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1일 수요일

사진의 사실 편집술



사진이 붙잡아둔 결정적 순간은 가공된 해석을 때로 사실로 굳힌다. 
상단은 작년 11월 쿤스트독 전시 뒷풀이(엮인글)에서 사진가 노순택과 내가 대화하는 순간을 앞자리에서 찍은 사진이란다.
8월18일 저 사진을 카톡으로 전송 받았는데, 이 장면을 찍은 사진가 김흥구가 덧붙인 해석은 이랬다고 전한다. 
=> '이별을 통보받고 괴로워하는 모습'

오올~. 사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동력은 유머와 곡해를 뒤섞는 사진의 편집 생리.

사진이 붙박은 결정적/우연적 순간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두 인물의 처지를 묘사할 때 단골로 동원된다.
하단은 지난주 <시사인> 표지. 명박이와 박근혜가 서로 고개를 돌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든 이 우연적 사진은 현실에서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정치적 거리감으로 인해,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는 제호와 설득력있게 호흡을 나눈다.

어떤 논평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에 사진은 새로운 진실을 쉽게 덧댄다. 


ps1. 웃자고 올린 글. 괜히 진지해지기 말기.
ps2. 우리 '관심병 환자' 명박이는 요새 뭐하며 지내나. 난처한 반정부 시국에서 자신의 2008년이 연상되서 숨 죽이는 중? 



2013년 8월 20일 화요일

1일 1식, 4달의 결과




금년 4월1일부터 주5회 1일1식을 한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  1일1식 첫 한달 마감 포스팅

올 여름 유럽 여행 중에도 주5회 1일1식은 꾸준히 유지했다. 
나는 1식의 타이밍을 저녁 시간대로 잡는데, 아침을 제공하는 호스텔과 민박이 있어서 그 곳에 머무는 기간은 일시적으로 1식 타이밍을 아침시간대로 옮기기도 했다. 

그런데 여행 중 성가신 문제가 생겼다.  1식으로 살이 꾸준히 빠져서 한국에선 딱 맞던 바지가 유럽 여행 중 자꾸 흘러내리는 사태가 발생한 거다(엮인글). 어렵사리 현지의 실-바늘 가게를 찾아 허리폭을 줄였는데, 귀국 후에는 여름에 입을 바지들의 허리 사이즈를 모조리 줄여야 했다(허리띠 착용이 번거롭고 싫어서). 

많이 궁금하실 거다.  1일1식의 체중감량 효과가 어떤지. 살 혹은 허리가 얼만큼 줄었는지. 
1일1식을 처음 시작한 4월1일, 허리 사이즈를 미리 측정해 두지 못했다. 조금 늦었지만 4월9일 허리 사이즈를 처음 쟀다. 아마 그 사이에 좀 많이 빠졌을 텐데.

어쨌건.... 4월9일 잰 허리둘레는 93cm. 
그 후로 3주 지나서 쟀을 때 90cm로 줄어 있었고, 7주째에는 86cm로 처음보다 7cm가 줄어 있었다. 
즉 매주 1cm씩 허리둘레가 준 셈이다. 이번 여행 중 바지가 흘러내려 유럽에서 바느질로 손질하는 소동도 벌어진 터라, 나도 궁금해서 귀국해서 허리 둘레를 다시 재봤다. 83cm. 바지가 흘러내리는 게 당연했다. 처음 쟀을 때보다 10cm가 준 거다. 옷장에 있는 모든 바지 사이즈를 줄여야할 판. 



* 4월9일 허리둘레 93cm   ==>   8월13일 83cm 

** 허리둘레의 가시적인 효과 외에, 주5회 1일1식은 식욕을 포함한 여하한 욕구 앞에 초연해지는 심리 효과도 만든다. 

*** 여행 중 하루 한끼만 챙기니 북유럽 물가 비싼데도 식비를 많이 아끼게 되었다. 

2013년 8월 16일 금요일

잠깨운 보험 전화

시차 적응을 못해서 아침에 겨우 잠들어서 오후에 깬다. 그리고 낮부터 저녁까지 중간에 듬성듬성 잠 드는 일과가 4일 정도 지속되고 있다. 그럴 만하다. 귀국을 8.11일 했으니. 오전 11시가 조금 지났을 때 전화가 울려서 잠에서 덜 깬채로 받았는데, 생소한 목소리가 내 실명을 부르는 게 아닌가. 나는 상대방이 실명을 부르면 냉담해진다. 십중팔구 광고 전화여서다. 그런데 나랑 옛날에 정신분석 스터디를 했다며 아무개 라며 자기 이름까지 밝힌다. 십수년전 대학원 수료 후 스터디를 몇번 조직한 적이 있고, 희성의 이름이라 어렴풋 기억났지만 얼굴까지 떠오르진 않았다. 바로 용건에 들어간 통화 내용은 나를 황망하게 했다...


