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4~0516까지 하루에 한편씩 총 3편의 시사회
5월14일(화) 14시 용산CGV IMAX. J.J. 에이브럼스 감독 <스타트렉 다크니스 Star Trek into Darkness>(2013) 시사회.
별점: 매기기 어렵다. 정신없이 넋놓고 볼 만한데 권할 만큼은 아니었다.
*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는 시사회 입장전 검사를 투철히 한다. 핸드폰의 카메라 렌즈 부위를 저렇게 테이프로 봉인해준다.
앞머리 1자인 남성 캐릭터로 연상 되던 '스타트렉'을 나는 60년대 방송된 TV시리즈로도 만화책으로도 그후 몇편 제작된 영화로도 본 적이 없다. 가장 최신판 스타트렉이 올해 개봉한 3D 영화<스타트렉 다크니스> 일텐데, 무수한 원작을 한편도 보질 않고서 최신판을 직행해서 본 셈이 되었다.
2259년 런던을 배경으로 최신 CG기술로 허공 위에 '3D 입체 영상'을 프리젠테이션 하거나, 물리적 거리에 상관없이 사람을 통째로 '전송'시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는 아주 편한 시스템이 소개된다. 그 점에서 인물을 실제와 가상으로 나눠 시공을 오가던 <매트릭스>의 순간 이동 시스템에서 한층 진화한 거다. 냉정하고 차가운 화면과 동선을 보여주지만, 한껏 사이버펑크 필을 낸 심야의 카페 장면은 고전미를 느끼게 한다.
속전속결로 정신없이 진행되는 극의 진행(영화의 세세한 스토리는 생략)으로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면, 미래의 대도시에 우주 함선이 추락하면서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9.11을 떠올리게 만든다. 감독과 각본자가 설마 그런 의도를 품었을 진 미지수지만, '평안한 대도시에 대형 비행 물체가 충돌하는 참사'라는 허구적 모티프는 2001년 9.11이라는 실제적 사건이 그 테러의 본래 의도와는 무관하게 아예 선점해 버린 꼴이 되었다.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갈등과 전개는 '원칙주의자 vs 육감주의자'로 대별되는 극중 주인공들 사이의 긴장으로 추진된다. 원칙과 육감 중 누구 판단이 옳았는지가 관전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또 원칙과 육감 중에 관객 스스로 평소 어디에 신뢰의 무게추를 다는 지도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되는데 이것도 작은 재미다. 위기에 놓인 함선이 대기권을 무사히 통과하자 구사일생을 축하하며 어느 승무원이 '기적'이라고 소리치는데, 이때 임시적 함장직을 맡은 원칙주의자인 1자 머리 사내가 한 말이 그래서 재밌다. "기적 같은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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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5일(수) 10시30분 왕십리CGV. 바즈 루어만 감독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2013) 시사회.
별점: ★★★☆
*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대한 개츠비>의 일본어 판을 번역하기도 했단다. 시사회장에선 시사 관람자에게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위대한 개츠비>소설을 무료로 나눠줬는데 한글판+영문판 세트였고, 한글판 번역은 소설가 김영하가 했더라. (왼쪽 양말은 '스승의 날'이라고 세종대에서 강사들에게 나눠준 나이키 양말 선물)
<스타트렉>처럼 <위대한 개츠비>도 3D안경을 착용하고 보는 3D영화라길래 'SF도 아닌데 왠' 하는 심정으로 가서봤다. 나는 안경을 착용하고 관람하는 3D영화에 매력도 많이 못 느낄 뿐 아니라 심지어 성가셔한다. <위대한 개츠비>의 3D는 그래도 볼 만하다. 3D를 액션물이나 SF물과 연관짓던 내 선입관도 교정 되었다. 대저택에서 개최되는 파티 문화가 3D로 재현 될때 관객은 훨씬 고취되기 쉬웠다. 비단 흥청망청한 파티 분위기를 잡을 때가 아니어도, 심야의 고요한 산책길에서 남녀 주인공의 바스트샷을 잡을 때마저 3D의 낭만적 아우라는 빛났다.
