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0일 토요일

0508 트랜센던스 ★★☆ /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 0509 신촌좀비만화 ★☆

5월8일(목) 14시. 롯데시네마 건대 <트랜센던스 Transcendence>(2014) 시사회.

별점: 





세계를 하나의 망으로 연결하는 정보통신의 우월한 기술력을 저지하고 무력화시키려는 입장이 있다. 이런 입장은 19세기초 기계파괴운동에 빚대어 네오러다이트 운동(Neo Luddite)이라고 부른다. 첨단 기술을 인류 구원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영화 속 과학자의 입장과 과학발달이 결국 악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네오러다이트 사이의 대립이 큰 줄거리이다. 시의적인 의제를 상정한 점에서 흡인력이 있는 영화일 수 있었다. 더구나 <다크 나이트>의 제작자가 영화의 제작을 맡았다니, 영화 속 볼거리가 노련한 마스크의 배우 조니 뎁 외에도 더 큰 스펙터클까지 확보된 셈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이나 신경과학의 현주소와 '물리적으로 독립된 신경체'로 불리는 Pinn이라는 고성능 컴퓨터, 그리고 영생이라도 약속할 것 같은 현대의 나노기술 등을 늘어놓으면서 이런 극단적 과학주의를 영화로 각색해서 동시대 관객에게 전달하는 건 아직은 어려운 과제로 보인다. 난맥상이 자주 나타난다. 무수한 첨단 과학들의 전지전능함을 속도감 있는 스토리텔링에 포개넣으려다보니 이야기가 개연성 없이 도약하기 일쑤다. 이야기의 갈등을 초래하기 위해 배우가 막무가내의 무리수를 쓰는 일도 많다.  

<트랜센던스>는 신경과학 인공지능 나노기술처럼 동시대 과학이 다다른 현주소와 그런 과학의 면모를 허구로 가공한 여러 영화적 선례들을 참조해서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정보통신기술의 진화나 우월한 과학주의를 화두로 던진 '아주 오래된 고전'들로부터 이 영화가 멀리 벗어나 있지는 못하다는 느낌이다. 비밀리에 호텔에 투숙한 영화의 주인공이 본명 대신 최초의 연산기계의 아이디어를 내놓은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름을 따서 '튜링'으로 예약을 한 장면은 웃어넘길 수 있다. 발표회장에서 "신의 자리를 넘보는 거냐?"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참석자와 뒤이어 등장하는 신 기계파괴주의자들의 테러 장면 그리고 첨단 의학과 정보기술로 무장한 공간을 점유해서 새로운 신천지를 만든다는 설정 등에서 <트랜센던스>가 빚진 과거의 영화들이 떠오를 것이다. 인류 기원의 문제를 다룬 <컨택트>의 IT버전처럼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컨택트>가 남긴 고민을 넘어서진 못하고 참조만 할 뿐이다.  

<트랜센던스>에서 '물리적으로 독립된 신경체'로 소개되는 고성능 컴퓨터 Pinn도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인공지능컴퓨터 HAL 9000을 참조한 것일 테지만 '2001년의 아이디어'를 더이상 진전시키지 못한다. 전 세계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후 새로운 신 처럼 행사할 수 있다는 설정과 오프라인을 지배하는 온라인의 저력을 보여준 장면 따위는 유비쿼터스한 네트워크의 미래상을 보여준 <매트릭스>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그 역시 <매트릭스> 이상의 진전을 보여주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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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8일(목) 16시30분. 롯데시네마 건대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20 Feet From Stardom>(2013) 시사회.

별점: 




한창 시절로부터 멀찌감치 퇴역한 왕년의 코러스 백업가수들의 과거와 오늘을 입체적으로 다룬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무대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들 뒤에서 후렴구로 주인공의 완성도를 보완해주는 백업가수을 조명한다. 백업가수의 원조는 백인 여성이었단다. 마이크의 앞뒤로 몸을 움직이면서 기계적인 후렴구를 삽입한 백인 백업가수는 이내 가스펠풍의 자기스타일을 지닌 흑인 백업가수로 교체된다. 재밌는 건 이들 흑은 여성 백업가수들은 집안에서 아버지가 목사여서 성가대 경험이 있는 이들이 많다는 점. 그래서 이들의 음악이 '복음성가를 세속화한 경우'라고 풀이하더라. 흑인 여성 백업가수는 종래 백인 여성 백업가수가 메인 가수의 단순 보조를 넘어서서 자기 무대를 확보한 독보적 세력으로 성장한다. 그렇지만 개인의 목소리를 고수하지 않는 백업 가수의 숙명 때문에 솔로 데뷔는 번번이 제약을 당하고 성공에 이르지도 못한다는 것. 