아무개: 언제 만날 수 있어요? 
나:  왜요?
아무개: 제가 다니는 회사와 관련해서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요.
(회사 일로 내가 관련되는건 미술관련 청탁이 전부인데, 내 실명을 부르면서 회사일이라면 그건 아닌 거다)
나: 어떤 일인데요?
아무개: 그냥 직접 만나서 얘기하려고요. 괜히 부담 느끼실까봐요. 
나: 저도 개인 일정이 있기 때문에 용건을 미리 알아야 나가죠.
아무개: 괜찮은 보험상품이 있어서 소개시켜드리려고요.
나: 저는 보험 가입 안해요.
아무개: 정말요? 왜요?
나: 대학 동기 중에 보험사 직원인 친구들도 부탁했지만 거절했어요. 안합니다.
아무개: 너무 좋은 거에요. 너무 괜찮아서 저도 가입했거든요. 
나: 그야 보험사 직원이시니까 당연히 가입했겠지요.
아무개: 너무 좋아서 가입하고 이 일도 하는 거에요. 
나: 안합니다. 
아무개: 결혼 하셨죠?
나: 아뇨. 
아무개: ......음.....결혼 안한 사람한테도 참 좋은 보험이에요.
.
.
. 
(약간 짧을 실랑이)

아무개: 그럼 다음에 다시 전화를 드릴께요.
나: 보험 때문이라면 전화하지 마세요.
아무개: 아 왜요... 너무 좋은 보험이라서.
나: 싫다고 의사를 밝힌 사람한테 이러는 건 실례입니다. 잘 아는 사이도 아니면서.
아무개: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부탁을 하는...
나: 그러니까 실례지요. 
.
.
.
그러곤 전화를 끊었는데, 나중에 당시 함께 그 스터디에 참가했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 음대가 있었는데 음대생이었단다. 그러자 기억이 어렴풋 났다. 실기가 아니라 이론 전공 학생이었던 걸로 기억나지만 얼굴은 결국 떠오르지 않았다. 잠결에 받은 황당한 전화에 잠이 깨고서 화도 났고 황망한 기분이 들었다. 생업이 중요하다지만, 13년전 스터디 모임으로 잠깐 만난 사람에게 전화 걸어서 무작정 만나자고 제안하다니.... 설령 내가 시간 쪼개서 나갔다면 보험 상품 강매자와 만날 뻔했지 뭔가. 그녀는 심지어 당시 스터디를 함께한 다른 사람들의 안부까지 내게 묻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도 보험같은 거 가입 안할 사람이에요."라고 만류하기까지 했다. 자기가 지인들에게 인연을 매개로 무슨 실수를 저지르는지 그녀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딱했고, 그런 상품을 직원에게 강요하는 보험회사의 시스템이 혐오스러웠다. 

0812 왕가위- 일대종사 ★★☆ + 루이스 리터리어- 나우 유 씨미 마술사기단 ★★★★

* 귀국 다음날(8.12 월- 엮인글) 음주 하다가 필름이 끊어진 데에는, 시차 부적응 상태에서 하루 동안 무리한 일정을 짠 탓이 큰데, 당일 영화 시사회 두편을 위치가 다른 극장 두 곳에서 연이어 관람한 게 한 요인이었다. 사실 영화를 두 편씩 보기로 결심한 데에는 낮시간 강제로 뜬눈으로 보내는 것이 시차 적응에 도움을 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2012년 귀국 후에도 '신디영화제' 심사 때문에 4일간 아침부터 밤까지 영화를 봐야만 했는데, 덕분에 시차가 적응되고 말았다. 
아무튼 8월12일 무리하게 본 영화를 느지막이 정리한다. 왕가위 영화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저녁 일정까지 시간이 비어서 끼워넣듯이 본 <나우 유 씨미>는 볼 만했다.  

  

8월12일(월) 10시30분. 왕십리CGV. 왕가위 감독 <일대종사 The Grand master>(2012) 시사회.

별점: ★★☆
  





남과 북 무림 사이의 권법 경쟁, 항일 전선이라는 시대상, 권법에 가려 깊이 개입되지 않고 우회적으로 묘사되는 남녀상열지사. <일대종사>의 큰 그림은 이렇다. 한국관객이라면 캐스팅 명단에 뜨는 송혜교라는 낯익은 한국 배우도 관전 포인트일지 모르나, 배역의 비중이나 출연 빈도는 매우 낮으므로 큰 기대는 품지 말고 보자.   

왕가위 감독의 영화 세계를 90년대 만들어진 영화(아비정전, 동사서독,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 투게더)에 한정시켜서 이해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신작 <일대종사>을 통해 왕가위를 연상하긴 어렵다.  물론 왕가위의 전작들과 신작이 접점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 것이나, 90년대 국내에서 일었던 왕가위 붐을 생각하면 <일대종사>의 별별적 매력은 낮은 편이다. 

