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8일(금) 웜바디스 시사회. 왕십리CGV.
어제 살핀 시사 일정표에 다음날(3월8일) 오전 10시30분 하는 영화가 있길래 너무 시간이 일러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하필 그 날 배송 받은 금주 <씨네21>(894호)의 표지에서 그 영화의 주인공을 다뤘다. <웜바디스>. 어떤 스토리인지도 대략적인 확인조차 않고, 오늘낮 부족한 잠을 이겨내고 극장으로 향했다.
좀비 영화가 보여주는 일반성, 전반적으로 잿빛을 띠는 화면과 좀비들의 집단 서행 움직임이 전반부에 오랫동안 배치되어 영화 초반부터 역동감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진 못한다. 따라서 초반부가 약간 지루할 수도 있다(남자 관객한테만). 그런데 좀비들의 느린 서행과 잿빛 좀비들의 나른함을 미청년 좀비로 출연하는 니콜라스 홀트가 비주얼 한방으로 탕감하는 구도인 거 같았다. <어바웃 어 보이>에서 소년으로 출연한 그는 미청년이 되어 돌아왔는데, 좀비 분장의 창백한 피부와 퀭한 눈매마저 탐미적 얼굴 라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코스매틱이다.
스포일링을 하고 싶진 않아서 상세히 털어놓을 순 없는데, 좀비가 인간의 뇌를 먹으면 뇌의 주인의 기억을 고스란히 전수받는다는 영화적 설정은, 남의 디지털 자료를 다운로드 받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현재의 매체 환경을 염두에 둔 설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연히 영화 속에서 좀비 퇴치 사령관으로 출연하는 존 말코비치의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7층과 8층 사이인 7 1/2층에서 남의 뇌에 들어가 남을 조정한다는 영화적 설정과도 약간 겹쳐 보였다. 세상 만인에게 최고 관심사란 바로 은폐된 채로 숨겨진 상대방의 속마음 읽기 아닌가. 영화 소재로 수시로 쓰이는 이유겠지.
스포일링이 싫어서 영화의 반전 부분은 털어놓을 없는데, 장벽을 무너뜨리는 상징적인 장면과 영화의 반전 내용을 통해, 현실에서 이런 저런 사랑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사랑의 영화였다. 그런 인류애적 메시지를 어울리지 않는 좀비 영화에 충전시킨 점과, 니콜라스 홀트의 미청년 호소력이 결합되어 <웜바디스>가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온 모양이다. 조롱 아니다.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
* 80년대 록밴드(GNR나 Scorpions)의 히트곡들이 간간이 틀어진다.
영화 시사회장에 가면 수입사측에서 시사 초대권과 함께 경품을 나눠주는 경우가 차츰 늘고 있다. 오늘은 영화의 원작 소설인 아이작 마리온의 <웜바디스> 소설책과 커피를 나눠주더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