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1일 일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루이비통(씨네21)

* <씨네21>(914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77회분. 쿠사마 야요이 개인전 서문(엮인글) 말미에 인용 되는 야요이 쿠사마 말년에 콜라보레이션 계약을 맺은 명품회사 루이비통을 다룬 글이다. 지난 76회 프라이탁에 이은 '브랜드 시리즈 2탄'  원고.



루이비통의 이중 역설




 상.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 마네킹을 세워둔 홍콩 루이비통 매장 쇼윈도
중. 무라카미 다카시가 디자인한 다색배합 로고로 외관을 포장한 루이비통 매장.
하. 대문짝만하게 짝퉁(fake)이라 표시해 위조품 의혹을 피해가려는 한 짝퉁 루이비통 매장.



한 시장분석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세계 명품 브랜드 순위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수년 째 지키고 있다. 유구한 전통, 장인의 솜씨, 높은 거래 가격, 극소수를 위한 사치품, 조형적 완성도, 희소성 등이 명품 브랜드의 가치를 보장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명품의 생리는 예술품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명품 브랜드는 경쟁사와의 변별력을 유지하려고 ‘보다 더 예술적’인 그림자를 제품에 덧씌운다. 아트 콜라보레이션 전략이다. 콜라보레이션이 명품 회사만의 독점적 홍보 전략인건 아니지만 단순한 홍보 수준을 넘어 명품의 본질을 증폭시키고, 명품회사와 예술가가 힘을 합쳐서 상호 이득을 나누는 점 때문에 콜라보레이션은 예술품과 명품 사이의 공통점을 잇는 접점이다. 명품은 예술의 희소성을, 예술품은 명품의 인지도를 나눠 갖는 콜라보레이션 전략에서도 루비비통이 타사를 앞선다.

2012년 루이비통의 신상품 광고는 물방울무늬 의상을 착용한 8등신 모델이 얼굴과 인체에 마저 물방울무늬를 그린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그 해 루이비통과 콜라보레이션 관계에 들어선 일본 현대미술가 쿠사마 야요이가 1960년대 그녀의 인체 위에 행한 물방울무늬를 상품 광고가 차용한 것이다. 루이비통은 그동안 많은 현대 미술가들과 협업관계를 맺어왔다. 그렇다고 협업 예술가들이 루이비통의 패션 디자인에 직접 관여하는 건 아닐 게다. 쿠사마 야요이의 브랜드인 물방울무늬를 루이비통이 자사 제품 디자인에 원용함으로써, 작가의 인지도와 지명도를 합법적으로 빌려와 제품의 명성을 증폭시키는 것이리라. 쿠사마 야요이와 콜라보레이션을 맺은 직후 루이 비통 뉴욕 매장과 전 세계 주요 매장 쇼윈도에 쿠사마 야요이를 닮은 마네킹이 세워졌고, 옥스퍼드의 셀프리지스 백화점 건물 위로는 4미터 높이의 쿠사마 야요이 거인상이 올라섰다. 예술품과 상품이 중첩되는 착시 효과를 노려 예술가의 동상을 앞세운 것이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관람한 한 미술잡지 편집자는 그 행사를 일본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점령했다.”고 평했다. 루이비통과 콜라보레이션을 맺은 무라카미 다카시가 그 해에 100여년간 유지된 루이비통의 단색조 모노그램을 총천연색으로 교체했는데, 덕분에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선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을 감상하고, 루이비통 베니스 매장에선 무라카미가 디자인한 총천연색 가방을 구경하고, 다시 베니스 노상에선 루이비통 모조품을 보면서 지속적으로 무라카미 다카시의 흔적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통 모노그램에 안주해 있던 명품 회사의 보수적인 이미지를 쇄신한 건, 무라카미 다카시가 루이비통의 모노그램과 바탕의 채색을 기대치 이상으로 뒤집어 놨기 때문이리라.

세계 명품 브랜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루이비통은 같은 수준의 역설도 안고 있다. 세상에서 제조 유통되는 짝퉁 명품 중 수적으로 최대 수량을 보유한 게 루이비통이므로. 루이비통은 짝퉁 전담팀을 운영하지만, 짝퉁은 견제 대상이지만 홍보대사의 역할도 수행하는 이중 역설이다. 짝퉁을 구매하는 소비자라면 어차피 진품을 구입할 형편이 아닐 테니까.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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