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평일과 휴일의 구분이 없으니 식당과 가게가 노는 긴 연휴 기간이 내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공저 에세이집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에서 내가 쓴 지문에서 인용해 본다.
직장인이 환호하는 긴 연휴가 전업 필자에겐 불편한 이유에 관해 트위터로 쓴 적도 있더라(엮인글). 지금은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어서 식당이나 가게의 휴업이 내게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다.
이번 4일의 연휴(5월1일부터 쉰 직장이라면 6일 연휴)는 기증 받거나 사다 놓고 읽지 않은 채 박아둔 책들을 살피면서 집에서 머물렀다. 틈틈이 기고할 원고를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한가롭게 책장 넘기면서 시간 보냈는데 만족스럽다. 진작 이럴걸.
4일 연휴 동안 독서를 빼고 내가 한 일은 '어떻게 살면 좋을까'에 관해 불연속적으로 생각한 것.
작년 말에도 '어떻게 살면 좋을까'를 생각했고, 신년초에도 같은 고민을 했고, 이사한 직후에도 그 생각이 머리속을 지배했고, 이번 연휴 중에도 같은 생각을 했다.
+ 연휴 4일 동안 살핀 책 리스트
윤정미 <근대 소설> - 전시 도록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 덕수궁관 전시 도록
프레데릭 페테르스 <푸른 알약> - 만화
XXX <XXX XXX> - 만화
조경규 <오무라이스 잼잼 4> - 만화
Jeffrey Brown <Unlikely> - 만화
안인수 <배우 수련> - 연기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예수는 신화다> - 종교
조세핀 김 <교실 속 자존감> - 교육
ps. 책촌평
윤정미 <근대 소설> - 전시 도록
작년 12월 윤정미의 개인전 신작을 모은 도록이다. 인상을 짧게 정리하면 국문과 교수와 미술평론가의 글이 도록에 실렸는데, 글 도움 없이 작품을 대하는 편이 낫다. 더구나 윤정미가 작품에 인용한 국내 단편소설의 내용을 끊임없이 끌어와 소설과 사진 사이의 개연성을 직조해내려는 국문과 교수의 비평은 ‘내부를 향해 토해내는 공허하고 무의미한 외침’처럼 읽힐 정도다. 아마 그도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감을 못 잡았을 거다.
윤정미의 신작은 2008년과 2013년 두 해 동안 촬영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사 박물관>이나 <핑크 프로젝트/블루 프로젝트>같은 윤정미의 과거작품이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하는 현상들을 유형적인 볼거리로 묶어서 변별점을 얻은 반면, 과거의 허구적 서사로부터 오늘의 현실 읽으려고 한 이번 시도는 주관적인 울림에 그치기 쉽다. 신작은 공감과 해석 모두에서 여의치 않다.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 덕수궁관 전시 도록
동시대 한국미술의 초석일 수 있는 근대미술은 무척 부실한 토대 위에 서 있다. 그런 점을 확인하고 싶어서 전시를 본 후 전시 도록을 요청해서 받았다. 근대미술의 토대가 부실해도 근근히 유지되는 건 고인이 된 극소수의 스타 작가(이중섭, 박수근, 김기창...) 때문인데, 그들의 후광에 힘입어 근대미술에 관여한 다른 작가들과 1세대 평론가들이 과도한 우대를 받는 걸 테다.
프레데릭 페테르스 <푸른 알약> - 만화
사랑을 바라보는 문화적 편차를 느끼게 해주는 만화. 한국에선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어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데 실화를 토대로 했다니 더더욱 놀랄 밖에.
XXX <XXX XXX> - 만화
어느 출판사에서 기증도서로 보내준 책인데, 몇 페이지 읽다가 말았다. 그래서 XXX로 익명 표기.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끈 만화라는데 통 매력 지점을 찾을 수 없다. (이번 세월호 사태를 대하는 나의 냉담도 그렇지만, 대중의 기대치와 나의 그것이 차츰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
조경규 <오무라이스 잼잼 4> - 만화
만인의 관심사인 먹거리에 집중하는 필자의 진정성, 선택된 먹거리의 역사를 소개한 자료 조사의 감동, 현재까지 총 4권으로 이어진 먹거리에 대한 필자의 애착이 묻어난 연작 만화.
