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7일 토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표현의 자유와 취향의 문제 (씨네21)

* <씨네21>(991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15회.  '샤를리 에브도' 사건과, 자신이 지지하는 스타의 출연 영화를 평가절하한 글을 올리자 내 블로그에 몰려와서 항의했던 팬덤을 겪은 후 떠올린 주제.



취향이라는 두 개의 수평선



상좌. 샤를리 에브도 테러 직후의 테러리스트의 모습 2015
상우. 무명시절부터 크레용팝을 지지한 팬덤 팝저씨를 차용한 정연두의 <크레용팝 스페셜> 2014
하. 나는 샤를리다’ 시위 2015


자신의 취향과 신념에 대한 비난을 덤덤히 수용하는 사람은 전무에 가깝다특히 공개적인 비판 앞에선 더더욱명백한 잘못마저 당사자가 부인할 때는공개 비판의 모욕감 너머로 동의하기 힘든 불편한 직감이 있어서 일거다취향과 신념이 곧 자기의 존립근거여서가 아닐까존립근거인 취향과 신념이 평가절하 될 때대응 방식은 다양하게 표출된다그 중 극단적으로 대처하는 극소수의 저항은 세간의 주목을 끌 만큼 충격적 사건으로 귀결된다.

대중 스타를 향한 팬덤도 그 중 하나연모하는 스타를 향한 팬덤의 일편단심은 스타가 관여한 결과물에 사재기로 응답하거나,다른 라이벌 스타의 흠집을 열심히 잡아내 비교우위를 주장하거나스타를 비판한 기사 아래로 인신공격성 댓글 폭탄을 투하하는 식으로 표출된다스타를 향한 극성맞은 지지자인 광빠와극성맞은 비난자인 광까는 이렇게 탄생한다스타에 대한 팬덤의 염원을 사재기와 광빠처럼 표출시키는 동력은 스타의 성공 자기 존립의 정당화라는 굳은 소신에서 오는 걸 거다소신의 문제란 이처럼 간단하지 않다.

아이콘을 향한 지지자의 맹목성은 대중 스타와 팬덤의 관계를 넘어종교와 신자 사이의 관계에도 반복된다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팬덤의 종교 버전 쯤 될 거다샤를리 에브도 만평이 이슬람주의를 명예 살인했다면이슬람주의는 인명살상으로 대응했다샤를리 에브도 테러와 나는 샤를리다’ 시위는 표현의 자유신념의 존엄성그리고 비평의 기능과 같은 상충하는 요소들이 뒤엉킨 사건이다때문에 이 시각에선 이게 맞고저 시각에선 저게 맞아 보인다.

요컨대 만연한 성차별과 독단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계율에 지배받는 종교를 비판할 표현의 자유란 있다이슬람의 이데올로기가 무슬림 사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그 사회 밖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표현의 자유는 더욱 정당화된다그럼에도 자기 존립근거인 신앙의 명예 살인을 목격한 신자라면 인명 살상에 준하는 마음의 상처를 받을게다더구나 도발 가능성이 높은 집단에 대한 조롱과 비난조의 풍자가 예고된 재앙의 도화선이었다는 지적 역시 틀리지 않다그럼에도 비평의 기능을 생각해보자.

비평은 상대의 마음을 돌려놓거나 견제하는 기능이 원래 낮은 작업이다비판의 수위가 높건 낮건 말이다요컨대 이슬람을 온건하게 비판한들 그들의 신앙심이 흔들릴 리 없고어떤 스타의 연기력을 온건하게 비판한들 팬덤의 열정이 식을 리 만무하다.그렇다면 비평은 대체 무슨 기능을 할까비평이란 문제점에 동의하는 다수에게 공감의 쾌감을 선사하고 지지를 돌려받아비평의 내용을 다수의 견해로 만드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와 맹목적인 팬덤 현상에옳고 그름을 선명하게 나누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그럼에도 비평이 업인 이로서에브도의 과장된 풍자나 특정 스타의 자질을 비판하는 기사가 상대적으로 정당하다는 직감이 내게 있다테러리스트와 광빠도 그들이 정당하다는 절대적인 직감이 있을 게다만날 수 없는 수평선 둘.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거봐, 아직은 괜찮나봐.

