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6일 수요일

0625 빅픽처

6월3일(월) 14시 아트하우스 모모. 더글라스 케니데 원작/ 에릭 라티고 감독 <빅픽처 L'homme qui voulait vivre sa vie>(2010) 시사회. 

별점: ★★★☆





 '한창 때'의 까뜨린느 드뇌브 Catherine Deneuve.



해안가에 한적하게 설치된 쓸쓸한 철봉 위로 곧게 매달린 (기계체조 중인) 어느 남성의 흑백사진. 도입부에 배치된 이 흑백 사진의 장소와, 촬영 행위가 낳은 사진이라는 인화물은,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사진이 담고 있는 장소와, 사진 촬영 행위로 주인공이 예기치 않게 복귀하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테리 형식으로 띤 이 프랑스 영화는 더글라스 케니디의 원작 소설에 바탕을 둬선지 전개가 꽤 탄탄한 편이다. 별점 3개반이 적당할까, 4개가 적당할까... 망설였다. 완성도는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올드팬을 위한 또다른 즐거움은 이 영화에 1960년대 프랑스 영화의 섹스 아이돌이었던 까뜨린느 드뇌브(1943년생)가 70대의 모습으로 짧게 출연한다는 점. 영화는 극의 남녀 4명이 얽힌 (어쩌면 두개의) 삼각 관계가 전개되는 긴장을 추적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미스테리가 전면에 깔려있지만, 이야기의 가장 큰 축은 사망자의 이름을 빌려 사진 작품을 행하는 숨은 재능을 발현하는 어느 사내에 관한 것이다. 사진을 매개로 죽음자의 생을 '문서상으로' 연장시키는 모습은 '예술은 인생보다 길다'의 알레고리 같기도 하다. 또 뜻하지 않은 사망자에 대한 주인공의 책임감은, 영화 후반부에 어느 밀항자를 구원하고 그에게 비리의 폭로에 대한 공로까지 돌리는(마치 이름을 빌려주는 것처럼) 결말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노마드형 예술가의 진면모를 알레고리 하는 것 같았다.  


* 영화의 예기치 못한 또 다른 묘미는, 폴이 고향에서 탈주해서 머무는 어느 나라의 외딴 지역의 모습이다. 외진 산골 마을의 어느 집에 세들어 사는 형태이었는데, 한적한 산골에 지어진 집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집을 새로 지어 살고 싶다는 생각 또는 아주 외딴 곳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내가 자막을 제대로 읽었다면....) 영화에서 주인공 폴과 크렉이 사진에 관해 짧게 주고받는 대화 중에 크렉이 사진가 아베든 Richard Avedon의 영향력을 언급하는 대사가 있었다. 생전에 주로 유명인사의 인물사진을 찍은 아베든이었고, 그 때문인지 사진가 자신의  자기애도 퍽 강했던 것 같다. 위의 사진은 그 무렵 인기절저으이 패션 모델 트위기Twiggy와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카톡합니다 - 카톡 pc버전

한 3~4일 됐나요...? '카톡 pc버전'이 검색순위 1위로 하루종일 오른 적이 있죠.

스마트폰 미사용자로서 친구가 선물한 태블릿pc에 카톡앱을 깔아뒀지만, 친구신청은 자주 들어오는데 정작 태블릿pc를 거의 꺼두는 데다가 여전히 '스크린 타이핑'에 미숙해서 카톡은 거의 안 한다고 보면 되었는데 '카톡 pc버전' 출시로 카톡 실시간 채팅이 가능 해졌습니다.

저는 약속으로 외출하는 일 빼면 거의 집에 앉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으므로. 외부에서 지인들을 만나면 "카톡에 뜨더라."는 얘길 듣는데, 스마트폰 미사용자로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아무튼 '카톡 pc버전' 깔아 카톡 가능해요.


2013년 6월 19일 수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눈화장 효과 (씨네21)

* <씨네21>(909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75회분. 



눈빛 서명



좌. 피에로 만초니, 살아있는 조각 1961년
우상. 러시아판 <보그>에서 클로이 모레츠 2012년
우하. 이효리 <미스코리아> 2013년



예술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무수한 요인 가운데에 가장 손품을 적게 쓴 것은 15세기 경 그림 속에 유행처럼 삽입된 작은 파리 한 마리일 것이다. 정밀묘사로 그려진 파리 한 마리는 재현 능력을 판가름하는 잣대로 인정되었다. 현대미술 중에도 일상적 대상을 예술로 승격시키는 몫이 대개 사소한 장치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현대미술의 생성 원리를 자조적으로 풍자한 피에로 만초니의 시도도 한낱 사소한 개입만으로 변별력을 얻은 경우일 것이다. 만조니는 여성의 알몸에 자신의 서명을 남겨 ‘살아있는 조각’이라 칭했다. 예술품을 인증하는 작가의 서명에 올인을 해서 얻은 미학적 역설이다. 얼굴의 주요 부위 한곳을 변화시켜 사람의 인상을 모조리 바꿔버리는 기술은 눈화장이다.

