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8일 수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극사실주의, 표면의 가치(씨네21)


* <씨네21>(903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72회분. 



표면의 침묵은 금




상. 소녀시대 윤아를 모델로 내세운 이니스프리 화장품 광고 2011년
하좌. 동료의 근사한 명함 앞에 탄복하는 패트릭 <아메리칸 사이코> 2000년
하우. 극사실주의 화가 돈 에디의 <무제(폭스바겐)> 1972년



<아메리칸 사이코>의 명장면 가운데 상류 계층 금융인들끼리 서로의 명함 품질을 두고 벌이는 고요한 경합 장면이 있다. 상대의 명함을 받아든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은 명함의 두께, 색상, 인쇄 질감에 탄복해 말문이 막힌다. 이 명함 경쟁의 쟁점은 명함의 가치가 그 안에 담긴 개인 정보가 아니라, 표면 가치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시각 예술의 가치가 육안으로 확인되는 표면이 아니라 그 너머의 심오한 의미에 있다고들 믿는다. 많은 부분 사실일 수 있다. 그렇지만 작품 속 ‘심오한 의미’의 비중이 부풀려진 감도 분명 있다. 작품의 내러티브보다 표면 가치에 노골적으로 몰두한 현대적 장르가 극사실주의 회화다. 

극사실주의 화가는 정밀하게 재현한 표면과 사물의 윤곽을 얻기 위해 자신의 손과 눈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대 광학과 신기술의 힘을 빌린다. 빔 프로젝터로 정교한 소묘를 얻고, 붓 대신 에어브러시를 통해 무정하고 매끈한 유물론적 표면을 얻는다. 서사를 외면하고 사물의 매끈한 표면에 전념한 극사실주의 회화는 17세기 북유럽 정물화의 후예 같기도 하다. 롤랑 바르트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상품의 제국’이라고 묘사한 건, 종교화나 역사화와는 달리 정물화는 서사에 연연하지 않고, 돈과 사물의 표면을 즉물적으로 다뤄서 감각 자극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사물의 외관을 실제 이상으로 재현한 극사실주의 그림은 굉장한 볼거리가 되어, 그림 구매자의 관음 욕구를 충족시키는 관람용과 소유한 그림으로 주변에 자랑하는 신분 과시용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한 비교문학 연구자는 과일의 재질감과 식기의 표면을 정밀하게 묘사한 17세기 정물화를 두고 관심사의 기록물이라고 평가한다. 촉각적인 표면 가치에 열중한 극사실주의 그림은, 이론 과잉으로 치우친 현대미술의 모호한 초상화를 떠올린다면 관음 욕구에서 출발했을 미술의 원점을 차라리 진솔하게 수용한 측면이 있다.

표면 가치의 비중을 대놓고 털어놓기 힘든 예술 평가의 처지와 비교할 때, 속세의 인물 평가에서 표면 가치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정직한 편이다. 인품이나 학식처럼 사람의 속 깊은 스펙은 고상한 관념적 가치로 오랫동안 숭상 되었지만, 육감적으로 잡아끄는 인물 평가의 최전선은 역시 표면 가치다. 수요와 자본이 집중되는 최전선에 피부가 있다. “피부가 가장 예뻐 보일 때 멈춰라!(라끄베르)” “피부를 숨쉬게 하자.(아이포페)” “차이는 피부야.(우르·오스)” “도자기 피부.(미샤)” 

세간의 화장품 광고가 찍는 방점은 피부 관리다. 화장품 광고는 소비자의 피부가 백옥이나 광채가 될 수 있다며 미적 허영심을 부추긴다. 당대 최고 인지도의 명사를 모델로 고용하지만 그들의 천연 피부만으론 승부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모델의 피부에 사진술과 CG를 더해 실제 이상의 극사실적 피부를 얻어낸다. 그 점에서 극사실주의 미술의 미학과 상통한다. 아무 말도 없는 표면의 침묵은 금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

2013년 5월 7일 화요일

0507 정근섭 감독 <몽타주>


5월7일(화) 14시. 정근섭 감독, 엄정화 김상경 주연 <몽타주> 시사회(왕십리CGV). 