중절모에 창파오(?) 차림에 정적인 자세로 대련에 임하는 엽문(양조위)의 모습은, 적과 조용히 마주 서서 권총을 뽑아드는 서부극의 유형이나,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의 차림새를 연상시킨다. "쿵푸는 수평과 수직이다."라고 간단히 정리하는 염문의 화두는, 본래 의미야 어떻건 대련할 때 인체를 기계처럼 작동시키는 동양 무사들의 손과 발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 전통 무술 영화로부터 서부 활극이나 서구 SF액션물을 떠올리면서, 서구에 의해 근대화를 피동적으로 이룬 중국 대륙의 자존심을 읽게 된다. 중국이 보유한 기계주의(적 인체)를 대중영화를 통해 항변하는 인상이랄까. 서구화된 자존감. 

영화에서 인생을 빗대기 위해 요리를 알레고리처럼 차용하는 무수한 말들은 영화를 교조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런 점이 90년대 왕가위의 경쾌한 영상 감각과 차이점을 만든다. 물론 감독이 90년대 미학을 승계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건 감독 마음이지. 평가하는 게 관객 마음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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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2일(월) 14시. 롯데시네마 건대.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 <나우 유 씨미 마술사기단 Now you see me>(2013) 시사회.

별점: ★★★★








시사회장까지 가서 표까지 받아 들고서 벤치에 앉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잠깐 고민까지 했던 영화다.  
귀국 다음날이라 시차부적응으로 피로가 몰려온데다가, 해외에서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평가를 받았다는 정보를 극장에 오기 전에 봤기 때문이다. 내가 본 인용에 따르면 "무수한 의혹들이 만족할 만큼 해결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나버린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그냥 관람했고, 그럭저럭 볼 만한 영화였다고 판단했다. 

높은 점수를 주는 데에는 속사포 같은 화면 전개와 대사로 쉴 틈 없이 술술술 영화를 따라 보게 되는 점, 스토리텔링의 재미도 적지 않은 점, 또 마술의 허구를 영화라는 허구 안에 담아 영화의 자기지시성을 숨긴 것처럼 보인 점 등이 있다. 극중에는 마술사의 사기를 잡아내는 인물, 태디어스(모건 프리맨)가 나오는데, 나는 은근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실제 현실 속에서 초능력과 마술 사기단의 속임수를 폭로하는 제임스 랜디의 분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팅에선 밝힐 수 없는 두가지 반전이 마지막에 배치되고, 그 내용은 내 소신과는 배치되지만, 맘에 들었다. 마지막 반전 구성의 짜임새가 맘에 들었고, 엔터테이닝으로써의 영화의 역할을 이 영화가 잘 수행한 점도 고득점을 받을 요건이라고 나는 봤다. 

* 영화 속 카 레이싱 장면, 꽤 볼 만했다. 
** 모건 프리맨 못지 않게 연기력 때문에 자꾸 눈이 간 배우는 우디 해럴슨이었다.  

2013년 8월 15일 목요일

2013 북유럽+서유럽 숙소

* 금년 외유는 7월23일~8월11일까지 북유럽 3개국/4도시와 서유럽 2개국/3도시를 도는 계획으로 짰다.
북유럽은 코펜하겐(덴마크), 오슬로/베르겐(노르웨이), 스톡홀름(스웨덴)이, 서유럽은 밀라노/베니스(이탈리아), 제네바(스위스)가 포함되었다. 북유럽 물가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예산을 최소화 시킨 평소 버릇대로, 숙소와 이동수단들이 선택되었다. 비행기는 무려 7번이나 탔는데 이 중 5회는 유럽 내에서 단거리 이동하는 저가항공을 이용했다. 

북유럽+서유럽에서 저렴한 숙소를 이용하려고 작년 포르투갈 여행 때 처음 경험한 현지인 민박을 최대한 선택했다. 현지인 민박은 air bnb라는 앱을 통해 주선된다. air bnb 의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그곳에 등록된 민박들이 선택되는 구조다. 이번 총 7개 도시의 숙소 가운데 air bnb를 통해 예약한 민박은 총 4군데(코펜하겐, 오슬로, 베르겐, 밀라노). 




1. 코펜하겐(7.23~7.26 / 3박4일): '돌발 사고'가 발생해서 예약한 집에서 잘 수 없었다. 그래서 각기 다른 거주지에서 하루밤씩 잤다. 

1박. Ronni의 집 방에서 그의 배려로 무료로 잤다. Ronni와 여러 거주자들이 모여사는 일종의 다세대 주택 혹은 아파트. 




2박. Thorh의 거실을 무료로 씀, Thorh의 거실과 그의 집. 거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줘서 거기서 잠을 잤다. 






3박. YMCA호스텔 ★★☆ 코펜하겐의 마지막 밤은 Thorh가 소개시켜준 중앙역 인근 YMCA호스텔에서 유료로 잤다. 4인용 도미토리였는데 동숙인 중 한명이 코를 너무 고는 데다가 땀냄새도 심해서 숙박 만족도는 낮다. 더구나 12시30분까지 입실해야 한다거나 술을 마실 수 없다고 정한 내부 규정도 만족도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가격이 싸고 부엌을 이용할 수 있다.  






