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7일 화요일

0506 강행군 시사회: 어디로 갈까요(스폰지하우스), 앤젤스 셰어(씨네큐브), 환상속의 그대(롯데시네마)


5월6일(월). 영화 시사 일정이 연달아 잡혀있길래, 작심하고 모두 보고 왔다. 연일 아침부터 밤까지 영화4편씩 봤던 작년 늦여름 신디영화제 심사 시절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 분실 신고로 정지 상태인 카드를 복원 하려고 은행엘 갔고, 문제 해결 직후 곧바로 첫 시사회가 열린 스폰지 하우스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그 극장은 내 상태가 무척 안 좋았던 2010년 12월 록그룹 도어즈에 관한 다큐멘터리 시사회를 봤던 곳. 당시도 극장 위치를 찾질 못해 헤맸는데 이번도 건물을 한바퀴 돈 후 찾았다. 이젠 TV조선이 그 건물의 주 용도인 모양이다.

이날 오전부터 저녁까지 본 영화 세편은, 진승현 감독 <어디로 갈까요>(스폰지하우스 광화문), 켄 로치 감독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씨네큐브), 강진아 감독 <환상속의 그대>(롯데시네마). 


* 시사회 관람 3편의 평점을 매기면 두편(켄 로치 + 강진아 감독)은 '강추', 한편(진승현 감독)은 강력 비추다. 특히 <여고괴담>의 1, 2편의 스타 주인공 출신인 김규리와 이영진이 각각 출연한 <어디로 갈까요>와 <환상속의 그대>는 두 편 모두 사랑의 감정이 발전하는 과정을 담은 국내 영화라는 공통점까지 있어서 비교할 수 밖에 없었는데, 도무지 게임이 안 되는 수준으로 <어디로>가 <환상>에 밀린다.  

 <어디로 갈까요>는 김규리가 출연한다고 해서 그녀의 오랜만의 복귀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주밍으로 다가가는 실내 공간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근사해보이지만, 그런 정형화 된 공간 구도가 계속 반복된다. 기업의 회장 집안을 묘사하는 방식은 상투적이다. 식모와 회장 사모의 대화법, 회장의 테이블 위에 놓인 지구본, 하다못해 옛 애인과 재회한 희영(김규리)을 잡는 좌우대칭 테이블 신 등이 모두 근사한 화면을 보여줄 의사 외엔 개연성을 찾기 힘든 구도였다. 개연성이 낮은 걸로 치면 대사, 연기, 극의 전개 모두에서 심각한 수준이다. 어항 속 물고기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는 희영이 자신의 감정이입을 '명시'하는 장면은 그나마 웃어줄 만한데, 관객을 한번 웃겨보겠다고 삽입한 듯한 개척교회의 통성기도 장면은 봐주기 딱할 정도의 질낮은 코미디다. 희영이 인생을 새출발 하는 모습으로 부산 일대가 내려보이는 준호의 집 옥상에서 머리를 (이발사도 아닌) 준호가 직접 잘라주는 설정을 대체 어떻게 봐야할까? 보는 내내 짜증나는 건 나름 꽃미남으로 알려진 준호 역의 유건의 함량미달 연기력이다. 연기자는 외모가 아니라 연기로 승부해야 한다는 진실을 재확인하게 한다. 유쾌함과 초조함을 연신 가감없는 호들갑으로 수렴하는 그의 연기는 화면 전체를 어수선하게 만든다. 여간 거슬린다. 어색하게 내뱉는 준호의 부산 사투리는 부산지역을 희화화 시키는 공중파 드라마의 낮은 수보다 못하다. 유건은 메소드 연기와 감정과잉 연기를 혼돈하는 것 같다. 이런 문제점도 연출가가 잡아줘야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 무수하게 식상한 대사들은 또 어떻고. <어디로 갈까요>는 제작 목적을 어디에 뒀는지 알기 어려웠다. 뭘까? 인생 2기에 관한 설익은 교리, 혹은 김규리의 복귀, 혹은 극중에 슬쩍 삽입된 영화 인생을 포기한 주변인들에 대한 회상과 자의식?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보고나서 할 말이 많지 않았다. 군더더기가 없는 대사 연기 스토리라인로 구성되어 있는 수작이어서다. 억센 영국 사투리와 주변부로 설정된 영화 배경이 안기는 비주류 고유의 질감도 관람의 재미를 증가시킨다. 전혀 문맥이 다르지만 <트랜스포팅>을 연상했던 이유다. 폭행으로 재판을 받는 주인공들이 주인공이다. 그 중 로비가 범한 지난 범죄 장면을 재현하는 장면은 정말로 신랄하고 즉물적이다. 가해자 피해자 만남 프로그램에서 피해자 가족의 격한 감정적 대응과 가해자 로비의 위축된 표정 연기도 실제 현장을 몰래 촬영한 화면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화를 다 보고 보도자료를 읽어보니 주인공 로비 역을 맡은 폴 플래니건은 이 영화에서 처음 배우로 출연한 연기 경험이 전무한 초보라고 한다. 그리고 극중 주인공처럼 약물 알콜 중독 폭력으로 수년감 감옥을 전전한 전과자였다고. 그에 말에 따르면 "연기 수업은 전혀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본능과 느낌에 충실하고자 했다"고 한다. 비전공자가 전공 무대에서 진가를 밝휘하기 쉬운 세상이 되었다.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전공자들이 차지한 과도한 지분의 불공정성이 인정된 부분도 있을 테고, 관행에 의존했던 전공자의 게으름이 한계에 다다른 부분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뉴미디어의 확산으로 비전공자도 자기 소질을 발전시킬 학습 수단을 확보하게 된 시대 배경 때문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범죄자들의 회복과 사회 갱생을 위스키 시음을 모티프로 잡은 건 외화니까 가능한 영화적 설정 같았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짧게 얘기하면 은행강도라는 흔한 영화적 모티프를 술도둑으로 대체한 설정도 재밌는데, 그건 고가의 미술품 절도의 그것과 대등해 보였다. 현금 도둑질이 아닌, '고급 취향의 도둑질'이라는 측면에서) 





