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2일 금요일

푸샵 2주년


내 인생에 어쩌다 이렇듯 소박한 '주년周年 소사'들이 늘었는지... 
오늘은 푸샵 2주년 되는 날이라, 1주년이던 작년엔 동영상(보기)을 올렸지만 올핸 그냥 인증 사진만. 변화가 있어야지 암.  
집안 거실에서 관람자에게 새배하는 설정샷인데 긴 머리털과 구부린 상체 땜에 완전 일본 괴기영화 <링 ring> 같네.  


2013년 3월 21일 목요일

0321 유언장


세 사건의 타이밍이 우발적으로 일치해서 올리는 포스팅. 


1. 어제 한나절 분량의 통증이 지닌 무게는 하루 일정을 날리고 향후 스케줄까지 재조정하게 만든 데 있기보단, 퇴원 직후 수개월 이상을 지배했던 비정상성의 불편함을 내게 환기시킨 데에 있다. 과장된 근심과 초연함이 찾아왔다.   

2. 수업 휴강공지를 하고, 마감하려던 연재 일정을 한달 뒤로 미루고 나자, 허망하기도 했지만 홀가분하고 무료해져서 집에 놓인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집어든 책 제목이 <어떻게 살 것인가>다. 제목과는 달리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방점을 두고 쓴 책이다(저자 인터뷰를 보니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원제로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상 교체했다 한다.) 내 독후감이 어땠냐고 지인이 묻기에, 저자의 주요 가치관 중 대부분은 나도 사전부터 갖고 있던 믿음이 많아서, 새로운 정보였기 보단 공감의 확대가 많았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책 말미의 에필로그에는 내가 몰랐던 '사전 혹은 생전 장례식'이 소개되어 있다. 즉 사망해서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 인파를 맞는게 아니라 죽음이 임박했을 때, 지인들을 불러서 잔치를 하고 정작 죽은후에는 관례적인 장례식을 하지 않는 의전이었다. 괜찮아 보였다. 또 저자가 소개한 자기의 유언장의 내용 중 나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지문을 일부 옮기면 아래와 같다.
=> "마지막은 화장이다" ... "유골함은 사양한다" ... "제사는 지내지 말라고 할 것이다" ... "나는 몸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영혼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3. 2001년 시사 주간지에서 '유언장을 미리 쓰라'는 특집을 신년호에 내보낸 적이 있다(아래 원문 기사). 당시 기사를 읽으며 공감했고 명심했지만 막상 유언장을 써본 적은 없었다. 한번 써둔 유언장 내용은 고정되는 게 아니라 틈틈이 수정하면 된다. 임종을 앞두고 유언장을 쓰는 건 위험하고 불안정하다. 유언장과 사망 예비자를 함께 묶으려는 편견도 강하지만 서구에선 미리 써두는 일이 많다고 한다. 3월이 가기 전에 한번 써두기로 약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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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2001년01월16일 제343호 

[표지이야기] 거룩한 준비, 유언장을 쓰자!

삶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한겨레21>의 제안… 진실한 내면과의 만남 이끄는 일상의 문화로




“올해는 한번쯤 자신의 유언장을 써보자!”
<한겨레21>이 설날을 앞둔 2001년 신년 초, 독자 여러분께 전하는 ‘화두’다. 정초부터 웬 유언장?, 하며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매우 불쾌한 생각을 갖는 독자들도 적잖을 것 같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한겨레21>이 권하는 유언장은 독자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임종 직전에 쓰거나 하는 말’의 유언이 아니다. <한겨레21>이 말하는 유언장은 ‘자신과의 내밀한 대화’이며, ‘나눔의 미학’이며, ‘관계의 정립’이다. 동시에 ‘피붙이와 가까운 이웃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고언(告言)’이며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위한 준비’이자 궁극적으로는 ‘삶의 새로운 출발’이다.


