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 수상자가 같은날 결정된 '올해의 작가상2013'과 '에르메스 미술상2013'의 발표 결과를 듣고나서 집필을 결정한 원고. 세종문화회관에서 간행되는 <문화공간>10월호에 실렸다.
** 예술상과 관련해서 그간 서너번 이상 글을 썼었다.
=> 예술상의 의미(경향신문 칼럼 2011년), 김기덕 황금사자상에 대해(씨네21 2012년), 예술상 딜레마(씨네21 2013년)
*** 원고에 프로필 그림이 삽입될 거라며 사진을 요청해와서 왼쪽 사진을 보내줬더니 오른쪽처럼 내 얼굴을 '디스'한 캐릭터 그림이 나옴. 무서운 예술의 힘 :-0
반증 불가한 예술상의 딜레마
반이정 미술평론가
“누가 선정 될 거 같으세요?”
한국에서 거행되는 유력 미술상을 두개 정도 좁힌다면, 국가가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상’과 해외 사기업이 주관하는 ‘에르메스 미술상’을 고를 수 있을게다. 두 미술상은 후보자들의 그룹전시를 연 후 수상자를 발표한다. 한데 두 미술상의 수상자가 우연히 같은 날 발표되었다. 발표 4시간 전 ‘에르메스 미술상 2013’ 후보작들이 전시중인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를 둘러보는데 누군가로부터 받은 질문이 위와 같다.
“작품 완성도와 수상자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A가 수상할 거 같아요. 왜냐하면....이러쿵저러쿵.” A의 당선을 예상한 이유를 간추려 답해줬다. 몇 시간 후 발표된 당선자는 내가 짐작한 A가 아니었다.
같은 날 오후 ‘올해의 작가 2013’의 후보작들이 전시중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이미 당선자 발표가 난 상태. 거기서 우연히 만난 미술인사에게 “혹시 B가 선정되었나요?”라고 물었다. 전시를 둘러보고 당선 유력자로 내가 고려한 B의 이름을 지명한 거다. “아뇨. C가 되었어요. 좀 너무했죠? 이래서야 상의 권위가 살겠어요?” 그는 투정하고 있었다. 아무튼 국내 유력 미술상들의 수상자로 내가 예측한 후보들이 모조리 선택되지 않은 셈이다.
미술상 수상자 선정을 둘러싼 이견과 투정이 십시일반 모인들, 수상의 정당성까지 부정되는 건 아니다. 이견과 투정이란 어디까지나 미적 기호를 둘러싼 개인의 편차가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 미술상 선정자에 관해 자신과 동일한 이견을 품은 사람을 외부에서 자주 만날수록 자신의 미적 판단에 더 큰 확신을 품게 되는 법이다.
게다가 구체성을 결여한 심사위원단의 선정 사유까지 접하면, 설득되긴 고사하고 어이없는 심정에 빠지기 마련이다. 미술상 수상자를 둘러싼 상반된 두 견해는 접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취향의 양립된 수평선을 긋는다. 그래서 세계에서 개최되는 무수한 예술상은 그 권위에 어울리지 않는 개운치 못한 논쟁을 늘 달고 다닌다. 아카데미상도 터너미술상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예술상은 유권자의 표로 승부를 가르는 선거전과는 다르다. 예술의 우열은 반증 가능한 영역 밖에 있다.
예술상의 공정성과 권위에 대해 나는 줄곧 회의를 품어왔지만, 그 정점은 ‘올해의 작가상 2012’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에 선정된 작년 2012년이었다. 둘을 나란히 묶어 예술상의 의미에 관해 다루려 했지만, 김기덕의 수상에 관해서만 장문의 반론을 기고하고 말았다. 정작 내 전공분야인 미술상에 관해선 반론 사유를 논리적으로 펼치기 어려웠기 때문에 포기했다. 서사구조가 선명한 영화에 비하면, 작품의 허물을 객관적인 수치로 드러내자니 미술의 평가는 주관적 기호에 훨씬 의존하고 있어서다.
객관적 평가 기준이 부재한들 예술상의 순기능까지 부재한 건 아니다. 창작을 고무하고, 작가의 노고에 격려를 보태며, 그의 성과에 오마주를 표하는 게 예술상의 순기능이다. 또 무수한 창작물 사이에서 우열을 가르려는 세간의 요구까지 충족시킨다. 더욱이 예술상은 공중의 주목을 이끌어 고립무원 상태인 순수예술에게 시민사회와 만날 기회를 준다. 단점 역시 많다. 앞서 기술한 선정 결과에 대한 이견이 잦으며 시기심과 논쟁의 표적이 된다. 무엇보다 너무 많이 제정된 예술상 때문에, 상의 위상과 신뢰가 모두 실추되었다. 항상 ‘되는 사람만 뽑히는’ 현상도 예술상의 취지인 창작 현장에 대한 격려보다 예술계의 양극화의 증거인양 보인다. 자신은 함양미달로 평한 작품에 예술상이 주어진다면, 비평가에겐 풀어야할 과제가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제는 객관적으로 반증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이 상은 내가 잘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운이 조금 더 좋았기 때문에 받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정말 내가 잘 해서 상을 타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2010년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조연상 수상자 윤여정이 밝힌 수상 소감은 겸손한 성정을 드러낸 것이기 보다, 예술상의 생리를 서늘하고 정직하게 짚은 것으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자신의 평가와 정반대인 예술상 선정자 발표에 허망한 기분에 빠질 때가 많을 것이다. 심사도 부족한 사람이 내놓는 불완전한 결과이다. 그러니 주변에서 들려오는 실망스런 예술상 수상 소식에 주눅 들 일은 아니다. 한편 제 성에 차지 않은 들, 예술상 후보자들이 대개 일정 수위에 오른 작가들이 지목되기 마련인 점도 인정하자. 따라서 후보자/수상자의 숨은 미덕을 찾아, 자기 판단을 살찌우면 된다. 예술상은 그럴 때 의미가 있다.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