보는 내내 이젠 아무나 시나리오 써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들 만큼 탄탄한 이야기 전개를 갖췄더라. 출연 배우 모두의 연기력도 나무랄 데가 없다. 한국의 내신 뉴스 가운데에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는 가장 폭발력 있는 사건이 아동 유괴 사건인 점을 감안할 때, 그걸 영화의 모티프로 삼은 점도 흡인력을 키운 것 같았다. 몽타주는 목격자의 기억에 의존해서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재구성하는 방법인데, 조각조각난 사실을 이어붙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몽타주>라는 제목은 그 때문에 조각난 진실의 조각들을 이어붙여서 진범을 색출하는 이 영화 전개 방식을 아우르는 중의법처럼 느껴졌다. 

15년 전 범인을 잡으려고 차량 바퀴를 대조하고 용의자의 명단을 찾아 하나 하나 지우는 화면을 어려 take로 나눠 신속하게 흘려보내는 장면은 관객에게 긴박감을 안기지만, 그 자체로 꽤 쓸만한 볼거리 역할도 하는 것 같았다.    

감독의 본래 의도야 알 수 없지만, 15년이 지나면 형벌권이 말소하는 공소시효의 한계. 혹은 처벌권을 포기해야 하는 현행법의 불완전성에 관한 허구 창작물의 화답처럼 읽히기도 했다. 강추.  




* 예상 못할 반전이 최소 3번 이상 반복되는 데다가, 기자간담회 때 영화사 측에서 스포일러 자제를 요청한 터라 자세한 내막은 삼가하기로 한다. 
** 강형사 역의 조희봉은 무술감독 정두홍이랑 너무 닮았더라. 관련 정보를 얻으려고 검색창에 조희봉의 이름을 입력하니 연관검색어로 정두홍이 나란히 잡히는 걸보니 나만 헷갈린 게 아닌 모양이다. 
*** 시사회 직후 열리는 기자 간담회는 가급적이면 보지 않고 자리를 떴는데, <몽타주>의 연출자와 출연배우는 조금이라도 지켜보고 싶어서 딱 5분 가량 간담회를 구경하다가 나갔다. 



0506 강행군 시사회: 어디로 갈까요(스폰지하우스), 앤젤스 셰어(씨네큐브), 환상속의 그대(롯데시네마)


5월6일(월). 영화 시사 일정이 연달아 잡혀있길래, 작심하고 모두 보고 왔다. 연일 아침부터 밤까지 영화4편씩 봤던 작년 늦여름 신디영화제 심사 시절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 분실 신고로 정지 상태인 카드를 복원 하려고 은행엘 갔고, 문제 해결 직후 곧바로 첫 시사회가 열린 스폰지 하우스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그 극장은 내 상태가 무척 안 좋았던 2010년 12월 록그룹 도어즈에 관한 다큐멘터리 시사회를 봤던 곳. 당시도 극장 위치를 찾질 못해 헤맸는데 이번도 건물을 한바퀴 돈 후 찾았다. 이젠 TV조선이 그 건물의 주 용도인 모양이다.

이날 오전부터 저녁까지 본 영화 세편은, 진승현 감독 <어디로 갈까요>(스폰지하우스 광화문), 켄 로치 감독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씨네큐브), 강진아 감독 <환상속의 그대>(롯데시네마). 


* 시사회 관람 3편의 평점을 매기면 두편(켄 로치 + 강진아 감독)은 '강추', 한편(진승현 감독)은 강력 비추다. 특히 <여고괴담>의 1, 2편의 스타 주인공 출신인 김규리와 이영진이 각각 출연한 <어디로 갈까요>와 <환상속의 그대>는 두 편 모두 사랑의 감정이 발전하는 과정을 담은 국내 영화라는 공통점까지 있어서 비교할 수 밖에 없었는데, 도무지 게임이 안 되는 수준으로 <어디로>가 <환상>에 밀린다.  