더불어 사는 사람에게 전하는 사랑의 고언

여기 유언장을 써서 호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두고 다니는 기업인, 서랍 속에 소중히 넣어두고 해마다 고쳐쓰는 목사, 유언장을 쓰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는 교수,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서 모두 유언장을 쓸 것을 권하는 여성이 있다. 이들의 주장과 내력을 찬찬히 살펴보면 <한겨레21>이 왜 유언장을 거론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1월12일 오전 연세대 원주캠퍼스 창조관 104호. 이 학교 노정선(56) 교수가 강의 중 A4용지 한장을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용지에는 뜻밖에 ‘유산기증 서약서’란 고딕체의 굵은 글씨가 또렷하다.
“여러분, 인간이 제일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게 뭡니까. 바로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 죽는 거 잘 죽어야 합니다. 비참하게 죽는 게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긍정적, 생산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압니까?”
노 교수는 자신의 뜻에 따라 잘 죽는 방법, 바로 그 최고의 방법론이 ‘유서 쓰기’라고 말하면서 “지금 나눠준 유산기증 서약서를 한번 찬찬히 살펴보고 비록 연습일망정 꼭 써보길 바란다”고 권고한다. “유서라고 해서 놀랄 것 없습니다. 유서는 영어의 ‘will’, 말 그대로 ‘나의 뜻’이란 말예요. 내뜻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전하는 것일 뿐이죠. 유서, 유언장은 불길하고 재앙을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이 유서는 자기가 죽은 뒤에 재산을 기증한다는 서약서입니다.”
노 교수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용지에는 ‘본인은 빈곤한 사람들을 도우며, 빈곤의 구조를 개혁하고, 타파하기 위하여 본인의 재산 중 1%(혹은 특별히 지정)를 빈곤퇴치를 위한 기금으로 기증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이제 갓 20대에 접어든 한창 나이의 대학생들에게 강의시간 중에 웬 유서인가? 그런데도 학생들은 거부감은커녕 되레 재밌고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나이많은 분들에게는 절대 유서이야기를 꺼내지 마십시오. 봉변당하기 십상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유서는 임종 때 써는 게 아닙니다. 임종 때는 유서나 유언이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기도 하죠. 유서는 여러분처럼 젊었을 때부터 미리 써 두는 겁니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난데없이 유서를 써보라고 권고하는 찐빵모자를 쓴 별난 교수. 학생들에게 나눠준 유산기증 서약서는 사실은 그가 벌이고 있는 빈곤퇴치를 위한 유산 1% 나누기 운동의 하나다.
“지난 98년 IMF사태 때 빈곤층을 도울 좀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 하고 궁리하다 유서쓰기를 통해 유산 1% 나누는 운동을 생각했습니다. 미국 등지에서 아주 일상화해 있는 유서를 통한 재산의 사회환원. 우리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시도해 본 것입니다.”

유산 1%를 빈곤퇴치를 위해 나누길



사진/“자신의 뜻에 따라 가장 잘 죽는 방법은 유서쓰기이다.” 연세대 노정선 교수는 강의시간에 '유서기증 서약서'를 나눠준다.(강창광 기자)

그렇다면 성과는? 한마디로 아직은 지지부진하다. 무엇보다도 “이 일에만 매진할 수 없었던”데다 “유서에 대한 일반인들의 거부감도 아직 적잖기 때문인 것 같다”는 게 노 교수 스스로의 분석이다.
여하튼 현재 그의 뜻에 공감해 유산기증 서약서를 쓴 이들은 아직은 서울신학대 정소영 교수 등 10여명이 고작이다. 하지만 노 교수에 따르면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1%가 아닌 10%의 재산을 기증하겠다고 서약했다. 노 교수 자신도 물론 10%의 서약자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세상입니다. 삶을 좀더 의미있게 살고 풍성하게 하기 위해 나의 가진 것을 빈곤구조타파를 위해서 나누는 것, 참으로 보람있을 겁니다. 1% 유서쓰기 운동은 사람을 더 사랑하고 나 자신을 좀더 성숙하게 하는 운동입니다. 4천만명이 모두 1% 운동에 동참한다면 이 땅에 꿈같은 사회복지 혁명이 일어날 텐데…. 하지만 꼭 이 서약서가 아니더라도 30살 이전의 젊은 나이부터 유서를 한번 써보는 것을 권장합니다.” 노 교수의 강의는 계속된다.
비록 그 목적은 다르지만 이런 유서쓰기를 캠페인하듯이 동네방네 외치고 다니는 또다른 사람이 있다. 김항안(60) 목사. 그 또한 각종 세미나나 교회행사 등에서 만나는 사람과 교인들에게 유서쓰기를 꾸준히 권유하고 있다.
1월11일 그가 대표로 있는 서울 상도1동의 ‘한국교회정보센타’를 찾았다. “어떤 뜻으로 유서를 써보라고 하는 것입니까?”란 물음에 그의 답은 매우 간단하다.
“유언장을 써보라고 하는 것은 비록 한순간이나마 자신을 진실하게 쳐다볼 수 있는 기회, 그걸 가지라는 거죠. ‘유언장 미리쓰기’는 쓰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의 진실을 만나게 합니다. 단 ‘오늘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이라는 확정된 마음에서 유언장을 작성해야 합니다.” 그의 이런 말에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재산 문제에만 연관시키며 골치아파할 뿐이었다고 한다. 불쾌한 반응도 없잖았다.
김 목사는 “하지만 유언장 미리쓰기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한번쯤 결산해보는 일, 물질과 자신의 관계를 정산하는 일, 자식들에게 삶의 지표를 주는 것 등 많은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습니다만 죽음은 순서가 없습니다. 죽음은 어느날 도적처럼 옵니다. 죽음은 영원한 세상과의 결별인데, 아무런 준비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