2. 오슬로(7.26~7.29 / 3박4일): 민박 
★☆ 뭉크150년 전시가 열리는 오슬로에서 3박을 보냈는데, 주인이 웃는 얼굴을 짓고 있지만, 친절을 가장한 기본적 배려심이 낮은 사람이었다. 민박을 운영할 조건과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다. 심지어 엉뚱한 집주소를 알려줘서 엉뚱한 곳에서 헤매다가 전화를 걸어서 진짜 주소를 받기도 했다. 기본이 안됐음.    




3. 베르겐(7.29~7.31 / 2박3일): 민박 
★★★★ 민박 4곳 가운데 만족도가 가장 높다. 좁은 침실도 불편하지 않다. 가장 큰 장점은 부엌을 편히 쓸 수 있는 조건, 그리고 주인과 숙박인 사이의 프라이버스기 보장되는 점. 가격도 만족. 집을 전체적으로 고쳐서 민박사업을 본격적으로 운영하려는 단계일 때 우리가 도착했더라.  





4. 스톡홀름(7.31~8.2 / 2박3일): Anedin hostel 
★★★★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호스텔이다. 침실과 욕실은 좁고 불편하지만 기존 선박을 고스란히 숙소로 개조한 발상이 재미있다. 부족한대로 아침도 무료로 제공되며 무료 wifi가 잡히는 넓은 공용공간도 유익하다. 







5. 밀라노(8.2~8.5 / 3박4일): 민박 
★★★☆ 아침을 무료로 제공하고, BnB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질 않은 초보라서 주인들이 우호적이다. 주인과 손님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점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다만 부엌 사용을 할 수 없고, 유럽지역에서 흔히 경험할 수 없는 '모기'가 많은 게 단점. 



6. 베니스(8.5~8.7 / 2박3일): 
Jan Palach Hostel ★★★ 대학 기숙사로 쓰이는 건물. 방학 기간동안 한시적으로 호스텔로 전용되는 것 같았다. 가격은 저렴하고 아침은 제공되지 않지만 부엌을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처음 데스크를 찾아갔을때 "예약자 명단에 없다."는 말을 듣고 또 한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데 나중에 오류로 밝혀졌다. 베니스 호스텔은 그럭저럭 다 좋은데, 방의 열기가 빠지질 않고 통풍이 안되서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것. 첫날은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인근 Redentore성당 돌바닥에 누워 몸을 식혔고, 둘째날은 자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아침께 방 바닥에 천을 깔고 그 위에 누워서 몸을 식혔을 정도. 하지만 부엌을 공용으로 쓸 수 있고 숙박료가 싸기 때문에 다음에 베니스 올때도 '날짜(기온이 높지 않은 시즌)'를 골라서 다시 올 수 있다. 








7. 제네바(8.7~8.9 / 2박3일): Nash Ville Hotel  ★★★ 이번 여행 중에 유일한 호텔. 가격도 제일 쎄다. 카운터의 직원이 방이 남아서 가격보다 좋은 방을 주게 되었다며 의기양양 자랑하더라. 작은 스위트룸이었다. 이 호텔은 제네바 코르나뱅역 근처인데 역근처가 흔히 그렇지만 소수인종들이 모여사는 곳에 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그래서 밤에는 술마시고 랩을 하는 흑인 청년들로 시끄럽기도 했다. 제네바에서 호텔에 묶게 되면 체류기간동안 대중교통을 무료로 사용하는 티켓을 받는다. 하지만 퇴실할 때 city tax라는 걸 별도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그걸 몰랐다), 결국 셈셈이다. 



2013년 8월 13일 화요일

필름 끊김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깨어나서 내내 웃고 말았다.

귀국 다음날(8.12 월) 이태원 '월향'에서 술마시다가 필름이 끊겼다.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술마시다가 필름이 끊긴 건, 대학 초년생(90년대 초반) 한번 있는 정도다.
심신이 너무 피로했던 모양이다.


==  8.12 일정 요약.

초저녁 잠들어서 새벽2시30분에 깼다. 시차가 맞질 않아서.
그후 계속 뜬눈으로 여행 중 촬영한 사진을 정리하고 공상하면서 아침을 맞았다.
오전10시30분 영화 시사회( 왕가위의 '일대종사')를 보러 왕십리CGV로 갔다.
시사회를 다 본 직후, 곧바로 건대 롯데시네마로 이동해서 또 다른 시사회('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를 봤다.
영화가 끝난 직후, 임영주 개인전을 보러 삼청동으로 갔다. 영화 두편을 본 직후라 이무렵 이동 중 피로감을 느꼈다.
다시 '아마도 미술' 개관전/파티에 참석하러 이태원으로 이동했다. 도착시간 대략 저녁 7시. 
그곳 뒷풀이에서 술을 마시다가.....필름이 끊겼나본데..... 오늘 오전 8시30분에 깨어나니 집 베란다 바닥에서 자고 있더라.