2월4일(수) 새벽에 깨어 이른 오전 강원도 양양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러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강원도 양양 소재의 일현미술관에서 심사를 해주려고 원래 잡힌 선약도 하루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평소 고속버스터미널에 갈 일이 없다보니 버스 표 구매에 대한 상황을 잘 몰라서,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 예매를 전날 해두고 갔다. 매표소에 가서 예약 당시 사용한 신용카드를 제시하고 계산을 하면 예약한 좌석표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내가 매표소에 예약 때 사용한 카드 건냈다. 그 카드는 출강 대학 중 한곳에서 만든 교직원 카드라 대학교표와 내 얼굴사진이 박혀있다. 매표소 직원과 나눈 짧은 대화는 이랬다. 

직원: (카드를 보더니) "대학생이죠? 학생 할인 받으실 거죠?" 
나: (엉겁결에) "아... 예...뭐" 
직원: "아...저런. 양양 가는 버스는 학생 할인이 고등학생까지만 적용 되네요. 대학생 할인이 없네요..." 
나: "예. 괜찮아요." (힛) 


티켓 학생 할인 받을 의사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날 보고 대학생으로 오인하다니... 피부가 예전 같지 않아서 전에 없이 나이값도 생각하고 내 처지에 대해 재고하는 중이었는데...   거봐, 아직 괜찮은거야.


2015년 2월 4일 수요일

0203 주피터 어센딩 ★★ / 꿈보다 해몽 ★★☆


2월3일(화) 10시30분. 왕십리CGV  <Jupiter Ascending>(2015) 시사회.

별점: 





영화사의 전설이 되어버린 <매트릭스> 시리즈의 연출자의 이름이 워쇼스키 형제가 아닌 줄 알았다. 시사회 끝나고 장외에서 만난 아는 일간지 기자랑 대화를 하다가, 방금 전 보고 나온 <주피터 어센딩>을 연출한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연출한  '바로 그 워쇼스키 형제'가 맞다는 사실을 알고 입이 다물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를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담? 무모한 시각효과를 최대치로 구현하기 위해서 러닝타임이 온통 터무니 없는 이야기전개로 점철 되어 있다.  입장객의 머리수로 승부가 나는 대중 영화의 생리를 내가 그간 너무 간과했던걸까? 당초 기대할 수 없던 예술적 완성도를 대중영화에서 기대했던 거였나 싶었다. <주피터 어센딩>의 감독/각본/제작이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였다는 사실은 영화를 다 본 후로도오래동안 머리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화두를 남겼다. 

<매트릭스>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때가 20세기(1999년)였다는 사실, 또 당시 영화를 보는 평균적인 안목을 <매트릭스>가 상당 수준 끌어 올렸다는 사실, 그리고 21세기인 현재에 그 당시에 받은 감동의 밀도를 충족시키는 건 기술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 이 모두를 이해하고 봐준다 쳐도,,,,, <주피터 어센딩>은 해도 너무 했다.  허술한 구성, 실종된 반전, 예측가능한 해피엔딩, 따라서 긴장감 없는 전개, 스타덤에 기댄 안일한 전체 스토리, 시각효과와 화면의 규모 때문에 손쉽게 포기되는 이야기의 디테일(개연성). 이런 총체적인 결함을 눈감고, 스타덤과 시각효과를 위해 작성된 이런 시나리오를 동시대 관객이 수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참담하게 느껴졌다(흥행 여부야 두고봐야겠지만). 


