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7일(월) 14시.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스티브 맥퀸 감독.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2013) 시사회
별점: ★★★★
실화에 기초한 19세기 이야기지만 노예제가 사실상 사라진 21세기 세계의 조건에 사는 관객에게 과거사를 다룬 이 영화는 비현실감을 느끼게 만든다.
미국 흑인 노예제의 비극은 내가 유년시절 TV에서 방송해준 미국 연속극 <뿌리>로 접한 적이 있지만, 흑인 노예제도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그늘(보도 자료에 따르면 1800년대 미국은 노예제를 따르는 남부의 노예주(州)와, 그렇지 않은 북부의 자유주(州)로 나뉘어 있는데, 1808년 노예 수입이 금지된 후, 미국 전역에서 자유인 신분의 흑인을 납치해서 신분을 위조해서 노예시장에 거래하는 일이 만연했단다)을 이 영화는 다루고 있다.
극중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실존인물이다. 이 영화는 그의 자서전 <노예 12년 Twelve years a slave>의 책제목과 고백을 토대로 만들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현시대 미국 사회의 정서적 뿌리를 <노예 12년>의 어떤 장면들에서 확인하게 된다. 백인 주인이 흑인 노예들을 앉혀놓고 설교하듯 성경의 구절을 읽어주는 장면이 그렇다. 어디까지 사실인진 확인할 수 없지만, 어떤 성경 구절의 경우 백인 주인를 향한 흑인 노예의 절대 복종이 마치 정당하다고 풀이하는 식인데, 이건 종교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 모든 사회에서 쉽게 관찰되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
종교가 발휘하는 구속과 관련해서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점은, 목화 재배를 하며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가스펠(? 노동요? 혹은 흑인 영가?)를 합창하면서 자기 위로하는 장면이다. 생의 끝에서 사악은 심판 받을 거라는 노래 가사를 부르면서 빠져나갈 수 없는 현실로부터 위안을 얻는 장면에선 감정이 복잡해진다. 내가 같은 조건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감정이 복잡해진다. 자기 처우를 위해 백인 주인의 집사가 되어 동료 노예들의 원성을 살지, 헤어날 수 없는 현실에 자포자기한 나머지 무력하게 살지, 울분과 우울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살지, 목숨을 걸고 복수를 감행할지. 정도 차가 있고 형식만 다를 뿐, 현실의 거의 모든 삶도 모순적인 선택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 낙담한 솔로몬이 전달하려던 편지에 불을 붙이는 장면에서, 타들어가는 편지의 소각 장면으로부터 야밤의 별자리를 보는 것 같았다.
** 백인 노예주가 마이클 패스벤더인 걸 영화를 다 본 후 보도자료를 보고서 알았다. 이로써 스티브 맥퀸 감독의 전작 영화 3편에 모두 출연한 배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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