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3일 목요일

0612 버니

6월12일(수) 16시30분. 롯데 시네마 건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버니 Bernie>(2011) 시사회. 


별점: 





<비포 선라이즈>를 만든 감독이 <비포 미드나잇>같은 후속편을 내놓기도 하고, <버니>처럼 실화에 기초한 블랙코미디를 만들기도 한다. 감독의 작품에 대한 신뢰 때문에 보게 된 영화 <버니>. 이 영화가 실화에 바탕했다는 해설이 영화 초반에 잠깐 떴지만 거의 의식 못한 채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올 때, 실제 인물 '버니'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고, 같은 동네 사람들(알고보니 그들이 영화 속에서 인터뷰에 응한 '아마추어' 배우들이었다니!)의 모습이 올라오면서 영화가 실화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보도자료를 찾아보니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실제 인물 사건의 신문기사를 접한 후(1998년) 마지막 재판에 참석해보고 영화화 할 것을 결심했다고 적혀있다. 


주역 셋의 완성도 높은 연기력을 보는 재미가 높다. 인터뷰이로 출연하는 무수한 노년층을 보면서 "정말로 농익은 연기력은 다르구나"하면서 탄성을 하면서 내내 봤는데, 알고보니 실제 인물 버니와 함께 살았던 동네 사람들을 인터뷰한 영상이었다. 그래서 <버니>는 실제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결합된 특이한 영화적 구성을 취한다. 인터뷰에 임한 동네 사람들 가운데 유독 재미나고 사실적인 연기를 보인 여성(아래 영상)이 있어서 크레딧 올라올 때 이름을 받아 적었다. 그런데 이름이 케이 맥커너히 Kay McConaughey네!? 이상해서 찾아보니 <버니>에서 완고한 검사로 출연하는 배우 매튜 맥커너히의 60대 후반 친어머니였다. 그녀의 전직은 배우가 아니라 교사였다고. 자료를 더 찾아보니(위 사진) 아들이 출연한 영화의 레드카펫에서 갑자기 치마를 들어올려서 마릴린 먼로를 패러디하기도 해서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했단다. 재밌게 사시고 좋네. 능글 맞은 검사로 출연해 연기 변신을 선보인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를 보는 것도 내내 즐겁다. 난 왜 이 배우를 자꾸 <콘택트 Contact>(1997)로만 기억하는지...

영화는 독실한 개신교도에 직업이 장례사인 버니와 그의 다정다감 때문에 사귀게 된 늙은 여성 마조리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평판을 인터뷰 하는 화면과 그 둘의 평소 행실을 극화시킨 화면을 교차 편집으로 매우 긴 시간 보여준다. 그런데 지루하지 않다. 동네 사람들의 평가에 따르면, 버니는 둘도 없이 선한 인물인데, 마조리는 악독한 여성이라는 것으로 정리된다. (실화였음을 잊고 영화를 볼때는) 장례 사업과 개신교의 신앙 사업의 속물성을 배면에 깔고 들어가는 허구물 쯤으로 이해 했고, 개신교가 극성맞고 추악한 모습으로 뿌리를 내린 한국의 사정까지 연상되었을 정도다. 오늘날의 종교는 <십계>나 <벤허>처럼 신성한 경전의 재해석이나 신앙심의 증거물로 간주되던 차원에서 이미 멀리 도주해서 조롱의 대상이 된지 오래가 아닌가. 나이든 시골 사람들의 인터뷰가 흔히 감정적으로 치우치긴 쉽지만, 최소한 영화 속 버니는 속물적 근성에 지배되기 보단 종교적 순화로 '거듭난' 좀 예외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 영화가 초점을 맞춘 건 실정법과 사법권의 불완전성이다.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중범죄도 범죄 현장으로부터 실제로는 멀리 떨어져있는 추상적인 실정법보다 근접에서 늘 관찰해온 구체적인 사람들이 사건의 잘잘못을 더 현명하게 가릴 수 있다는 사실. <버니>처럼 1급 살인죄를 지은 경우에도 이 사실은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버니>는 허구적 창작물이 현실의 사건의 진위를 판단하고 시위하는 점에서 대단히 정치적인(하지만 과도하진 않은) 예술의 성격을 띤다. <버니>는 대략 두 개의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영화가 노린 사법적 판단의 불완전성에 대한 관객의 판단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괜히 소심한 걱정인진 몰라도 억울한 판결을 받은 선한 인물이 독실한 신앙을 품고 있다는 설정 때문에, 보수적인 신앙인 관객에겐 자기 신앙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자료처럼 수용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걱정.  

* 잭 블랙을 보며 든 생각. '노래를 잘 부르면 어딜 가도 사랑 받고 쓸모가 크구나.'  
** 주연 배우 셋 가운데 버니 역을 맡은 잭 블랙을 중앙에 두고 다른 주역 둘(셜리 맥클레인+매튜 맥커너히)는 절반만 프레이밍한 영화 포스터도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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