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미술평론가 반이정씨의 비평집 [사물판독기]가 출간되었다. 이 평론집은 단지 미술평론집을 넘어서, 사물과 예술이라는 두 코드로 예술의 외연을 확장하고 일상문화에 대한 내재적 비평을 행한다.다음호에는 반이정 씨와 비슷한 시기에 미술평론집을 낸 김종길 씨의 인터뷰를 싣는다. (편집자)
책 제목인 ‘사물 판독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예술품이 창작자와 관람자 사이를 매개하는 것처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를 잇는 일반적 사물도 대등한 논평대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제목입니다. <사물판독기>는 <한겨레21>에 2년여 연재된 글을 전부 수정해서 낸 단행본인데요. 연재 당시의 발상도 같았어요. 꼭 미술품이 아니어도 논평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물의 수는 미술품보다 월등히 많죠. 왜냐하면 실제 생에 깊게 관계하는 건 미술품이 아니라 사물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또 사물이란 본래 용도 외에 쓰이면서 이런 저런 뜻하지 않은 사연이 묻게 마련입니다. 한 예로 책에서도 다루는 머그잔은 용량이 큰 용기이지만 어느덧 상투적인 경품의 대명사가 되어서, 설문조사 결과 가장 받기 싫은 크리스마스 선물 목록의 상위권을 차지하게 되었거든요. 비단 머그잔 말고도 오만 사물에 대한 진중한 명상과 순발력 있는 농담의 중간 어딘가를 짚어내는 게 제가 생각한 사물의 판독입니다.
‘사물과 예술 사이’라는 책의 부제에는 예술과 사물의 차이가 전제되어 있으며, 책의 도판에는 사물과 예술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물이 단지 예술작품의 소재적 차원은 아닐 겁니다. 이 책에서 강조되고 있는 예술과 사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한겨레21> 연재 당시에는 제가 쓴 글과 언론사에서 준비한 사물 도판이 나란히 실렸어요. 그런데 사진이 항상 맘에 들질 않아서 책으로 묶을 때 사물의 즉물적인 인상을 잘 포착한 사진으로 교체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죠. 그런데 책 출간을 서너 달 앞두고 도판에 대한 생각을 확 바꿨어요. 사물을 즉물적으로 촬영하기보다 그 사물을 작품에 오브제로 사용한 현대미술 작품을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제야 제가 비평하는 동시대 미술 가운데에 제가 연재 당시 선택한 사물을 작품의 소재나 주제로 쓴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술의 감동은 일종의 정보일 겁니다. 감동이라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올드미디어 즉 유화나 대리석이라는 구 매체를 사용했다면, 요즘 같은 시대에는 흔히 레디메이드라 불리는 뉴미디어가 총출동한다는 건 이제는 상식이 되었잖아요. 일반인이 현대미술을 난해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예술의 감동이 새 매체에 실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일 겁니다. 동시대 미술 작가가 일반적 사물을 통해 작업의 발상을 떠올리듯, 일반 사물을 통해 글의 주제를 떠올린다는 점에서 사물과 예술은 경계를 갖고 있지만 상호 교류하는 관계라고 봅니다.
책의 목차가 6개의 주제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미물예찬, 키치(즘), 공간 읽기, 섹스 섹스 섹스, 색깔론, 미신들이 그것인데, 목차를 편성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한겨레21> 연재 당시 단행본으로 묶을 걸 염두에 두질 않고 사물들을 선택했습니다. 사물을 고른 기준은 이래요. 너무 흔하고 상투적이어서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물이나 현상들을 고른 것이죠. 요컨대 ‘검정 비닐봉지’와 ‘여자아이의 분홍색 옷’이 그렇죠. 매우 흔한 대상과 현상이지만 너무 흔해 빠져서 달리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사물들이잖아요? 예식장 건물도 그렇고요. 국적불명의 디자인이라고 폄하하면서도 결혼식은 꼭 궁궐 같이 생긴 곳에서 거행하는 모순을 보입니다. 사물의 모순적인 성격은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순적인 태도와 심성이 반영된 것으로 봤고, 그런 사물들을 압축적으로 풀어나가면 독자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으리라 믿었어요. 비록 6개의 목차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책에서 다룬 사물은 대부분 제 관점에선 키치가 많습니다. 키치는 모든 사람의 취향을 두루 만족시키려 할 때 출연하는 현상이잖아요. 키치를 6개의 주제로 세분화시킨 셈이에요.
