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905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73회분. 내가 보낸 원제는 '공중의 변덕과 공공예술'이었다. 좀 딱딱했던듯.
대중은 변덕쟁이야
상.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든 빅버드. 2012년
중. 수요시위 1000회 자리에 참석한 정봉주(전 의원)가 소녀상 옆에 앉은 모습. 2011년
하. 리처드 세라 <기울어진 호> 1981년
"롬니가 빅버드에게 해고 통지서를 보냈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자 TV토론 직후 NBC방송이 내보낸 논평은 이랬다. 롬니가 정부 예산의 고작 0.0001%에 불과한 공영방송 지원을 끊겠다는 공약을 내놨는데, 하필 지원을 받는 PBS는 인기 프로그램 <세서미스트리트>의 높은 자산가치의 빅버드를 보유하고 있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오바마는 유세 중에 “빅버드가 재정 적자의 주범이란 걸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됐다.”며 빅버드에 우호적인 유권자의 공분을 모았다. 빅버드는 본의 아니게 미 대통령 선거의 변수로 떠올랐다.
빅버드 가면을 뒤집어쓴 이들이 롬니를 공격하는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설마 롬니가 빅버드 때문에 낙선한 건 아닐 테지만, 악재로 작용한 건 분명하다. 롬니의 공약은 공영방송 지원금 삭감이었으나 그의 메시지는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빅버드의 퇴출로 연결되어 유권자에게 기억 되었다. 빅버드의 고정 팬에게는 자신의 취향에 저항하는 인물로 롬니가 각인 되었을 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롬니의 공약은 멋대로 해석된 것이다. 자기중심적 사고로 판단하는 변덕쟁이, 그것이 대중의 보편적 초상화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은 관학풍 조각물에 가깝다. 외형적으로 변별력을 지녔다고 보기도 어렵다. 무수하게 길 위에 놓인 공공조형물의 운명을 노정할 예정이었다. 일본 극우단체 회원이 소녀상 옆에 말뚝을 박기 전까지의 현실은 분명 그랬다. 겨울철에는 야외에 서 있는 소녀상을 안쓰럽게 여긴 방문객들이 무생명체인 소녀상에 ‘동복’을 갖춰 입히고 비가 내리면 우비도 입힌다. 이 만큼 대중의 감정이입을 온몸으로 흡수한 공공조형물이 국내에는 달리 없을 것이다.
높은 좌대 위에 위압적인 사이즈로 올라선 동상과는 달리, 등신 사이즈로 관람자 키보다 낮은 높이도 소녀상에 대한 감정이입을 쉽게 거든 것 같다. 국정 운영자와 정치인은 그 나라 유권자의 수준대로 선출된다. 동일한 이치로 길 위에서 대중을 상대로 전시되는 공공 조형물도 국민의 평균 미감이 반영된다. 일본의 만행에 공분을 느껴 소녀상에 모여든 민심 중에는 2012년 한국 대선에서 일본군 장교 출신자의 딸에게 기운 유권자도 많이 있을 것이다. 대중은 변덕쟁이.
도심 곳곳에 흩어진, 있으나 마나한 관학풍 청동 덩어리의 존재감은 그 조각상의 몰취향에 대한 공중의 불감증을 증언한다. 반면 광장 한복판에서 일상적 보행을 가로막은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는 무사안일한 시민의 미감을 과도하게 뒤흔든 경우이다. <기울어진 호>가 던진 예술의 장소특정적 가치는 보행자 입장에서는 가던 길을 방해하는 불편만도 못한 메시지일 것이다. 이 작품은 소송 끝에 광장에서 철거되었고, 작품의 퇴출은 역설적으로 작가에게 명예로운 악명을 돌려줬다. 공중의 변덕을 자극하면서 랜드마크로 인정 되는 공공예술은 만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공공예술 운명의 절반은 공중의 변덕이 쥐고 있으니까.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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