흑인 백업 가수의 연보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흥미롭게 파헤친 대목은 백업 가수는 미국 대중음악의 산물인데, 영국 대중음악에서 흑인 스타일일 추구하는 조 카커, 레드 제플린 같은 뮤지션이 등장하면서(이들의 블루스 성향을 말하는 듯), 영국 뮤지션들도 미국 백업 가수들과의 협업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증언.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은 무대의 정중앙에 선 메인 가수를 보조하면서 존재감이 잊혀진 백업 가수에게 서치라이트를 비춘 점에서 평론가와 심사위원들의 호감을 사기 쉬웠을 것이다. 그런 선한 취지가 아니어도 무대 뒷편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메인 가수의 존재감을 보조하는 데 주력한 백업 가수의 몫이 전체 대중음악사의 전개에서 차지하는 몫을 살폈다는 점 때문에 호평을 받은 것 같다. 일단 별점 4개를 주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R&B와 가스펠풍의 음악을 선호한 적이 적었던 내 취향 때문에 영화 속 음악에 몰입하긴 어려웠다. 백업 가수들의 후원으로 주목받은 조 카커, 티나 터너, 레이 찰스 같은 주연들의 음악에 관해서도 내가 호감을 보인 적이 적었던 거 같다. 

가난한 흑인 공동체의 교회 성가대 출신자들이 세속의 무대에서도 메인 가수를 보조하는 활동에 투입되다는 사실, 그리고 솔로 데뷔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 퇴임 후에는 가난한 흑인 공동체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영세한 노래 강사로 투입되는 사실 등을 보면서 세상의 축소판을 확인하는 씁쓸한 기분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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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9일(금) 10시. 왕십리CGV <신촌 좀비 만화 Mad Sad Bad>(2014) 시사회.

별점: 


영화 감독 셋의 각기 다른 세편의 3D영화 연출작을 묶은 옴니버스물이다. 관람 내내 놀랐다. 이런 흥미로운 구성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저버릴 만큼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올해 전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니 더욱 놀랍다. 너무 황당하고 형편없게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세 감독의 작품은 이렇다. 류승완 '유령' / 한지승 '너를 봤어' / 김태용 '피크닉'. 짧은 러닝 타임 속에 세편이 단편영화의 러닝타임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세편 모두 밀도는 떨어졌고 관람 시간도 길게 느껴질 만큼 지루했다. 

가상세계에 제 삶을 저당 잡힌 동시대 청소년의 비주류적 초상화를 그린 류승완 감독의 '유령'.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가상 네트워크에 제 삶을 내준 청소년들 주체로 설정했찌만, 영화 속 청소년드링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판단력과 행동은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을 받을 만큼 동의의 수준을 넘어선다. 살인 후 인증샷을 태연히 촬영해서 카페에 공개한다거나 네트워크상에서 청부살인을 부탁한 소녀가 청부 살인이 실제로 제 눈앞에서 벌어지자 태연히 '그냥 해본 부탁이었다'며 화들짝 놀라서 화를 낸다는 황당한 반전 따위가 그렇다. 청소년들의 비현실감을 이렇게 극화해도 정당할까? 아무리 허구적 산물이 영화예술이라지만 말이다. 

'유령'은 왜 불편하고 어색할까? 그 원점에는 이야기 속 주체인 청소년의 감성을 성인의 눈으로 엉뚱하게 필터링해서 엉뚱한 오독의 결과물을 내놓은 데 있다고 본다. 무수한 카톡 대화창이 하루의 의사 소통을 지배하는 청소년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 무수한 카톡 대화창을 스크린위에 3D로 흩뿌려놓은 설정도 가독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가상세계와 현실 사이의 혼돈을 다룬 걸로 치자면 <잉투기>를 참조했다면 좋았을 텐데.  

좀비를 소재로 삼은 한지승 감독의 '너를 봤어'는 이 영화가 지향한 목적이 좀체 뭔지를 모르겠다. 좀비를 통해 은유하려는 바(가 있다면) 그게 뭔지도 알 수 없었고, 설령 은유가 없는 단순 좀비 영화였다면 좀비 영화가 갖춰야할 기본 문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거다.  

아이의 내면 세계를 바라본 김태용 감독의 '피크닉'도 미성년 초등학생의 정서를 성인의 눈으로 과도하게 풀이한 점에서 류승완의 영화와 비슷한 오독을 범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신촌좀비만화>의 옴니버스 세 편 모두에서 출연진이 보인 연기력이 함량을 밑돈다는 게 문제다. 이런 경우는 배우보다는 연출자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신촌좀비만화>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가 새로운 영화기술(3D)을 전문 영화인들과 함께 연구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젝트" 기획물이란다. 이런 취지에도 불구하고 세 편이 왜 3D로 제작 되었어야 했는지 보는 내내 납득하기 힘들었다. <겨울왕국>이나 <그래비티>처럼 3D의 효과를 톡톡히 본 영화의 수준까지 기대했던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 오전 10시에 시작한 시사회는 상영이 끝난 직후 기자간담회가 열렸지만 나는 간단회를 보진 않고 장내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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