 <어디로 갈까요>는 김규리가 출연한다고 해서 그녀의 오랜만의 복귀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주밍으로 다가가는 실내 공간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근사해보이지만, 그런 정형화 된 공간 구도가 계속 반복된다. 기업의 회장 집안을 묘사하는 방식은 상투적이다. 식모와 회장 사모의 대화법, 회장의 테이블 위에 놓인 지구본, 하다못해 옛 애인과 재회한 희영(김규리)을 잡는 좌우대칭 테이블 신 등이 모두 근사한 화면을 보여줄 의사 외엔 개연성을 찾기 힘든 구도였다. 개연성이 낮은 걸로 치면 대사, 연기, 극의 전개 모두에서 심각한 수준이다. 어항 속 물고기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는 희영이 자신의 감정이입을 '명시'하는 장면은 그나마 웃어줄 만한데, 관객을 한번 웃겨보겠다고 삽입한 듯한 개척교회의 통성기도 장면은 봐주기 딱할 정도의 질낮은 코미디다. 희영이 인생을 새출발 하는 모습으로 부산 일대가 내려보이는 준호의 집 옥상에서 머리를 (이발사도 아닌) 준호가 직접 잘라주는 설정을 대체 어떻게 봐야할까? 보는 내내 짜증나는 건 나름 꽃미남으로 알려진 준호 역의 유건의 함량미달 연기력이다. 연기자는 외모가 아니라 연기로 승부해야 한다는 진실을 재확인하게 한다. 유쾌함과 초조함을 연신 가감없는 호들갑으로 수렴하는 그의 연기는 화면 전체를 어수선하게 만든다. 여간 거슬린다. 어색하게 내뱉는 준호의 부산 사투리는 부산지역을 희화화 시키는 공중파 드라마의 낮은 수보다 못하다. 유건은 메소드 연기와 감정과잉 연기를 혼돈하는 것 같다. 이런 문제점도 연출가가 잡아줘야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 무수하게 식상한 대사들은 또 어떻고. <어디로 갈까요>는 제작 목적을 어디에 뒀는지 알기 어려웠다. 뭘까? 인생 2기에 관한 설익은 교리, 혹은 김규리의 복귀, 혹은 극중에 슬쩍 삽입된 영화 인생을 포기한 주변인들에 대한 회상과 자의식?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보고나서 할 말이 많지 않았다. 군더더기가 없는 대사 연기 스토리라인로 구성되어 있는 수작이어서다. 억센 영국 사투리와 주변부로 설정된 영화 배경이 안기는 비주류 고유의 질감도 관람의 재미를 증가시킨다. 전혀 문맥이 다르지만 <트랜스포팅>을 연상했던 이유다. 폭행으로 재판을 받는 주인공들이 주인공이다. 그 중 로비가 범한 지난 범죄 장면을 재현하는 장면은 정말로 신랄하고 즉물적이다. 가해자 피해자 만남 프로그램에서 피해자 가족의 격한 감정적 대응과 가해자 로비의 위축된 표정 연기도 실제 현장을 몰래 촬영한 화면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화를 다 보고 보도자료를 읽어보니 주인공 로비 역을 맡은 폴 플래니건은 이 영화에서 처음 배우로 출연한 연기 경험이 전무한 초보라고 한다. 그리고 극중 주인공처럼 약물 알콜 중독 폭력으로 수년감 감옥을 전전한 전과자였다고. 그에 말에 따르면 "연기 수업은 전혀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본능과 느낌에 충실하고자 했다"고 한다. 비전공자가 전공 무대에서 진가를 밝휘하기 쉬운 세상이 되었다.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전공자들이 차지한 과도한 지분의 불공정성이 인정된 부분도 있을 테고, 관행에 의존했던 전공자의 게으름이 한계에 다다른 부분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뉴미디어의 확산으로 비전공자도 자기 소질을 발전시킬 학습 수단을 확보하게 된 시대 배경 때문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범죄자들의 회복과 사회 갱생을 위스키 시음을 모티프로 잡은 건 외화니까 가능한 영화적 설정 같았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짧게 얘기하면 은행강도라는 흔한 영화적 모티프를 술도둑으로 대체한 설정도 재밌는데, 그건 고가의 미술품 절도의 그것과 대등해 보였다. 현금 도둑질이 아닌, '고급 취향의 도둑질'이라는 측면에서) 





