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6일 목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 예술상 제도 딜레마 (씨네21)


* <씨네21>(907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74회분. 내가 보낸 원제는 '수상제도 딜레마'였다. 역시 좀 딱딱했던지 아래처럼 유연한 제목으로 교체됨. 짝짝짝. 2011년 <경향>신문에 예술상의 의미에 관해 기고한 칼럼(엮인글)의 후속편 정도 되는 글.
금주 <씨네21>은 커버스토리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출연하는 꽃미남 삼인방을 다뤘는데, 커버 사진을 보고 있자니 소녀들이 꺅꺅대는 이유를 좀 알 것도 같았다. 그래서 부록으로 원고 아래로 해당 앞표지를 퍼왔다. 소녀들은 즐감.


상상별곡(賞賞別曲)

 상. <Looking for Lowry>에서 로우리 역을 맡은 이안 맥켈런이 로우리의 그림 앞에 섰다. 2011년
하좌. 29회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 장면 2009년
하우. 인권위의 인권 대상을 거부한 여고생 김은총 2010년


이달의 PD상, 기자협회 특별상, 민주 언론상, 송건호 언론상. 광우병 보도로 2008년 <PD수첩>이 받은 수상 내력이다. 반면 같은 해 광우병 보도에 문제점을 제기한 한 번역가도 보수성향 시민단체가 주는 상을 탔고, 나아가 그녀는 이듬해 대한언론상 특별상과 시장경제대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2011년 대법원이 <PD수첩>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 판결하기 전까지 벌어진 시상 해프닝은 이렇다.

시상제도는 개인/단체가 달성한 공로를 공인하고 선전하는 효력을 지닌다. 수상 이력은 개인/단체의 능력을 둘러싼 구구한 논쟁에 마침표를 찍는 확정 판결과도 같다. <PD수첩>에 문제 제기한 번역가에게 상을 준 단체가 ‘시장경제 원리와 이념을 전파하는데 기여’한 이에게 상을 주는 전경련인 데에서 보듯, 어떤 시상제도는 진영의 이해에 부합하는 동지나 후계자를 발견해 서로의 결속을 강화하는 장치로 쓰인다.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은 우열의 순위를 매기는 수상제도의 생리를 차용하여 최악의 연기자와 최악의 영화에 상을 주는 패러디물이다. 기업체가 거액의 상금을 건 시상제도의 경우, 수여자는 사회적 기여와 공신력을, 수상자는 명예와 상금을 나눠가지는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로 주신 상 같다.”거나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린다.”는 수세적인 수상소감이 판에 박듯 반복되는 이유도, 수여자와 수상자 사이가 갑과 을의 관계임을 시사한다. 이에 반해 자의식이 강한 극소수 수상자는 수상소감마저 자기 것으로 만든다. 광우병 보도로 기소된 <PD수첩> 이춘근 PD는 PD연합회가 주는 상을 받는 자리에서 정부와 검찰에 대한 비판을 무려 5분여나 털어놨다. 오스카상을 받으러 단상에 선 마이클 무어는 현직 대통령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아쇼. 부시 씨!”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드물지만 수상을 거부하는 예도 있다. 인권위가 주는 인권 대상을 거부한 한 여고생은 인권에 대한 무지로 파행을 거듭하고도 사퇴하지 않는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주는 상은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대영제국 훈장을 거절하는 경우는 많다.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은 2차례 거부했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4차례 수상을 거절했으며, 화가 L S 로우리는 5차례나 수상을 거부해 대영제국 훈장 최다 거부자로 기록 되었다. 이들은 수여 주체가 자신의 명예에 누가 된다고 느낀 걸 데다. 

그렇지만 수상제도를 꼭 삐딱하게 볼 문제만은 아니다. 수상 후보로 지목된 이들 중에 기본적 자질을 갖춘 이가 적지 않은 점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어딜 가나 불완전한 판단은 꼭 엄존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끝으로 불명예스런 수상과 부당한 수상에 흔들림 없이 자기 안목을 신뢰하고 인정한다면. 그러면 된 거다. 고매한 성정과 남다른 예술은 부당한 처우도 받는다. 눈높이가 맞질 않거든.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



* 부록 사진 : 꽃소년 3인방을 앞표지로 쓴 <씨네21>(9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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