* 스타 배우들이 글로 적힌 시나리오만 읽고선, 스크린 위에 황당무계한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걸 사전에 파악할 수 없었던걸까?  아니면 워쇼스키라는 브랜드에 함께 가세하려는 투자 욕망이 커서였을까? '발렘' 역을 맡은 에디 레드메인이 어색하게 쉰목소리로 악당 시늉을 하는 장면은 안스럽다 못해 웃기기까지 하다.  

**  <주피터 어센딩>에는 총체적인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불패의 구원자가 있다. 한치의 긴장감도 없이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이런 말도 안되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중이 열광하는 기현상을 보노라면, 초월적인 절대자를 설정한 비이성적인 종교들에 대중 신자들이 열광하는 이해하기 힘든 기현상이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이런 불가능한 설정에 기대는 속성이 어떻게 진화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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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광국
출연
유준상, 신동미, 김강현
개봉
2014 대한민국

2월3일(화) 14시. 롯데 에비뉴엘  <꿈보다 해몽 A Matter of Interpretation>(2014) 시사회.

별점: ★☆ 





어쩐지 홍상수필이 났다. 이야기 전개, 화면, 특정한 장소성, 반복되는 모티프(2월7일, 흰차, 성곽, 연탄+소주+유서, 데자뷰, 아이의 벽낙서), 섭외된 배우까지. 나중에 연출자의 이력을 찾아보니, 홍상수 영화에 연출부나 조연출이나 조감독으로 무려 4편이나 관여한 적이 있더라. 한데 극중 주인공들이 연극배우여서인 탓도 있지만,  관객이 들지 않는 연극판의 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싱겁다는 직감이 들었고, 끝까지 그랬다. 손쉽게 쓰인 수미쌍관 구성도 진부하게 느껴진다. 


* 연극 배우 출신 출연진들이 세들어 사는 집 아이의 그림 솜씨에 감탄하고, 부모의 몰이해에 개탄하는 바로 그 아이의 벽낙서 역시 매력이 없이 그저 평범할 뿐이다. 이런 디테일조차 영화에서 반복되는 모티브였다면 신경 좀 썼으면 좋았을 거 같다. 

* 배역이 날아간 배우인 애인을 격려하면서, 그 남친이 했던 말 "(너만 좋으면 되는 거잖아) 다른 사람들이 봐주는 게 그렇게 중요해?"  ==> 당연히 중요하지. 남들 보라고 하는 게 연기인데. 

* 영화를 본 후 예술장르로서의 연극에 대한 내 입장이 정리되었다. 

2015년 2월 3일 화요일

치통 3일+ 이후

치통의 공포에 3일 동안 꼼짝 없이 붙잡혀 보낸 그 다음날. 오늘 오후 금천구에 위치한 내가 가는 바로 그 치과에 다녀왔다. 현재 치통은 사라졌다.  치아 내부가 굉장히 상했다고 한다. 치료 시간은 짧았는데, 치료를 마치고 내가 "신경치료는 안 하나요?"라고 물었더니만 "아까 한게 신경치료였어요. 신경까지 너무 심하게 상해서 마취주사를 할 필요가 없었어요."라는 답을 들었다. 그동안 다른 치과에서 x-ray검진에서 이정도 심하게 상했는데 발견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자세히 이해하진 못했다. 

'치통 3일+'동안 교훈도 얻었다. 
- 병원이 쉬는 토일을 끼고 치통의 강도가 높아져서 통증을 온전히 참아야만 했다는 점. 
- 다름 아닌 치통을 느끼는 당사자임에도 내가 통증 치아를 오인했다는 점. 
- 통증 부위에 대한 오인은 내 선입견(나는 브릿지한 부위일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때문이었다는 점. 
- 내가 의심했던 브릿지 부위가 아니라 어금니란 걸 알게되자 놀랍게도 통증이 한결 견딜만 해졌다는 점.  


- 일체유심조 


2015년 2월 1일 일요일

악몽 3일 +

몸과 마음이 오로지 통증에 집중된 3일+를 보낸 터라, 치통에 사로잡힌 3일+를 기록으로 남김 엄두조차 못냈다. 
그러던 중 오늘 작년 요통 때 처방 받은 효험이 센 진통제가 남은 걸 발견해서 먹고 짧은 사연을 남기기로 한다.  