<환상속의 그대> 영화 도입 부분에 삽입된 두 남녀 배우가 주고 받는 연애 대화법을 듣고 있자니, 내가 저들과 다른 세대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배우 삼인방 이영진 이희준 한예리 모두 연기력이 월등하다. 자기만의 연기 색채를 유지한 게 가장 큰 변별력이었다. 
상투적일 수 있는 삼각관계라는 모티프를 인습에 휘둘리지 않고 새로운 풀이법을 찾아낸 것이 가장 큰 연출의 변별력이다. 
사랑의 감정이 선을 그을 만큼 확정적이지도 않으며, 모호하되 분명한 존재감이 있는 무엇인 점을, 죽은 애인을 모티프로 살아 남은 벗과 애인의 감정선으로 조리한 점이 매우 뛰어났다. 그 점은 명시적인 대사보다 두 사람(혁근과 기옥)의 마음 속내를 혼란스러운 연기로 표출한 점에서 빛났다.  
애써 '사랑의 유령 영화'로 이름을 붙여 볼 법도 한데,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과거에 대한 회상인지, 죽은 망자의 환상이 등장하는 현재적 장면인지 모호한 설정이 퍽 많이 섞여있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갈피잡기 힘든 실제 사랑의 감정임을 경험한 관객이라면 영화의 독보적 코드를 읽어낼 수 있으리라고 본다. 또 짧지만 딱 한번 삽입된 화끈한 정사 장면도 농염미를 갖추되 식상하지 않으며 영화적 여운까지 남긴다. 영화 후반부의 몇 장면에선 개인 경험의 연상작용으로 감정 동기화가 일어나는 바람에 눈물이 연신 흘러내려서 애먹었다. 감정 증폭을 자제하려고 애썼지만 자꾸 눈물이 났다. 

* 미셀러니: 배우 이영진은 내게 <여고괴담2>로 여전히 기억되는데, 날로 훌륭해지는 것 같다. 나는 그녀를 보면 미술인 김영은이 자꾸 연상된다. / 돌고래 수조 배경으로 세 주연배우가 서 있는 영화 포스터로 본 이희준을 나는 장기하로 처음 오해했다. 연기력이 돋보인 배우였다. / 빼놓을 수 없는 게 유령 역의 한예리일텐데 찾아보니 이 배우도 연기 경험은 없는 것 같다. 한예종 전통예술원에서 무용을 전공한 걸로 뜬다. 한예리는 영화 속 배역에 어울리는 마스크를 가졌다. 전형적인 미모가 아니라 쌍커풀 없는 밋밋한 눈매에 동안인 한예리의 마스크는 감정이입이 되기 좋은 투명한 스케치북 같았다. 





 검색해서 찾아보다가 강진아 감독(1981년생)이 보기드문 미모라는 생각을 했다. 더 검색을 해보니 이 영화 감독은 미모로 이미 유명했던 모양이다.  

 <환상속의 그대> 상영회가 끝나고 기자 간담회가 열렸는데, 나는 보지 않고 그냥 나왔다. 1일1식을 하느라 저녁이 되자 너무 배가 고팠으므로. 전날 저녁부터 이날 영화가 끝난 18시30분까지 한끼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1일1식을 하는 대신 1일3판 영화관람을 뛰었다.  



+ 부록 

 스폰지 하우스 광화문이 있는 건물이 이제는 TV조선이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앉아있자니 TV조선 직원들이 점심을 먹고 주변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죄다 한손에는 음료수를 쥐고. 

 몰트 위스키에 관한 영화였던 <앤젤스 셰어>는 시사회 당일 관람객에게 '더 글렌리벳 15년산' 샘플병을 나눠줬다. 영화에서 위스키 시음 장면이 인상이 남아서 다음 시사회 영화였던 <환상속의 그대>를 보지 말고 주류백화점에 가서 술이나 살까하는 생각을 잠깐 하고 말았다. 물론 술 안사고 영화봤지만. 

<환상속의 그대> 시사회가 열린 롯데 시네마에서 영플라자쪽 구름다리를 타고 가다가 내려본 명동. 

2013년 5월 3일 금요일


5월3일(금) 14시. 토마스 얀 감독 <노킹 온 헤븐스도어 Knockin' on heaven's door>(1997) 시사회. 아트나인에서 관람.


이수역에 위치한 '아트나인'은 시사회가 자주 열리는 극장이 아니어서 나는 이곳을 처음 가봤다. 건물 12층에 자리 잡아서 사당동 일대가 내려 보이는 고층 테라스 전망대가 딸린 나름 낭만적인 극장이었다. 극장 내부는 작지만, 관객석 옆으로 통유리창이 나서 바깥과 연결되어 외부가 내려보이는 설계다. 그 점이 대학로의 '하이퍼텍 나다'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12층'에는 잇나인eatnine이라는 식당과 아트나인artnine이라는 극장이 있는데, 오늘 본 영화의 배금사 이름은 엣나인atnine이다 '쓰리나인' 체제인 모양이다.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에 관람 에티켓(핸드폰 off, 취식 금지, 앞사람 등받이 발로 차지 말기 등)을 내보내는 극장은 참으로 오랜 만이다. CGV같은 일반 상영장에선 그런 에티켓이 기자시사회임에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관람의 매너가 안되어 있는 시사 관객이 좀 있다. 나야 이제 신경쓰지 않을 만큼 숙달 되었지만. 