사람과의 관계 결산하며 삶의 지표 삼아



사진/유서는 젊었을때 미리 써두는 게 좋다? 대학 강의실에서 유서쓰기의 의미에 대해 강의를 듣고 있는 대학생들.(강창광 기자)

김 목사는 그 자신 스스로도 유언장을 미리 써왔는데, 몇해 전에는 1달에 한번, 지금은 1년에 1번씩 연말에 꼭 묵상을 한 뒤 유언장을 새롭게 고친다고 한다. 그가 간직하고 있는 지난 2000년 12월29일 작성한 유언장, ‘나의 유언’을 살짝 훔쳐보았다.
김 목사는 먼저 ‘사랑하는 가족에게’란 항목에서 “(나의 죽음을)슬퍼하지 마시라”며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다스릴 자격이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실에 책임지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는 당부의 말을 담았다. 김 목사는 또 “내가 남긴 모든 재산권(동산, 부동산, 자료, 지적재산권)은 한국교회정보센타에 귀속된다”고 재산 문제도 분명히 정리했다.
“인간은 연습의 명수입니다. 발음훈련, 걸음마훈련, 대소변가리기 등 각종 연습에 이골이 난 경력자입니다. 어떤 형태의 연습을 해도 한 가지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유언장을 만드는 일입니다. 유언장은 결코 종말이 아닙니다. 새 출발을 위한 준비운동과 같다고나 할까요.”
김 목사는 따라서 한달에 한번 날을 정해 유서쓰기 연습을 해볼 것을 권한다. “방과 소지품을 정리하고 빚도 갚고 유언장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연습은 나와 너, 즉 가족, 친지, 이웃과 화해되지 않는 관계의 매듭을 푸는 일입니다. 철저한 자기반성이며, 새로운 결단의 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단법인 한국수양부모협회 박영숙 회장(주한 오스트레일리아대사관 문화공보실장).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힘쓰는 그 또한 유언장 쓰기를 주창한다. 그 스스로 유언장을 “밥먹듯이” 써왔다(41쪽 기사참고).
“우리 부부는 일찍부터 유언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멀리 여행할 때는 남편(미국인)과 저는 언제나 그렇듯 유언장을 고쳐 씁니다. 두 사람의 증인까지 세우기도 하죠. 내용은 가족에게 쓴 편지글 같은 내용, 재산 문제 등을 담지요.”
박 회장은 왜 이렇듯 자주 유서를 쓸까. “특별한 게 아닙니다. 서구의 많은 사람처럼 우리 부부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일일 뿐입니다. 유언장은 내가 복잡하게 얽어놓은 것들을 책임지고 풀고 가야하는데 갑작스럽게 죽으면 이를 풀 수 없죠. 바로 이를 대비해 그걸 풀어달라고 가족이나 주위에 부탁하는 말이죠. 유언이라는 말의 원뜻이 자신이 진 빚을 갚기 위해 후손에게 알리는 것이랍니다. 한국인들은 유언하면 나쁜 징크스나 재앙을 불러오는 불길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쥐뿔도 없으면서 무슨 유언이냐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게 아니죠.”

