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6일 금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 러버덕 (씨네21)

* <씨네21>(987호)의 '반이정의 예술판독기'113회.



커다랗게 부푼 일회성 감동


좌. 바람이 빠진 채 석촌 호수에 떠 있는 러버덕 2014
상우. 폴 매카시똥덩어리 2013
하우. 제프 쿤스노란색 풍선개(Balloon Dog Yellow) 1994-2000



풍선은 놀이문화의 유아기적 아이콘이다파티의 분위기를 풍성하고 팽팽하게 부풀리는 풍선은 소모적인 파티용품의 1번 타자로 항상 등판한다화려하고 풍성한 풍선의 외관은 바람이 빠지는 숙명 때문에 왜소하게 축소되는 최후가 기다린다반영구적인 박제화로 가치를 상승시키는 예술과는 생리적으로 함께 가기 힘든 재료가 풍선인 셈이다.

그렇지만 헬륨가스를 몸에 넣은 풍선은 자신을 공중에 부양시키는 우월한 위치 때문인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들뜨게 만든다.속이 텅 빈 풍선은 질량 대비 가격 대비 가장 큰 스펙터클을 만들 줄 안다비록 총 중량이 1톤에 달한다지만 크고 노란 고무 오리 러버덕이 공공설치미술의 지위로 전 세계를 순회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부풀린 큰 몸통에 비해 그 안이 텅 비었다는 사실 때문에 시각적으로 위압적이되 심리적으로 거부감을 주지 않으며팽창한 표면의 윤기 역시 호감을 일으킨다라텍스 고무 재질의 표면은 외압에 쉽게 터지거나 흐물흐물 해지는데이런 풍선의 초라한 조건은 연민을 유발하거나 바니타스 같은 일장춘몽의 매력을 더한다.

황당하게 큰 오리인형을 호수에 띄우거나터무니없이 큰 똥 덩어리를 넓은 들판에 재현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풍선이었기에 가능한 미학적 실험일 것이다중국 베이징에선 러버덕을 사실상 표절한 금두꺼비 풍선 인형 러버프로그(Rubber Frog)을 위위앤탄공원 호수에 띄웠다러버덕이 누리는 질량 대비 가격대비 효과의 성공적인 선례가 다양한 표절 풍선 인형을 계속 양산시키고 있다.

풍선은 짧고 강한 시각적인 충격을 던지고 종적 없이 사라지곤 하는 동시대미술의 한 경향을 가장 저렴하게 구현 시키는 재료다그래서 일부 미술가들들이 선호하는 재료가 되었다풍선의 일장춘몽을 영구적으로 박제화 시키는 사업가적 예술가도 등장했다팝아티스트 제프 쿤스는 풍선의 위력을 차용하되상품의 보존 가치를 보장받으려고 스테인리스로 풍선의 재질감을 흉내 냈다.

풍선이 동시대 시각예술의 유의미한 재료로 부상한 배경에는 일회성 유희가 현대적 삶의 공식처럼 굳어간 사정도 작용할 것이다호수에 떠 있는 커다란 오리인형은압도하는 거대한 아름다움을 뜻하는 숭고미가 현대 사회에서 희극적으로 변형되어 등장한 사물 같기도 하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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