<노킹 온 헤븐스 도어 Knockin' on heaven's door>는 관람 총평을 별4개 이상 줄 수 있는데, 마지막 크레딧에 1997년이라고 떠서 살짝 놀랄 정도였다. 국내에선 98년 개봉되었다고 들었다. 보도자료를 살피니 15년 만에 재개봉하는 건데 첫 개봉 당시에도 국내 외에서 높은 호응을 끌어낸 모양이다. 때문에 화질에서 살짝 연륜이 느껴지기도 한다. 

각각 골수암과 뇌종양으로 진단으로 사실상 사망 판정을 받은 어느 2인조의 버디 무비인데, 로드 무비이기도 하다. 연신 차로 이동하며 추격적이 일어나므로. 시한부로 일생 기한이 정해진 주인공 둘은 그 중 하나가 바다를 평생 보지 못했다고 하여, 바다를 가기로 결심한다. 때문에 초반부터 '종착점으로 바다'가 설정되어 쭉 직진하는 영화다. (우여곡절로) 이 2인조를 쫓는 조폭이 등장하는데 이 둘은 '맨인 블랙'스타일의 2인조로 나온다. 시한부 인생 2인조와 이들을 쫓는 조폭 2인조의 좌충우돌로 총격전이 난무하는 액션영화의 틀을 취하지만, 유쾌하고 신선하며 피가 낭자하거나 그런 오바도 하지 않으며 괜히 심각한 척하지 않아서 좋았다.  

시한부 인생의 마지막 소원을 적어 이행 한다는 이른바 '버킷리스트(bucket list)'가 영화 전개의 실마리여서 보는 내내 여러 상념에 잠겼다. 시한부1호 마틴(틸 슈바이거 Til Schweiger)의 버킷리스트 중에선 엄마에게 사줄 엘비스 프레슬리가 탄 고급 리무진 구입이, 루디(잔 조세프 리퍼스 Jan Josef Liefers)의 버킷리스트 중에선 쓰리썸(여자 둘과 섹스)이 선택되고 이행된다. 

* 영화가 끝나자 자리를 뜨는 시사 관객들이 보였는데 그 사람들은 손해 본 거다. 이 영화는 크레딧이 다 올라온 다음에 '추가 장면'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걸 꼭 봐두는 게 좋다.  '예상할 수 없는 행운'에 관한 영화적 트릭이므로.

** 시한부 판정을 받은 2인조가 우연적으로 발견한 데킬라(병실에 숨겨져 있었다)를 마시는 장면을 보면서, 데킬라를 수일내로 구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한때 선호 했던 술이었는데.  





 아트나인 내부





 데킬라. 구입하고 만다. 


 이 장면이 여러모로 압권이었음. 상투적이지 않지만 속시원한 총격신+공권력에 관한 우회적인 조롱


구글로 영화 검색을 해보니 이 장면이 가장 많이 잡히더라. 이 장면의 의미에 대해선 노코멘트. 


compulsive hoarding 저장강박증


SBS스페셜이 '저장강박증'을 다룬 적이 근래 있었는데 시청을 잊고 있던 중, 잘게 나뉜 영상 10편으로 올려진 유투브를 통해 해당 방송을 어제 전부 봤다. 

저장강박은 호딩hoarding으로 저장강박환자는 hoarder로 불린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이 정신질환의 강박성 때문에  compulsive hoarding로 표기되는 것 같다. 중증 환자 수준까진 이르지 않았어도 아깝다거나 나중에 쓸지도 모른다는 미련 때문에 (결국 쓰지도 못할 물건을) 집에 잔뜩 쌓아두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정도차가 있어서 그렇지 누구나 정리 분리 폐기를 잘 못하는 법이다. 방송에선 저장강박 증세가 있었던 예술가의 사례로 앤디 워홀을 짧게 소개하기도 했다. <월간미술>은 2010년 7월호 특집으로 '수집과 관련한 미술'을 다룬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 앤디워홀을 포함해서 수집강박이 있는 작가들의 사례에 관한 기고한 적이 있다(원고보기). 