자서전이나 반성문을 쓰듯

박 회장은 유언장을 쓸 때마다 “늘 자신의 욕심을 들여다보고, 그 한계를 깨닫는다”고 말한다. 그는 “유언장을 쓸 때 나도 모르게 내면과 깊은 대화를 갖게 되며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깨닫고 허황한 생각들을 지우게 된다”고 덧붙인다. 한마디로 박 회장에게 유언장 쓰기는 한편에서는 자서전이나 반성문 쓰기와 같은 것이다.
박 회장은 이런 개인적인 의미 외에 다른 뜻에서도 유언장 쓰기를 주창한다. “유언문화가 보편화돼 있는 미국사회에선 유언이 최우선적인 법적 효력을 갖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유언문화가 없다보니, 입양아의 경우 재산분배를 앞두고 파양(입양한 아이들을 내쫓는 일)되는 일이 많습니다. 입양됐다 내쫓기면 아이들이 어디로 갑니까? 수십년간 수양부모와 입양문제를 다루면서 제가 내린 결론, 그것은 바로 법적 효력이 뚜렷한 유언이 활성화돼야 입양이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3월 서울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의 한 숙소. ‘태평로클럽’ 멤버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합숙모임을 가졌다. 태평로클럽은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가 대표로 있는 각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모임. 이날 석유화학원료 운반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선 업체인 (주)KSS해운 박종규(67) 회장이 갑자기 일어나 유언장을 낭독해,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박 회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킨다>는 저서를 낸 중소기업인으로 상도의를 지키고자 하는 경제인들의 모임인 바른경제동인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기업에 횡행해온 사내인맥, 리베이트(뒷거래), 밀수, 회계장부조작 등을 하지 않고 정도(正道)경영을 경영원칙으로 삼고 실천해온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이 편지를 발견한 처음 사람은 저의 시신을 즉시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기도록 부탁드립니다”란 글로 시작되는 박 회장의 유언장. 그는 98년 9월1일 유언장을 작성한 뒤 양복 왼쪽주머니에 늘 집어넣고 다녔는데, 이날 이를 공개한 것이다(박종규 회장의 ‘나의 유언장’ 참고).
“부끄럽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유언장을 쓴 것 갖고 이렇게 찾아오다니. 그저 어차피 사람이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장기기증은 늘어나고 시신기증이 모자라 의대생들이 애먹는다는 얘기를 듣고 몇 마디 적어둔 것뿐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회원들과 뜻을 같이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그저 공개한 것이죠.”
아들 셋을 두고 있는 박 회장은 실상은 두장의 유언장(유언장 ‘하나’, 유언장 ‘둘’)을 작성해 놓고 있다. 유언장 ‘하나’에는 부인과 자녀들에 대한 당부와 묘지와 제사에 대해서 쓴 문서. 그가 클럽회원들에게 공개한 그 문건이다. 유언장 하나에서 특기할 부분은 제사에 대한 언급인데, 그는 “차례를 지내는 일은 장남의 며느리가 되는 사람에게는 큰 짐이 된다”면서 이를 “간편하게 추모일 정도로 하는 게 좋겠다”고 권고했다.
미공개 유언장인 유언장 ‘둘’에는 재산 문제가 기록돼 있다. 성공한 중소기업인으로 적잖은 재산을 갖고 있는 그는 이 유언장에서는 재산의 1/3은 가족에게, 또 1/3은 우리사주조합에 기증해 종업원들의 복지에, 나머지 1/3은 사회에 기부하라고 적었다고 전했다.
“자녀들과 상의했느냐, 반응은 어땠느냐”는 물음에 박 회장은 “흔쾌히 아버지의 뜻을 따라줘 문제가 전혀 없었다”며 웃었다. “바다에서 해운업으로 돈을 벌었으니 죽은 뒤에는 한줌 재로 역시 바다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박 회장의 말이다.

유언장 쓰면 사회적 생명력이 성숙해져



사진/40대에 유언장을 처음으로 쓴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 그는 유언장을 쓰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떨칠 수 있다고 말한다.(박승화 기자)

