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7일 목요일

0227 미성동 2년

2012년 2월27일 동작구 신대방동에서 관악구 미성동(신림11동)집으로 이사했으니까(엮인글) 미성동에서 딱 2년 살았다.

한국 주택문화사에 길이 남을 '오피스텔'이니 '빌'이니 하는 명칭을 단 복층 구조의 다가구 주택이 있다. 무수한 원룸들을 건물 내부에 촘촘히 박아넣은 몰개성하게 길죽한 건물 말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이 바로 여러 채의 원룸들과 가정집 구조의 2개층(5층/6층)으로 구성된 몰개성한 그런 건물로 이름까지 '파크빌'이다. 나는 건물이 막 완공된 직후 입주를 해서 아마 첫 입주자였지싶다. 이 건물은 이른바 '집장사꾼'이 집주인이다. 내가 사는 6층처럼 가정집 구조인 5층은 이 건물이 완공된 후 여지껏 입주자가 없는데, 이유는 집장사꾼인 집주인이 이 건물을 통째로 구입할 사람에게 5층을 넘기려 하기 때문이란다. 즉 건물이 아직 매매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직전에 나는 자전거 사고의 후유증으로 극도로 예민한 정서였던 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무렵 하필 신대방동집에서 위층의 층간소음에 1년 이상 시달린 터라 미성동으로 이사 왔을 때의 내 상태는 거의 신경쇠약 직전이었다. 때문에 자잘한 소음 모두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층간 소음을 피하려고 일부러 최상층(6층)을 고른건데 왠걸..... 이런 건물들은 대개 후다닥 지어올리기 때문에 구조가 여간 허술한 게 아니다. 오죽하면 텅 비어 있는 5층도 아니고 그 아래층 소리까지 6층으로 전달될 정도란 말이다. 문닫는 소리 샤워기 소리 심할때는 컴터 켜고 끌때 들리는 윈도우 시작음 종료음 소리까지 6층으로 들려와서 나는 기겁을 했고 크게 실망했다.  급기야 입주 첫해 여름께 비가 오면 물이 스며들어서 책을 왕창 적셔서 내다 버린 적까지 있다. 집을 이토록 엉터리로 지어서 남에게 판다면 그 건설업자를 구속하는 법이라도 제정해야 하지 않을까? 

소음을 피하려고 이사한 최상층 새 집에서까지 아래층 소음을 맛본 나는 완전 히스테리에 빠졌다. 입주하고 한두달 지났을까? 내 절망감과 민감도는 극에 달해서 정말 진지하게 또 다른 이사를 고민했다. 그런데 한국같은 부실한 토목사회에서 새로 이사를 한들 이처럼 허술한 주택을 만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거 아닌가. 삶에 출구가 보이질 않는 기분이었다. 그 정도로 당시 내 심리는 불안정하고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2년이 지난 후 돌아보면 그럭저럭 이 집에서 어지간히 잘 지낸 셈이지만, 이사 직후 이 건물이 각인시킨 실망스런 첫 인상과 몇몇 나쁜 체험 때문에 나는 지금 사는 미성동 건물에 정을 통 붙이지 못한 채 긴장 상태로 이 건물과 항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다. 집 가까이 호림박물관도 있고 그 뒤로 낮은 산등성이도 있지만 산책길로 이용해 본 적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연전에 지인이 큰개를 맡겨놨을 때 큰개랑 산책한 게 전부다. 집과 가까운 재래시장도 큰 장점이라고 믿었지만 (1일1식을 시작한 이후로 특히) 재래시장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고 말았다.  

미성동 집에 머문 2년 동안 큰 보람을 꼽자면 현재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하는 '9809레슨' 연속 강좌의 밑그림 격인 같은 제목의 연재물을 <월간미술>에 기고했다는 점(2012년 3월호~2014년 3월호)이다. 


앞으론 어딜 가건 어디서 살건 그 장소와 친화력을 갖고 밀착을 유지하면서 살도록 의식하자고 믿고 있다.  



* 나는 건물의 최상층(6층)에 살고 건물 맞은 편에 호림박물관이 있다. 호림박물관 방향에서 집을 향해 찍은 사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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