SBS스페셜 '저장강박증'에선 물건 수집 뿐만 아니라 버려진 개들이 불쌍해서 집 안에 들이다가 결국 근 50마리에 가까운 유기견을 데리고 사는 참으로 착한 저장강박 환자도 소개 되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연전에 자원봉사를 간 적이 있었던 포천의 애신의 집이 떠올랐다. 그 분도 동일한 이유에서 유기견을 받다가 천마리에 가까운 유기견의 보호자가 되신 경우이므로. 

SBS스페셜 '저장강박증'에서 다룬 환자들의 특징은 이렇다. 저장 강박은 자기 의지와 관련 없다는 점에서 '강박적 정신병'이고, 물건을 버리지 못해서 집에 쌓아둔 사람은 결국 생계도 어려워져서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기 마련이어서 덩달아 건강도 악화되기 마련이란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의사 결정의 확고함'이 결여된 경우가 많단다. 저장 강박증이 생기는 배경에는 과거 깊은 상실감이나 배신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있단다. 상실감을 치유하려는 왜곡된 방편으로 물건에 대한 집착증이 발동하는 것이란다. 물건을 계속 집어오는 환자 가운데에는 과거에 아내가 자신을 떠나버렸거나 어떤 불행한 일로 생계가 막연해진 경우가 있단다. 그래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 하고, 유기견을 보호하는 강박 환자의 경우는 과거에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빚보증을 여러번 섰다가 속았다고 한다)에 대한 분노로 "동물은 사람을 속이지 않더라"는 이유가 작용했다고 한다. 애신의 집의 할머니도 바로 그런 경우였던 걸로 안다.

어느 저장강박증 외국인 가정의 집안 실내. 


이제 숙제할 시간


금주 <시사인>(294호)이 배송 왔는데, 표지랑 제목의 조합이 죽인다. 

"이제 숙제할 시간" 


0501 프랑스 젊은 작가전(송은) intimate distance(아라리오) 오관진(포스) performing film(코리아나미술관) 전미래(코너아트스페이스)


0501(수)
프랑스 젊은 작가전 (2013.0315~0608 송은아트스페이스)
Intimate distance (2013.0418~0526 아라리오 서울)
오관진 '조선의 숨결을 만나다' (2013.0423~0509 갤러리 포스)
Performing film (2013.0411~0615 코리아나미술관-스페이스C)
전미래 'Rolling City' (2013.0501~0529 코너아트스페이스)


* 작정하고 강남(청담. 신사)을 돈 날. 자전거로 돌았다. 




프랑스 젊은 작가전(송은)
 Theo Mercier, The invisible family, 2012

 가까이서 보면 손이 이렇다.

 Florence Lucas, untitled, 2012

 Florence Lucas, untitled, 2012

 Damien Cadio의 회화 소품 4점

 Julie Bena, Monuments, 2010

 Emmanuel Lagarrigue, 2013년 설치물. 제목이 너무 긴 문장이어서....

 Guillaume Constantin, Everyday ghosts, 2013 since 2008

 Jonathan Binet, As far as possible, 2013


 한큐에 강남 일대 순회를 가능하게 만드는 자전거. 비앙키.  

송은 전시는 전시실의 공간마다 검은 장막으로 입구를 드리웠다(일부 관객은 입구가 닫혀, 다른 통로가 따로 있는 줄로 오해까지 하더라). 검은 장막으로 작은 단위처럼 분리된 공간들의 성격과 공연 조명을 설치한 엠마누엘 라갸리그 때문인지 프랑스 작가의 전시는 기성 (괴기)영화 예술의 연장선 위에서 구성된 것 같다고 느꼈다. 또 전시가 주는 전반적인 인상이 '흑백톤'에 가깝고, 일부 회화 소품은 스냅사진(을 보고 그렸을 테지만)의 페인팅 버전 쯤 되어 보였으며, 일부 사진과 일부 드로잉은 무수한 '순간 포착들'의 열거로 보였기 때문에 영화와의 근친성을 내가 연상하게 된 모양임.    



Intimate distance (아라리오 서울)
 Hans-Peter Feldmann, Crossed eyes paintings

 Hans-Peter Feldmann, Untitled 

 이번 출품에는 포함되지 않은 Hans-Peter Feldmann 작업을 구글로 여럿 봤고, 이 작품(One Dollar Bill with Red Nose, 2008)도 그 중 하나. 실제 1달러 위의 조지 워싱톤의 코에 어릿광대의 코를 붙여 완성한 듯.

