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1일 목요일

0321 유언장


세 사건의 타이밍이 우발적으로 일치해서 올리는 포스팅. 


1. 어제 한나절 분량의 통증이 지닌 무게는 하루 일정을 날리고 향후 스케줄까지 재조정하게 만든 데 있기보단, 퇴원 직후 수개월 이상을 지배했던 비정상성의 불편함을 내게 환기시킨 데에 있다. 과장된 근심과 초연함이 찾아왔다.   

2. 수업 휴강공지를 하고, 마감하려던 연재 일정을 한달 뒤로 미루고 나자, 허망하기도 했지만 홀가분하고 무료해져서 집에 놓인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집어든 책 제목이 <어떻게 살 것인가>다. 제목과는 달리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방점을 두고 쓴 책이다(저자 인터뷰를 보니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원제로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상 교체했다 한다.) 내 독후감이 어땠냐고 지인이 묻기에, 저자의 주요 가치관 중 대부분은 나도 사전부터 갖고 있던 믿음이 많아서, 새로운 정보였기 보단 공감의 확대가 많았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책 말미의 에필로그에는 내가 몰랐던 '사전 혹은 생전 장례식'이 소개되어 있다. 즉 사망해서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 인파를 맞는게 아니라 죽음이 임박했을 때, 지인들을 불러서 잔치를 하고 정작 죽은후에는 관례적인 장례식을 하지 않는 의전이었다. 괜찮아 보였다. 또 저자가 소개한 자기의 유언장의 내용 중 나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지문을 일부 옮기면 아래와 같다.
=> "마지막은 화장이다" ... "유골함은 사양한다" ... "제사는 지내지 말라고 할 것이다" ... "나는 몸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영혼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3. 2001년 시사 주간지에서 '유언장을 미리 쓰라'는 특집을 신년호에 내보낸 적이 있다(아래 원문 기사). 당시 기사를 읽으며 공감했고 명심했지만 막상 유언장을 써본 적은 없었다. 한번 써둔 유언장 내용은 고정되는 게 아니라 틈틈이 수정하면 된다. 임종을 앞두고 유언장을 쓰는 건 위험하고 불안정하다. 유언장과 사망 예비자를 함께 묶으려는 편견도 강하지만 서구에선 미리 써두는 일이 많다고 한다. 3월이 가기 전에 한번 써두기로 약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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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2001년01월16일 제343호 

[표지이야기] 거룩한 준비, 유언장을 쓰자!

삶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한겨레21>의 제안… 진실한 내면과의 만남 이끄는 일상의 문화로




“올해는 한번쯤 자신의 유언장을 써보자!”
<한겨레21>이 설날을 앞둔 2001년 신년 초, 독자 여러분께 전하는 ‘화두’다. 정초부터 웬 유언장?, 하며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매우 불쾌한 생각을 갖는 독자들도 적잖을 것 같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한겨레21>이 권하는 유언장은 독자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임종 직전에 쓰거나 하는 말’의 유언이 아니다. <한겨레21>이 말하는 유언장은 ‘자신과의 내밀한 대화’이며, ‘나눔의 미학’이며, ‘관계의 정립’이다. 동시에 ‘피붙이와 가까운 이웃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고언(告言)’이며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위한 준비’이자 궁극적으로는 ‘삶의 새로운 출발’이다.


