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3일 금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나이키 (씨네21)

* <씨네21>(918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79회분.  또 다른 '브랜드 시리즈 4탄'  나이키를 다뤘다.



일단 실행해 


상. 애드버스터가 제작한 타이거 우즈의 나이키 모양 입술
하우. 사이비 종교 ‘천국의 문’의 집단 자살 현장 사진을 패러디한 사진 1997년
하좌. 행크 윌리스 토마스, 유명상표 머리, 2003년


 프로 농구 스타의 실명이 기획 상품명으로 차용되는 현실은 스포츠 스타에게 명운을 거는 스포츠 브랜드의 생리를 보여준다. 에어 조던은 1985년 제조되어 현재까지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 나이키의 장수 브랜드이다. 성장기에 나이키 광고를 보며 스포츠 영웅의 꿈을 부풀린 지망생들의 사연도 많다. 스포츠용품 업체 나이키는 절대 다수의 비운동선수들이 소비하는 대중 브랜드이다. 최상의 품질을 보장하는 명품일 순 없어도, 나이키를 착용한 명문가 선수들의 성과에 정비례해서 높은 평점을 취한다. NBA 사상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되는 마이클 조던, 골프 역사상 최고기록을 수립한 타이거 우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루니와 나이키는 동격이다. 

타이거 우즈의 입술을 나이키의 기울어진 로고 형태로 바꾼 애드버스터의 패러디 그림은 나이키와 이죽거리는 감정을 연관시키면서, 선수의 명성과 일심동체가 된 스포츠 브랜드의 운명을 중의적으로 풍자한다. 아디다스 푸마 아식스 등의 유사 경쟁사들과의 각축에서 나이키의 우월성은 로고의 호소력에서 오는 것 같다. 로고 스워시(swoosh ‘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다’는 의미)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되었다지만, 로고에서 날개 형상을 읽긴 어렵다. 차라리 신라시대 그려진 천마의 입에서 나오는 화염과 닮았다. 설마 나이키가 천마총의 말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리 만무하다. 나이키 로고는 동서고금에 통하는 시각적으로 경쾌함을 주는 보편적 기호에 가까울 것이다. 

모든 명품 스포츠 브랜드가 모조품의 표절 대상이 되지만, 아디다스의 3선을 2선이나 4선으로 모조한 짝퉁보다 나이키의 짝퉁 상품에서 훨씬 어색한 모조의 흔적이 느껴진다. 이상적인 굵기와 각도로 휘어진 나이키의 스워시 로고가 흉내 내기 어려운 조형적 완전성을 지녀서다. 어색하게 베낀 모조품의 로고는 원본의 가치만 부풀려준다. 나이키 로고의 조형적 시원함은 서구화에 대한 선망을 미화시킨 기호이기도 하다. 그것은 여신의 날개 형상도 천마의 입에서 나오는 화염도 아니며, 다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진하는 곡선형 표창처럼 보이기도 하며, 또는 왼쪽 아래로 내려가려다 갑자기 오른쪽 상단으로 방향을 틀어 끌어당긴 필획의 흔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나이키 로고의 불확정적 구성이 나이키의 가치를 무한히 열어둔다.

극소수를 위한 최고가의 명품이 아닌, 일반 대중의 가벼운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접근 가능한 가격대 때문에 집단 생활인이 복장을 통일할 때도 쉽게 채택된다. 사이비 종교집단 ‘천국의 문’이 집단 자살을 실행했을 때, 현장 보도 사진에서 자살자들이 착용한 나이키의 모델명 ‘SB Dunk High’는 불운한 유명세를 타야했다. 나이키를 신은 어느 사체 사진 위로 나이키의 구호를 되돌려주는 패러디물이 만들어졌다. “일단 실행해 Just do it.”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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