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2일 화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 사자 부활의 딜레마(씨네21)

* <씨네21>(889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65회분. 지난 연재물들을 살펴보니 본의 아니게 박근혜가 자주 출연했더라는.


사자(死者) 부활의 딜레마




좌. 프라하의 극장이 세운 모차르트 돈 조반니의 ‘기사장’ 동상
중. 세리 레빈, 분수, 1991년
우. 박정희 대통령 94회 탄신제 2011년



사자(死者)의 부활은 꾸준히 다뤄지는 예술 테마다. 역행 불가의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온 사자에게 무한한 권한이 주어져, 세상사의 부조리를 해결하고 사악한 세력을 처단하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사자를 구세주로 설정한 거다. 죽은 기사장은 무수한 여자를 농락하는 자유연애가, 돈 조반니를 처벌하려고 삶의 영역으로 극적으로 귀환한다. 차디찬 돌조각상의 형상으로 무대 위에 우뚝 선 기사장에게선 위엄이 느껴진다. 이야기의 매듭과 선명한 교훈을 제시하려고 삶 속에 개입한 사자는 낡은 시대의 권위가 복권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술적 상상력이 부활시킨 사자는 생전에 쌓은 권위로 인해, 이미 충분한 경외의 대상이어서 부활의 권위는 배가된다.

타계한 거물 예술가의 종래 작품을 차용하는 행위는 1970년대 후반부터 예술계에서 급증한 창작의 신조류인데, 원작의 저작권과 독창성을 무단 침해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어서 시도 당시에는 표절시비로 번질 만큼 논쟁적이었다. 그러나 차용 예술의 물결을 거스를 순 없었다. 저작권과 독창성이 차츰 무의미해지는 시대상을 문제 삼은 차용 예술의 본의를 이해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세리 레빈은 작고한 예술가의 사진 작품을 고스란히 촬영해서 자기 이름을 붙여 내놨다. 더 나아가 차용예술의 원조로 평가받는 마르셀 뒤샹의 <분수>를 금빛 도는 브론즈 작품으로 차용하면서, 차용에 대한 재차용을 시도했다. 원작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 차용예술이어도 역설적으로 원작이 기왕에 획득한 권위 때문에 차용 예술과 원작 예술은 대등한 주목을 받으며 원작의 권위는 오히려 증폭한다. 금빛으로 부활한 뒤샹은 반 예술의 전설로 아우라를 재확인한 것이다.

사자 부활이 예술 같은 가공의 세계에서만 용인되는 건 아니다. 실재 삶에서 이행되는 사자 부활은 효과와 영향력에서 예술이 제조한 사자 부활을 능가한다. 왜냐하면 부활한 사자는 현실에 실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흔히 부풀린 사실 위에서 싹튼 구시대를 향한 집단 향수는 사자를 종교 지도자의 반열로 추앙하면서 부활을 정당화 한다. 부활한 심판자(기사장), 황금색으로 빛나는 소변기(세리 레빈), 황금색 동상(박정희)은 과거의 권위를 차용한 점에선 같지만, 앞의 둘이 허구적 상상력의 효과를 허구 세계에 한정한 반면, 박정희 동상은 허구적 상상력을 결집시켜 현실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이다. 

전직 대통령을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건 집단 향수를 반복적으로 강화시켜서 과장된 향수를 위무한다. 집단 향수가 위무 받은 대가는 극소수 지배 체제의 현상 유지이다. 이런 현실의 부조리가 집단이 가담한 허구를 흔들진 못한다. 허구는 현실을 압도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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