더불어 사는 사람에게 전하는 사랑의 고언

여기 유언장을 써서 호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두고 다니는 기업인, 서랍 속에 소중히 넣어두고 해마다 고쳐쓰는 목사, 유언장을 쓰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는 교수,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서 모두 유언장을 쓸 것을 권하는 여성이 있다. 이들의 주장과 내력을 찬찬히 살펴보면 <한겨레21>이 왜 유언장을 거론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1월12일 오전 연세대 원주캠퍼스 창조관 104호. 이 학교 노정선(56) 교수가 강의 중 A4용지 한장을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용지에는 뜻밖에 ‘유산기증 서약서’란 고딕체의 굵은 글씨가 또렷하다.
“여러분, 인간이 제일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게 뭡니까. 바로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 죽는 거 잘 죽어야 합니다. 비참하게 죽는 게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긍정적, 생산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압니까?”
노 교수는 자신의 뜻에 따라 잘 죽는 방법, 바로 그 최고의 방법론이 ‘유서 쓰기’라고 말하면서 “지금 나눠준 유산기증 서약서를 한번 찬찬히 살펴보고 비록 연습일망정 꼭 써보길 바란다”고 권고한다. “유서라고 해서 놀랄 것 없습니다. 유서는 영어의 ‘will’, 말 그대로 ‘나의 뜻’이란 말예요. 내뜻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전하는 것일 뿐이죠. 유서, 유언장은 불길하고 재앙을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이 유서는 자기가 죽은 뒤에 재산을 기증한다는 서약서입니다.”
노 교수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용지에는 ‘본인은 빈곤한 사람들을 도우며, 빈곤의 구조를 개혁하고, 타파하기 위하여 본인의 재산 중 1%(혹은 특별히 지정)를 빈곤퇴치를 위한 기금으로 기증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이제 갓 20대에 접어든 한창 나이의 대학생들에게 강의시간 중에 웬 유서인가? 그런데도 학생들은 거부감은커녕 되레 재밌고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나이많은 분들에게는 절대 유서이야기를 꺼내지 마십시오. 봉변당하기 십상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유서는 임종 때 써는 게 아닙니다. 임종 때는 유서나 유언이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기도 하죠. 유서는 여러분처럼 젊었을 때부터 미리 써 두는 겁니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난데없이 유서를 써보라고 권고하는 찐빵모자를 쓴 별난 교수. 학생들에게 나눠준 유산기증 서약서는 사실은 그가 벌이고 있는 빈곤퇴치를 위한 유산 1% 나누기 운동의 하나다.
“지난 98년 IMF사태 때 빈곤층을 도울 좀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 하고 궁리하다 유서쓰기를 통해 유산 1% 나누는 운동을 생각했습니다. 미국 등지에서 아주 일상화해 있는 유서를 통한 재산의 사회환원. 우리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시도해 본 것입니다.”

유산 1%를 빈곤퇴치를 위해 나누길



사진/“자신의 뜻에 따라 가장 잘 죽는 방법은 유서쓰기이다.” 연세대 노정선 교수는 강의시간에 '유서기증 서약서'를 나눠준다.(강창광 기자)