다만 아이라인의 일부를 바꿨을 뿐이지만, 인물의 성품과 정체성까지 동반해서 변모한다. 눈화장은 타불라 라사를 완성작으로 채우는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화장으로 손을 본 눈매와 눈꼬리는 표정과 감정을 지어내어 얼굴에 삽입한다. 삐죽 올라간 눈꼬리 때문에 청소년 시절 손연재는 20대의 성숙한 처녀처럼 보였고, 아역 배우의 청순한 그림자가 드리운 클로이 모레츠(1997년생)는 농염한 팜므 파탈로 돌변했다. 예능방송에서 보여준 털털한 이미지의 가산점을 확보한 채로 이효리가 시도할 수 있는 변신술은 <미스코리아>에서 눈꼬리를 올린 자신의 마스크이다. 온몸을 던지는 누드 화보 촬영이 세간에서 잊힌 스타가 재기를 위해 택하는 파격 승부수라면, 지분을 확보한 스타라면 그저 눈매만 살짝 바꾸는 것으로도 충분한 변신술을 얻는다.

하지만 눈매로 각인된 인물은 아이라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역설과 만난다. 지워진 눈화장은 눈가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스모키 아이라인으로 규정되는 손가인을 생각해보라. 인물의 인상을 바꾸는 것이 화장술의 일반론인 걸 감안해도, 눈 부위를 살짝 다듬어서 새로운 페르소나를 낳는 눈화장의 마술에 비할 수는 없다.

남녀의 불륜을 연구한 철학자 리처드 테일러는 “낯선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눈빛만으로도 일련의 의미 있는 사건이 일어났거나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대다수의 불륜 아니 거의 모든 불륜이 바로 이렇게 시작된다.”고 풀이하면서, “눈빛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솔직한 감정을 숨길 수 없어서”라고 이유를 댔다. 눈은 명시적인 언어를 담진 않지만, 육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점에서 예술에 뒤지지 않는 가장 신뢰할 만한 인체 기관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0618 냉소-분노-공격성 테스트

에피소드1. 
쉽게 분노하고 자기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지인을 알고 있어서,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보려고 출강하는 대학 도서관에서 관련 책들을 찾다가, 냉소지수-분노지수-공격성지수를 자가 테스트하는 요령이 적힌 <분노가 죽인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46개 문항으로 지수를 판단하는 건데, 나도 궁금해서 해봤다. 예전보다 마음을 많이 다스리는 편이라 관대 지수가 높아졌으리라 믿었는데, 몇개의 지수에선 수치가 높게 나오더라. 문항에 답하다가 웃음이 텨져나오는 질문들이 있어서 보여주려고 받아 적어왔다. 함 보시길 아래를.  :-) 


Q1. 누군가가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다.
a. 그런 일은 보통 빨리 잊는 편이다. 
b. 여러 시간 동안 계속 그 일을 생각하는 편이다. 

Q2. 누군가가 황당하게 무식한 이야기를 한다.
a. 그런 사람을 교정해 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b. 그냥 지나쳐버린다. 

Q3. 누군가가 무례한 짓을 하거나 신경을 돋운다. 
a. 앞으로 그 사람을 피할 것이다. 
b. 똑같이 그 사람을 거칠게 대할 것이다. 

Q4. 대화중 누군가가 아주 느리게 말한다.
a. 그런 사람의 말을 중단시키는 편이다. 
b. 그런 사람이 말을 끝낼 때까지 듣는 편이다. 

Q5. 과거에 당신을 화나게 했던 일들이 기억났다. 
a. 다시 화가 난다. 
b. 지난 일이라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Q6. 가끔 무능한 사람들과 일할 때가 있다. 
a. 자신이 맡은 일에만 열중한다. 
b. 그들이 하는 일을 보며 참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난다. 

Q7. 어떤 사람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
a. 그런 생각을 혼자만 속으로 간직한다. 
b. 그 사람이 당신의 그런 생각을 알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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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2. 
같은 대학 도서관에는 검색용 컴터들이 세워져 있는데, 학생들은 곧잘 웹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어떤 둔하게 생긴 녀석 하나가 세간의 화제가 된 '일베'를 열심히 보고 있는 거 아닌가. 중요한 건 바로 그 녀석은 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일베를 열심히 보던 인물로 내가 기억하고 있다. 오후 2시경에 선 채로 컴터로 일베에 몰두한 녀석의 모습을 처음 봤는데 오후 4시에 거길 지나칠때도, 오후5시30분에 지나칠 때도 계속 같은 자리에서 일베를 보고 있더라.


Q1. 그런 녀석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a.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시해버린다.  
b. "이 머저리야! 너 같은 바보 때문에 박근혜가 된거야!"하고 발로 걷어차준다. 

Q2. 누군가가 일베하는 아무개를 발로 찬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a. "때리고 욕할 필요가 있나? 정치적 신념의 차이인데..."하고 의아해한다. 
b. 함께 폭력에 가세해서 녀석을 완전 때려눕힌다.  


2013년 6월 16일 일요일

꽈당

6월13일(목). 전시 오프닝-뒷풀이에서 놀다가 밤10시 넘어 귀가하다가 세종로를 달리는데, 앞에서 난데 없이 차 사이로 끼어든 오토바이와 쾅 하고 부딪혔다. 오토바이를 몬 그 철없는 녀석이 자기 잘못을 숨기려고 한다는 소리가 "여기가 자전거 전용도로에요!" 내가 맞받아 답해줬지. "여기가 오토바이 전용도로에요!" (이 밥통아.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도를 달리게 되어 있단다.) 