아라리오 전시는 "평면 회화 관람의 즐거움을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할까"에 관해 생각하면서 봤다. 




오관진 (포스)
 지인이 일러줘서 가서 본 전시. 보편적 개인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을 미술의 가치에 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본 전시. 




Performing film (코리아나미술관-스페이스C)
 Gillian Wearing의 2011년경 사진. 예뻐서 퍼왔다 개가. 

Gillian Wearing <dancing in peckham> 1994이 전시의 상영작으로 포함되어 있었는데, 유투브에선 찾기 어려웠다. 대신 영국언론 <가디언>에서 25분여의 풀영상 가운데 2분 가량으로 편집한 영상을 올렸더라. => 영상보기 


 빌리 도르너 Willi Dorner는 <Performing film>전시에서 단연 눈에 띠는 전시의 간판작업 쯤 될 터인데(그래선지 초대장 커버도 빌리 도르너를 썼다) 유투브에 관련 연상이 많이 올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는 2012년작 'Set in motion'이 출품되었다. 인체로 만들 수 있는 기계적 리듬과 절도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집단 퍼포먼스다. 특히 퍼포먼스가 행해지는 공간을 가구와 매트리스로 가득찬 창고로 설정한 점, 창고 안에 비치된 가구들과 인체가 조합할 수 있는 퍼포먼스의 신기원을 보여준 점이 다른 퍼포먼스 작업들보다 변별력을 높였다. 같은 공간에서 상영된 전위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티에르 드 메이(William Forsythe & Thierry de Mey)가 20개의 동일한 테이블 위에서 전문 안무가들이 펼치는 퍼포먼스 기록물이 형식적 완결도가 높은 완벽한 인체적 정교함에 가까움에도 역설적으로 따분해서 오래 보게 안되는 반면, 빌리 도르너의 퍼포머들은 인체와 퍼포밍이 지닌 미완결성이 오히려 매력요소가 된 것 같았다. 또 영상물로 빌리 도르너를 보면 한큐에 완성한 집단 퍼포먼스의 연속적 기록으로 보이지만, 편집된 영상이므로 순간순간의 퍼포밍들을 이어붙인 작업의 과정도 잊지 말아야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있다. 

 performing film은 인체(혹은 나체)가 영구불변의 시각예술 제재가 될 수 있음의 증거 쯤 되는 전시다. David Hilton의 영상 'Snow'는 미디어아트가 발굴할 수 있는 무한정한 제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영국의 과거 필름 아카이브를 재구성한 작업인데, 단순한 과거 영상 기록물의 짜깁기가 아니라 임의적으로 특정 화면은을 반복해서 편집하는 등 현대적 개입을 위해 나름 애쓴 것 같았다. 과거 기록영상 고유의 익살스러움 때문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업. 



전미래 (코너아트스페이스)
 양지윤

 이형구 전미래

 양지윤 이형구 고낙범. 
윈도우 갤러리의 형식을 띤 전시장에 기하학적 도형을 쌓아두고 관객들에게 이리저리 밀어보게 독려하는 전시였는데, 실제로 방문자들이 도형들을 밀어보려고 내부로 들어가더라. 나는 입구 테이블에 앉아서 그 장면을 구경하면서 와인만 계속 마셨다.

 전미래의 오프닝 드레스 코드. 


작가가 아이폰으로 촬영했다는 사진을 메일로 보내줬다. 


2013년 5월 1일 수요일

탈고


모출판사가 <세븐 7>이란 가제목으로 책을 작년말 기획했다. 

필자 7명이 쓴 각 7개의 자유 수필들로 구성된 책이 이 기획안의 요지인데, 청탁이 들어간 작년말 한국은 대선 때문에 필진 모두 정신이 다른 데에 가 있었을 것이다. 나도 대선이 끝난 후에야 7개의 수필 주제 확정부터 전체 구성까지 글에 관해 생각했고, 차츰 초안에 살을 붙여 나갔다. 나는 필진 가운데 마감 기한을 약간 넘긴 필자가 되었다. 현재 일곱 필진의 원고가 많이 수합 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빠르면 5월, 늦어야 6월 안에는 출간될 것 같다. 나는 7개의 에세이 주제 중 한개가 풀리질 않아서 계속 붙들고 있었던 건데, 어제 결국 완결본을 탈고해서 보냈다. 그리고 방금 완결본의 지문 일부를 추가해서 최종 수종본을 다시 보냈다. 에세이 7개의 개별 주제를 정하는게 제일 고충이었고, 표현 수위를 조정하는 것이 그 다음 고충이었다. 
내가 정한 7개의 주제는, '글쓰기' '직장 없는 직종' '미술비평' '공상' '섹스' '자전거' '불행'이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엮인글)도 그랬지만, 비미술인 필진들과 공동 저서를 낼 기회가 차츰 느는 추세. 