지난 1월27일 늦은 저녁부터 치통이 느껴졌는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잦아들지 않았다.  치통 부위가 작년 신림동 강남아파트 살던 시절, 친구 소개로 방문한 특이한 치과에서 치료한 '브릿지' 부분이었다(엮인글). 그래서 1월30일 낮에 금천구의 그 치과엘 갔는데, 의사 소견은 다음과 같았다.  신경을 살리기 위해서 신경치료를 하지 않고 브릿지로 덮었는데, 좀 더 지켜보면서 신경을 살리는 방향으로 하자는 거다. 씹지 않고 가만 있어도 너무 아팠지만 특이한 치과와 그 의사의 남다른 소신을 믿기로 하고 약처방만 받고 병원에서 나왔다. 약이 치통을 잡아줄 거라 믿었던 거다. 근데 왠걸.

병원에 간 30일(금), 그리고 31일(토), 1일(일)까지 연 3일 내내 통증으로 찡그린 표정을 짓고 보내는 중이다.  유달리 오늘 통증이 심하다. 머리 속에선 그냥 병원에 갔던 금요일 신경치료를 강하게 요청할 걸하는 후회도 밀려들었다. 그런데... 방금 놀라운 사실 발견. 통증을 일으킨 치아가 브릿지한 부분이 아니라 바로 옆에 어금니라는 걸 방금 깨달았다. 이런 어처구니 없을 때가 있나.... 하도 인접해 있어서 문제의 소지가 있던 브릿지 부분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거다. 

부실한 치아는 집안 내력이다. 최근 읽은 <치과의 비밀>에도 건강한 치아와 부실한 치아는 집안 내력이라는 지문이 나온다. 건강한 치아는 관리를 거의 하지 않아도 썩지 않는 반면, 나처럼 부지런히 양치질을 하는 부실한 치아 소유자는 치과를 제2의 고향으로 섬겨야 한다. 






치과에 방문한 30일. 2008년 제자한테 연락이 와서 수년 만에 만나 한남동 일대 전시장 2곳의 오프닝을 함께 다녔다. 그 중 윌링앤딜링에서 열린 이정엽의 개인전에 '충치제거'라는 작품을 보고 감정이입이 되어 촬영했다.  

2015년 1월 30일 금요일

0129 세비야의 이발사


1월29(목) 16시30분. 롯데시네마 건대 <세비야의 이발사 THE BARBER OF SEVILLE>(2014) 시사회.

별점: ★☆ 





연전에 극장에서 봤던 뉴욕 메트 오페라 녹화(The Met: Live in HD 엮인글)에 이은 또 다른 오페라 공연의 극장 상영작이다. 이전에 록그룹 U2의 라이브를 영화로 제작한 작품을 본 적이 있고, 메탈리카의 라이브를 극영화로 편성한 '스루 더 네버'도 있었다. 작년 말에는 빌리 엘리어트의 뮤지컬 라이브를 영화로 제작한 걸 본 적이 있다. 희극배우 채플린을 현대무용으로 다룬 '모던 발레 채플린'마저 영화로 제작되어 스크린에 올려졌다.  

이번에는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라이브를 녹화한 영화를 봤다. 영화 상영 직전에 수입/배급사 대표로 보이는 분이 무대에 올라 근래 늘고 있는 이런 부류의 라이브 영화들을 '이벤트 시네마'라고 부른다고 설명하더라. 영화는 실제 오페라 공연처럼 중간에 15분 간 인터미션이 있었다. 