아래 두번째 사진에서 보듯 핸들이 완전 45도 돌아가 버렸다. 완전 비뚤린 핸들을 바로 잡으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런 핸들을 45도 각도 비틀어 쥐고서 광화문(충돌 장소)부터 집(관악구 미성동)까지 주행해서 귀가하다니... 그런 내가 참 장하다는 생각. 

6월15일(토). 문에 부딪혀 스포크 하나가 박살난 JetstreamXP의 뒷바퀴를 분리해서 한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핸들이 돌아간 비앙키를 들고 상수동 썽이샵에서 갔다(갈때는 합정까지 지하철로 합정역부터 자전거샵까진 타고 갔음). 뒷바퀴는 샵에 맡겼고, 돌아간 핸들은 바로 잡은 비앙키는 타고 귀가했다. 



 저 흥겨운 지라가 사고 나기 1시간 전 모습일 줄이야. 

 45도 각도로 휙 돌아간 핸들바. 앞바퀴와 핸들바 사이 각도를 보시길. 저렇게 된 걸 타고 광화문에서 미성동까지 몰고 왔다. 달리 귀가할 방법이 없어서.  

핸들바를 바로 잡은 후의 비앙키(썽이샵). 

2013년 6월 15일 토요일

서강에 없는 것 - 예술교육 (서강대학원신문-125호)

* <서강대학원신문>의 청탁으로 기고한 글. '서강에 없는 것'이라는 기획물로, 서강대학교에 순수예술대학이 개설되지 않은 점에 착안해서 나를 비롯한 순수예술 관계자들(미술, 음악, 사진, 무용, 건축, 의학)에게 청탁을 맡긴 것 같다.  원고 지문에도 적었지만 서강대에 일반적인 미대는 없어도 영상대학원이나 아트&테크놀로지 전공은 개설되어 있다. 원고의 일부 내용은 미술대학의 부실한 교육 과정과 전공에 대한 미대생들의 태만에 관해 쓴 2011년 원고(엮인글)를 연상시킬 것이다. 
아래 원고는 <서강대학원신문(125호)에 실렸다. 



현대미술의 교양은 상아탑 바깥에서




반이정 미술평론가


눈높이 맞춤 교육의 위험
“마르크 샤갈, 모딜리아니, 뭉크 등 예술가의 삶이나 작품을 바탕으로 이들의 창의력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관한 소개를 꼭 글에 포함해서 써주세요.” 한 기업 사보가 필자에게 보낸 원고 청탁서에는 ‘원고 방향’이 이렇게 명시적으로 적혀있었다. 세간에서 예술의 창의성과 연결되는 예술가의 전형으로 무엇을 인식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구청과 기업들이 구민과 임직원을 위해 마련하는 예술 교양 강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대략 8회 분량의 커리큘럼 안에 영화 문학 미술 음악 방송 등 분야별 전문가를 초빙해서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닮은 교양 강좌를 짜서 청중에게 선사한다. 이 교양의 종합선물세트 안에서 미술 강좌는 현대미술을 다루더라도 청중의 보편적인 눈높이를 넘어서서는 안 되며, 청중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조정되기 십상이다. 예술을 자발적으로 접할 기회가 적은 일반인에게 미술교육이 글(사보)이나 말(강좌)의 모양새로 주어질 때는 대략 이런 모습을 취한다. 그리고 이건 예술이 현실에서 소비되고 생존하는 일반론인 것 같다. 이 같은 사회 현상으로부터 나아가 순수예술학과를 개설하지 않은 대학 구성원이 순수예술에 관해 품는 선망의 일반적 형태도 대략 추론할 수 있다.


과연 ‘서강에 없는 것들’일까.
‘서강에 없는 것들’이라는 기획안은 순수예술 학과가 개설되지 않은 대학의 사정 때문에, 순수예술 체험의 기회가 적을 거라 믿는 서강대 구성원 중 일부의 인식을 반영하는 걸 테다. 그렇지만 학내에 예술대학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로부터 대학 구성원의 예술적 소양이 결핍될 수 있다고 추론하긴 어렵다. 내 생각은 그렇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수업을 나가는 미술대학들에서 만나는 미대생들은 출신학교를 불문하고 태반이 당대 미술의 흐름에 무지한 채 학교를 다니고 있다. 나아가 전공에 대한 자신의 희박한 지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거의 느끼지 못한 채로 4년을 보내기 일쑤다. 그들이 전공하는 순수예술이 재학생의 현재적 삶에 학문적 동기 부여를 거의 주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부조리한 현상이 발생하는 거다. 바깥에서 미술대학을 바라볼 때의 환상과는 달리 실제 미대는 자유분방한 창작열로 충만한 실험실은 아니다.