“내 모든 장기를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줘라. 시체는 가까운 의대상 실습용으로 제공해라. 해부제가 끝나면 화장한 재 한줌 얻어다 위령탑 근처에 뿌려라. 너희들이 서운하거든 손바닥만한 나무에 내 이름을 새겨라. 너희도 세상을 떠날 즈음이면 내 위패도 썩어 흙으로 돌아가겠지.”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67·동남정신과의원)가 공개한 유언장의 일부다. 이 박사 또한 유언장 쓰기의 주창자. 그가 유언장을 처음 쓴 것은 40대인 20여년 전. “의사란 직업이 늘 죽음과 가까이 있는 직업 아닙니까? 중풍환자들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당시 교통사고율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높았습니까? 1979년쯤인 것 같은데. 아파트 잔금을 다 갚았던 그날, 이제 내 이름으로 뭔가 확실한 게 생겼다는 생각으로 유언장을 처음으로 썼습니다. 비록 작은 재산이지만 평소 소신대로 아파트는 모교인 경북대 의대의 연구기금으로, 시신과 장기는 기증하는 걸로 썼죠. 그때 쓴 유언장을 죽 서랍 속에 간직해 왔습니다.”
이 박사는 “그러다 연말에 한번씩 꺼내보고 바꿔쓸 부분이 생기면 손을 대왔다”고 한다. 3년 전쯤에 다시 손을 댔는데, 재산의 일부를 강북삼성병원 정신과에 연구기금으로 기증하겠다는 뜻을 기존의 글에 추가했다고 한다.
유언장을 쓰거나 보면서 그동안 살아온 길을 한번쯤 정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사람살이하면서 자신을 그렇게 깊이있게 들여다보는 기회,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내가 왜 사는가, 뭘 바라는가를 알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 박사는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비록 연습으로라도- 모두 자신의 유언장을 진지하게 미리 한번 써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권고한다. 그는 그러면 어쩌면 기부문화가 박약한 우리 사회에 기부가 갑자기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한단다.
“유언장을 쓰고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도 한결 없어집니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종교인이 된 듯한 느낌이죠. 또 하나. 재산이 많고 적고간에 죽은 뒤 자식들의 재산싸움도 미리 막을 수 있고요. 유언장을 한번 쓰고 나니까 내 인생이 한마디로 풍요로워진 듯한 기분이었어요.”

성숙한 삶을 위한 유언장 미리쓰기

우리 사회는 유서 또는 유언장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 일반인들에게 유언장을 들먹이면 무슨 살인사건 현장의 유서나 수십억원대의 유산의 향방이 걸린 재벌가의 일급비밀 유언장을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실 유언장 미리쓰기는 노정선·박영숙·이시형·김항안씨 등에서 보듯 예측하지 못한 죽음에 대비해 세상과 가족들에게 남길 말을 미리 써두는 통과의례이며 죽음에 대한 자신의 성숙한 준비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저 담담한 일상의 한 영역일 뿐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진실의 심연에 비친 자신을 만나는 값진 시간이기도….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0320

통증이 한순간도 멈추질 않아 절망적.


 위는 0320 쓴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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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0321 : 위문 덧글마다 일일이 같은 감사글을 남기려다 긴 추신을 답니다. 통증은 현재 사라졌고요. 통증의 빌미는 감기였지만 추진체는 2010년 사고로 다친 머리 후유증인데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몸이 차가와지면 두통(정확히 말하면 눈알이 욱씬거리는 통증)이 동반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한달에 한번 꼴로. 하지만 어제처럼 통증이 대략 15시간 이상 지속되면서 눈코입 부위로 확산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넘어 낙담의 폭까지 컸던 모양입니다. 또 당장 진통시킬 수단이 안 보여 상심이 컸습니다. 작년 1월에 통증 문제로 병원에서 뇌 MRI를 찍고 진단 받았지만 예상대로 치료법이 달리 있진 않더군요. 의사도 두통약을 일단 먹으라고 하면서 이건 일시적인 해법이라고 덧붙였고요. 어제 잡힌 수업 출강은 새벽녘까지는 망설였지만 오전 무렵 휴강을 결정하고 학과에 통보했는데 노트북 모니터를 마주보고 있자니, 한심한 생각에 위에 적은 짧은 한탄을 남기게 됐죠. 위안을 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위문 덧글에 감사하고요, 위안이 됐습니다.

2013년 3월 16일 토요일

Line Of Sight - Lucas Brunelle

 

원고 하나를 방금 마쳤다. 한숨 돌리려고 유투브를 뒤지다가 올려진 풀영상을 하나 찾았음. 지금 당장은 사정상 볼 수 없고 다음 망중한에 봐야지. 아마 뉴욕 바이크 메신저들의 도심 속 경주를 다룬 영상 같다. 연전에도 짧은 단편 영상은 여럿 봤지만 마지막 장면에 크레딧까지 올려지는 풀 영상은 처음 보는 셈. Lucas Brunelle은 자전거를 촬영하는 비디오 촬영자로 유명한데 본인도 카메라가 장착된 모자/헬멧을 착용한 채로 자전거 주행자를 촬영하면서 달린다.    