자초지종을 들으니 밤 11시에 구원요청 전화을 내가 친구에게 했다고 한다(기억에 없다).
친구가 나를 찾으러 온 건 밤 12시(역시 기억에 없다).  
이미 퍼질러 자고 있던 나를 술자리에 동석했던 어떤 남자가 들쳐업고 차에 태워줬다고 한다(역시 기억에 없다).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술자리에서 민폐라도 끼치진 않았나 확인해봐야겠다. 깨어나 지금까지 내내 웃고있다. 웃겨서. 



* 베란다에서 누워 자다가 깨서 대략적인 정황을 짐작한 후에, 2010년 자전거 사고 때가 떠올랐다. 나는 사고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데 여러 가능성 가운데 '혹시 내가 주행중 정신을 잃은 게 아닐까'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술을 마신 건 아니지만, 전날 밤새워서 장문의 원고를 마친 후, 쪽잠을 자고 일어나서 다시 일간지 칼럼을 써서 송고한 직후 자전거를 몰고 남산 정상까지 올라갔기 터라 피로가 많이 누적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2013년 8월 12일 월요일

무라카미 다카시 수퍼플랫 원더랜드 Takashi in Superflat Wonderland 리뷰 (시사인)

* 무라카미 다카시 수퍼플랫 원더랜드 Takashi in Superflat Wonderland(2013.7.4~12.8 플라토)에 관한 리뷰. 출국해서 없는 동안 <시사인>(307호)에 실렸다. 나는 전시를 개막식날 가서 봤다(엮인글). <시사인>에는 본문 도입부가 내가 보낸 원고와 다르게 교정되었더라. 또 말미의 ps도 원고 매수가 넘쳐선지 지면에선 누락되었다. 아래는 내가 보낸 원문.   



 완전한 네오팝의 불완전한 내한



반이정 미술평론가




팝아트.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거리를 두고 선 현대인에게 예외적으로 폭넓은 접촉 면적을 확보한 현대미술을 지칭하는 용어다. 팝아트의 시원과 전성기는 1960년께로 보지만, 후대에 네오팝 또는 포스트팝이라는 칭호로 성공적으로 부활한다. 원조 팝아트의 간판스타가 죄다 서구인인데 반해, 네오팝의 양강 구도의 한축은 일본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쥐고 있다. 그 문제적 개인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린다. 국내 전시 제목에도 쓰인 ‘수퍼플랫(superflat)’은 다카시가 일본 팝아티스트들을 규합한 그룹전의 제목인데, 서구 미술계에는 부재한 일본 고유의 팝을 세상에 각인시킨 혁명적 미학 용어로 굳었다. 고스란히 직역하면 ‘엄청 평평한’쯤 될 수퍼플랫을 이해하려면 일본 시각예술이 걸어온 노정을 살피면 된다. 근대 서구 화단에 영향을 미친 일본 목판화부터 동시대 일본 문화산업의 총아격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자세히 보라. 모두 사물의 양감과 원근감을 평평한 색면으로 일괄 처리한 공통점이 있다. 

평평한 화면의 유구한 전통이 대중소비문화의 감성과 결합하니, 일본의 독보적 미학이 될 수밖에. 완고한 관객의 눈에는 정상적 미술품이 아닌 초대형 팬시상품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지금처럼 거물이 되기 전 다카시가 자국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와 나눈 인터뷰에도 “아직 일본에서는 이상하게들 봅니다. 이걸 해외로 들고 가면 스스럼없이 좋아해 주지요.”라고 털어놓은 사연도 당시 일본 화단의 몰이해를 보여준다. 수퍼플랫을 창안한 것 외에도 무라카디 다카시의 공로는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 LLC)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공동 창작에 투입되는 직원 100여명을 거느린 ‘기업형 아티스트’의 세계를 공고히 한 점일 것이다. 다변화된 현대 시각문화 속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작가 일인에게 한정하지 않고, 분야별 전문가들의 협조와 공동 제작의 강수를 둔 것이다. 예술가의 원본성은 깨졌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구원한 거다.

이 문제적 예술가의 한국 개인전 어땠을까? 일본 팝아트의 고유성을 각인시킨 게 다카시의 공로일 테지만, 그의 변별력을 세부적으로 좁힌다면 크게 둘이다. 하나는 만화적 상상력에 의존해서 일본 시각예술의 전통이 긴밀히 관계 맺은 에로티즘의 실체를 과감하게 제시한 점이다. 그의 지난 문제작들은 예외 없이 만화적 상상력과 거대하게 부푼 선정주의의 유쾌한 결합이었다. 다른 변별력은 고전과 현대의 충돌이 빚어내는 대조적인 시각 효과다. 한국 전시에선 이 둘이 모두 실현되지 못했다. 로봇과 소녀의 인체를 합체한 입체작품이 여성기를 노출시켜서 그나마 성적 농담에 가까울 텐데, 그 작품은 개막식에서 사진촬영이 금지 되었다. 사진이 유출되어 물의를 일으킬까봐 걱정한 모양이다. 미술관의 이런 걱정은 기우일까? 그런 것 같진 않다.

