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0일(수) 14시. 메가박스 동대문. <진저앤로사 Ginger & Rosa>(2012) 시사회.
별점: ★★★★
전반부와 중반부까지의 진도만 따지면 좋은 평점을 주긴 어려워 보였다. 그럼에도 별점 4개를 준 건 '괜찮은 영화는 초반 20분 안에 대개 결정된다'는 내 오랜 경험칙이 깨진 영화인 점과, 내가 파악하기 힘든 어떤 세대의 정서를 영화가 그려낸 점 때문이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핵버섯 장면과 같은 해(1945년) 런던에서 각기 다른 부모가 낳은 동년배 소녀 둘의 모습을 병치시킨 도입부의 상징성이 영화를 마지막까지 이끈 점도 맘에 들었다.
어떤 고유한 질감은 느껴지되 그것의 좋고 나쁨을 평론가로서 파악하기 힘든 회화 작품이 있다. 그건 그리는 사람들만 알 수 있 감각질이라고 한다. <진저 앤 로사>는 바로 그런 질감을 그 질감을 잘 아는 여성 감독이 다룬 영화 같았다. 처음에는 같은 날 태어나 천생연분 같은 진저와 로사의 각별한 관계 정도로만 파악이 되었다. 가령 새로 생긴 상대방(로사)의 남친에게 질투심을 품는 친구(진저)의 태도도 사춘기의 치기로 이해되었고, 친아빠와 눈이 맞은 친구를 바라보는 진저의 불안감은 아빠를 빼앗은 친구를 향한 자연스런 앙심 정도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내가 파악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가 소녀시대의 고유한 질감을 파악할 수 없는 위치여서 선입견을 갖고 본 거였다.
핵무장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시위와 그들이 공유하는 공포감이 핵비무장 시위에 참여하는 미성년 소녀 진저에게도 옮겨가지만, 정작 진저에게 냉전기 강대국이 개발하는 핵무기는 동성친구 로사에 대한 불안한 애정을 표현하는 대리자였던 거다. 정작 무력한 핵무기 반대 시위에 대한 대안으로 버트란드 러셀이 제시한 '직접 행동'조차 사춘기의 연정을 직접 이행하지 못한 진저 자신의 무력감에 대한 자기 비난으로 들린다.
영화에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자기만을 위한 피신처로 작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어린애 같은 성인인 진저의 아빠 롤랜드의 존재감이다. 피난처 같은 지상낙원으로 소형 보트를 소유한 롤랜드는 아빠라는 호칭보다 롤랜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바라는 급자유주의이자, 슈베르트 곡을 들으면서 홀로 눈물을 흘리는 급로맨티스트다. 강인한 여성이 되길 희망해서 딸 진저의 이름(예명?)을 '아프리카'로 지어줄 만큼 직접 행동에 대한 소신도 강하다. 그림(엄마)과 문학/저널(아빠)과 자유분방한 가풍 속에서 시를 짓는 소녀 주인공인 진저를 안배한 캐릭터 설정은 현대적 문화 예술의 황금기를 통과한 세대(1945년을 영화의 무대로 삼고 있지만, 정작 감독 샐리 포터는 1949년생으로 1960,70년대 대중문화의 수혜를 받고 성장했을 것이다)의 자기연민과 자기고백의 한 방편이었던 것 같다.
* 친언니가 여배우 다코타 패닝인, 진저 역의 엘르 패닝(1998년생)을 검색 해보니 '떠오르는 틴에이지 여배우'로도 거론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나는 차라리 <디태치먼트>의 사미 가일이 더 끌린다.
** <진저앤로사>에서 진저의 엄마 역으로 나오는 나탈리와 <디태치먼트>에서 소심한 여교사로 나오는 인물이 동일 인물(크리스티나 헨드릭스)이라는 걸 영화가 다 끝나고서 알았다. 화장이 사람을 이렇게 달리 보이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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