그렇다면 성과는? 한마디로 아직은 지지부진하다. 무엇보다도 “이 일에만 매진할 수 없었던”데다 “유서에 대한 일반인들의 거부감도 아직 적잖기 때문인 것 같다”는 게 노 교수 스스로의 분석이다.
여하튼 현재 그의 뜻에 공감해 유산기증 서약서를 쓴 이들은 아직은 서울신학대 정소영 교수 등 10여명이 고작이다. 하지만 노 교수에 따르면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1%가 아닌 10%의 재산을 기증하겠다고 서약했다. 노 교수 자신도 물론 10%의 서약자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세상입니다. 삶을 좀더 의미있게 살고 풍성하게 하기 위해 나의 가진 것을 빈곤구조타파를 위해서 나누는 것, 참으로 보람있을 겁니다. 1% 유서쓰기 운동은 사람을 더 사랑하고 나 자신을 좀더 성숙하게 하는 운동입니다. 4천만명이 모두 1% 운동에 동참한다면 이 땅에 꿈같은 사회복지 혁명이 일어날 텐데…. 하지만 꼭 이 서약서가 아니더라도 30살 이전의 젊은 나이부터 유서를 한번 써보는 것을 권장합니다.” 노 교수의 강의는 계속된다.
비록 그 목적은 다르지만 이런 유서쓰기를 캠페인하듯이 동네방네 외치고 다니는 또다른 사람이 있다. 김항안(60) 목사. 그 또한 각종 세미나나 교회행사 등에서 만나는 사람과 교인들에게 유서쓰기를 꾸준히 권유하고 있다.
1월11일 그가 대표로 있는 서울 상도1동의 ‘한국교회정보센타’를 찾았다. “어떤 뜻으로 유서를 써보라고 하는 것입니까?”란 물음에 그의 답은 매우 간단하다.
“유언장을 써보라고 하는 것은 비록 한순간이나마 자신을 진실하게 쳐다볼 수 있는 기회, 그걸 가지라는 거죠. ‘유언장 미리쓰기’는 쓰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의 진실을 만나게 합니다. 단 ‘오늘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이라는 확정된 마음에서 유언장을 작성해야 합니다.” 그의 이런 말에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재산 문제에만 연관시키며 골치아파할 뿐이었다고 한다. 불쾌한 반응도 없잖았다.
김 목사는 “하지만 유언장 미리쓰기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한번쯤 결산해보는 일, 물질과 자신의 관계를 정산하는 일, 자식들에게 삶의 지표를 주는 것 등 많은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습니다만 죽음은 순서가 없습니다. 죽음은 어느날 도적처럼 옵니다. 죽음은 영원한 세상과의 결별인데, 아무런 준비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

사람과의 관계 결산하며 삶의 지표 삼아



사진/유서는 젊었을때 미리 써두는 게 좋다? 대학 강의실에서 유서쓰기의 의미에 대해 강의를 듣고 있는 대학생들.(강창광 기자)

김 목사는 그 자신 스스로도 유언장을 미리 써왔는데, 몇해 전에는 1달에 한번, 지금은 1년에 1번씩 연말에 꼭 묵상을 한 뒤 유언장을 새롭게 고친다고 한다. 그가 간직하고 있는 지난 2000년 12월29일 작성한 유언장, ‘나의 유언’을 살짝 훔쳐보았다.
김 목사는 먼저 ‘사랑하는 가족에게’란 항목에서 “(나의 죽음을)슬퍼하지 마시라”며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다스릴 자격이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실에 책임지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는 당부의 말을 담았다. 김 목사는 또 “내가 남긴 모든 재산권(동산, 부동산, 자료, 지적재산권)은 한국교회정보센타에 귀속된다”고 재산 문제도 분명히 정리했다.
“인간은 연습의 명수입니다. 발음훈련, 걸음마훈련, 대소변가리기 등 각종 연습에 이골이 난 경력자입니다. 어떤 형태의 연습을 해도 한 가지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유언장을 만드는 일입니다. 유언장은 결코 종말이 아닙니다. 새 출발을 위한 준비운동과 같다고나 할까요.”
김 목사는 따라서 한달에 한번 날을 정해 유서쓰기 연습을 해볼 것을 권한다. “방과 소지품을 정리하고 빚도 갚고 유언장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연습은 나와 너, 즉 가족, 친지, 이웃과 화해되지 않는 관계의 매듭을 푸는 일입니다. 철저한 자기반성이며, 새로운 결단의 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단법인 한국수양부모협회 박영숙 회장(주한 오스트레일리아대사관 문화공보실장).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힘쓰는 그 또한 유언장 쓰기를 주창한다. 그 스스로 유언장을 “밥먹듯이” 써왔다(41쪽 기사참고).
“우리 부부는 일찍부터 유언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멀리 여행할 때는 남편(미국인)과 저는 언제나 그렇듯 유언장을 고쳐 씁니다. 두 사람의 증인까지 세우기도 하죠. 내용은 가족에게 쓴 편지글 같은 내용, 재산 문제 등을 담지요.”
박 회장은 왜 이렇듯 자주 유서를 쓸까. “특별한 게 아닙니다. 서구의 많은 사람처럼 우리 부부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일일 뿐입니다. 유언장은 내가 복잡하게 얽어놓은 것들을 책임지고 풀고 가야하는데 갑작스럽게 죽으면 이를 풀 수 없죠. 바로 이를 대비해 그걸 풀어달라고 가족이나 주위에 부탁하는 말이죠. 유언이라는 말의 원뜻이 자신이 진 빚을 갚기 위해 후손에게 알리는 것이랍니다. 한국인들은 유언하면 나쁜 징크스나 재앙을 불러오는 불길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쥐뿔도 없으면서 무슨 유언이냐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게 아니죠.”