1980년 영화 <패임 Fame>은 예술 전문학교에 대한 세간의 극대화 된 환상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는 한 예술 전문 고등학교 학생들의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한 창작 열기를 유쾌하게 묘사했다. 하지만 현실이 영화과 같을 순 없다. 그 영화가 개봉하고 30년이 넘게 지났다. 시대상도 변했다. 세상이 바뀌면 바뀐 시대정신을 전달하는 매체 역시 변화한다. 예술도 의사소통의 변형된 수단인 이상, 예술은 매체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이다. (뉴)미디어 아트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다. 동영상 기반의 단채널 비디오, 다채널 비디오 설치, 관객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되는 디지털 아트, 뉴미디어가 개입된 다원예술까지 두루 칭할 때 쓰는 미디어 아트는 동시대의 가장 선단에 놓인 미술로 평가된다. 뉴미디어가 예술가들의 공통언어로 부상하는 이유는 회화나 조각처럼 구시대의 매체로는 동시대의 시대정신을 창작물로 실현하는데 매체적 한계가 있어서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신설되는 미술대학 가운데에는 학과명을 지난 시대 명칭이 아닌 현 시대의 창작 환경에 어울리게 수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양화과 동양화과 조소과 같은 기존 미술대학들 안에 개설된 구시대의 학과명이 이제 조형예술과나 더러는 뉴폼(New form) 전공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변형되어서, 창작의 도구를 뉴미디어까지 포괄하겠노라고 학과명으로 명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현재 전국에 있는 절대 다수 미술대학은 지난 시절 수업 방식을 시대 변화와 무관하게 그대로 고수하느라 현재의 매체 변화 속도와 젊은 학생들의 정서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대 재학생들의 창작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기 쉽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바 없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 비둘기 박제 2천마리를 설치해서 관행적 미술감상과 전시의 문법을 파괴했다



제도권의 철옹성 안에선 진짜 예술을 만나기 힘들다 
미술학은 대학에서 어떻게 교육될까? ‘서강에 없는 것들’이라는 기획안의 기대와는 달리, 대학에 개설된 미술학과는 미술의 현재적 흐름이나 궤적에 관해 이론적으로 가르치는 학과가 아니라 창작 중심의 실기학과가 거의 전부다. 때문에 미술학 학위는 재학생이 자기 창작물에 관한 논문과 전시회 이른바 학위청구 전시회를 통해 수여된다. 그런데 학위청구 전시나 학위청구 논문도 대개는 학생 본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미술학 학위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설사 미술대학이 실기 중심이라 할지라도, 미대 내에 개설된 이론과목이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진단할 거라 믿기 쉽지만, 일반적인 오해이다. 많은 미술대학이 현대미술을 다루더라도 여전히 20세기 미술사를 고답적으로 학습하는 커리큘럼을 고집한다. 때문에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배울 기회가 현재 미술대학 안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설령 동시대 미술을 다룬 수업이 개설되었다 해도 더 무서운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다름 아닌 피교육 당사자인 미대생들 다수가 동시대 미술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하거니와 무엇보다 학문적 관심이 많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라는 거다. 미술대학 현장에서 교육해본 사람으로서, 평균적인 미대생과 미술에 선망을 품은 일반인 사이의 지식 격차는 거의 없다고 믿는다. 미술(학)이 갖는 인문예술의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현대미술이 뉴미디어가 지배하는 동시대에서 높은 관람가치를 갖거나 진지한 화두를 던진다고 보긴 솔직히 어렵다. 결과적으로 미술에 대한 낮은 수요 앞에 미술품의 예비 공급자인 미대생이 창작의 동기를 얻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수요는 매우 낮은데 공급처(미술대학)가 전국에 너무 많이 개설되어서 빚어지는 소동이다.

(그동안 무슨 성과를 이뤘는지 필자가 알진 못하지만) 서강대가 1999년 개설한 영상대학원이나 2012년 신설한 아트&테크놀로지 전공은 ‘서강에 없는 것들’을 뉴미디어 기반으로 메우려는 학문적 대안으로 보인다. 뉴미디어의 보급은 미디어아트의 확산뿐만 아니라, 개별 예술 장르간의 융합을 도모하는 다원예술의 출연까지 촉진했다. 다원예술의 출연 배경으로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적응된 동시대인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려는 예술가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다원예술이 고요한 전시장이 아니라 입체적인 무대 위에서 선보여지는 이유는 2차원 평면에 예속된 고전 미술의 전략보다, 3차원 시공간을 활용할 때 관객의 오감 자극이 충족 될 수 있다는 경험칙 때문이다. 

또 다원예술의 비선형적인 서사 구조는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단속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체험하며 자란 동시대인의 일상과도 많이 닮아 있다. 오늘날 다원예술은 제도권 밖에서는 꾸준히 시도 되고 있지만, 관 차원에서 다원예술이 수용된 시점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되면서 소위원회 가운데 하나를 다원예술소위원회로 꾸린 2005년이다. 역사가 길지 않다. 2007년은 국내 유일의 다원예술축제인 ‘페스티벌 봄’의 첫 행사(1회 명칭은 ‘스프링 웨이브’였다)가 열려 매해 기획을 이어가고 있다.


PS. 덧붙여: 학교 울타리 너머로 예술과 만나기
필자는 글 첫머리에서 예술관련 학과의 개설 여부와 그 대학 구성원이 받는 예술 수혜의 연관성은 낮다고 얘기했다. 그 이유로 현재 미술의 흐름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대학 교육과, 미술의 흐름에 대체로 무관심한 미대생의 사정을 지목했다. ‘서강에 없는 것들’이라는 기획안은 현대 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이 어떻게 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미술이 거의 전적으로 시각정보에 치중되어 있는 만큼, 미술에 대한 소양은 강의나 독서만으로는 채워지기 힘들다. 그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날로 먹는 교양과 지식은 없다. 미술과 자신 사이의 보폭을 좁히고 싶다면, 전시회를 꾸준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몇 가지 팁을 주자면 전문 기획사와 대형 신문사가 결합되어 주최되곤 하는 블록버스터형 전시회만은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입장료도 비싸거니와 블록버스터 전시는 일반인의 평균적인 기대치를 채워줄 뿐, 동시대 미술의 현주소를 그려보이진 못한다. 결과적으로 고가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진도는 제자리를 걷는 셈이다. 동시대 미술의 지형도를 그려주는 대부분의 전시는 입장료가 없다. 이런 동시대 미술 전시회의 정보는 네오룩(neolook.com)에 항상 올려져있다. 이런 전시 정보로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없다면, 미술평론가(가령 내게라도)에게 문의 메일을 보내면 지침을 얻으리라 믿는다. 전시를 볼 때 유념할 건 흔히 전시장벽에 적힌 해설을 미리 읽지 말고, 온전히 자기 안목으로 작품에서 관점과 재미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에는 잘 안될 것이나 반복하면 반드시 노하우가 생긴다. 