연기와 성악이 집중되는 정중앙 건물이 회전이 인상적인 무대장치인데, 건물의 회전에 맞춰 출연진들이 이동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이 장면이 가장 역동적이다. 고전적 스토리텔링이 대개 그렇듯 남녀의 연정과 오해와 질투를 주된 테마로 삼고 있는데, 말도 안되는 변장으로 상대방을 속이는 수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도 고전 답고, 관객은 볼 수 없는 메모지에 이야기의 실마리를 담고 있다는 설정도 고전답다.  위기를 탈출시킬 만한 창의력이 돈만 주면 살 수 있다는 발상이나, 높은 신분의 남성을 향한 선망을 드러내는 시놉시스나, 해피엔딩을 결혼으로 귀결시키는 사랑 이야기 따위는 세속주의에 대한 그 당시의 진솔함의 표현 같기도 했다.

집에선 오페라를 대사에 무지한 채로 듣곤 하는데, 자막이 있는 이런 영상을 한번 보거나 자막이 나오는 실황 공연을 보고나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증진된다.  어제 영화 <세비야의 이발사> 시사회를 보러가기 직전에, 전체의 선율을 익혀두려고 집에 있을 때 '세비야의 이발사'를 2번 정도 듣고 나왔다. Teatro Regio Di Parma의 2005년 라이브와 Teatro alla Scala Milano의 1999년 라이브인데 전부 유튜브에 풀 영상이 올려져 있다. 


* 배우의 캐릭터와 미모가 미디어 작품에서 갖는 비중을 새삼 절감했다.

* 흔히 수입/배급사 시사회는 참관인의 모습에서 익숙함이 느껴지곤 하는데, <세비야의 이발사>는 일반 시사회 같이 평범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대체 누굴 초대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사를 찾아보니 클래식 동호회 회원들도 일부 초대한 모양이다. 내가 앉은 열에 왠 중년 남성은 극장안에서 촬영할 때 '찰칵'소리가 나는 핸폰 카메라로 스크린을 태연하게 무수히 촬영하고 앉아있었다.  인터미션 때 내가 주의를 줘서 2막부터는 그런 황당한 일은 다시는 없었지만.  시사회를 자주 보러다니다보니 별 해괴한 관객도 만난다. 

2015년 1월 29일 목요일

0127 망원동 인공위성 ★★★

1월27일(수) 16시30분. 왕십리CGV  <망원동 인공위성 The Basement Satellite>(2013) 시사회.

별점:  





시사회 입장에 앞서 러닝 타임이 108분인 걸 보고, 분량이 왜 이렇게 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송호준이 개인인공위성을 2013년 발사하기까지의 여정을 줄곧 추적하는 시나리오를 영화를 통해 확인한 후에야 그 긴 분량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편집이 긴 건 맞아보인다. 왠고하니 개인위성을 쏘아올리는 개괄적인 여정이라면 세간에 널리 알려짙 터라, 내러티브를 동어반복해서 확인하는 기분이 들기 쉽다. 내가 시사회에 함께 데려간 지인에게 영화를 다 본 후에 소감을 물어보니까, '솔직히 말하면, 너무 지루했어요'라고 털어놓더라. 나는 그렇진 않았는데...  

시사회장에서 받은 두툼한 보도자료를 보니, 송호준이 2013년 최종 발사에 이르기까지, 2008년 OSSI 홈피를 만들어 개인인공위성 발사에 착수했고, 2010년 1/n라는 잡지에 개인인공위성 프로젝트 관련 기사가 소개되어, 티셔츠 1만장을 팔아 발사비용 1억원을 충당한다는 내용도 공개했단다. 그 후 발사 지연과 티셔츠 판매 부진에 따른 우여곡절을 겪고 2013년 결국 발사하게 된다. 

흔히 인공위성하면 우주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안테나가 달린 비행체를 떠올리기 십상이므로, 한 손에 들리는 송호준의 '큐브형' 개인인공위성과 헷갈리면 안될 게다. 