자서전이나 반성문을 쓰듯

박 회장은 유언장을 쓸 때마다 “늘 자신의 욕심을 들여다보고, 그 한계를 깨닫는다”고 말한다. 그는 “유언장을 쓸 때 나도 모르게 내면과 깊은 대화를 갖게 되며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깨닫고 허황한 생각들을 지우게 된다”고 덧붙인다. 한마디로 박 회장에게 유언장 쓰기는 한편에서는 자서전이나 반성문 쓰기와 같은 것이다.
박 회장은 이런 개인적인 의미 외에 다른 뜻에서도 유언장 쓰기를 주창한다. “유언문화가 보편화돼 있는 미국사회에선 유언이 최우선적인 법적 효력을 갖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유언문화가 없다보니, 입양아의 경우 재산분배를 앞두고 파양(입양한 아이들을 내쫓는 일)되는 일이 많습니다. 입양됐다 내쫓기면 아이들이 어디로 갑니까? 수십년간 수양부모와 입양문제를 다루면서 제가 내린 결론, 그것은 바로 법적 효력이 뚜렷한 유언이 활성화돼야 입양이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3월 서울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의 한 숙소. ‘태평로클럽’ 멤버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합숙모임을 가졌다. 태평로클럽은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가 대표로 있는 각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모임. 이날 석유화학원료 운반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선 업체인 (주)KSS해운 박종규(67) 회장이 갑자기 일어나 유언장을 낭독해,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박 회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킨다>는 저서를 낸 중소기업인으로 상도의를 지키고자 하는 경제인들의 모임인 바른경제동인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기업에 횡행해온 사내인맥, 리베이트(뒷거래), 밀수, 회계장부조작 등을 하지 않고 정도(正道)경영을 경영원칙으로 삼고 실천해온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이 편지를 발견한 처음 사람은 저의 시신을 즉시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기도록 부탁드립니다”란 글로 시작되는 박 회장의 유언장. 그는 98년 9월1일 유언장을 작성한 뒤 양복 왼쪽주머니에 늘 집어넣고 다녔는데, 이날 이를 공개한 것이다(박종규 회장의 ‘나의 유언장’ 참고).
“부끄럽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유언장을 쓴 것 갖고 이렇게 찾아오다니. 그저 어차피 사람이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장기기증은 늘어나고 시신기증이 모자라 의대생들이 애먹는다는 얘기를 듣고 몇 마디 적어둔 것뿐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회원들과 뜻을 같이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그저 공개한 것이죠.”
아들 셋을 두고 있는 박 회장은 실상은 두장의 유언장(유언장 ‘하나’, 유언장 ‘둘’)을 작성해 놓고 있다. 유언장 ‘하나’에는 부인과 자녀들에 대한 당부와 묘지와 제사에 대해서 쓴 문서. 그가 클럽회원들에게 공개한 그 문건이다. 유언장 하나에서 특기할 부분은 제사에 대한 언급인데, 그는 “차례를 지내는 일은 장남의 며느리가 되는 사람에게는 큰 짐이 된다”면서 이를 “간편하게 추모일 정도로 하는 게 좋겠다”고 권고했다.
미공개 유언장인 유언장 ‘둘’에는 재산 문제가 기록돼 있다. 성공한 중소기업인으로 적잖은 재산을 갖고 있는 그는 이 유언장에서는 재산의 1/3은 가족에게, 또 1/3은 우리사주조합에 기증해 종업원들의 복지에, 나머지 1/3은 사회에 기부하라고 적었다고 전했다.
“자녀들과 상의했느냐, 반응은 어땠느냐”는 물음에 박 회장은 “흔쾌히 아버지의 뜻을 따라줘 문제가 전혀 없었다”며 웃었다. “바다에서 해운업으로 돈을 벌었으니 죽은 뒤에는 한줌 재로 역시 바다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박 회장의 말이다.

