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891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66회분.
견고한 장면의 양면성
상좌. 리허설 중인 틸러 걸들 1930년대
상중. 정조대왕 능행도 - 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 1795년
상우. 북한의 매스게임 '아리랑'을 찍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작품, 평양 I, 2007년
하. 중국 건국 60주년 군사퍼레이드 연습 중인 군인들 2009년 (REUTERS Joe Chan)
“추상이 그러했듯이, 대중 장식도 양면성을 띤다.”
늘씬한 여성으로 편성된 무용수들이 기계처럼 일치시킨 팔 다리의 기하학적 인체미. 1920년대 유흥문화의 산물이던 틸러 걸(tiller girl)의 장식적 군무를 관찰한 문화 비평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가 내린 평가다. 그가 대중 장식에서 양면성을 주시한 내막은 여성 무용수들의 총화가 탄성 어린 표면적 볼거리를 만들지만, 기하하적 질서의 화려함 뒤로 무용수 개개인의 정체성은 지워지는 이면이 있어서다. 추상적 형식미를 완성하려고 내용을 소멸시켰다는 얘기. 이런 사정이야 어떻건 인체로 구성된 장식적 아름다움에 대중은 열광적 환호를 보낸다. 전체주의의 산물인 대중 장식이 강인한 연대기를 이어오는 배경일 것이다.
극소수의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조정하여 얻어낸 대중 장식에, 대다수 피지배 계층이 지지를 보내는 역설. 이 현상은 가까이는 대중 장식의 역설이지만, 멀리 보면 현실 정치가 작동하는 보편적인 생리다. 대중에게 손쉬운 환호와 위안을 안기는 이점 때문에 대중 장식은 기득권이 신뢰하는 정치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시대 궁중 기록화와 의궤도(儀軌圖)는 조정의 주요 행사를 궁중 화원들이 완성시킨 역사적 시각 기록물이다. 이 그림들은 화원들의 집단 창작의 산물이어서 화원 개개인의 개성은 견제 받고 규범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통일된 화풍을 낳는다. 인물을 좌우로 줄지어 대칭시킨 안정적 구도를 정면 부감으로 바라보는 궁중 기록화는 단순한 사료적 가치를 떠나, 왕실의 권위와 안정성을 보장하는 문양처럼 느껴진다.
지난 역사를 통해 전체주의의 패악을 공동체가 충분히 학습했지만, 서열 중시를 향한 집단적 합의, 남성미에 대한 숭상, 애국심의 연대감, 동일한 색으로 전체가 통일된 유니폼이 있기에, 군대는 현대 사회에서 대중 장식의 전체주의를 견인하기에 가장 유리한 거점이다. 군대 열병식이 현대적 대중 장식의 정점이 된 이유다. 절도 있게 오와 열을 맞춰 이동하는 군인들의 인체, 서열 확인을 위한 장황한 의례와 절차, 개인성을 지우고 전면으로 부상한 숭고한 대의명분, 정당화된 폭력 미학까지. 군대 존립의 허약한 명분은 열병식의 조밀한 인간 패턴 속에 잊혀 진다.
대중 장식의 출중한 볼거리를 부인하긴 어렵다. 대중 장식은 이성 판단을 마비시킬 만큼 중독성이 강하며, 그 미학적 중독의 대가도 크다. 군중으로 촘촘하게 짜인 대중 장식이 큰 흐름처럼 밀려오는 장면은 시각적 안도감과 압도하는 위력을 동시에 체험하게 만든다. 안도와 위압이 뒤엉킨 감정은 지배자의 독재도 정당화 시킨다. 대중 장식의 양면성이다. 숭고는 웅대한 자연의 추상 앞에 느끼는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정리되곤 한다. 인공미를 배제한 자연의 위대함과 연결시킨 미학 개념이다. 한편 헤겔은 숭고를 절대 왕권이 보장된 동양권 예술에서 쉽게 관찰 된다고 설명한다. 견고한 대중 장식에 제압되는 감정은 자연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인공적으로 제조한 현대적 숭고 같다. 이때 숭고는 무서운 양면성을 띤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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