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6일(목) 14시. 용산CGV. 호세 파딜라 감독 <로보캅 Robocop>(2014) 시사회.
별점: ★★★★
IMAX관에서 봤다. 아주 오래된 원조 <로보캅>(1987)의 계보 안에 놓인 헐리우드 SF액션물이라는 점 때문에 고만고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시사회 관람을 망설였다. 찬반이 나뉘었다는 해외 평가를 참조하고 나니 궁금해졌다. 관람 소감은 만족스럽다. 앙상한 스토리 라인에 스펙터클과 역동성만 요란한 일반적 SF액션물의 게으른 노정을 걷고 있지 않았고, 깊은 서정과 연민까지 묻어있는 점도 높이 살만하다. 현실과 가상이라는 현대적 화두를 담은 <매트릭스>만큼은 아니어도, 유기체인 인간과 무기체인 기계 사이의 철학적 경계를 사유하는 점도 빼어나다. 이 영화가 설정한 배경이 흔히 차가운 인공도시처럼 도식화된 아주 먼 미래가 아니라, 머지 않은 미래 2028년의 디트로이트인데 방송의 스튜디오나 의료진의 시술 장면에서 적용되는 화려한 스크리닝 전환 기술(허공에 뜬 영상 화면을 손으로 밀어서 전환시키는데, 마치 최근 보편화된 스크린 터칭을 연상시킨다)은 굉장한 스펙터클임에도 과도하게 느껴지지 않고 현실처럼 느껴졌다.
첨단 과학기술로 전개되는 영화속 이야기는 퍽 복잡한 편이었지만, 의료진이나 방송 해설에서 나오는 화려한 스크린 전환 장면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점도 이 영화의 미덕 같다. 장면 중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수술 직후 로봇 수트로 덮기 직전 형사 알렉스 머피(조엘 킨나만)의 인체를 보여주는 장면인데, 그 모습의 실상을 묘사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이쯤 해서 참는다. <매트릭스>의 허구적 설정이 동시대 관객에서 쉽게 수용될 수 있었던 건 가상현실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 세계적 상황과 맞물려 있을 텐데, 이번 <로보캅> 영화의 설정 역시 기계주의를 더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시대의 변화상 때문에 설득력을 지닌다. 반인 반기계가 된 알렉스 머피 형사에게 지나간 CCTV 영상을 포함한 엄청난 범죄자료들을 업로드 시켜서 범인 검거에 활용하게 만드는 장면 등이 그렇다.
초인적 주인공이지만 사건의 전개 앞에서 쉽게 쉽게 넘어가지 않고 돌발상황을 배치한 점도 맘에 든다. 요컨대 인체의 절반 이상을 기계에 의존하고 정신마저 컴퓨터의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로, 생명 연장의 시술을 결정하겠냐는 의료진의 설득 앞에서 보이는 아내의 심리적인 번민이 그렇다. 포근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가정의 실내 광경에서 핸드 헬드 카메라의 다소 흔들리는 화면마저 일반적 액션물의 표정과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는 100% 로봇 경찰을 제작하여 큰돈을 벌려는 기업체, 거기에 반대하는 정치인, 양쪽으로 반반 나뉜 여론, 그 양쪽을 보완하는 반인 반기계 경찰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반인 반기계화된 현세대의 감성이 영화속 반인 반기계 경찰이라는 대안을 수용하게 만든다.
생명공학박사 데넷의 부드러운 외모 때문에 그가 게리 올드만이라는 걸 한참 후에 알았다. 악인 역할을 전담한 이 배우가 어느덧 원로가 되었다.
* 로봇 테크놀로지 기업 옴니코프 회사의 CEO의 집무실 벽에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3점이 걸려있다. 베이컨 외에도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없었지만 현대적 사진 작품도 걸려 있더라. 또 옴니코프 사(?)의 중국 공장에서 여러 분업자들이 분홍색 작업복 차림으로 일을 하는 모습은 Edward Burtynsky의 사진 작품, Deda Chicken Processing Plant – China를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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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6일(목) 16시30분. 용산CGV. 이시이 유야 감독 <행복한 사전 The Great Passage>(2013) 시사회.
별점: ★★★★
새로운 단어 수집에 몰두하는 괴짜들이 새 국어사전을 지어낸다는 이야기이다.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온라인 사전이 보급된 오늘날 실정에서 보면, 시대변화의 속도에 역행하는 불가능한 상황 설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시대는 1995년. 한 출판사에서 전자사전 보급이 확산되는 1995년께 종이로 만든 두툼한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런 엉뚱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재미와 설득력은 이들이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를 수집하는 일'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지식하게 단어 수집을 차근차근 이행하는 남자 주인공 마지메(마츠다 류헤이)는 과도하게 소심한 성품 때문에 단어수집광임에도 정작 의사소통에는 미숙하다. 또 변화된 세대 정서가 만든 무수한 신조어를 담아내자는 편집방향에 불구하고 그것을 하필 사양산업인 종이사전으로 귀결시키는 주인공들의 고집이 연신 재미난 충돌을 만든다.
그런 허구적 충돌은 여럿 나온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전'이라는 대원칙 하에 갖은 신조어들을 모두 수집하려 들지만, 이들이 세운 사전 편찬의 원칙 중 하나는 '다른 사전들의 정의를 모방하지 않는다'이다. 그런데 이 원칙은 모방이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굳은 현실과 충돌하고 만다. 그런 재미난 좌충우돌이 즐비한데, 21세기 관객은 20세기에서 벌어지는 주인공들의 고군분투가 결국 지는 게임일 수 있음을 알면서 보기 때문에 결론이 궁금해진다.
신조어를 수집하는 영화 속 성인들의 '단어광'적 캐릭터는 일본 대중문화에 열중한 젊은이의 오타쿠 문화를 장인 정신으로 외길를 걷는 성인의 이야기로 계승한 것처럼 보였다. 한편 새로운 단어 수집이나 단어에 대한 참신한 의미부여에 빠진 주인공들로부터 항시 위키백과로 의미를 얻는 나로서는 큰 공감을 했다. 21세기에 종이 국어사전 출간은 결과적으로 보면 헛성과일 테지만 재미에 빠진 이들의 진한 만남을 주선하는 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컸고, 마지메의 연인인 카구야(미야자키 아오이)를 일식집 요리사로 설정한 것도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는 장치로 배치한 것일 게다. 특히 요즘 자주 느끼는 점은 관계 개선과 회복에 음식 만한 게 없더라.
어렵게 쓴 연애편지를 나무라면서 편지 내용을 말로 해달라는 카구야의 요구에서 보듯, 실생활에서 우선 순위는 아래와 같다. 이는 텍스트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전업 필자로서 평소 느끼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편지(텍스트) < 구두 대화 < 만남
* 디지털 혁명이 밀어닥친 90년대 중후반께는 어느덧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고증된 과도기가 되어 무수한 이야기의 수원이 될 것 같다. 그 시기는 현시대 관객에게 격변과 연민과 향수가 뒤엉킨 감정을 동시에 체험하게 할 것이다.
** 영화의 배경으로 간혹 깔리는 건반 연주가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 선율처럼 느껴저서 보도자료를 살폈는데 히사이시 조의 이름이 없다. 그가 음악감독을 하진 않았나보다. 그런데 너무 닮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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