한 사회에서 예술이 표현되고 전시되는 수준은 통상 그 공동체의 안목과 한 몸이 된다. 시민사회의 일반적 안목이 고려된 작품 선정은 세계가 다카시를 주목하게 만든, 과격한 시각 실험을 윤리의 우물 안에 가두고 말았다. 아이러니는 다카시의 존재감을 예고한 대표작으로 통하는, 선정적인 초기 작품들이 2011년 ‘프랑소아 피노 컬렉션’ 전시(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이미 입장료 없이 공개된 바 있다는 거다. 전문가가 주로 찾는 전시장에선 별 탈 없이 미학의 핵심을 던지지만, 대중 관객을 상대하는 유료 전시장은 민심의 눈높이을 고려하느라 핵심을 피해간다. 한국 문화가 직면한 고질적인 불행이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표작은 인터넷으로 외형과 스타일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작품을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부터 전시회의 대략적인 전체 그림을 유추할 수 있다. 다카시의 두 가지 변별력으로 앞서 예를 든, 고전과 현대의 충돌은 앙시앵레짐 시기 지어진 바로크 건축물 베르사유 궁전 내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볼 수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이 현대미술가에게 공간을 내준 3번째의 지위를 누린 그 전시에서 다카시의 형형색색 미학은 중후한 고전미와 충돌하면서 대조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화이트 큐브로 불리는 일반 전시장에서도 다카시는 성공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은 현대와 고전의 충돌과 일본 시각예술의 에로티즘을 재확인 시키면서, 그의 변별력 둘을 모두 확보한 전시여서다. 메이지 시대에 서양화를 일본에 도입한 쿠로다 세이키의 누드화를 전통적 일본화 기법으로 재현하되, 인물을 만화 캐릭터로 교체했다. 즉 서구에서 유입된 누드화를 현대적 일본 문화로 재번역하면서 관음적 가치까지 챙긴 것이다. 

물론 프랑스 베르사유궁전 전시와 영국 가고시안 갤러리 전시를 한국 플라토 전시가 따라해야하는 건 아니다. 대등한 비교 대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라카미 다카시의 국내 첫 개인전은 강조점을 어디에 맞춘 걸까? 찾기 어렵다. 전통에 대한 급진적인 재해석도 아니고, 일본 시각예술의 에로티즘을 노골적으로 투척한 것도 아니라면 대체 강조점은 무얼까? 비록 국내 전시가 다카시의 회고전을 표방한 게 아닐지라도 이 문제적 예술가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품은 근작에 심하게 치우쳐 있었고, 일관된 주제로 수렴되기에는 상이한 작품들이 단속적으로 열거된 양상이다. 그의 명성과 강조점을 이렇게 제한된 단면에 가둔 원인은 뭘까? 초대 작품의 구성은 작품을 대여한 페로탕 갤러리의 선택일까, 아니면 ‘무라카미 다카시 국내 첫 개인전’이라는 보증수표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한국 관객의 눈높이까지 근심한 삼성미술관의 안전한 선택일까? 알 수 없다. 잘라 말할 수 있는 건, 네오팝의 간판스타 무라카미 다카시의 단면만이 열거된 그의 국내 개인전 기간(12월초까지 한다)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는 거다.

ps. 팝아트로 규정되진 않으나 강한 팝 성향을 띠며, 무라카미 다카시에 이어 루이비통과 콜라보레이션 계약을 맺은 또 다른 일본 현대 미술가 야요이 쿠사마의 개인전이 대구미술관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열린다. 루이비통과 콜라보레이션를 맺은 두 미술가의 사례에서 보듯이, 팝아트의 대세는 동시대 시각체계에 관여하는 팝아트의 넓은 운신의 폭 때문인가 보다.






마이 소울 시티 : 평창동 (한겨레21)

* 출국으로 내가 없을 때 나간 원고. <한겨레21>이 '마이 소울 시티'라는 제목의 연재를 내보내는데, 여러 필자들에게 그들의 영혼의 안식처로 인식되는 도시에 관해 들어보는 연재다. 나는 평창동을 택했는데, 동네에 관한 짧은 심경을 2010년 사고 직후 평창동집에서 요양하면서 포스팅 한 적도 있다(엮인글).
  