전시와 함께 병행해서 미술책의 보조도 얻으면 좋은데, 동시대미술의 흐름을 집어주는 책은 미술독자층이 적은 국내의 사정 탓에 많이 발간되지 않았다. 다만 1960년대 이전의 미술을 다루는 미술책은 의식적으로 피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설령 어렵더라도 1980년대 이후 미술을 다루는 책을 집어라. 미술과 진심으로 가까워지고 싶다면, 동시대미술이 일반적인 동시대인으로부터 이미 멀리 진도 나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령 들들들

가령...  이런 경지로 주목받고 싶어하는 어떤 젊은 친구를 내가 안다.

가령... 각기 다른 악기 3대의 연주력과 플러스 1을 겸비한. 

가령 들들들. 

 

 

2013년 6월 13일 목요일

0612 버니

6월12일(수) 16시30분. 롯데 시네마 건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버니 Bernie>(2011) 시사회. 


별점: ★★★★





<비포 선라이즈>를 만든 감독이 <비포 미드나잇>같은 후속편을 내놓기도 하고, <버니>처럼 실화에 기초한 블랙코미디를 만들기도 한다. 감독의 작품에 대한 신뢰 때문에 보게 된 영화 <버니>. 이 영화가 실화에 바탕했다는 해설이 영화 초반에 잠깐 떴지만 거의 의식 못한 채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올 때, 실제 인물 '버니'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고, 같은 동네 사람들(알고보니 그들이 영화 속에서 인터뷰에 응한 '아마추어' 배우들이었다니!)의 모습이 올라오면서 영화가 실화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보도자료를 찾아보니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실제 인물 사건의 신문기사를 접한 후(1998년) 마지막 재판에 참석해보고 영화화 할 것을 결심했다고 적혀있다. 


주역 셋의 완성도 높은 연기력을 보는 재미가 높다. 인터뷰이로 출연하는 무수한 노년층을 보면서 "정말로 농익은 연기력은 다르구나"하면서 탄성을 하면서 내내 봤는데, 알고보니 실제 인물 버니와 함께 살았던 동네 사람들을 인터뷰한 영상이었다. 그래서 <버니>는 실제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결합된 특이한 영화적 구성을 취한다. 인터뷰에 임한 동네 사람들 가운데 유독 재미나고 사실적인 연기를 보인 여성(아래 영상)이 있어서 크레딧 올라올 때 이름을 받아 적었다. 그런데 이름이 케이 맥커너히 Kay McConaughey네!? 이상해서 찾아보니 <버니>에서 완고한 검사로 출연하는 배우 매튜 맥커너히의 60대 후반 친어머니였다. 그녀의 전직은 배우가 아니라 교사였다고. 자료를 더 찾아보니(위 사진) 아들이 출연한 영화의 레드카펫에서 갑자기 치마를 들어올려서 마릴린 먼로를 패러디하기도 해서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했단다. 재밌게 사시고 좋네. 능글 맞은 검사로 출연해 연기 변신을 선보인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를 보는 것도 내내 즐겁다. 난 왜 이 배우를 자꾸 <콘택트 Contact>(1997)로만 기억하는지...

영화는 독실한 개신교도에 직업이 장례사인 버니와 그의 다정다감 때문에 사귀게 된 늙은 여성 마조리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평판을 인터뷰 하는 화면과 그 둘의 평소 행실을 극화시킨 화면을 교차 편집으로 매우 긴 시간 보여준다. 그런데 지루하지 않다. 동네 사람들의 평가에 따르면, 버니는 둘도 없이 선한 인물인데, 마조리는 악독한 여성이라는 것으로 정리된다. (실화였음을 잊고 영화를 볼때는) 장례 사업과 개신교의 신앙 사업의 속물성을 배면에 깔고 들어가는 허구물 쯤으로 이해 했고, 개신교가 극성맞고 추악한 모습으로 뿌리를 내린 한국의 사정까지 연상되었을 정도다. 오늘날의 종교는 <십계>나 <벤허>처럼 신성한 경전의 재해석이나 신앙심의 증거물로 간주되던 차원에서 이미 멀리 도주해서 조롱의 대상이 된지 오래가 아닌가. 나이든 시골 사람들의 인터뷰가 흔히 감정적으로 치우치긴 쉽지만, 최소한 영화 속 버니는 속물적 근성에 지배되기 보단 종교적 순화로 '거듭난' 좀 예외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 영화가 초점을 맞춘 건 실정법과 사법권의 불완전성이다.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중범죄도 범죄 현장으로부터 실제로는 멀리 떨어져있는 추상적인 실정법보다 근접에서 늘 관찰해온 구체적인 사람들이 사건의 잘잘못을 더 현명하게 가릴 수 있다는 사실. <버니>처럼 1급 살인죄를 지은 경우에도 이 사실은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버니>는 허구적 창작물이 현실의 사건의 진위를 판단하고 시위하는 점에서 대단히 정치적인(하지만 과도하진 않은) 예술의 성격을 띤다. <버니>는 대략 두 개의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영화가 노린 사법적 판단의 불완전성에 대한 관객의 판단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괜히 소심한 걱정인진 몰라도 억울한 판결을 받은 선한 인물이 독실한 신앙을 품고 있다는 설정 때문에, 보수적인 신앙인 관객에겐 자기 신앙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자료처럼 수용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걱정.  

