긴 적이 적다. 논평 방식마저 우회로가 아닌 직행로를 선호한다. 이런 단도직입적인 의사표현법은 비평에 강인한 색을 입힐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성품에는 맹점도 많다. 순조로운 흐름을 방해하는 예상 밖의 장애물 앞에서 나는 때로 허둥댄다. 장애물에 미숙하게 대처하다가 짜증이 나서 다 된 일을 죄다 뒤집어엎은 예도 많다. 얼핏 진보적인 성향 같지만, 돌발 변수에 유독 적대적인 태도는 내 안에 똬리 튼 보수성향의 증거인 듯하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사태의 흥망성쇠에 쉽게 일희일비하고, 급기야 자포자기 상태로까지 나를 몰아세울 때가 있다.

이런 다혈질 성미에 외부의 도전이 가해진 건 4년 전이다. 나는 사고로 뇌를 다쳐 현실을 비현실처럼 느끼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겉으론 멀쩡해도 불편과 불안이 지배하는 내면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막막한 하루하루가 쌓여갔다. 그런 날이 한 달, 두 달, 그러다가 1년, 2년이 지났지만 차도는 답답할 만큼 더뎠다. 나를 가둔 비현실의 감옥에서 탈출할 방도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성미 급한 내가 강제로 입 다물고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회복 속도는 초저속으로 진행 됐으나, 결국 지금의 나는 거의 불편 없이 지내고 있다. 다만 원상복귀가 안 됐을 뿐. 변화된 현실에 익숙해지는 게 치유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경우는 달라도 겉으론 멀쩡한데 표현 못 할 불편을 홀로 느끼는 또 다른 체험을 지금 하고 있다. 후각과 미각이 실종된 지 한 달쯤 돼간다. 감기의 합병증으로 따라온 급성 부비동염 때문에 후각과 미각이 백지에 가깝게 마비됐다. 감각이 마비된 초기 증상은 병원치료를 거치면서 서서히 회복됐지만, 불완전한 후각과 미각 체험은 4년 전 사고를 상기시켰다. 겉으로 표시 나지 않고 당사자만 아는 주관적인 불편 말이다.

그래도 후각과 미각의 실종은 4년 전과는 다른 질감의 패배감을 안겼다. 식욕이라는 본능적 쾌락이 불완전하게 충족되기 때문에 전에 없던 상실감을 맛보고 있다. 미감이 사라진들 주린 배야 채워지지만, 음식의 고유한 맛이 불완전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초라하고 무력한 심경에 빠진다. 후각과 미각이 사라진 초반에 나는 언제고 회복되리라는 당연한 전제 하에 무감각의 날을 짜증으로 대했다. 그러나 후각과 미각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주변의 경험담을 더러 전해 듣자 두려워졌다. 내 후각과 미각은 정상으로 회복될까? 알 수 없다.

 미각이라는 원초적 쾌락이 제약되자 사는 게 무의미해졌고 자포자기 심정에까지 이르렀다. 몇 달이 소요돼도 괜찮으니 원래의 미각만 회복되길 바라는 겸허한 단계에 도달했다. 아니 최악의 경우를 더 자주 고려한다. 내 손으로 어찌할 바 없는 신상 변화는 결국에는 적응하게 되더라는 4년 전 경험 때문인가 보다.

이 글을 쓰기 직전 마지막 내원한 병원 진단에 따르면 처방된 약물을 모두 복용한 후에도 유의미한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그때는 종합병원에 가보란다. 그런데 미각이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이게 유의미한 개선인지 아닌지 당사자인 나도 잘 모르겠다. 종합병원의 내원 결과를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예측해봤다. 후각 상실로 진단하는 ‘모’의 경우, 본능을 자발적으로 제한하는 수도사와 승려의 사례를 떠올리며 불완전한 후각과 미각에 익숙해진 자신을 격려할 것이다. 수도사와 승려처럼 다채로운 본능을 포기하는 대가로 그동안 눈 밖에 두었던 대안적 즐거움을 발견하라는 선택압(selective pressure)이 작동할지도 모른다. 

새 삶을 설계하느라 가슴이 벅찰지도 모른다. 약물치료로 회복될 경미한 질병이라 진단하는 ‘도’의 경우에는 팽팽했던 긴장이 풀리고 안도가 찾아올 것이다. 미각의 고마움을 잊은 채 또다시 느슨한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여기서 후각 상실까진 아니어도 손상이 커서 꾸준한 관리로 느리게 회복되리라는 모도 아니고 도도 아닌 진단이 있을 수 있다. 분명히 제한된 선택에 집중하는 ‘모 아니면 도’의 세계관은 포기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그렇지만 삶의 위기는 모도 아니고 도도 아닌 상황인 때가 많고, 이를 통한 해법들로 위기에서 헤어날 때도 많다. 나는 유연하고 관대해지고 싶다. 후각과 미각의 상실을 체험하는 지금이 그 기회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