한없이 적막한 고요 [2013.08.12 한겨레21 제973호]
[마이 소울 시티]  미술평론가 반이정이 각별한 성장기를 보낸, 심신의 원점 같은 공간 평창동


재수, 대학, 군복무, 대학원, 네댓 번의 연애, 비평가 등단 초입까지 몸담은 한 동네 이야기이다. 청소년기 끝물부터 생계의 진입까지의 추억을 간직했으니 변별적인 시공간이라고 잘라 말할 수도 있다. 대략 10년 전부터 그곳을 떠나 서울의 다른 동네를 전전했지만 주민증상 주소지를 이전 하지 않아서, 선거철마다 귀향하듯 투표소를 다녀가는 한시적 방문지이기도 하다. 2013년 동네 이름이 두 차례나 미디어에 보도됐다. 40년 넘게 개발제한으로 묶인 규제가 풀려 동네 부동산값이 요동친다는 경제뉴스와 서태지의 결혼발표와 함께 공개된 주택이 이 동네에 지어졌다는 연예뉴스였다. 1세대 부촌으로 분류되는 평창동을 영혼의 안식처라는 인문학적 연재 코너에 소개하자니 내내 주저하게 된다. 그렇지만 필자가 살던 집은 경관 좋은 산세나 높은 담벽이 에워싸거나 전망이 탁 트인 성곽 같은 저택과는 당초 거리가 먼 점, 그리고 각별한 추억들의 성장기를 보낸 점 등, 심신의 원점 같은 시공인 사실을 외면할 필요가 있나 싶다.

내게 평창동의 첫인상이 유별났던 건, 10대중반의 눈으로 동네를 처음 봐서일 거다. 다니던 중학교에서 소풍지로 북악산을 선택했는데, 행선지에 모인 어린 동기생들은 물 흐르는 계곡의 틈으로 들어선 거대한 저택들을 구경하면서 산세를 따라 등산했다. 견학보다 집 구경으로 각인된 소풍길이 되었다. 으리으리한 성곽 같은 집들을 거부의 별장촌 정도로 오해했으나, 별장이 아닌 자택이란 얘길 듣고 입을 다물지 못한 어린 학생들의 표정을 떠올려보시라. 그 때가 80년대 중반이니 부동산의 권좌가 강남권에 이전되기 전일 것 같다. 불리한 학군과 역세권, 그리고 개발제한까지 묶인 자연경관지구 평창동은 간혹 드라마에서 마당 넓은 나이든 부자의 집무대로 등장하는 동네일뿐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실정에 어둡고 무관심한 나에겐 세속의 주목에서 벗어났기에, 평창동에 대한 선한 기억이 많다. 개발제한 해제로 일부 지역 땅값이 오른다는 사정도 전혀 반갑지 않다.



산세를 따라 비스듬한 형세로 들어선 가옥들의 나열은 주거지를 도로변으로부터 이격시키는 조건을 만든다. 지대가 높아 마을버스와 승용차가 이동수단이고 등산하듯 집까지 오르내리는 나 같은 도보이동자들이 있다. 이런 형세 때문에 외부인 출입도 낮고 차 소리와도 멀어서, 동네는 한없이 적막한 고요가 흐른다. 소음에 민감한 나는 서울 다른 지역에서 10년여를 전전한 후에야, 평창동이 얼마나 고요한 거주지인지 알았다. 외환위기로 어려워진 살림에 구원이 된 것도 그때 살던 집이었다. 온가족이 함께 외국인 민박 공간으로 집을 전용시켰다. 나는 이제 손을 땠지만, 평창동 집은 여전히 외국인 민박집으로 부모가 운영한다. 사랑하는 개 두 마리와 동네의 형세를 따라 산책하던 기억이 배인 곳도 평창동이다. 지금도 우연히 동네의 어떤 구역을 지날 때면 “여기를 미니랑 같이 걸었는데...”하고 회상에 잠긴다. 개 두 마리가 죽은 후 평창동 집 마당에 묻힌 터라, 서정과 격정의 순간이 함께 매장된 동네로도 추억된다. 감각에 예민한 내게 고요한 거주지, 외국인 민박이라는 뜻밖의 생존 전략이 된 거점, 애견의 육신과 추억을 묻은 동네. 사정이 이러니 “왕년 부촌의 명성을 개발제한 해제로 회복할지 주목”이라는 세간에서 평가야 어떻건, 평창동을 내 영혼의 안식처로 꼽아 부족함이 없지 않겠나.

사진: (서울=뉴스1) 이종덕 기자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맥도날드 (씨네21)

* 출국해서 자리에 없을 때 나간 원고. <씨네21>(916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78회분. 76회 프라이탁, 77회 루이비통에 이은 '브랜드 시리즈 3탄'  원고로 맥도날드를 다뤘다.



고난의 황금아치


좌상. 동물보호단체 피타(PETA)가 맥너겟 상자를 패러디한 ‘잔혹한 맥도날드(McCruelty)’ 선전물
좌하. 거리 예술가 젭스(Zevs)의 ‘흘러내리는 맥도날드 로고’ 파리, 2006년.
우. 칸 국제광고제에서 브론즈 상을 수상한 ‘지구상 최고의 감자튀김’ 광고(레오 버넷 설계) 2011년.



