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920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80회분. 브랜드 연작으로 쓴 원고. 내가 보낸 제목은 '증오하기 힘든 통합된 색'이었다.
퇴로를 확보하라
좌상. 전사한 병사의 전투복을 연상시키는 베네통 광고 사진
좌하. 교황과 이맘의 키스 사진을 철거하는 베네통 직원 2011
우. 베네통 광고를 맡았던 올리비에 토스카니의 MIT 강연 전단 2011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바티칸의 공식 발표가 나오자, 매장 외부에 내걸린 가톨릭 지도자 교황과 이슬람교 지도자 이맘이 키스를 나누는 사진을 베네통이 자진 철거했다. ‘Unhate(증오하지 맙시다)’로 알려진 베네통의 2011년 캠페인은 정치적으로 대립각에 선 두 국가 지도자들이 깊은 키스를 나누는 것처럼 편집한 일련의 사진이다. 그 중에는 오바마와 후진타오의 키스, 이명박과 김정일의 키스 장면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신성불가침이 강한 종교계는 이런 풍자를 관대하게 넘길 수 없었다. 베네통이 교황의 사진을 철거했다고 ‘Unhate 캠페인’이 실패했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소기의 목적이 역설적으로 달성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바티칸의 항의는 베네통에게 노이즈 마케팅의 반사이익을 안겼고, 오프라인에서 사라진 교황과 이맘의 키스 사진은 온라인에서 유별나게 복제되어 널리 번져나갔다. 전근대적 바티칸과 현대 의류회사 사이에 놓인 정서적 세대차가 확인되었을 뿐.
베네통의 차별화는 의복 디자인보다 마케팅 기법에서 온다. 문제적 사진가 올리비에 토스카니가 홍보 업무에서 손을 뗀 후로도 베네통은 과격한 마케팅 처방을 포기할 수 없었다. 베네통을 곧 마케팅으로 인식하는 소비자의 관성 때문이다. 베네통 광고는 사회적 핫이슈와 소비자의 본능에 호소하는 섹스어필이 강한 이미지를 거침없이 갖다 썼다.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선이 모호해지는 지점에 상업 광고가 있다. 시각에의 호소, 이미지에 담긴 메시지, 후련한 스펙터클까지 예술과 광고는 중첩되는 지점이 많다. 베네통 광고는 훨씬 순수예술에 근접해 있는데, 상품 판매의 의지를 명시하는 광고의 일반 규칙을 무시하는 점에서 그렇다. 상품을 광고 전면에 내세우는 판촉을 포기하고 상품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충격적인 이미지에 올인 한다. 의도를 좀체 파악하기 힘든 무수한 현대미술과 유사한 노정을 걷는 거다.
탯줄을 끊지 않은 신생아, 에이즈로 죽어가는 환자, 연출된 신부와 수녀의 키스 장면. 이 모두를 단순한 보도사진이나 도색물이 아니라고 확인시키는 건 거대한 화면에 작게 붙어있는 초록색 베네통 라벨이다. 상품과 관련 없는 스펙터클의 충격을 고스란히 작은 베네통 라벨이 흡수해 버린다. 핫이슈의 뜨거움을 날것 그대로 브랜드 홍보에 전용한 것이다. 파격적인 기성 이미지를 전용한 베네통은 자유주의 성향의 소비자와, 평소 일탈을 꿈꿨지만 실행은 주저한 소비자를 모두 흡수하는 호객효과를 거둔다.
베네통의 코드는 단순하다. 베네통의 카피라이트 격인 통합된 색채(united colors)는 상품이 내세우는 현란한 원색을 직설적으로 선포함과 동시에, 반인종차별적 인본주의를 의복에 깃들게 하는 중의적 메시지이다. 논란을 부르는 충격적인 화면도 결국 ‘갈등을 봉합하자’는 착한 메시지로 귀결시켜서 퇴로를 열어둔 셈이다. 이런 캠페인은 인위적이지만 소비자에겐 잘 먹힌다. 소비자는 비평가가 아니니까.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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