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4일(월) 1930시. 씨네코드 선재. 박찬경 감독 <만신 MANSHIN: Ten Thousand Spirits>(2013) 시사회.
별점: ★★★★
무속을 주제로 박찬경이 45분짜리 중편영화 <신도안>을 발표한 게 2008년인데(당시 <씨네21> 리뷰읽기), 동일한 주제의 연장선에서 특정 무속인 김금화로 집중시킨 장편영화 <만신>을 2014년 3월초 개봉할 예정이다. 그 사이에 2012년 박찬경&나타샤 니직이 2인전 형식을 빌린 'K.W. Complex'(2012.1026~1218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도 그는 김금화를 다룬 바 있으니, 2008년 이후 꾸준히 무속신앙을 주제로 선점한 셈이다. <신도안>리뷰를 쓸때나, 2012년 에르메스 2인전을 본 후나 나는 무속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박찬경의 정서와 쉽게 교감하기 어려웠다. 특히 무속신앙 고유의 비합리성이 어떻게 좌파 정치미학의 노선을 꾸준히 걸은 박찬경과 조화할 수 있는지 아리송했다. 그런데 박찬경식 고증에 따르면 이해되고 공감될 부분이 있긴하다. 한국 근대사(특히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기)가 압축팽창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무속신앙의 처지를 독재정권에 저항하다가 피해를 입은 민주화 세력과 등가로 놓고 무속신앙에 연민을 투사하는 면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요컨대 <신도안>은 1968년 박정희의 계룡산 국립공원화, 1975년 종교정화사업, 1984년 전두환의 삼군통합본부 계룡대 이전을 거치며 민족 종교의 메카였던 계룡산 일대가 타격을 입은 점을 고증자료를 통해 밝혀낸다. <만신>은 비록 개인 김금화에게 원포인트로 집중한 영화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북한군과 남한군 양자 모두에게 첩자로 내몰리는 그 무렵 무속인의 처지를 보여주거나,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 때문에 마을에서 토속신앙이 내부 고발되면서 입지를 잃던 상황을 연출로 보여주거나, 전두환이 집권한 80년대 초반의 국풍81이나 운동권 문화에 뿌리 내린 전통문화로 인해 무속신앙의 다시 생명을 얻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거나, 급기야 1999년 '황구라'로 통하는 황석영과 김금화가 합동으로 통일굿을 올리는 장면, 심지어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태처럼 동시대 정치 현안이 남긴 상처를 김금화의 무속이 치유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엮어내는 기술이 있다.
사진과 미디어를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의 도구로 써온 박찬경의 미술가 이력은 <만신>의 화면 구성에도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낸다. 무속인을 묘사한 기성 민화民畫들을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해서 화면 곳곳에 삽입한 것도 그렇고, 좌우대칭으로 나뉜 공간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는 배 위로 젊은 시절 김금화의 뒷모습을 얹힌 화면도 그렇고, 김금화의 유년기(김새론) 젊은 시절의 두 김금화들(류현경, 문소리) 그리고 실존 인물 김금화는 물론이고 영화 스탭들을 하나의 시공간 속에 엮어놓은 라스트신의 화면 구성 등이 그렇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찍는 스태과 촬영 장비를 고스란히 노출시킨 건 작가의 자기언급self-reference같기도 했고, 이야기를 꾸민다는 점에서 무속인의 재능과 영화 연출자의 역할을 동기화 시킨 것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만신>은 한국영화인데도 한글 자막이 뜰 정도로 말길을 알아듣기 힘들다. 왜냐하면 김금화와 무속인들의 어투가 사투리가 섞인데다가 워낙에 즉흥적 구어체여서 알아듣기 힘든거다. 흡사 한국의 토속 랩퍼처럼 느껴진다. 이렇듯 무속인이 불특정 대중의 소망을 들어주고, 즉흥적인 허구적 대사를 지어내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의 역할을 대역하는 점, 그리고 과장된 감정표현에 능한 점 등을 모두 종합하면 여러 면에서 무속인과 전문 연기자 사이에서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점이 좌파 미술인 박찬경이 무속인의 비합리성을 소재이자 주제로 삼은 이유인 것 같다.
* 오점을 찾자면 무속인의 질감을 재현하기에는 어떤 배우들은 연기력이 받쳐주지 못했고, 무속인 연기가 아닌 배역에서조차 어색한 연기력를 보인 배우가 있었다는 점. 차라리 다크호스인 내게 배역을 맡기지.
** 김금화가 카메라를 제수祭需 도구로 주목했다는 내레이션(연출자의 해석)에 솔깃했다.
*** 영화 시사회가 끝난 직후 박찬경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장례식장에 갈 일정이 있어서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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