반이정씨는 이미 많은 저서의 저자였는데, 본인의 비평적 지평 중에서 이 책은 어떤 맥락을 가집니까?
단독 저서 간행에는 무심한 비평가로 살아왔습니다. 종래 출간한 책은 대부분 공저인데 미술평론가들과 함께 묶은 책은 고작 한두 권 정도에 그칩니다. <자전거,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는 분야별 자전거 마니아들이 공저자로 참여한 자전거 책이고요, <웃기는 레볼루션-‘무한도전’에 대한 몇 가지 진지한 이야기들>도 분야별 저자들이 스테디셀러 예능방송인 ‘무한도전’을 분석한 공저입니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는 다양한 분야의 저자들이 자신의 집필론을 피력된 책이지만 공저자는 영화평론가 소설가 사회부 기자 변호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미술가는 저만 있었지요. 그 외에 대부분의 공저에서 다른 분야 필자들과 함께 했어요. 말하자면 전문 미술 비평집에는 관심을 두질 않고 살았어요. 이번 신간 <사물 판독기>도 미술책도 아니고 일반 에세이도 아닙니다. 출판사가 책의 성격 때문에 어떤 분야로 분류해야할지 많이 애먹었어요. 독자들은 선명한 장르를 선호하니까요. <사물판독기>는 빙 돌아가지 않고 핵심으로 직진하는 평소 제 성품이 잘 투영된 책입니다. 더구나 연재 당시 원고 분량이 고작 원고지 2.5매 즉 500자였어요. 매주 그 매수를 지켜야 했죠. 짧은 지면에 핵심을 압축하는 2년여의 훈련을 한 셈인데요. 이번에 책으로 내면서 연재 때 보다 분량이 2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짧은 글을 쓸 기회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 점 때문에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핵심만 뽑아내어 압축하는 저의 글쓰기 이력의 중간 결산이 바로 <사물판독기>라고 봅니다.
얼마 전 비슷한 시기에 나온 미술평론가 김종길 씨의 미술비평집에 대해 동시대, 동세대 평론가로서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송은미술대전 심사평을 쓰면서, 장르가 상이한 음악들을 모아놓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어렵듯, 다변화된 현대미술 작품들을 모아놓고 순위를 정하는 것도 힘들다고 심경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같은 세대의 평론가여도 김종길의 비평집에서도 동일한 감정을 느꼈어요. 책 제목 <포스트 민중미술. 샤먼/리얼리즘>에 부제처럼 붙어있는 ‘김종길의 현장비평’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책의 지문 중 상당 분량은 사회 시평에 훨씬 가깝습니다. 사회의 격변을 화두 삼아 실시간 창작으로 옮겨온 미술가들을 다뤘으니 당연한 귀결일 수 있겠지요. 미술계 내에서 개인의 영역이 아닌 연대로서의 미술 창작과 비평을 중시하는 어떤 지점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어요. 그렇지만 연대감과 정의감을 앞세우다보니 “대지에 대한 학살” “참혹한 세계에 경종”처럼 비장미 넘치는 수사법과 고풍스런 문어체가 너무 남발되더군요. 표현의 자유이니 동료 평론가가 간섭할 일은 아닐 테죠. 그렇지만 그런 표현법이 저자가 지향하는 ‘예술의 실천적 전위’나 ‘동시대성’을 정작 가로막는 자충수가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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