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6일 목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서울대(씨네21)

* <씨네21>(922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81회분.  '브랜드 시리즈 6탄'  서울대 로고/정문.



샤샤샤 오메르타



좌. 일가친척과 함께 정문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서울대 졸업식의 일반적 풍경
우상. 서울대 정문을 모방한 홍성고등학교 입구 조형물
우하. 서울대 탐방 프로그램에 참가한 청소년들



흡사 자음 ㅅ과 모음 ㅑ를 닮은 도형 둘을 결합시킨 듯한 육중한 세모꼴 구축물. 공공조형물의 초상을 한 서울대 관악 캠퍼스 정문의 첫인상은 이렇다. 극성맞은 학벌 사회에서 서울대가 누리는 명성과 수혜의 절반 이상은 정문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아우라에서 온다. 입시생 재학생 졸업생 급기야 학교 밖의 불특정 인사들이 두루 서울대 정문의 아우라의 영향권 아래에 놓인다. 입학식과 졸업식 날 당사자와 일가친척은 필히 정문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남긴다. 오만가지 이유로 관악산 입구에 도달했을 외부인들마저 유사한 포즈로 정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조건반사에 가깝다. 

매스미디어 사회에서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 보통 사람에게 가보처럼 여겨지듯, 학벌 중심사회에 서울대 정문 촬영 인증은 성지순례의 의식처럼 굳었다. 모든 대학들이 각기 상징물이 갖고 있건만 서울대의 그것이 높은 각인효과를 갖는 이유는 대학 안으로 들어가는/입학하는 입구라는 정문의 중의성 때문일 것이다. 국내 대학들 가운데 최상위 입학 커트라인처럼 서울대 정문은 세모꼴의 정점으로 드높게 치솟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알쏭달쏭한 정문의 외형은 ‘국립+서울+대학교’의 앞머리 자음 셋 ‘ㄱ+ㅅ+ㄷ’을 조합한 것이다. 얼핏 ‘샤’처럼 보이지만 설마 ‘샤’를 정문으로 썼을 턱이 없으니, 외부인에게 정확히 풀이되지 않는 이 육중한 조형물은 미지의 기호처럼 인식될 법하다.
명품의 가치를 시늉하는 위조품의 난립은 명문대학도 비켜가지 않는다. 대학 입학이 우선 가치가 된 일선 고등학교 가운데 일부는 서울대 정문을 유사하게 재현해서 차라리 표절에 가까울 정도다. 그저 비슷하게 흉내 낸 몰개성한 교문은 스스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면서 원본(서울대)에게 반사이익을 안긴다.

서울대의 상징 자산 때문에 ‘샤’는 관악산 입구에만 머물지 않고 전국에 가맹점 개설로 출몰한다. 서울의대 출신자가 개원한 개인 병원은 대학 교표를 병원 유리창에 새겨 넣어, 전국에 산재한 개인 병원 유리창마다 서울대 로고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전국을 서울대 로고로 잇는 시각적인 네트워크는 서울의대 내부의 결사체가 고안한 게 아니라, ‘최고 학벌 = 최고 품질’로 믿어온 외부(환자)의 기대감이 만들어 낸 것이리라. 때문에 전국을 ‘샤’로 연결시키는 결사의 묵계는 마피아의 조직원을 결속시키는 내부 오메르타를 따르지 않고, 외부의 강한 신뢰감으로 유지된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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