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0일 월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인체회전의 미학 (씨네21)

* <씨네21>(941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90회분. 지난회 연재물처럼 이번도 영상으로 봐야 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상. 트릭킹 선수의 연습 장면
중. 김연아의 비엘만 스핀
하. 비보잉의 회전 기술



비보잉의 다양한 파워 무브는 그 기본을 인체의 회전에 둔다. 등 어깨 머리 손바닥 무릎 따위를 맨바닥에 꽂고 유연한 원형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것이 비보잉 기술의 밑그림이다. 무술의 대련을 차용한 (마샬 아츠) 트릭킹 배틀에서 상대편을 제압하는 하이라이트도 기상천외한 인체 회전을 실패 없이 수행하는 순간에 이뤄진다. 피겨 스케이팅 경기의 얼음 무대 위로 관객의 환호성이 쏟아지는 찰나 또한 회전하는 피겨 선수의 인체에 가속이 붙을 때다. 

BMX 자전거 묘기를 포함한 익스트림 자전거 묘기나 인체 한계를 시험하는 곡예 기술들은 균형 잡힌 회전 기술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극단적인 곡예들이 하나 같이 인체의 회전을 기본으로 탑재하는 이유는 무얼까. 인체 회전에 대중이 열광적 호응을 보내는 이유는 무얼까. 무언가가 회전하는 현상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나, 사람의 육체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은 아니다. 사람의 인체 동선은 일상에서 무수한 직선들과 곡선들로 구성될 뿐, 회전에 최적화 되어 있지 않다. 인체를 회전시킬 일이 일상에서 거의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체의 회전은 탈신체적 사건 또는 탈일상적 현상이다. 예술의 본질이 탈일상화를 통한 해방구인 점을 고려한다면, 인체 회전에 어째서 남다른 환호가 쏟아지는 지 이해할 만도 하다.

나아가 회전은 자연의 섭리를 과학의 언어로 설명할 때 곧잘 동원되는 용어다. 천체의 생리를 설명하는 자전과 공전이나, 팽이의 회전 현상을 설명하는 세차 운동은 모두 논리 정연한 과학의 언어다. 균형을 유지한 채 회전하는 물체가 차가운 기계의 논리와 연결되듯이, 회전은 비인간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체가 회전 묘기를 구사하는 순간 그 인체는 흔한 유기체의 논리가 아니라 정교한 과학 논리의 장으로 진입하는 셈이 된다. 더구나 과학의 섭리에 따라 회전하는 인체는 놀랄 만큼 기계적인 균형미와 기하학적 조형미를 낳는다.

실수 없이 회전 기술이 수행될 때 그 인체는 아마 엄청난 열량 소모를 할 것이다. 그 점이 관객에게 파생적인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열량의 소모는 인체에 누적된 리비도를 해소할 것이다. 관람자는 제 3자의 회전 묘기를 구경하면서, 미해결 상태로 방치 중인 자신의 리비도가 일소되는 대리 만족감을 체험 할 지도 모른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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