* 잭 블랙을 보며 든 생각. '노래를 잘 부르면 어딜 가도 사랑 받고 쓸모가 크구나.'  
** 주연 배우 셋 가운데 버니 역을 맡은 잭 블랙을 중앙에 두고 다른 주역 둘(셜리 맥클레인+매튜 맥커너히)는 절반만 프레이밍한 영화 포스터도 맘에 든다. 


2013년 6월 12일 수요일

0611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 + 코스모폴리스

6월11일(화) 14시 롯데 시네마 건대. 마르얀 사트라피&빈센트 파로노드 감독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 Chicken with Plums>(2011) 시사회. 


별점: ★★★




 마르얀 사트라피 & 빈센트 파로노드 공동 감독의 모습이라함.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의 원제는 <Chicken with Plums> '자두가 들어간 닭요리'인데, 이는 극중 비운의 바이올리니스트 주인공 나세르가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다. 해서 영화 제목으로 검색 하면 실제 자두가 들어간 닭요리 사진이 잡힌다. 이렇게. 한글 제목은 '마지막 일주일'로 선택 되었지만, 은유적인 일주일을 통해 나세르와 그와 연루된 여러 인사들의 일생을 시차를 두고 회고하거나 추적하면서 사랑과 예술을 다루는 영화다. 


나세르 생에 두개의 분신은 스승이 준 바이올린과 맺어지지 못한 연인 이란Irane인데, 박살난 바이올린을 대체하려고 구한 진기한 물건을 모아둔 골동품 가게에서 흥정 끝에 구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나온다. WA모차르트가 연주했던 바이올린으로 영화에선 소개 되는데, 세월의 이끼가 많이 낀 골동품 악기가 어째서 보다 우월한 음색을 지닐 수 있는지 예전부터 궁금했다. 포스팅 하단에 관련 뉴스가 있어서 연결해둔다. 

나세르와 사랑을 성사하지 못한 연인의 역할로 모던걸의 모습으로 출연하는 골쉬프테 파라하니 Golshifteh Farahani(상단 사진)는 이란 태생 배우인데, 나세르가 사랑하지 않는 아내 마리아 드 메데이로스Maria de Medeiros의 연적으로 등장하는 셈이다. 때문에 미간 사이가 먼 두 눈이 남달리 동그란 얼굴로 박힌 마리아 드 메데이로스가 한 시절 미묘한 섹스심볼이었던 시절이 아련히 떠올랐다.  

영화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의 공동 감독 마르얀 사트라피는 이란의 여성 작가로, 이 작품이 원본으로 삼는 동명 그래픽 노블을 지은 원작자이기도 하다. 독립적인 이란 여성상을 각인 시키면서 그녀를 세상에 알린 초기 대표작은 <페르세폴리스>인데 이 작품도 만화와 영화로 함께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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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1일(화) 16시30분. 롯데 시네마 건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코스모폴리스 Cosmopolis)>(2012) 시사회. 

별점: ★★★




로스코 교회Rothko Chapel




<코스모폴리스>는 돈 드릴로의 동명 소설을 대본으로 삼아서 만든 영화(대본은 감독이 썼다고). 뉴욕의 경제공황을 다루는 원작 소설(2003년 출간)의 설정 때문인지 2012년 제작된 이 영화에서 연신 폭동을 일삼는 군중이 장악한 뉴욕 거리 장면이 나와서, 나는 2011년 시작된 Occupy Wall street 시위를 연상하면서 영화를 봤고, 당대 발생한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했나보다 하면서 봤다. 조금 전 보도자료를 살펴보니 크로넨버그 감독 인터뷰에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에도 소설에서 그려졌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는데 루퍼트 머독이 얼굴에 파이를 맞기도 했고 촬영이 끝난 후 월가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답한다. '촬영이 끝난 후'라고 밝히는 걸보니 월가 시위에 앞서 만든 영화란 의미. 

영화를 보면서 놀라운 점은 배우들의 변신. 리무진 안에서 젊은 회장 패커가 여성 큐레이터 디디의 카섹스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한참을 봐놓고도 큐레이터로 나온 여배우가 줄리엣 비노쉬인 줄 몰랐다는 거다. 어떤 각도에선 비노쉬의 얼굴을 약간 닮은 거 같다는 생각만 스쳤을 뿐. 영화를 다 보고 보도자료를 보기까진 거의 알아 채기 힘들 만큼 변했다. 오만한 금융재벌 에릭 패커로 등장하는 이가 <해리 포터>의 마술 소년 로버트 패틴슨인 게 믿겨지지 않는 것처럼 놀라운 시차 변화. 

