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4일 일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사후사진 Post-mortem photography (씨네21)

* <씨네21>(953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96회분. 염두에 둔 건 아닌데 시국을 응시할 법한 주제를 우연히 다뤘다.



정지된 죽음의 헛됨





상좌. 안드레 세라노, 시체안치소, 1992
상우. 두 구의 시체를 스탠드로 세워 촬영한 빅토리아 시대 사후 사진
하.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 2012



포토샵이 보급되기 전까지 사진의 고유 권한은 진실에 대한 흔들림 없는 증언이었다. “사진은 현실의 해석이기에, 데스마스크처럼 현실을 고스란히 본뜬다.”고 풀이한 수잔 손탁의 해석처럼. 사진이 보급되던 빅토리아 시대에 마치 산 사람처럼 연출한 망자를 촬영한 사후(死後)사진이 유행한다. 촬영 비용이 고가였던 당시, 사후 사진을 계기로 생존한 가족은 먼저 떠난 망자와 나란히 가족사진을 촬영하게 되었다.

사후 사진은 순간을 영원히 붙드는 사진의 권한에 충실한 반면, 망자를 산 사람처럼 연출한 점은 ‘현실을 고스란히 본뜬다’는 사진의 본령에는 배치된다. 사후 사진은 망자에게 평상복을 입혀서 침대에 눕히거나, 의자에 앉히거나 혹은 인체를 지탱하는 스탠드로 시체를 산 사람처럼 직립시켜서 촬영 되었다.

의뢰자의 입장에서 사후 사진은 부패하기 전 인체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잠시 유예시키는 임시방편이었을 것이다. 이는 영생을 희구하는 인류의 오랜 꿈이 투영된 것으로, 자연의 순리를 문명 기술로 저항한 결과이기도 했다. 한편 영생을 보장한다는 종교의 관념적 주문을 믿기 어려웠기에 발명한 인위적인 대안이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사후 사진은 고대 이집트가 고안한 미라 전통의 뉴미디어 버전 쯤 된다.

1920년대 안달루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에도 사후 사진촬영 신이 잠깐 등장한다. 스페인의 영웅적 투우사 안토니오가 사망하자 생존하는 지인들이 죽은 안토니오와 기념사진을 촬영하려고 긴 줄을 서는 장면이다. 죽은 안토니오는 산 사람처럼 투우사 의상을 차려입었지만 경직된 인체나 감은 눈 때문에 부자연스러움을 지울 수 없다. 망자를 산 사람처럼 연출하려고 사후 사진은 망자의 눈을 인위적으로 뜨게 하거나 촬영된 사진 위로 눈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성영화 시대를 재연한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가 고풍스러운 질감을 유지하듯, 사진 발명 초기의 산물인 사후 사진도 양호하지 못한 보존 상태의 고색창연한 흑백 사진이 많아선지, 망자의 퇴색한 인상은 역설적으로 인생무상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경직된 망자의 부자연스런 표정에서 인생무상의 교훈을 전한 바니타스 정물화의 전통이 읽힌다. 사후 사진은 현재의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1세기도 훨씬 전의 선대에 관한 기록이지만 현재의 자기 삶을 되돌아보게 하며 인생무상을 거듭 확인하게 만들기도 한다. 주검을 기록한 충격적인 사진 촬영이 세라노 같은 현대 사진가들에 의해 계승되는 이유는 인생무상을 확인하려는 게 인류의 본성이어서 일거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