미국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영화의 원전인데, 같은 타이틀로 제작된 과거 영화만, 확인되는 게 최소 5편 이상이다. 그만큼 탄탄한 고전이 시나리오로 쓰였다. 내가 20대일 때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은 누구라도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매혹된 시기를 보냈다. 그가 예찬한 서구 소설가 명단(레이먼드 카버, 트루먼 카포티, 커트 보네거트, 리처드 브로티건, 팀 오브라이언, 존 어빙, 스티븐 킹...)에 스콧 피츠제럴드가 항상 포함되어 있어서 고무된 마음으로 꼭 읽어야지 하며 책까지 사놓고는 막상 읽진 못한 작품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그러는 사이에 원작을 영상물로 번안해서 소화해도 괜찮아진 세상이 되었다.
뉴욕에서 금융업에 몸 담았지만 원래 꿈은 문학도였던 닉이 과거를 회상하며 "매사 희망에 차 있는 사람으로,,, 예민한 성품을 지녔다"고 묘사하는 주인공 개츠비가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는 소설을 읽질 않아서 모른 채로 영화를 봤다. 길게 말할 순 없지만 인생 반전의 우연성을 집어낸 <위대한 개츠비>의 구성이 발표 당시 고득점을 받은 요인이 아니었을까. 20세기 초반 미국 사교계의 패션을 통해 근대기 세속 문화의 취향을 복기하는 것도 영화는 재미다. 실제 소설에선 어떻게 끝나는지 모르겠지만 극중 내레이터 닉이 다 마친 소설(?) 제목 '개츠비' 앞에 '위대한 the great'를 추가하는 장면은 소설쓰기의 자기지시성을 기입하는 것 같았다.
* 개츠비의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는 빅밴드의 재즈 연주가 흥을 돋구는데, 확인해보니 음악 담당은 래퍼 Jay-Z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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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목) 14시 왕십리CGV.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2013) 시사회.
별점: ★★★☆
'비포 Before'삼부작 정도로 불러도 될 영화의 마지막(?)편. 동일한 남녀 배우 - 미국남성 에단 호크와 프랑스여성 줄리 델피-가 독보적인 주연인 <비포 선라이즈>(1995) <비포 선셋>(2004)을 이은 3번째 <비포 미드나잇>(2013). 기차여행길에서 우발적으로 시작된 청춘의 연애담은 실제적 긴장감을 그려내는 솜씨 때문에 공감을 얻었다. 그렇지만 그런 긴장감을 2편 이후부터까지 기대한다면 그건 너무 무리일 것이다. 1편 속의 극중 남녀나, 그것을 연기한 실제 배우들은 그 사이에 무려 20여년이나 살았다. 그리고 영화를 지켜본 관객 역시 나란히 나이를 먹었다. <비포 미드나잇>의 준 베드신에서 가슴을 온통 드러낸 채로 황급히 전화통화를 하는 줄리 델피에게선 더 이상 청순미를 기대해선 안되리라.
그렇지만 1편과 동일선상으로 지키는 미덕이 있다. 단 두 남녀 배우만으로 화면을 채우고 영화의 스토리를 허술하지 않게 채운다는 점. 1편보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바스트 샷을 꽤 오랜 롱테이크로 잡아온다. 영화 도입부에 배치된 운전석 앞의 둘은 천연덕스레 대화를 나누는데 그게 무지 긴 한 테이크로 간다. 약간 지루해질 법도 하지만 그게 40대 연인의 '실제적 삶'이기에 견딜만했다. 협소한 공간에서 둘이 나누는 대화와 갈등도 비록 원 테이크로 간 건 아니었어도, 원 테이크처럼 느껴질 만큼 화면 속에 두 사람과 둘의 대화는 밀도가 있다. 바로 영화 후반부에 배치된 호텔 스위트룸 샷.
1편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관객에게 만들어놨다면, 3편 <비포 미드나잇>은 그리스에 대한 여행자적 힌트를 슬쩍 던져준다. 군더더기 없음. 애정 영화의 어설픈 해피엔딩 공식에 예속되지 않았음. 실제 삶의 연애 진실에 근접한 위치로 중년의 (사랑보단)삶을 고백했음.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 단 둘만으로 이야기의 밀도를 떨어뜨리지 않았음. 이게 <비포 미드나잇>의 1편을 닮은 미덕이었다.
줄리 델피가 능청스런 표정으로 남자가 여자를 꼬시는 단계를 시늉하는 연기장면도 굉장히 웃긴데, "입맞추고 가슴을 애무하다가 성교로 넘어가지. kissy titty pussy"라고 각운(脚韻)을 살려 대사할 때 관객들이 많이 웃었다. 귀여운 연기와 대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