영화 러닝타임의 상당부분이 리무진의 차 안에서 소모 된다(금융재벌 회장 패커가 집무를 차 안에서 보기 때문에!). 차 안으로 찾아오는 무수한 방문객들(사회학자 경제학자 음악인 큐레이터....)이 쏟아내는 재담은 영화를 과도하게 설명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론 과잉은 비평으로도 충분히 지겨운데 영화까지 이럴 필요가...   

영화 정점은 마지막에 배치된 '총 대화' 장면인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 밝히진 않겠다. 비현실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격발되지 않는 총으로 관객석에 지연된 긴장과 초조를 떠안기는 장면.  

* 캐나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를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Sex, Lies, And Videotape>의 감독(스티븐 소더버그)으로 잠깐 헷갈렸다. 호러물과 SF물로 유명한 감독이어선지 크로넨버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피니 내가 본 건 고작해야 <크래쉬> 정도 잡히네....

** 영화 도입부는 잭슨 폴록의 뿌리기 그림이, 영화의 종결부는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이 크레딧 아래에 뜬다. 환시장에서 떼돈을 번 금융재벌 패커가 큐레이터 디디에게 마크 로스코를 한 점이 아니라 로스코의 그림 14점이 걸린 교회를 통째로 사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교회 자체가 매매 대상이 아니어서 팔리진 않지만). 그런 교회가 실제로 있다. 로스코의 검정 색면 추상이 걸린 텍사스 소재의 로스코 교회Rothko Chapel(위의 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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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펜던트 인터넷판 뉴스


 2008.07.05 01:18:27


"몸체를 만드는 나무 판의 일정한 밀도가 그 비밀", 
 
세대를 뛰어넘는 영원한 최고의 악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다. 
이탈리아의 스트라디바리(Stradivari)가 만든 이 바이올린은 다른 바이올린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최고의 음질을 선사하며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왜 최고인가? 최근 과학자들은 이 바이올린의 비밀을 푸는 데 성공했다. 
네덜란드 과학자들이 어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미스터리가 과연 무엇인지를 밝혀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2일 인터넷 판을 통해 “과학자들이 최근 3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음색과 선율을 자랑하며 세계 최고의 악기로 인정받고 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을 밝혀냈다”고 보도했다.

인디펜던트는 “Solved: the mystery of why Stradivarius violins are best”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비밀은 바이올린의 몸체를 만드는 두 개의 나무 판의 일정한 밀도(consistent density)에 있다”고 전했다.

“변화가 없이 일정한 동질의 밀도가 고운 음색을 만들어”

“물론 이 바이올린의 전반적인 외형, 즉 도료(varnish), 목(angle of the neck), 지판 (fingerboard), 그리고 현(strings)도 중요하지만 몸체를 만드는 나무 판이 더 중요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과학자들은 300년 전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원산지인 크레모나(Cremonese)의 거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와 쥬세페 과르네리(Giuseppe Guarneri)가 만든 옛 바이올린 5개(A그룹)와 최근의 바이올린 7개(B그룹)와 면밀히 비교했다.

몸체의 앞판과 뒷판을 만드는 나무 판의 밀도를 게이지로 측정한 결과는 모두 비슷했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것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밀도는 같지만 A그룹의 바이올린들은 B그룹에 비해 더 일정한 밀도(more uniform density)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이올린의 앞판(top plate)은 보통 가문비 나무(spruce)로 만들며 뒷판은 단풍나무(maple)로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꼭 같은 바이올린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바이올린의 비밀이자 미스터리다.

과학자들은 A그룹의 크레모나 바이올린들은 밀도가 동질(homogenous)이기 때문에 강성도(stiffness)와 방음(sound-damping)에서 다른 바이올린보다 뛰어나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까지도 300년 전의 기술을 모방 못해”

바이올린 제작 역사상 벤치마크가 되고 있는 크레모나의 두 거장 오스트라디바리와 쥬세페 과르네리의 작품은 3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연구를 주도한 네델란드 레이덴(Leiden) 대학의 베렌드 스토엘(Stoel) 교수는 “그 동안 바이올린 메이커들은 두 거장의 작품들과 꼭 같은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도전을 했으나 지금까지 그 비밀을 캐지 못했다”며 “이들 피아노의 훌륭한 음질은 나무 판의 일정한 밀도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올린의 바이브레이션과 음색(sound radiation)은 악기의 표면(geometry)과 만드는데 쓰이는 재원에 따라 형성된다”며 “그러나 이번에 우리가 새롭게 발견한 것은 바로 몸체를 만드는 나무 판의 밀도가 훌륭한 음색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에서 주로 환자에게 사용되는 단층촬영의 CT스캐너를 사용했다. 
이는 엑스레이를 이용해 환자의 폐나 간 등 장기의 밀도를 측정하는 기구다.

그러나 스토엘 교수는 악기제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연구한 끝에 CT스캐너를 사용해 바이올린의 밀도변화(density variations)를 그려낼 수 있었다. 
또한 고가로 거래되는 바이올린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 비밀을 캐낼 수 있었다.

