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3일 금요일

0822 이소룡 '정무문'

8월22일(목) 14시.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나유 감독 <정무문 Fist of Fury>(1972) 시사회.


별점: 1972년 정서의 산물을 2013년 정서로 측정하자니...좀.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를 집필하고 그 시의 영화 버전쯤 될 <말죽거리 잔혹사>를 감독한 유하가 1963년생이니까, 내가 이소룡 세대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세대인 것도 같고, 혹은 그냥 이소룡 세대에 포함되는 것도 같다. 이소룡(1940~1973)의 생존 기간 중 내가 호흡을 해서가 아니라, 초등학교 시절 이소룡 영화를 상영하는 동시 상영관의 포스터들을 무수히 보며 자랐고, 동기생 중 이소룡 마니아가 있어서 피상적으로나마 나도 감염 된 면이 있어서다. 그 무렵 내 요구로 부모가 생일선물로 쌍절곤을 사주신 적도 있다. 이소룡의 전용무기쯤 될 쌍절곤도 초등학생 시절 그 이소룡 마니아 친구에게서 전파된 것으로, 자신의 아빠가 이소룡 마니아였다고 친구가 늘 말하면서 쌍절곤의 일부 기술을 구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막상 동시상영관을 직접 찾아가 이소룡 영화를 본 적이 내게는 없었고(그렇게 대범한 성품이 아니었음), 무슨 영화들을 찍었는지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으며, 그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건 아마도 공중파방송에서 틀어준 <용쟁호투>(1973)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오늘 본 <정무문>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른 사망으로 그는 5편에 출연했다고 적혀있는데, 아역배우 출연량까지 치면 꽤 되더라. 나는 이소룡의 대표작 5편도 괴성을 지르거나 노란색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대련하는 화면들을 부분부분적으로만 기억할 뿐, 작품의 연대기나 개별 스토리를 꿰고 있진 못하다. 이런 걸 종합하면 '후발 이소룡 세대였으나 마니아는 아니었던' 일인인 거 같기도 하고... 

<정무문>(1972)은 5편의 대표작 중 2번째 출연작으로 그는 이듬해 사망한다. 
영화가 제작된 70년대 초반의 홍콩과 그 지역 영화 정서를 내가 알 지 못하는데, <정무문>이 관객에게 호소하는 이야기의 가장 큰 틀은 애국심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무대로 삼고 전개되는데, 일본에 부역하는 매국 중국인, 일본인, 순수 중국인 무예 집단, 러시아 마피아 두목이 싸움의 무대에 나란히 서서 갈등하는 구조. 일본 제국주의와 서양인을 차례차례 무너뜨리며 산화하는 단 한명의 중국인 영웅의 이야기, 이것이 <정무문>의 기본 플롯이다. 

제작 연도가 70년대 초반이다보니 고색창연한 미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많다. 어색할 만큼 짙은 배우들의 눈화장, 번쩍번쩍하면서 화면에 뜨는 크레딧의 타이포그라피, 옛날 영화의 화면 위로 흔히 떠오르기 마련인 잡티들이 하나도 안보이는 걸로 봐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쳤겠지만, 그럼에도 옛날 필름의 질감이 있다. 한두 장면을 제하곤 영화 전체가 세트장 촬영인 화 질도 소싯적 분위기를 더한다. 또 오늘날 영화가 끝나면 흔히 볼 수 있는 5분 넘게 올라오는 크레딧도 단 몇초만에 끝난다. 출연진을 보여주는 두개의 정지 화면이 나온 후 끝. 깜짝 놀람. 

이소룡의 변별점은 표정 연기와 괴성 눈매 연기 그리고 매스미디어 친화적으로 가공된 그의 퓨전 무술일 것이다. 표정연기와 괴성  때문에 나는 임의로 이런 영화를 '중국 표현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과 그 이후로도 이소룡에 깊게 감화되지 못한 건 어쩌면 이소룡만의 그 변별점들이 내 취향과 불일치해서가 아닌가 한다. 지금이야 고증 사료 쳐다보듯 덤덤하고 더러 웃지만, 괴성이나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주먹과 표현주의적으로 일그러지는 표정 연기를 볼때 나는 진정으로 그것들을 수용하지 못했다. 

극에서 이소룡의 약혼녀로 출연하는 여배우, 묘가수Nora Miao를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이소룡 성룡과 함께 출연한 당시의 아이돌인 모양이다. 이소룡이 영화에서 입맞춤을 하는 유일한 여자배우라는 글을 어디선가 봤는데, 70년대 초반 영화의 스킨십 표현은 둘의 입술을 맞대고 비비는 수준이어서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온다. 더 재밌는 건 이 홍콩 여배우의 연관 검색어로 yoona가 뜬다는 것. 바로 '소녀시대'의 (임)윤아 말이다. 찾아보니 윤아를 70년대의 홍콩 아이돌 스타 Nora Miao와 비교한 기사가 실렸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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