유언장 쓰면 사회적 생명력이 성숙해져



사진/40대에 유언장을 처음으로 쓴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 그는 유언장을 쓰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떨칠 수 있다고 말한다.(박승화 기자)

“내 모든 장기를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줘라. 시체는 가까운 의대상 실습용으로 제공해라. 해부제가 끝나면 화장한 재 한줌 얻어다 위령탑 근처에 뿌려라. 너희들이 서운하거든 손바닥만한 나무에 내 이름을 새겨라. 너희도 세상을 떠날 즈음이면 내 위패도 썩어 흙으로 돌아가겠지.”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67·동남정신과의원)가 공개한 유언장의 일부다. 이 박사 또한 유언장 쓰기의 주창자. 그가 유언장을 처음 쓴 것은 40대인 20여년 전. “의사란 직업이 늘 죽음과 가까이 있는 직업 아닙니까? 중풍환자들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당시 교통사고율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높았습니까? 1979년쯤인 것 같은데. 아파트 잔금을 다 갚았던 그날, 이제 내 이름으로 뭔가 확실한 게 생겼다는 생각으로 유언장을 처음으로 썼습니다. 비록 작은 재산이지만 평소 소신대로 아파트는 모교인 경북대 의대의 연구기금으로, 시신과 장기는 기증하는 걸로 썼죠. 그때 쓴 유언장을 죽 서랍 속에 간직해 왔습니다.”
이 박사는 “그러다 연말에 한번씩 꺼내보고 바꿔쓸 부분이 생기면 손을 대왔다”고 한다. 3년 전쯤에 다시 손을 댔는데, 재산의 일부를 강북삼성병원 정신과에 연구기금으로 기증하겠다는 뜻을 기존의 글에 추가했다고 한다.
유언장을 쓰거나 보면서 그동안 살아온 길을 한번쯤 정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사람살이하면서 자신을 그렇게 깊이있게 들여다보는 기회,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내가 왜 사는가, 뭘 바라는가를 알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 박사는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비록 연습으로라도- 모두 자신의 유언장을 진지하게 미리 한번 써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권고한다. 그는 그러면 어쩌면 기부문화가 박약한 우리 사회에 기부가 갑자기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한단다.
“유언장을 쓰고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도 한결 없어집니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종교인이 된 듯한 느낌이죠. 또 하나. 재산이 많고 적고간에 죽은 뒤 자식들의 재산싸움도 미리 막을 수 있고요. 유언장을 한번 쓰고 나니까 내 인생이 한마디로 풍요로워진 듯한 기분이었어요.”

성숙한 삶을 위한 유언장 미리쓰기

우리 사회는 유서 또는 유언장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 일반인들에게 유언장을 들먹이면 무슨 살인사건 현장의 유서나 수십억원대의 유산의 향방이 걸린 재벌가의 일급비밀 유언장을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실 유언장 미리쓰기는 노정선·박영숙·이시형·김항안씨 등에서 보듯 예측하지 못한 죽음에 대비해 세상과 가족들에게 남길 말을 미리 써두는 통과의례이며 죽음에 대한 자신의 성숙한 준비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저 담담한 일상의 한 영역일 뿐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진실의 심연에 비친 자신을 만나는 값진 시간이기도….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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