 

2013년 3월 15일 금요일

짜증나는 뉴스캐스트 '속보' 사진과 기사제목


<경향>에 칼럼 연재하던 작년, 뉴스캐스트 낚시 제목의 폐해(엮인글)에 관해 쓴 적이 있는데, 원고를 기고한 <경향> 역시 관련 낚시 제목 다는데 뒤지지 않는 선수다. 그 매체가 가장 선호하는 낚시밥은 '속보'임. 충격고로케에 '속보' 부분이 있는데 거의 언제나 부동의 1위가 <경향>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어느날 부턴가 충격고로케가 소개하는 여러 낚시밥 목록에서 '속보'가 사라져버렸더라. 언론사가 항의라도 했나...?

지금 현재 시간, 네이버 뉴스에 뜬 경향의 또 다른 '속보' 화면. 보면서 어이가 없어서...  김연아 연기 표정 가운데 어쩜 저런 장면을 골라서 낚시질이야.... 베르니니의 성테레사의 액스터시(Ecstasy of Saint Teresa)냐? 아 유치해서... 하는 짓들이.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도시침탈 (씨네21)


* <씨네21>(895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68회분. 내가 보낸 제목은 아래와 같고, 편집팀에선 '표류하라'라는 간략한 제목으로 교체했다. 뭐 괜찮음.
  

빼앗긴 도시에 침범한 봄




상좌. 파쿠르를 다룬 영화 <야마카시>의 장면 2001년
상우. 알랭 로베르가 최단시간 등반 기록을 깬 어스파이어 타워 2012년
하좌. 도시에서 자전거 묘기를 하는 대니 매커스킬의 연속동작
하우. 촛불집회 2008년 (참여현상소 촬영)



 정해진 길을 따라 가는 건 안정된 선택이지만, 시스템에 수긍하는 수동적 자세이기도 하다. 예술은 그런 길을 가지 않는다. 범주, 분류, 등급, 규칙을 정하는 건 사안을 또렷하게 하고, 선악의 구도도 선명히 밝히지만, 지배자의 전형적인 논리인 것도 사실이다. 이분법처럼 잘라 나눌 순 없지만, 예술이 놓일 별도의 자리를 정하고 엄정한 공식이나 규칙에 예속시킨다면, 제도권 예술과 보수주의 취향에 가깝다. 반면 예술을 생활로 연장하고 공식을 변형하고 규칙을 이탈한다면 전위예술이나 진보주의 미감에 가깝다.

예술과 일상을 분리시켜 사유하는 건, 다수 대중과 극소수 특권층의 머리에 자리 잡은 도그마다. 이들은 정치와 일상도 분리시켜서 한다고 믿는다. 비록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일상의 예술’이나 ‘일상의 정치’ 가운데에는 품질이 낮은 하수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중과 특권층의 동기화된 믿음 때문에 사회의 완고한 시스템이 정착된다.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은 사회 시스템의 억압을 도시 구조에서 발견했다. 특권층이 점령한 계획도시의 일상에 대중이 안착해서 시스템의 억압을 강화한다고 봤고, 그들에게 점령된 도시의 지리학을 탈환하기 위해선 도시 이곳저곳을 무계획적으로 ‘표류’하라는 지침을 줬다.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심리 지리학(psychogeography)은 과거사에 머물지 않고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도시 법규를 위반하고 공간의 지형도를 멋대로 지정하는 ‘표류’를 차용한 기행들이 속속 계발되어 도시를 점령 중이다. 표류는 높은 위험수위에도 안전장구 없이 맨손으로 시행되곤 한다. 안전제일이나 규칙은 중요한 가치일 수 있으나, 침범자에게 어울리는 철학은 아니므로. 날다시피 건물과 건물을 가로지르는 파쿠르(parkour)의 동선은 길일 수 없는 곳에 길을 낸다는 점에서 도둑이 길을 만드는 논리를 닮았다. 

세계 최고층 건물만 골라 맨손으로 등반하는 알랭 로베르에게 어울릴 공식 직함도 고르긴 어렵다. 당국에서 불법으로 간주한 그의 건물 등반은 공식 종목이 없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으로 그가 호칭되는 이유일 것이다. 사고 위험이 높지만 결코 안전장구 없이 주행하는 오토바이 폭주족과 프리스타일 BMX자전거 라이더는 기존 형태를 과격하게 변형시킨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다. 폭주 오토바이는 정상적 교통 흐름을 역행하는 점에서 사회 불안요인으로 간주되지만, 도시 침범을 감행하는 ‘극단적인’ 표류에 속할 것이다.