<환상속의 그대> 영화 도입 부분에 삽입된 두 남녀 배우가 주고 받는 연애 대화법을 듣고 있자니, 내가 저들과 다른 세대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배우 삼인방 이영진 이희준 한예리 모두 연기력이 월등하다. 자기만의 연기 색채를 유지한 게 가장 큰 변별력이었다. 
상투적일 수 있는 삼각관계라는 모티프를 인습에 휘둘리지 않고 새로운 풀이법을 찾아낸 것이 가장 큰 연출의 변별력이다. 
사랑의 감정이 선을 그을 만큼 확정적이지도 않으며, 모호하되 분명한 존재감이 있는 무엇인 점을, 죽은 애인을 모티프로 살아 남은 벗과 애인의 감정선으로 조리한 점이 매우 뛰어났다. 그 점은 명시적인 대사보다 두 사람(혁근과 기옥)의 마음 속내를 혼란스러운 연기로 표출한 점에서 빛났다.  
애써 '사랑의 유령 영화'로 이름을 붙여 볼 법도 한데,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과거에 대한 회상인지, 죽은 망자의 환상이 등장하는 현재적 장면인지 모호한 설정이 퍽 많이 섞여있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갈피잡기 힘든 실제 사랑의 감정임을 경험한 관객이라면 영화의 독보적 코드를 읽어낼 수 있으리라고 본다. 또 짧지만 딱 한번 삽입된 화끈한 정사 장면도 농염미를 갖추되 식상하지 않으며 영화적 여운까지 남긴다. 영화 후반부의 몇 장면에선 개인 경험의 연상작용으로 감정 동기화가 일어나는 바람에 눈물이 연신 흘러내려서 애먹었다. 감정 증폭을 자제하려고 애썼지만 자꾸 눈물이 났다. 

* 미셀러니: 배우 이영진은 내게 <여고괴담2>로 여전히 기억되는데, 날로 훌륭해지는 것 같다. 나는 그녀를 보면 미술인 김영은이 자꾸 연상된다. / 돌고래 수조 배경으로 세 주연배우가 서 있는 영화 포스터로 본 이희준을 나는 장기하로 처음 오해했다. 연기력이 돋보인 배우였다. / 빼놓을 수 없는 게 유령 역의 한예리일텐데 찾아보니 이 배우도 연기 경험은 없는 것 같다. 한예종 전통예술원에서 무용을 전공한 걸로 뜬다. 한예리는 영화 속 배역에 어울리는 마스크를 가졌다. 전형적인 미모가 아니라 쌍커풀 없는 밋밋한 눈매에 동안인 한예리의 마스크는 감정이입이 되기 좋은 투명한 스케치북 같았다. 





 검색해서 찾아보다가 강진아 감독(1981년생)이 보기드문 미모라는 생각을 했다. 더 검색을 해보니 이 영화 감독은 미모로 이미 유명했던 모양이다.  

 <환상속의 그대> 상영회가 끝나고 기자 간담회가 열렸는데, 나는 보지 않고 그냥 나왔다. 1일1식을 하느라 저녁이 되자 너무 배가 고팠으므로. 전날 저녁부터 이날 영화가 끝난 18시30분까지 한끼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1일1식을 하는 대신 1일3판 영화관람을 뛰었다.  



+ 부록 

 스폰지 하우스 광화문이 있는 건물이 이제는 TV조선이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앉아있자니 TV조선 직원들이 점심을 먹고 주변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죄다 한손에는 음료수를 쥐고. 

 몰트 위스키에 관한 영화였던 <앤젤스 셰어>는 시사회 당일 관람객에게 '더 글렌리벳 15년산' 샘플병을 나눠줬다. 영화에서 위스키 시음 장면이 인상이 남아서 다음 시사회 영화였던 <환상속의 그대>를 보지 말고 주류백화점에 가서 술이나 살까하는 생각을 잠깐 하고 말았다. 물론 술 안사고 영화봤지만. 

<환상속의 그대> 시사회가 열린 롯데 시네마에서 영플라자쪽 구름다리를 타고 가다가 내려본 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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