<망원동 인공위성>은 '개인인공위성 발사'와 관련해서 세간에 널리 알려진 스토리를 영화로 재구성한 점에서, 참신한 뒷얘기를 기대할 순 없다. 영화가 포스터나 보도자료에 자주 인용한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영화이긴 어렵다. 왜냐하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5년여의 준비를 거쳐 최종 발사에 이르는 주인공의 스토리는 보통 사람에게 '반전의 현실감'을 줘야할 텐데 그렇지 않다. 개인인공위성 프로젝트 발상은 '비현실적인 공상을 현실로 이행하는 태도'에 높은 점수를 주는 예술계의 정서에는 호소할 여지가 크고, '남다른 기행'을 수집하는 매스미디어에도 큰 호소력을 지닐 테지만, '꿈가 희망을 찾는 좌절한 사람들'에게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페이소스를 주긴 어렵다. 요컨대 대단치 않아 보이는 티셔츠를 1만장이나 팔아서, 발사비용을 충당하겠다는 발상도 꿈과 희망을 기대하는 관객에겐 호소력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요소여서, 극적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이런 크레딧이 뜬다. "탑재된 송호준의 인공위성은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온전히 제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위성을 탑재하진 못한 셈. 이런 공학적 불완전성은 이 영화가 '꿈 과 희망'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어느 남다른 기인에 대한 전기로 봐야 한다. 영화 속에 삽입된 어느 방송사와 송호준의 인터뷰 음성을 들어보면, "쏘아올린 인공위성은 어떤 일을 수행하게 되나요?"라고 묻는 인터뷰어의 질문이 나오는데, 뒤에 나와야할 답변이 영상에서 사라졌다. 예술계에서 송호준 개인을 평가할 때 전례없는 기행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기 때문에, 인공위선의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는 공학적 실패는 문제가 아닐 게다. 그래서 송호준을 바라보는 비평적 태도와, 그를 다룬 다큐영화 <망원동 인공위성>에 대한 평가는 구분될 수 밖에 없다. 

영화의 긴 러닝 타임 내내 스크린 위에 주인공 송호준의 모습만 집중적으로 편집한 것도 패착이라고 보는데, 약한 스토리텔링을 주인공의 모습으로 눙치는 것 같기 때문이고, 반복되는 모습도 긴장감을 약화시킨다. 


* 송호준의 외부에서 행한 강연 영상을 몇번 본 적이 있는데, 미디어 시대 동시대 작가들에게 가장 유리한 능력인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꽤 갖췄더라. 더구나 미술계에만 예속되지 않고 다른 분야 관계자와 맺고 있는 인맥도 그에게 남다른 동력이 될 것 같다. 

2015년 1월 24일 토요일

코카콜라 + 솜사탕

1월24일(토)

코카콜라병의 로고 변형의 재치 + 외국 관광객으로 넘치는 명동 노점에서 본 다채색 솜사탕 




0123 서유기 : 모험의 시작


1월23(금) 16시30분.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서유기 : 모험의 시작 Journey to the West: Conquering the Demons>(2012) 시사회.

별점: 보류 









해외 비평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줬기에, 관람을 결정했는데 막상 영화의 어떤 점에 후한 점수를 매겼는지 보는 내내 이해하기 어려웠다. 2012년에 제작된 영화임에도 CG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조악했고, 스토리텔링도 참신한 구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코미디도 유치했다. 동시대미술 중에 다변화된 욕구를 드러내려고 전에는 보기 힘든 방법론을 동원하는 작품들이 있다. 이런 작품 앞에서 관습적인 감상과 평가법은 길을 잃게 마련이다. 주성치의 이 같은 영화도 영화를 평가하는 종래의 잣대로 대하기 힘든 변종이 아닐까하는 생각, 또 그런 변종이 영화계에 계속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별점 보류. 

일부 서구 비평사이트에서 주성치의 신파적 코미디물에 후한 점수를 준 요인이, 큰 체구를 지닌 킹콩같은 자신들에게 친숙한 서구적 괴물 캐릭터를 동양적 판타지물로 재구성해서 재현한 점과, 신파적 코미디물을 이국적 취향으로 이해해서인건 아닐까? 
<강남 1970>시사회 때도 그랬지만, <서유기 : 모험의 시작> 시사회장에서도 영화에 출연한 나지상의 국내 팬클럽에서 관객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더라. 