당국의 불법 규정과 안전장구 미착용을 집단이 수행한 표류도 있다. 또렷한 정치 메시지를 담은 촛불시위의 무수한 사례들이다. 도시를 침범하는 표류의 총합는 인체의 한계에 도전하고, 규정을 위반하며, 실패할 경우 최소 구속 최대 죽음으로 연결되는 위험한 인체 실험이다. 불안정한 표류를 택해서 주류의 지위를 포기한 비주류는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위험을 동시에 떠안는다. 비주류는 주류의 스펙터클을 혐오하되, 숨통이 트이는 ‘독보적인 볼거리’를 남긴다. 때문에 비주류의 표류는 일상과 예술을 결합시킨 전위 예술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찍히고, 찍히고, 찍히고


사진- 곽명우



초대 작가가 그림 모델이 기념 사진을 찍고, 그 장면을 내가 찍고, 그런 나를 사진가가 찍고.  찍히고 찍히고 찍히다.  

3월11일(월) <젊은 모색> 개막식장에서.

2013년 3월 10일 일요일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준' 한국판 마들렌, 쫀디기


냄새의 기억으로 지나간 추억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 과자처럼. 

한국에도 어떤 세대의 유년을 환기시키는 마들렌 같은 과자가 있는데.... 오늘 동네 마트 한구석에 놓인 주황색 찰고무를 닮은 불량식품 쫀디기를 발견. 가격 990원. 

시중에 판매되는 과자류가 천편일률적으로 오감 자극의 극대화 경쟁에 나선 반면, 시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년시절부터 유구한 밋밋한 맛의 전통을 지켜온 쫀디기는 천박한 주황색 빼곤 대략 무미건조한 후각과 미각 자극에 안주하고 있다. 바로 그 점이 쫀디기가 구입자의 유년시절 전체를 환기시키는 힘을 지니게 만든다. 후각은 편도체와 관련을 맺고, 편도체는 감정을 주관하며 기억중추인 해마와 가까이 있다. 그러니 후각 자극은 기억의 증진으로 이어진다. 첫 경험의 순간을 오래 각인시키려면 편도체가 관여한 후각 자극이 개입될 때라고 함. 유년시절을 통째로 환기하는데 990원짜리 주황색 간식만 있으면 해결된다. 



2013년 3월 8일 금요일

0308 웜바디스 Warm bodies


3월8일(금) 웜바디스 시사회. 왕십리CGV. 



어제 살핀 시사 일정표에 다음날(3월8일) 오전 10시30분 하는 영화가 있길래 너무 시간이 일러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하필 그 날 배송 받은 금주 <씨네21>(894호)의 표지에서 그 영화의 주인공을 다뤘다. <웜바디스>. 어떤 스토리인지도 대략적인 확인조차 않고, 오늘낮 부족한 잠을 이겨내고 극장으로 향했다.  

좀비 영화가 보여주는 일반성, 전반적으로 잿빛을 띠는 화면과 좀비들의 집단 서행 움직임이 전반부에 오랫동안 배치되어 영화 초반부터 역동감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진 못한다. 따라서 초반부가 약간 지루할 수도 있다(남자 관객한테만). 그런데 좀비들의 느린 서행과 잿빛 좀비들의 나른함을 미청년 좀비로 출연하는 니콜라스 홀트가 비주얼 한방으로 탕감하는 구도인 거 같았다. <어바웃 어 보이>에서 소년으로 출연한 그는 미청년이 되어 돌아왔는데, 좀비 분장의 창백한 피부와 퀭한 눈매마저 탐미적 얼굴 라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코스매틱이다.  

스포일링을 하고 싶진 않아서 상세히 털어놓을 순 없는데, 좀비가 인간의 뇌를 먹으면 뇌의 주인의 기억을 고스란히 전수받는다는 영화적 설정은, 남의 디지털 자료를 다운로드 받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현재의 매체 환경을 염두에 둔 설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연히 영화 속에서 좀비 퇴치 사령관으로 출연하는 존 말코비치의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7층과 8층 사이인 7 1/2층에서 남의 뇌에 들어가 남을 조정한다는 영화적 설정과도 약간 겹쳐 보였다. 세상 만인에게 최고 관심사란 바로 은폐된 채로 숨겨진 상대방의 속마음 읽기 아닌가. 영화 소재로 수시로 쓰이는 이유겠지. 
 
