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시사인>(제284호/2013년 02월 23일)에 실린 팀 버튼 전시 리뷰. 전시 관람은 2월8일(금). <시사인>의 편집팀에서 원고 제목을 '<팀 버튼>전, 인상적인 습작들' 로 뽑은 것 같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위악적으로 입을 쩍 벌린 캐릭터로 장식된 전시장 입구를 통과하면, 길게 줄지어 선 관람 대열이 기다린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찾았지만 예상 밖의 인파로 관객으로 빽빽한 대열 사이에 끼어 느리게 이동하며 전시를 봐야했다. 가족 단위 방문을 유도하는 블록버스터 전시회는 상투적인 공식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방학 시즌에 맞춰 개막일을 정해 4달 내외의 전시 기간을 소화하며 초대작의 품질보다 예술가의 지명도에 의존한 마케팅을 한다. 대표작 서너 점만 포함된다면 모네와 반 고흐처럼 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전 근대기 간판급 화가나 피카소와 앤디 워홀처럼 ‘이제는 구시대에 속할’ 현대 미술 스타의 이름만 앞세우면 관객 동원에 큰 하자가 없던 선례를 따르는 것이다. 이에 비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는 <팀 버튼>전은 블록버스터 전시가 고수하는 안정 공식에 덧붙은 일종의 플러스알파처럼 보인다. 대박 전시물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지 않은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장르적 사고방식으로 시각예술을 분류하던 관성에 제동을 거는 동시대성이 투영된 전시 같아서다.
블록버스터를 포함한 모든 미술 전람회가 궁극적으로 예술가의 대표 완성작 관람으로 귀결된다면, 세 편의 배트맨 영화를 연출 혹은 제작하고 <가위손> <화성침공> <다크 섀도우>등을 찍은 이 기괴한 취향의 영화감독 전시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완성작을 관람하는 전시가 아니다. 무명 시절의 <빈센트>와 1984년판 <프랑켄위니>(2012년 개봉한 영화의 원형이다)라는 영화를 전시회에 공개했다지만, 이 세칭 희귀본들은 모두 유튜브에 이미 등록된 형편이어서 희소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팀 버튼>전은 영화감독의 일대기를 정리한 회고전이 분명하되, 완성작(팀 버튼의 영화) 자체가 아닌, 영화의 완성 과정에 기여한 무수한 습작과 수련을 자료의 열거로 증언하면서 팀 버튼의 영상 세계를 조망한다. 그래서 회고전을 표방하되 대표작은 볼 수 없는 전시회인 거다. 하물며 팀 버튼의 영화 세계를 접할 거라면 손쉽게 다운받아서 보면 되지 세상이다.
<팀 버튼>전의 출발지는 2009년 뉴욕 현대미술관이다. 뉴욕 전시를 마치고 멜버른 토론토 로스앤젤레스 파리를 순회한 후 서울에 당도한 것이 이 전시의 내력이다. 전 세계를 순회한 전시의 포맷은 유사하다. 700점 이상(국내 전시는 862점)의 출품작은 무명시절부터 영화계 전설로 대접받는 현재까지 팀 버튼의 영화를 저변에서 지탱시킨 소묘, 회화, 사진, 스토리보드, 인형, 의상 그리고 영화 소품들로 채워졌다. 또 전시장 내 외부에 팀 버튼이 고안한 귀여운 캐릭터를 거대한 풍선으로 만들어 세워두거나 전시장 입구를 입 벌린 캐릭터로 대체한 점도 동일하다. 팀 버튼마저 자신의 전시를 두고 “더 큰 그림(영화)을 그리기 위한 밑그림”으로 제작한 자료들이라 “세상에 공개되리라고는 여기지도 못했다”는 심경을 밝혔을 정도다.
프랑스 시네마테크 전시 장면(2012)
예술가의 결과물로 전시회의 승패를 가늠하던 방식에 비하면, 거의 전적으로 결과물을 향한 긴 노정을 탐사하는 전시회의 성격 때문에, 전시장에 놓인 800여점의 앙증맞고 낯익은 캐릭터와 신기한 영화 소품들만 둘러보다가 나온다면 관전 포인트를 제한적으로 잡은 꼴이 된다. 전시실마다 팀 버튼의 기괴한 미감을 증언하는 대동소이한 모양새의 조형적 습작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괴이한 20세기 초반 표현주의와 고딕 취향은 시대감각에 맞게 조율되어 캐릭터에 입혀진다. 심지어 <비행접시와 외계인>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15세기 북유럽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현대적 SF로 각색하고 재구성한 것이었다. 팀 버튼 영화 속 등장인물이 그렇듯이 전시장에는 도드라지고 큰 눈알, 섬뜩함은 사라진 귀여운 해골, 큰 두상에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팔다리의 신체, 바늘 봉합 자국이 선명하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는 흉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무수하게 출연하는 캐릭터가 이미지와 소품의 형식으로 진열되어 있다.
다만 이 친숙한 도상들도 전시 동선을 따라 연거푸 대면하면서 지루해지기 마련. 때문에 나열된 작품을 타성적으로 바라보는 관전법을 버릴 필요가 있다. <팀 버튼>전은 결과적으로 한 예술가의 완성품의 제시가 아니라, 완성을 위해 시야 밖에 이뤄진 노력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데 방점이 찍힌 바, 그 숨은 노고에 주목해야 맞다. 내게 정작 자극이 된 진열품은 관객의 호기심을 낚는 희귀한 영화 소품이나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가 무명시절부터 현재까지 틈틈이 쌓아올린 육필 기록과 습작의 더미가 그것이다. 개중에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가 우연히 떠오른 심상을 소묘로 남긴 것으로 보이는 냅킨 90장이 액자 속에 담겨 있기도 하다. 또 진열 중인 팀 버튼의 소지품 가운데에 스프링이 부착된 소형 스케치북도 눈에 들어온다. 어딜 가건 착상이 떠오르면 붙잡아두려는 습관의 산물로 보인다.
팀 버튼의 대학 전공이 캐릭터 애니메이션이어서 그의 영화세계와 연결 지점이 많긴 하더라도, <팀 버튼>전은 매해 배출되는 무수한 졸업생들이 뾰족한 진로를 못 찾는 악순환에 빠진 전국 미술 대학에게는 각별히 고무적인 체험장이 될 것 같다. 영화가 본업이어도 팀 버튼과 그의 영화는 당대 문화 예술의 대세를 지켜볼 수 있는 창처럼 느껴졌다. 영화감독의 회고전이 미술관에서 개최되어도 어색하지 않은 까닭은 팀 버튼의 영상 미학이 전 장르를 포괄하면서 전개된 배경 탓일 것이다. 미술은 긴 전통과 제도적인 보장 덕에 향후에도 존속하는 예술로 남을 가능성이 높지만, 현대 미술에 미디어아트 쏠림이 나타나는 사정이나 시각예술이 영상예술로 기우는 시대 미감에 관해서 전공자라면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의 영화가 장르를 포괄하는 통합적 결과임을 보여줌으로써, 종합예술 본진으로서의 자신감이 <팀 버튼>전에 배어있다. 그의 영화와 인연을 맺은 잠재적인 영화팬이 전시회 관객으로 충원되었을 것이다. 기념촬영지로 마련한 듯한 팀 버튼 캐릭터로 장식된 미술관 벽면으로 삼삼오오 모여드는 인파를 지켜보자니, 동시대와 호환하는 시각예술의 실체를 목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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