Jeffrey Brown <Unlikely> - 만화
데뷔작 <Clumsy>를 우연히 접한 게 제프 브라운 만화와의 인연이 되어 2번째 책 <Unlikely>를 연전에 구매했다. 하지만 잘 읽게 되진 않아서 여태 방치해 뒀다. 삐뚤삐뚤한 개성적인 데생과 대사마저 구어체 인데다가 육필로 삽입해서 보기 힘든 만화. 제프 브라운의 초기작이 지닌 매력 포인트는 고의적으로 미완성 마감이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적으로 자서전적인 스토리로 만화를 구성하는 점도 독자의 관음증을 높인다. <Unlikely>의 부제는 ‘나는 어떻게 처녀성을 잃었나’로 자신의 첫경험의 과정을 다뤘을 정도.
안인수 <배우 수련> - 연기
숨쉬기 소리내기 몸풀기 등 연기자의 기본 트레이닝을 다룬 책인데 수년전 구입했지만 읽지 않고 박아뒀다. 이번에 펴들었지만 역시 읽히지 않아서 중도에 관뒀다. 지문 중에 아래 문장을 보고는 속으로 ‘어 그럼 바로 나네?’했다.
“배우가 되는 데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두 번째도 시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그리고 세 번째도 역시 시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중략)... 이것이야말로 배우수련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45쪽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예수는 신화다> - 종교
2005년 7월 KIDS 온라인 모임의 staire 강민형님 추모 모임 때 제본해서 받은 책. 그런데 무려 9년이나 지나서 책을 펴들었다. 이 책은 동아일보사에서 2002년 발간했으나 개신교 단체들의 강력한 항의에 밀려 출판사가 자진해서 절판 한 금서다. 검색해보니 2009년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 되었다고 한다. 독서를 추천한다. 그리스도교나 예수의 뿌리가 이교도의 종교였음을 역사적 고증한 책. 예수보다 역사적으로 먼저인 이교도 ‘오시리스-디오니소스’를 예수와 비교한 아래 지문을 보자.
“예수는 인간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그의 어머니는 사후에 하늘로 올라가 신적 존재로 추앙되는데, 이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는 12월25일 혹은 1월6일 태어나는데,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그 외 무수히 많은 공통점이 둘 사이에 존재한다.
성경을 은유적으로 풀이하는 영지주의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문자주의 기독교가 후대의 그리스도교를 정통으로 들어선 것은, 내게 큰 화두와 과제를 던진다. 이런 부조리한 사태가 현실화 된 데에는 ‘문자 그대로의 기적’이 현실에서 발생하길 바라는 대중의 허구적 희망이 토대가 되어서 일거다.
조세핀 김 <교실 속 자존감> - 교육
“나는 학생의 인생을 변화시킬 영향력을 가진 교사다!” -- 99쪽
이 지문에 고무되어서 후다닥 읽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대학생이 아니라 초중고생을 대하는 교사를 위한 책이다. 하지만 <아트 스타 코리아>에서 도전자 멘토링을 하면서, 도전자의 문제점을 찾아 변화의 가이드라인을 주는데 소질이 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막상 내가 사제지간으로 접하는 미술대학 수업에선 관대한 강사 축에 들지 못했다.
‘학생의 자존감을 키우는 선생’과 ‘그렇지 않은 선생’을 대비시킨 책의 별첨을 살펴보면 나는 둘 모두에 해당되지만 ‘학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선생이 아닌 점’, ‘칭찬에 인색한 점’, ‘학생의 이름을 잘 기억 못하는 점’ 등에서 나는 ‘학생의 자존감을 높이지 못하는 선생’에 속할 것 같다. 앞으로 개선하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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