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912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76회분. 내 연재는 지난 한 주를 건너 뛰어 이번주 홀수 호수에 실렸다. 다른 긴 원고를 막느라 시간이 없어서 늦게 집필을 시작했는데, 편집부에서 '지면이 차서 한 주 쉬어야 할 거 같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이번 호부터 약 4~5회 간 브랜드를 다루려고 한다. 그 첫 회는 '프라이탁'
재활용과 감동의 플라시보
좌상. 트럭 덮개에서 일부를 도려내는 프라이탁 가방의 제조 원리.
좌하. 비엔나 프라이탁 매장 내부
우. 취리히 프라이탁 컨테이너 스토어
뉴욕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목록 중엔 시중에서 판매하는 가방이 포함되어 있다. 제작년도가 1993년으로 찍힌 그 가방의 모델명은 F13 탑캣(Top Cat)으로, 이 가방 회사는 오늘날 전 세계에 400여 매장을 연 고가의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이다. 뉴욕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가방은 프라이탁이 창립 당시 생산한 원년 제품으로 고증적 가치를 평가받은 셈이다. 시각예술의 발전에 대등한 기여도가 인정되면 상품마저 미술관의 소장품 요건을 갖게 된다. 비유하자면 프라이탁은 제품 구입자를 예술품의 적극 관람자처럼 유인하는 전략을 주요하게 취했다. 예술이란 단 한 점뿐이라는 믿음이 소싯적 이야기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예술품의 존재감이 유일무이한 원본성에서 온다.’는 세간의 두터운 오해를 상품이 차용한 것이 그 중 하나다.
드넓은 트럭 덮개의 표면에서 특정 부위를 오려내어 ‘우연적인 시각 프레임’을 얻는 프라이탁의 미학도, 시중에서 판매되는 가방이 동일한 패턴을 무한 반복하는 관행적인 시각 프레임인 것과는 큰 차별점이 된다. 구입한 가방을 세상에 유일무이하다는 사실 역시 소비자에게 뿌듯한 자부심을 안길 것이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예술품처럼 인식시키는 유혹 장치를 끼워둔 것이다. 프라이탁과 예술 사이의 또 다른 연결고리는 제품을 진열하는 전시장의 알레고리에서 온다. 폐기 컨테이너 19동을 쌓아 올린 취리히 프라이탁 매장은 미니멀리즘 조각의 기하학적 규격과 정크아트의 재활용 미학을 결합시킨 구축물처럼 느껴진다.
국가마다 정도 차이는 있어도 제품들을 규격화된 하얀 서랍 속에 차곡차곡 쌓아 감춘 매장 내부의 통일성은 시체보관소처럼 냉정한 인상을 주지만, 이는 화이트큐브(미술관)의 일반적인 인상을 차용한 것이다. 비록 자체 로고가 따로 있지만 세상이 프라이탁을 인식하는 로고는 취리히의 컨테이너 매장이나 하얀 서랍으로 통일된 전 세계 매장의 내부 전경이다. 예술의 생리로부터 프라이탁이 취한 중요한 알레고리는 정크아트 전통과 관련이 있다. 수명 다한 폐품을 미학적 대상으로 부활시킨 정크 아트의 미덕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다. 자원을 재활용한다는 프라이탁의 에코백 윤리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예술’의 긴 전통과 일치한다.
가방의 재질로 쓰이는 방수기능 갖춘 트럭 덮개뿐만 아니라, 가방의 손잡이와 끈은 폐기된 안전벨트와 자전거 바퀴를 재활용한다. 정크 아트와 다른 점이라면, 친환경에 기부금 내는 심정으로 감상을 넘어 그것을 구입하고 소유한다는 점이다. 전시장을 닮은 매장 안에서, 유일한 제품을 관람하다가, 선한 윤리를 담은 가방의 메시지에 공감하여 지갑을 열게 되는 공식. 매우 각별한 유혹 장치들이 프라이탁을 에워싸고 있다. 프라이탁이 내건 고가의 가격이나 환불불가 조건 따위를 전부 수용하지만 만족하는 플라시보 효과가 발생한다. 본래 예술의 존립은 관람자의 플라시보 효과에 크게 의존한다. 감상 가치와 사용 가치는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예술의 작동 원리만 파악한다면, 어디건 응용해서 대박 날 텐데.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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