2013년 4월 30일 화요일

1일1식 4월 한달 마감


'주2회 1일1식'을 4월 동안 시도한다는 공지를 올렸었다(엮인글).  


4월을 마감하는 날이라서 한 달여 1일1식의 결과를 정리한다. 
애초 계획은 '주2회' 이행이었으나, 첫주부터 주5회 1일1식이 가능해서 그 기운을 계속 타서 4월 내내 '주5회 1일1식'을 이행했다. 해서 4월 한달 30일 간 1일1식을 한 날은 총 22일이다. 

처음 약간 근심한 것과는 달리, 굶주림은 견디기 힘든 정도의 불편함은 아니었다. 푸샵처럼 지속적으로 이행하는 버릇이 이미 있어서 인지 1일1식을 버릇으로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또 평생을 사로잡혔던 하루 세끼라는 선입견의 위력도 새삼 깨달은 시간이다. 선입견은 다종의 변화 가능성을 차단할 것이다. 

1일1식이 가져온 변화는 수분 섭취가 늘었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 물을 거의 마시지 않는데, 목마름이 잦기도 하고 배가 고프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물을 자주 찾게 된다. 또 다른 변화는 허리 둘레를 재보니 3cm 이상 줄었더라(내 목적은 뱃살 제거지만). 


* 향후 계획: 주5회 1일1식을 기본으로 한다. 20/4(20시간 공복 유지, 4시간 취식 가능)와 18/6을 병행하며, 밤 9시 이전까지 식사를 마치는 걸 기본으로 하되, 최대 자정까지 취식을 허용한다.   

* 향후 대안: 취식 가능 시간 동안 틈틈히 먹을 견과류 구비. 


0429 스티브 맥퀸 감독, 셰임(Shame, 2011)




금지 되어 논란이 된 영화 <셰임>의 헝가리 버전 포스터. 온라인으론 얼마든 볼 수 있는데 금지는 무슨 금지. 장난침미?


4월29일(월) 16시30분 현대미술 작가 출신 스티브 맥퀸 감독의 <셰임 Shame>(2011) 시사회. 왕십리CGV. 


yBa 트레이시 에민과 경합한 1999년 터너상 후보군으로 나란히 선발되어 결국 터너상을 수상자가 된 현대미술인 스티브 맥퀸의 2011년 연출한 영화.
롱테이크가 많지만 타르코프스키나 앵갤로프로스 식의 롱테이크와는 다르다. 감독이 미술인 출신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영화를 봐서인진 모르나, 미쟝센을 염두에 둔 정지 화면 설정이 많다고 느꼈다. 프레임에 들어오는 배경도 모노톤으로 떨어지도록 세트를 맞춘 것 같다고 느낀 점도 동일한 선입관 때문인지 모르지만. 

보도자료에도 나와있고, 즉물적인 스토리라인 자체가 그렇지만, 시종 섹스에 촛점을 맞춘 섹스에 관한 영화다. 그것은 영화가 비단 잠들지 않는 현대 도시, 파티와 술집, 8등신 모델을 닮은 여성 출연진이 자주 모습을 보여서 만는 아니다. 섹스에 강조점이 있지만 주인공이 남자 배우(마이클 파스벤더)여선지, 여체보다 파스벤더의 육체의 미덕을 담기위해 카메라가 분주하다. 

전환점이 되는 장면 4부분 이상에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흘러 나오는데, 내가 그렇게 자주 들었던 음반인데도 아리아 부분을 빼곤 처음에 재즈 피아노 즉흥곡 인줄 오해를 하면서 들었다. 

브랜든이 자신의 집 실내에 쌓아둔 LP 컬렉션,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는 와인 피노누아, 상대 여성과 대화 속에서 토로하는 염세적인 결혼관, 그 외 한 두가지 점에 브랜든에 감정이입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