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8일 수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극사실주의, 표면의 가치(씨네21)


* <씨네21>(903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72회분. 



표면의 침묵은 금




상. 소녀시대 윤아를 모델로 내세운 이니스프리 화장품 광고 2011년
하좌. 동료의 근사한 명함 앞에 탄복하는 패트릭 <아메리칸 사이코> 2000년
하우. 극사실주의 화가 돈 에디의 <무제(폭스바겐)> 1972년



<아메리칸 사이코>의 명장면 가운데 상류 계층 금융인들끼리 서로의 명함 품질을 두고 벌이는 고요한 경합 장면이 있다. 상대의 명함을 받아든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은 명함의 두께, 색상, 인쇄 질감에 탄복해 말문이 막힌다. 이 명함 경쟁의 쟁점은 명함의 가치가 그 안에 담긴 개인 정보가 아니라, 표면 가치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시각 예술의 가치가 육안으로 확인되는 표면이 아니라 그 너머의 심오한 의미에 있다고들 믿는다. 많은 부분 사실일 수 있다. 그렇지만 작품 속 ‘심오한 의미’의 비중이 부풀려진 감도 분명 있다. 작품의 내러티브보다 표면 가치에 노골적으로 몰두한 현대적 장르가 극사실주의 회화다. 

극사실주의 화가는 정밀하게 재현한 표면과 사물의 윤곽을 얻기 위해 자신의 손과 눈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대 광학과 신기술의 힘을 빌린다. 빔 프로젝터로 정교한 소묘를 얻고, 붓 대신 에어브러시를 통해 무정하고 매끈한 유물론적 표면을 얻는다. 서사를 외면하고 사물의 매끈한 표면에 전념한 극사실주의 회화는 17세기 북유럽 정물화의 후예 같기도 하다. 롤랑 바르트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상품의 제국’이라고 묘사한 건, 종교화나 역사화와는 달리 정물화는 서사에 연연하지 않고, 돈과 사물의 표면을 즉물적으로 다뤄서 감각 자극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사물의 외관을 실제 이상으로 재현한 극사실주의 그림은 굉장한 볼거리가 되어, 그림 구매자의 관음 욕구를 충족시키는 관람용과 소유한 그림으로 주변에 자랑하는 신분 과시용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한 비교문학 연구자는 과일의 재질감과 식기의 표면을 정밀하게 묘사한 17세기 정물화를 두고 관심사의 기록물이라고 평가한다. 촉각적인 표면 가치에 열중한 극사실주의 그림은, 이론 과잉으로 치우친 현대미술의 모호한 초상화를 떠올린다면 관음 욕구에서 출발했을 미술의 원점을 차라리 진솔하게 수용한 측면이 있다.

표면 가치의 비중을 대놓고 털어놓기 힘든 예술 평가의 처지와 비교할 때, 속세의 인물 평가에서 표면 가치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정직한 편이다. 인품이나 학식처럼 사람의 속 깊은 스펙은 고상한 관념적 가치로 오랫동안 숭상 되었지만, 육감적으로 잡아끄는 인물 평가의 최전선은 역시 표면 가치다. 수요와 자본이 집중되는 최전선에 피부가 있다. “피부가 가장 예뻐 보일 때 멈춰라!(라끄베르)” “피부를 숨쉬게 하자.(아이포페)” “차이는 피부야.(우르·오스)” “도자기 피부.(미샤)” 

세간의 화장품 광고가 찍는 방점은 피부 관리다. 화장품 광고는 소비자의 피부가 백옥이나 광채가 될 수 있다며 미적 허영심을 부추긴다. 당대 최고 인지도의 명사를 모델로 고용하지만 그들의 천연 피부만으론 승부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모델의 피부에 사진술과 CG를 더해 실제 이상의 극사실적 피부를 얻어낸다. 그 점에서 극사실주의 미술의 미학과 상통한다. 아무 말도 없는 표면의 침묵은 금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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