영화에 대해 오해를 하고 간 게, 나는 <서유기 : 모험의 시작>이 '서유기' 자체를 영화적으로 각색한 영화인줄 알았는데, '서유기'에 관한 프리퀄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잇는 후속작도 준비 중인 모양이다.  

2015년 1월 21일 수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파괴된 인체의 美 (씨네21)

* <씨네21>(989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14회.



파괴된 인체의 



상좌. 신타로 카고의 그로테스크하게 파괴된 인체 그림
상우. 조엘-피터 윗킨입맞춤, 1982
하. 멜버른 지하철이 배포한 <어리석게 죽는 방법>에 등장하는 사고를 당한 캐릭터들 2012


아름다운 이 사랑스럽고아름답지 않은 이 사랑스럽지 않다네.” 고대 그리스 결혼식에서 축가로 사용된 시구의 일부다고대 세계에서는 미와 추를 각각 선과 악을 표상하는 개념으로 썼다미의 본질을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미학에 관한한 지금도 이견은 적을 것이다그렇지만 불쾌하고 흉한 감각을 미적 핵심으로 탑재시킨 예술이 분명 존재할 뿐만 아니라 추의 미학을 추종하는 열광적인 마니아도 많다고전 미학에 반하는 이른바 추의 미학은 특히 근대의 탄생과 함께 넓은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빅토르 위고는 흉한 얼굴과 기괴한 육체를 지닌 노틀담의 꼽추라는 총체적인 추의 캐릭터를 예술 무대의 주인공으로 세웠으며위고의 발명품을 계승한 후발주자들은 추의 미학을 밀어붙이기 위해 인체를 주저없이 절단 냈다.

일본 만화가 신타로 카고가 만든 캐릭터들은 절개되고 해체된 인체로 태연히 살아 숨 쉰다멜버른 지하철이 지하철 사고를 예방하려고 만든 국민 홍보 애니메이션 <어리석게 죽는 방법 Dumb ways to die>에는 무모한 실수로 목이 잘리거나머리가 터지거나감전으로 온몸이 잿더미가 되거나피라냐 물고기 떼에 뜯겨서 하반신이 사라진 캐릭터들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열차 사고에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유유자적 전한다끔찍한 사고 장면을 표현했지만이 애니메이션은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이 알 수 없는 중독성의 원인은 잔혹한 현장을 유쾌한 캐릭터로 여과한 탓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검열로 일상에선 보기 힘든 참상을 직설적으로 묘사해서 후련함을 준 점도 무시 못할 거다.

파괴된 인체의 미를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는 것과 달리여과장치가 없는 사진에 그것을 담는다면 충격의 강도가 비할 바 없이 클 것이다그럼에도 절단된 사지나 목 없는 시체를 피사체로 다루는 조엘-피터 윗킨의 사진은 흡인력을 지닌다이처럼 파괴된 인체를 재현하려는 욕구는 낭만주의 화가 제리코의 <절단된 사지 연구>까지 추적할 만큼그 계보가 든든한 편이다.

조엘-피터 윗킨이 그로테스크하게 변형시킨 인체를 자신의 화두로 정한 계기는 그가 유년시절 목격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목이 잘린 시체를 본 경험에서 비롯된다기이한 느낌 혹은 두려운 낯섦을 뜻하는 언캐니에 대해 프로이트는 억압되었던 것이 복귀할 때의 감정이라고 풀이했고그 억압을 거세공포 같은 자신의 성욕 이론과 연결시켰다그래선지신타로 카고의 절개된 인체의 소녀나조엘-피터 윗킨이 연출한 여러 시체 사진은 죽음의 미학을 표방하면서도변장한 에로티즘을 숨기고 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