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893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67회분. 취임식 어제 열리지만 않았어도 오바마를 대타로 쓰진 않았을 수도.
같은 듯 다른 압도적 쇼쇼쇼
좌상. 미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취임식 2013년
좌하. 네르비온 강변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우. 런던 패션위크(LFW) SS13에서 팸 호그 Pam Hogg의 의상 2012년
대통령 전용차는 암살을 방어하려고 설계된 무거운 차다. 그렇지만 케네디는 덮개 없는 리무진을 타고 퍼레이드를 도중 오스왈드가 쏜 저격탄을 피하지 못했고, 레이건은 리무진 안으로 급히 피신하기 직전에 몸에 총알 한발을 맞았는데, 다름 아닌 리무진 차체에 ‘박히지 못해서’ 튕긴 유탄이었다. 결론적으로 방어 임무에 모두 실패한 셈인데, 대통령 리무진의 본질은 요인 보호보다 공중을 제압하는 차체의 공격적 외형에 집중되어있다. 내부를 응시하기 힘든 어두운 방탄유리와 검정 철갑을 뒤집어 쓴 차체는 겉으로는 중후함을 과시하지만 속내를 은폐하기 때문에 신비감을 증폭시키는 양면성을 지닌다. 그래서 대통령 전용차는 차라리 대통령과 동격이다.
유수의 미술관들마다 각기 독창적인 외관을 자랑하지만,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개중에 으뜸일 것이다. 은빛 티타늄 철갑을 감싼 이 예술의 전당의 본질은 작품을 보호하고 전시하는 초대형 수장고에 있지만, 해체된 형태로 재구성된 외관이 미술관의 기능을 대리한다. 중세 성곽의 현대판 혹은 신성하고 공격적인 전함을 빼닮은 이 명승지를 찾아 연간 100만여 순례자들이 방문한다. 그들은 철갑에 가려 볼 수 없는 내부의 미술품이 아닌 그것을 가리고 있는 중후한 덮개를 한동안 관람하다가 돌아가지만, 미술품 감상과 대등한 감명을 받는다.
기능주의보다 신비주의에 비중을 둔 대통령 전용차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외형은 일상적 기능주의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패션쇼에서 볼 수 있는 비현실적 의복에 빗댈 수 있을 거다. 그것이 제시되는 방식마저 유사하다. 대통령 전용차가 만인에 대대적으로 공개되는 시점은 국가 통수권이 주어지는 취임식이라는 상징적인 날이다. 리무진 주변을 겹겹으로 에워싼 무장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느리게 이동하는 대통령 취임 차량 퍼레이드와 패션쇼의 캣워크는 양편에서 지켜보는 도열한 관객 사이로 도로나 런웨이를 과시적으로 지나가는 것으로 요약된다.
패션쇼는 일상에서 사실상 착용 불가능한 무수한 의복들을 선보이는데, 몸에 걸칠 옷을 고르는 자리가 아니라, 특수한 미적 감각을 확인하고 연대 의식을 나누는 계급적인 사교장에 가깝다. 일상적 의복의 기능성이 제약해온 한계들을 최대한 걷어내면서 실현 가능한 상상력의 최대치를 사심 없이 바라보는 자리가 패션쇼 미학의 본질일 것이다. 압도적이고 중후한 외관에 의존하는 점에선 패션쇼와 유사한 모양새이지만, 공동체 전체를 상대로 선보이는 대통령 취임식 퍼레이드는 실상을 숨기는 가면쇼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그 어떤 권위로도 형편없는 내실을 가릴 순 없게 된다. 국정운영은 보여주는 예술이 아니거든.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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