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국 다음날(8.12 월- 엮인글) 음주 하다가 필름이 끊어진 데에는, 시차 부적응 상태에서 하루 동안 무리한 일정을 짠 탓이 큰데, 당일 영화 시사회 두편을 위치가 다른 극장 두 곳에서 연이어 관람한 게 한 요인이었다. 사실 영화를 두 편씩 보기로 결심한 데에는 낮시간 강제로 뜬눈으로 보내는 것이 시차 적응에 도움을 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2012년 귀국 후에도 '신디영화제' 심사 때문에 4일간 아침부터 밤까지 영화를 봐야만 했는데, 덕분에 시차가 적응되고 말았다.
아무튼 8월12일 무리하게 본 영화를 느지막이 정리한다. 왕가위 영화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저녁 일정까지 시간이 비어서 끼워넣듯이 본 <나우 유 씨미>는 볼 만했다.
8월12일(월) 10시30분. 왕십리CGV. 왕가위 감독 <일대종사 The Grand master>(2012) 시사회.
별점: ★★☆
남과 북 무림 사이의 권법 경쟁, 항일 전선이라는 시대상, 권법에 가려 깊이 개입되지 않고 우회적으로 묘사되는 남녀상열지사. <일대종사>의 큰 그림은 이렇다. 한국관객이라면 캐스팅 명단에 뜨는 송혜교라는 낯익은 한국 배우도 관전 포인트일지 모르나, 배역의 비중이나 출연 빈도는 매우 낮으므로 큰 기대는 품지 말고 보자.
왕가위 감독의 영화 세계를 90년대 만들어진 영화(아비정전, 동사서독,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 투게더)에 한정시켜서 이해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신작 <일대종사>을 통해 왕가위를 연상하긴 어렵다. 물론 왕가위의 전작들과 신작이 접점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 것이나, 90년대 국내에서 일었던 왕가위 붐을 생각하면 <일대종사>의 별별적 매력은 낮은 편이다.
중절모에 창파오(?) 차림에 정적인 자세로 대련에 임하는 엽문(양조위)의 모습은, 적과 조용히 마주 서서 권총을 뽑아드는 서부극의 유형이나,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의 차림새를 연상시킨다. "쿵푸는 수평과 수직이다."라고 간단히 정리하는 염문의 화두는, 본래 의미야 어떻건 대련할 때 인체를 기계처럼 작동시키는 동양 무사들의 손과 발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 전통 무술 영화로부터 서부 활극이나 서구 SF액션물을 떠올리면서, 서구에 의해 근대화를 피동적으로 이룬 중국 대륙의 자존심을 읽게 된다. 중국이 보유한 기계주의(적 인체)를 대중영화를 통해 항변하는 인상이랄까. 서구화된 자존감.
영화에서 인생을 빗대기 위해 요리를 알레고리처럼 차용하는 무수한 말들은 영화를 교조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런 점이 90년대 왕가위의 경쾌한 영상 감각과 차이점을 만든다. 물론 감독이 90년대 미학을 승계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건 감독 마음이지. 평가하는 게 관객 마음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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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2일(월) 14시. 롯데시네마 건대.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 <나우 유 씨미 마술사기단 Now you see me>(2013) 시사회.
별점: ★★★★
시사회장까지 가서 표까지 받아 들고서 벤치에 앉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잠깐 고민까지 했던 영화다.
귀국 다음날이라 시차부적응으로 피로가 몰려온데다가, 해외에서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평가를 받았다는 정보를 극장에 오기 전에 봤기 때문이다. 내가 본 인용에 따르면 "무수한 의혹들이 만족할 만큼 해결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나버린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그냥 관람했고, 그럭저럭 볼 만한 영화였다고 판단했다.
높은 점수를 주는 데에는 속사포 같은 화면 전개와 대사로 쉴 틈 없이 술술술 영화를 따라 보게 되는 점, 스토리텔링의 재미도 적지 않은 점, 또 마술의 허구를 영화라는 허구 안에 담아 영화의 자기지시성을 숨긴 것처럼 보인 점 등이 있다. 극중에는 마술사의 사기를 잡아내는 인물, 태디어스(모건 프리맨)가 나오는데, 나는 은근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실제 현실 속에서 초능력과 마술 사기단의 속임수를 폭로하는 제임스 랜디의 분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팅에선 밝힐 수 없는 두가지 반전이 마지막에 배치되고, 그 내용은 내 소신과는 배치되지만, 맘에 들었다. 마지막 반전 구성의 짜임새가 맘에 들었고, 엔터테이닝으로써의 영화의 역할을 이 영화가 잘 수행한 점도 고득점을 받을 요건이라고 나는 봤다.
* 영화 속 카 레이싱 장면, 꽤 볼 만했다.
** 모건 프리맨 못지 않게 연기력 때문에 자꾸 눈이 간 배우는 우디 해럴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