스포일링이 싫어서 영화의 반전  부분은 털어놓을 없는데, 장벽을 무너뜨리는 상징적인 장면과 영화의 반전 내용을 통해, 현실에서 이런 저런 사랑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사랑의 영화였다. 그런 인류애적 메시지를 어울리지 않는 좀비 영화에 충전시킨 점과, 니콜라스 홀트의 미청년 호소력이 결합되어 <웜바디스>가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온 모양이다. 조롱 아니다.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 
 

* 80년대 록밴드(GNR나 Scorpions)의 히트곡들이 간간이 틀어진다.  



영화 시사회장에 가면 수입사측에서 시사 초대권과 함께 경품을 나눠주는 경우가 차츰 늘고 있다. 오늘은 영화의 원작 소설인 아이작 마리온의 <웜바디스> 소설책과 커피를 나눠주더라.   

2013년 3월 6일 수요일

0305 누구나 제 명에 죽고싶다


3월5일(화) 14시 왕십리CGV. 

광화문에서 오전에 일을 마치고 함께 한 사람들이랑 점심을 먹은 직후 5호선을 타고 왕십리CGV로 갔다.
광화문 미팅에선 내게 '자전거 오늘은 안 타고 왔냐'고들 물어봤고, 미팅 마치고 시사회를 가려고 안 갖고 왔다고 답했다. 

왕십리CGV에선 제작사 KAFA films의 영화  두편의 시사회가 연달아 열렸는데 모두 볼까 고민하다가 첫 영화만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예고편을 보니 두번째 영화 <설인>은 작년 신디영화제 심사할 때(엮인글) 이미 봤던 작품이었다. 내가 1년도 안 된 사이에 제목을 잊어 버린 거다.  

보도 자료를 보니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는 17회 부산영화제(2012) 뉴커런츠 공식 초청작이란다. 

영화는 '2중의 삼각구도'로 전개된다. 각기 다른 남자의 친형제들이 한 젊은 여자와 삼각관계로 엮인다. 빌려준 돈이 빌미가 되어 둘은 헤모글로빈이 흥건한 죽음을 맞고, 죽은 두남자의 각기 다른 친형제들이 다시 같은 여자를 중심으로 휘말리지만 이번에는 삼각관계로 엮이진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 여자를 중심으로 다시 삼각관계가 생기는데 죽은 남자의 친형과,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의 관계다. 형사를 개입시킨 삼각관계 설정이 이 영화에서 반전이라면 반전일 텐데, 극의 후반부까지 살려내지 못한 일회성 '깜놀' 요인으로만 쓰고 버린 건 아까운 것 같았다.  

인명을 적질 않아서 위의 설명이 복잡한데....
각기 다른 형제 2세트가 한 여자와 두번 얽히고. 셋의 관계는 빌린 돈과 두번 얽히고. 삼각관계가 두번 반복되고. 이런 2중의 삼각구도로 이야기를 전개 시킨다. 심지어 각기 다른 두 형제가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 여자의 차를 쫒아가는 장면이 반복되는 점까지 동일하다. 나름 극의 리듬감을 살리려고 애쓴 구도다.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는 관람 내내 독립영화필을 느꼈는데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다음처럼 주관적 이유들이다.  
-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출연진의 전면 배치 → 검색을 해보니 다들 영화출연은 많이 한 거 같다. 다만 스타급이 아니란 의미다. 
- 어두운 실내 조명이 기성 영화에 비해 유독 도드라지고
- 느닿없는 정사씬(아래 도판 참고)을 통해 이야기의 분기점이 생기고
- 마지막 보복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처리한 화면


작년 부산에서 상영한 영화인데 실제 촬영 시점이 언제인지 궁금했는데, 이유는 시대상을 내세운 영화가 아님에도 출연진이 사용하는 휴대전화가 죄다 폴더 피처폰이어서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오늘의 풍경과 너무 큰 격차가 있어서다. 화면 속 휴대전화의 기종을 통해 영화의 질감까지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여배우는 실물은 그렇지 않을 테지만, 스크린 속에 비친 모습이 언뜻 (기상캐스터였다가 방송인으로 전향한) 박은지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관람하면서 '어딜 가도 이젠 늘씬한 여성이 많아졌다'는 생각을 했다.  

시사회가 끝나고 곧바로 감독 배우들이 나오는 기자 간담회가 열렸는데 나는 뒷일정도 있어서 장외로 나왔다.

영화 초반에 튀어나온 어느 무능한 배역의 대사. 기억에 남네 →  "알았어. 걱정하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