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5(월) 10시30분. 왕십리CGV <바티칸 뮤지엄 The Vatican Museums - 3D>(2014) 시사회.
별점: ★★
시사회장에 들어섰는데 객석 군데 군데에 촬영 조명기들이 설치되어 있길래, 영화 마치고 미술사가나 평론가를 불러다가 간담회 같은 걸 여나보다 생각하고 영화가 끝나고 조금 기다렸다. 그런데 간담회에 초대된 손님은 이 영화의 한국어 내래이션을 맡은 채시라였다. 간담회 장면 몇장을 찍고 바로 자리를 뜨기 전에 들은 얘기로는 채시라의 먼 선조가 채용신 화백이어서 미술에 대한 호감이 뿌리 깊었다고 한다.
어쨌건. 영화 도입부에 뮤지엄 관장의 설명으로도 나오지만, <바티칸 뮤지엄>은 영어로 복수형 Museums를 쓴다. 이유는 대대로 여러 교황들이 수집한 작품들을 소장한 미술관들이어서 란다. 공간적으로 방대한 바티칸 뮤지엄을 65분의 러닝타임에 담으려 했으니 완성도 어떨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그래도 심했다고 느껴지는 게 영화가 내세운 3D 기법의 입체감과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처럼 바티칸이 소유한 대표작가 서넛에 편성을 집중한 느낌이다. 그보다 더 나쁜 건 "....신비롭지 않나요?" "작품에서 경외감 말고 다른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라파엘로는 이런저런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의 눈빛이 느껴지시나요?" 식의 상찬 내래이션도 닭살이 돋지만, 바티칸이 소장한 전설이 된 화가들을 묘사하는 화면 전환 중간 중간에 바람에 휘날리는 흙먼지너,잔잔한 호수에 동심원을 그리는 물방울 따위의 1등급 키치 장식이 상습적으로 출현한다는 거다.
<바티칸 뮤지엄>이 불편한 점이 더 있다. 바티칸에 귀속된 박물관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65분동안 소개되는 작품이 심각하게 종교 편향적인 작품에 치중되어 있다. 아무리 전근대기의 유적 가운데 기독교 미술이 많다고 해도 종교미술에 편중된 해설은 분명하다. 요컨대 마리아가 예수를 품에 안은 '피에타'라는 도상은 미켈란젤로,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모사한 반 고흐의 피에타, 그리고 샤갈의 피에타까지 3차례 소개되는 식이다. 역대 교황들이 선정한 작품들로 소장품 목록을 채워선지 내래이션과 바티칸 뮤지엄 관장은 줄곧 '신의 창조에 버금가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예술가'를 극찬하는데, 이런 자유주의적 재현능력을 예술의 절대적 재능으로 간주하는 건 보편적인 사람들의 정서와도 같을 것이다.
괴테 달리 전직 교황이 예술에 관해 했던 말을 인용한 문장들도 새로운 정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동 받을 준비가 된 관객의 수세적인 타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원되었다.
라파엘로, 지오토, 미켈란젤로의 평면 회화작업을 3D로 처리하면서 입체감을 만들려고 원화에는 없는 원근감을 화면에 집어넣었다. 요컨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닿을듯 말듯한 신과 아담의 손가락의 뒤로 음영(그림자)가 보이는데, 실제 프레스코화에선 그림자가 당연히 없다. 구시대의 평면회화에 입체의 일루젼을 기입하고만 3D화면의 완전 새로운 해석을, 과거 예술품의 위대성을 부각하려는 후대의 기술적 성과로 이해하고 대충 눙쳐도 될까?
* 당대와 후대에 라파엘로에 대한 수요/인기가 높은 이유는 라파엘로의 화풍이 지금으로 치면 만화풍/일러스트 풍이 강해서가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영화 내래이션에 따르면 '바티칸 뮤지엄'은 세게에서 관객이 가장 많이 드는 6번째 미술관이라고 했다. 정말? 1번째가 아니고?
=========
1월5(월) 14시. 왕십리CGV <아메리칸 스나이퍼 American Sniper>(2014) 시사회.
별점: ★★★★☆
값싼 애국심에 구걸해서 관객을 모으는 <람보>류의 전쟁 영화가 아닌 점, 전쟁에 대한 깊은 냉소를 담은 반전 영화가 아닌 점, 그래서 전쟁이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을 이 영화가 직관하고 있는 점이 맘에 들었다. '신, 조국, 가족'를 최상의 가치로 신앙처럼 믿고 따르는 미국인의 사고를, 의분에 차서 이라크전에 참전하는 어느 미국 네이비실United States Navy SEALs의 모습으로 조명한다.
영화가 130분이 넘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고 숨돌릴 틈도 없다. 상영 내내 마치 전쟁터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긴장감에 사로잡힌다. 왜냐하면 보통의 전쟁 영화처럼 전면전을 다루거나, 도심의 총격전이나 교전을 영화의 중심이 두지 않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장거리의 표적을 은폐된 곳에 숨어서 쓰러트리는 저격술을 영화의 중심에 두고 있다. 언제 어디서 탄환이 날아올지 알 수가 없다. 피격되는 장면도 하나같이 하드코어하게 그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해병을 엄호하는 네이비실 스나이퍼인 크리스 카일의 위치는, 스나이퍼인 카일이 유년 시절 교회에서 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시는 전지전능한 신'과 등가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애국심이나, 반전 영화가 아닌점, 그리고 전쟁터의 실상을 저격술이라는 포인트로 관측한 점이 이 영화를 전쟁물이 아닌 인간을 관조하는 영화로 느끼게 만든다. 영화가 실제 인물을 다뤘다는 사실을 영화가 끝나고 올라오는 라스트 크레딧을 통해서 비로소 알았다. 만일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실화에 토대를 두지 않고, 전적으로 허구적인 상상력으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연출을 한 작품이라면, ★을 5개까지 줄 수 있다. 뭐 4개반이나 5개나 그게 그거지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