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4일 화요일

0203 영화 '르누아르 Renoir' ★☆

2월3일(월) 14시. 왕십리CGV. 질 부르도스 감독 <르누아르 Renoir>(2012) 시사회.

별점: 








내가 매긴 낮은 별점 평가야 어떻건, 먼저 영화 <르누아르>에 대해 국외 비평사이트 '로튼 토마토'의 논평가들 중 72%는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다는 점을 미리 밝혀둬야겠다. 내가 국외에서 긍정적인 평점을 받았다는 점을 확인한 후 시사회 관람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외 언론들이 보도했다는 '굉장한 영화', '빛나는 영화'라는 표현이 보도된 전체 문장 중 어느 정도 비중이었는진 알 수 없으나, <르누아르>가 대체 어떤 포인트를 두고 있는지 통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거장 미술가를 다뤄온 무수한 영화들이 잘못된 선례를 답습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르누아르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풍만한 여성 모델의 관음적 매력에 호소한 영화도 아니고 그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전후로 쏟아진 여성 누드 와상의 표준 포즈를 극중 배우가 서너 차례 반복하는 게 전부다. 

그렇다고 거장으로 추앙되는 인상주의 화가의 남다른 화력에 집중한 영화냐 하면 그 역시 아니다. 르누아르의 인상주의적 미학을 강조하려고 모델에게 "이름 아침에 와야 빛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하거나, "빛을 머금은 피부가 아름답다"고 예찬하는 화가의 대사를 집어넣거나 야외 누드를 통해 외광파의 태도를 드러내거나, 혹은 "세상이 어둡기 때문에 미술은 밝아야 한다고 믿어서 나는 검정색 물감을 쓰지 않는다."는 따위의 르누아르의 대사들은 불필요하게 설명적일 뿐 아니라, 어쩌면 미지의 성역으로 숭앙되는 미술가의 이런 고백들 때문에 비미술인 영화 평자들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게 아닐까 싶은 의심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흔히 짐작하듯 화가와 (누드)모델 사이의 은폐된 예속 관계의 끈끈함을 드러낸 영화 인 것도 아니다. 르누아르의 아들과 여성 모델 사이에 연정으로 '부-자-애인' 삼자 사이에서 느슨한 긴장이 형성되긴 하지만 기억될 정도로 극적 긴장을 만들지 않고 끝난다. 다만 르누아르의 집에서 일하는 여성 하녀들이 누드 모델을 겸하고 있다는 설명 정도가 '화가-누드 모델'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전모다. 이 장면에선 '플레이 보이' 창업자 휴 해프너가 플레이걸들과 맨션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현대적 가십의 먼 원조를 확인하는 느낌이 든다. 대체 영화 <르누아르>의 포인트가 대체 뭘까. 국외에서 '대체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니 믿겨지질 않는다. 급기야 영화가 막바지로 갈수록 너무 따분해서 가 혹시 러닝타임을 잘못 알고 입장했나 하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영화가 끝나기만을 고대하게 되었다. 



* 르누아르의 아들로 출연하는 빈센트 로티어스 얼굴을 어떤 각도에서 보면 국회의원 송호창이 떠오른다.  
** 극중 인물들의 후일을 설명적인 크레딧으로 요약해준 마지막 장면은 영웅적 실존 인물을 다룬 <잡스>도 반복한 피날레인데, 영화의 매듭을 어떻게 지어야 할 지 감독마저 입장을 못 정해서 내린 미봉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잡스>도 별 ☆를 줬었다(엮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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