환자에게 쓰이는 CT스캐너로 비밀을 찾아

사실 바이올린 제작자들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을 캐기 위해서는 엄청난 가격의 바이올린을 분해해야만 하는 어려움에 시달렸다. 
수십억 원을 호가할 뿐만 아니라 희소성 때문에 바이올린을 분해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CT를 이용해 각종 정보를 얻게 됐다. 
밀도를 측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옛날에는 물을 이용했다. 
그러나 물에 담그게 되면 물이 스며들게 마련이어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저널 ‘Public Library of Science’에 게재된 논문의 주인공 스토엘 교수는 “밀도의 변화는 나무의 성장 과정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말해서 변화의 기복이 없이 일정하고 동질의 밀도를 갖고 있는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면 좋은 음색의 바이올린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처럼 풀리지 않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미스터리는 문학에도 영감을 줬다. 
영국의 작가 존 포크너(John Falkner)는 1895년 ‘잃어버린 스트라디바리우스(The Lost Stradivarius)라는 소설에서 옛 주인의 유령을 불러내는 명기의 소리를 소재로 스릴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누렸다.

저작권자 2008.07.04 ⓒ ScienceTimes

2013년 6월 10일 월요일

0610 퓨어 + 맨 오브 스틸

6월10일(월) 14시 왕십리CGV. 리자 랑세트 감독 <퓨어 Pure (원제:Till det som ar vackert)>(2010) 시사회. 


별점: ★★★★




 스웨던 영화답게 북유럽 억양을 곱씹으며 관람하는 재미가 있다. 예상대로 영화 <퓨어>의 평점에서 21세의 주연 알리시아 비칸데르 Alicia Vikander(1988년생)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높다. 극중(배우의 실제 나이도)에선 20대 초반으로 출연하지만  서른살 이상 나이차가 있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아담(사무엘 플로러 Samuel Froler 1957년생)와 불륜에 빠지는 극의 설정 때문인지, <연인>에서 연상남과 연정에 빠지는 매혹 소녀 제인 마치나 <레옹>에서 중년 테러리스트와 미묘한 관계로 맺어지는 나탈리 포트만과 비교되는 것 같다. 말하자면 '로리타 콤플렉스의 20대 화신'버전 쯤 될까. 

알리시아 비칸데르 얘기를 좀 더 해보면 '불안정+미숙+순수'가 뒤엉켜서 흔들리는 그녀의 초조한 눈매는 그 나이 또래에서만 관찰될 수 있는 고유한 매력을 지녔다(그 또래 남녀는 자신이 지닌 매력을 깨닫지 못한다). 임시직으로 취직한 음악홀에서 카타리나(비칸테르)가 연주자나 성악가가 아니라 오케스트라를 총책임지는 권위적 지휘자와 눈이 맞는 설정도 세간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낭만적인 연상-연하 커플, 혹은 유부남-처녀 커플 사이의 관계의 본질을 추측하게 만드는 단서로 작용한다. 특히 지휘자 아담(사무엘 프뢸러)이 카타리나에게 책(키에르케고르, 쇼펜하우어...)을 추천하거나 그림과 음악을 보여주면서 카타리나의 자발적인 해석을 권유하는 장면은 연상 연하 남녀커플이 흔히 '사제지간'처럼 관계를 맺는 일반적 표정을 환기 시키기에 충분했다.  

알콜 중독에 빠진 교육 수준이 낮은 친엄마나 전형적인 비주류 문화에 젖어사는 동년배 애인으로부터 카타리나가 (우연히 유튜브로) 모차르트 레퀴엠을 접한 후 그녀가 맺어온 관계를 소원하게 선을 긋고, 세속적 신분 상승을 포함한 자신의 거듭남의 단초로 고전 음악 오케스트라 임시직 취업과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애인으로 선망하고 선택하게 되는 심리적 흐름도 보는 내내 읽을 거리를 던진다. 

영화 속 연인 관계가 숙명적인 불안정성 위에 올려져선지,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는 내내 영화 스토리에 나는 감정이입이 깊게 되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 동서의 문화적 격차 때문인 건지 아니면 나의 이해력 부족 때문인건지, 20살 가량 연하의 연인 카타리나에게 키에르케고르를 인용하면서 "용기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했던 남성 지휘자 아담이 극 후반에 보인 옹색한 변절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계속 만난들 영화나 현실에서 이상할 게 하나도 없을 텐데. 유럽은 원래 저렇게 원나잇스탠드가 잦나....  

** 변심한 지휘자 아담의 마음을 돌리려고 카타리나가 진한 화장을 하고 레스토랑에 몰래 잠입한 장면을 보고 든 생각: "저 또래 여자라면 화장이나 성형의 도움 없이도 충분한 독보적인 매력이 있는데 저 나이 때는 그걸 알지 못해."  

*** Mozart 교향곡 25번 1악장이 흐르면서 영화가 끝난다. 교향곡과 중첩되면서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 카타리나의 환히 웃는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잡힌다. 이 장면은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히치콕의 <사이코> 마지막 장면에서 노먼 베이츠가 취하는 미소 장면을 연상시켰다.  



포스터에서 보다시피 '카본의 표면 재질감'이 살아있는 새로운 슈퍼맨 의상을 착용한 슈퍼맨 2013년 버전. 
관람 직전에 시사회 표 배부하는 매우 긴 줄이 있어서 놀랐다. '엠바고' 서약을 받느라고 시간이 지체된 거라고. 서약을 했으니 언급하진 않겠는데 털어놓을 만큼의 스토리텔링이 많은 영화는 아니다. 별점 보류는 엠바고 때문이 아니고, 이런 류를 소비하는 대중 관객의 취향을 내가 이해할 수 없어서 내린 결정이다. 오는 목요일 개봉할 거면 뭔 엠바고람? 웃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