다국적 외식 프랜차이즈의 원형으로 맥도날드가 연상되는 까닭은 옥외에 설치된 사인물의 높은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매장 인근에 높다랗게 세운 기둥 꼭대기에 M자를 구부려 만든 도상은 성물인 십자가를 흡사 벤치마킹한 것 같다. 도상의 중독성 면에서 맥도날드의 M형 아치와 십자가는 대등한 위력을 지닌다. 십자가가 기독교 세계화의 상징이듯이, 맥도날드의 패스트푸드 식문화에 친숙해지는 세계인의 입맛은 신속한 시장경제화에 진입한 세상의 지표일 것이다.

빨간 바탕에 노란 M자를 결합시킨 맥도날드 도상은 인종과 지역을 불문한 불특정 다수에게 통하는 만국공용어다. 세계 어딜 가건 통일된 규격으로 관찰되는 맥도날드 로고는 시각적인 친숙함을 안긴다. 십자가가 종교 구원의 추상적 도상이듯, 맥도날드 로고는 허기를 신속하게 달래주는 도상이다. 다국적 기업답게 세계 각지에 거의 흡사한 모양새의 매장을 세운다. 식민지에 세워지는 개척교회처럼.

매장 밖에 선전물을 세우던 구시대 전략에 안주하지 않고, 맥도날드는 어두운 밤하늘 위로 노란 조명을 쏘아 올리는 전략 수정도 꾀한다. 칸 국제광고제에서 브론즈 상을 수상한 ‘지구상 최고의 감자튀김’이라는 맥도날드 광고는 심야 조명쇼다. 이는 배트맨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고담시의 호출 방식을 연상시키면서, 9.11 희생자를 애도하는 추모 조명쇼 ‘빛으로 헌사함 Tribute in light’까지 떠올리게 한다. 연상작용이 반복되면 각인 효과도 감동도 배가한다.

맥도날드의 우세를 책임지는 건 용이한 시각 기호들의 몫이다. 빨강 노랑 조합의 아치형 로고와, 빨강과 노랑 유니폼에 빨간 가발을 쓴 마스코트인 로날드 맥도날드. 로고와 마스코트는 소비자가 상품을 연상하는 손쉬운 건널목이 된다. 맥도날드의 파급력 높은 기호성은 맹점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맥도날드가 연루된 도상숭배나 도상파괴의 사건들마다 무거운 가격이 책정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레닌 동상이 철거된 다음날 동구권에 로날드 맥도날드 동상이 세워지자, 여지없이 문화 식민화의 지표로 맥도날드가 지목되었다. 

단순한 로고와 마스코트 또한 최적의 패러디물이 될 조건인 거다. 세계 도처에 무수한 다국적 기업들이 포진해 있건만, 반세계화 시위와 반미 시위는 예외 없이 맥도날드 매장에 타격을 집중시킨다. 동심을 담은 맥도날드의 어릿광대 마스코트마저 동물보호단체 피타(PETA)에 의해 매정한 학살자로 재해석된다. 맥도날드의 철자를 살짝 뒤튼 ‘잔혹한 맥도날드(McCruelty)’라는 조어를 지어내어, 맥도날드의 식재료로 쓰이는 동물들이 가공 단계에서 가혹한 학대를 받는다고 폭로한다. 그렇지만 세속의 십자가가 겪는 이 정도 시련은, 지속적이고 엄청난 수혜에 비하면 그저 간지러운 소동에 불과하다. ‘고난의 십자가’라는 수사법은 아주 오래된 허구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0811 귀국


7월23일 올린대로(엮인글), 7.23(화)~8.11(일)까지 북유럽과 서유럽의 일부 국가들을 여행하고 조금 전 돌아왔습니다.
인천 공항에 비행기가 닿은 시간은 낮 6시. 집에 귀가한 시간은 대략 낮 8시30분. 지금 유럽 현지는 새벽 2시쯤 되겠네요.
유럽에서 한국이 연 8일째 열대야라는 날씨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접했는데요. 막상 귀국해보니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덥지 않아서 지금 안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작년 같은 시기에 여행 후 귀가했을때 며칠째 태양으로 덥힌 집안이 찜통 같았거든요.
작년에 비하면 거의 약과 수준인데.... 
아무튼 귀국했습니다. 



* 위 인증 사진은 입국하는 비행기(체코 항공)에서 제공한 기내식인데, 한식이 나오더군요. 추후에 여행기로 따로 올릴테지만, 여행 방문지가 아닌 비행기 경유지였던 체코는 한국에 친화적인 것 같습니다. 체코 공항에 여러 안내문들 마다 대략 3개국어가 표기되어 있는데, 중국어도 일본어도 아니고 아시아권에선 한국어가 유일하게 표기되어 있더군요. 깜짝 놀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